개인적인 체험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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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나에게만 한정된,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는 <개인적인 체험 - 오에 겐자부로>

 

 

 

 

 

 After Reading

 

 

 

 

  누구나 '개인적인 체험'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와 공유한다고 해서 결코 나눠질 수 없는, 완전히 나에게만 한정된 이야기.

그러고 보면 '개인적인 체험'에 대한 공감이 그리 쉽게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상대방의 고민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할 때,

또는 가끔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저 '힘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속의 이야기를 보면 그렇다.

 

  책 속의 주인공인 20대 후반의 직장인 '버드'는 어느날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자신의 아이가 '뇌 헤르니아 (뇌의 일부가 밖으로 튀어나오는)'상태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현실에 절망한 주인공은 술과 여자친구를 만나 방탕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 일탈을 통해 잠시 '지금'의 좌절을 잊으려한다. 버드만의 고유한 불행은 계속해서 그 불행의 사실을 일깨우면서, 수치심과 죄책감을 불러 일으킨다. 결국 점점 심해지는 심리적 고통은, 버드에게 평생의 염원이었던 아프리카로 떠나 '아기 괴물'에게서 도피하려 하는 희망을 품게 한다. 비참한 현실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그 '아기 괴물'을 어떻게 놔두어야할지도 까마득하다.

 

  실제로 이 소설은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이 승화된 문학이다. 고통스런 현실과 혼란스러운 감정을 스스로 느꼈던 작가의 경험이 녹아들어있으며, 이 책 이외에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에 대한 책들을 여럿 집필했다. 결국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그때문에 나도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아직 내 수준에는 어려웠던 탓일까. 중간 중간 나오는 우주론·영혼론 같은 것들에 대한 단상은 책 속의 깊은 주제와는 관련없이 떠도는 것처럼만 느껴졌다. 또한 표면적인 결말은 너무 이상적으로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주인공 버드의 결심으로 이어지는 그 심리적 과정이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달라보였다는 점이 조금은 독특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만약 이런 '개인적인 체험'이 나에게도 온다면, 과연 용감할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어쨌든, 다시 한번 현실에 감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Underline

 

 

 

 

  - "문제는 고통스럽다, 라는 말의 의미군요. 이 아기는 시력도 청각도 후각도, 뭐 하나 갖고 있지 않을걸요, 게다가 고통을 느끼는 부분도 결락되어 있는 거 아니려나? 원장 말로는 뭐라더라? 식물적인 존재니까! 당신은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하나요?" 버드는 입을 다물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했던가? 산양에게 씹히고 있는 양배추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어떻습니까? 식물적인 아이가 고통스러워한다고 생각하세요?" 하고 의사는 여유만만 무게를 잡으며 다시 물어왔다. 버드는 솔직하게 고개를 흔들었고 그 질문이 현재 그의 뜨거운 머리의 판단 능력을 넘어선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처음 만나는 낯선 인간에게서 저항을 느끼지 않고 굴복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건만. (47p)

 

 

  - 그는 막대한 수의 타인들과 동거하고 있다. 하지만 식물과 같은 아이에게 있어 이 외부 세계 체재는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은미한 고통의 몇 시간에 지나지 않으리라. 그러고 나서 숨막히는 한순간이 있고 그리고 또다시 그는 몇억 년에 걸쳐 무의 광야의 미세한 무의 모래알 그것이다. 설령 최후의 심판이 있다고 한들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죽어버린 식물과 같은 기능의 갓난아이를 어떤 사자로서 소환하고 고발하며 판결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진주 광택이 있는 빨간 입을 커다랗게 벌린 채 혓바닥을 하늘하늘해 가며 울음소리를 내고 있던 몇 시간의 지상 체재로는 어떤 심판자에게도 증거 불충분이 아닐까? 그야말로 증거 불충분이야, 라고 버드는 점차 깊어져 가는 극심한 공포에 숨을 죽인 채 생각했다. 만약 그 장소에 증인으로서 내가 불려 나간다고 해도 나는 자기 아들의 얼굴을 확인조차 못할 것이다. 아기 머리의 혹을 실마리로 삼는다면 모를까. 버드는 윗입술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 (57p)

 

 

  - 거칠어 보일 만큼 풍성한 빛이 그곳에 넘치고 있었다. 거긴 이미 초여름이 아닌 여름 그 자체, 여름의 내장 속에 있었다. 버드는 그 빛의 난반사에 이마를 데었다. 스무 대의 유아용 침대와 전동식 오르간 같은 다섯 대의 보육기. 그 안의 아기들은 안개를 통해 보듯 어렴풋이밖에 보이지 않는다. 거꾸로 침대 위의 아기들은 너무나 적나라하다. 모두들 지나치게 밝은 빛의 독 때문에 축 처져 위축되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점잖은 가축의 무리 같은 아기들. 아주 조금씩 손발을 움직이고 있는 아기들도 있지만 그들에게도 흰 면으로 된 속옷과 기저귀는 납으로 된 잠수복처럼 무거워보인다. 모든 갓난아이들이 구속당한 자 같은 인상이었다. (121p)

 

 

  - "분명히 이건 나 개인에게 한정된, 완전히 개인적인 체험이야."하고 버드가 말했다. "개인적인 체험 중에서도 혼자서 그 체험의 동굴을 자꾸 나아가다 보면, 마침내 인간 일반에 관련된 진실의 전망이 열리는 샛길로 나올 수 있는 그런 체험이 있지? 그런 경우, 어쨌든 고통스런 개인에게는 고통 뒤의 열매가 주어지는 것이고. 흑암의 동굴에서 괴로운 경험을 했지만 땅 위로 나올 수가 있음과 동시에 금화 주머니를 손에 넣었던 톰 소여처럼! 그런데 지금 내가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고역이란 놈은 다른 어떤 인간 세계로부터도 고립 되어 있는 자기 혼자만의 수혈을 절망적으로 깊숙이 파들어가는 것에 불과해. 같은 암흑 속 동굴에서 고통스레 땀을 흘리지만 나의 체험으로부터는 인간적인 의미의 단 한 조각도 만들어지지 않지. 불모의, 수치스러울 따름인 지긋지긋한 웅덩이 파기야. 나의 톰 소여는 끝없이 깊은 수혈 밑바닥에서 미쳐 버릴지도 몰라." (2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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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이상적이었다고 썼지만, 만약 다른 결말이어도 또 마음에 안들었다고 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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