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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내 가여운 개미
류소영 지음 / 작가정신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사는 게 참 신 맛이다. 시리고 또 시리다. <개미, 내 가여운 개미 - 류소영>
After Reading
"사는 게 참 신 맛이다. 시리고 또 시리다." 그러나 그 시리고 신 맛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가는 우리, 개미를 닮았다.
12년 만에 세상으로 나온 류소영 작가의 소설집, 제목을 보자마자 '개미'가 무엇일까하는 물음 대신 연민부터 올라온다. 가여운,이라는 형용사가 무언가 안쓰럽고 처연한 감정을 올라오게 만든다. 상큼하게만 보였던 표지가 제목과 함께 보면 또다른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가엾다, 제 몸보다 큰, 시디 신 아이스크림을 핥고 있는 개미가.
책 속 8개의 단편들, 그 속의 주인공들은 무언가 부족하거나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어느 순간 없어져 버린, 아니면 어느 순간 없어져 버릴 어떤 것들에 대하여 작가는 이야기해간다. 삶에서 언젠가 맞이할 수도 있는 '상실'과 '부재'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쓸쓸하다. 언젠가 물 속으로 없어져 버릴 한 마을의 모습, 이미 잃어버린 존재, 자신 속에서 숨기고 숨겨왔던 비밀스런 모습, 소통이 되지 않았던 그 고독한 사람들의 모습, 가면 갈수록 자신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고립감.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외롭고 쓸쓸하다. 그러나 그들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독한 외로움을 나름대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치유책으로 작용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가장 인상깊었던 이야기는 소설집의 제목으로도 사용된 '개미, 내 가여운 개미'와 '기록'이란 작품이다. 언뜻 발견한다면 지나치고 말 평범하고 개미처럼 작은 이들에게 주목한 작가의 시선이 짠하다. 작가는 이야기에 끝에, 어찌보면 빤한 희망적인 메세지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렇게 안쓰러운 얼굴로 바라본다. 그저 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그들의 모습을 잊지 않기를, 계속해서 그리워하기를, 바라고 있다.
Underline
- 그 여린 마음을, 그 어눌하고 착한 마음을, 이제 막 직장을 버리고 공부를 시작한 스물여덟의 나는, 사는 게 참 신맛이다, 시리고 또 시리다, 거듭 생각하고 있던 나는 그렇게 외면했었다. 터무니없는 비논리로 나는 마음엔 무슨 절대량 같은 게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여 이 봄이 무척이나 힘든 시기라고 생각했던 나는, 인문대학 대학원생이라는 위치로 미래를 기약할 수 없지만 내가 내 중심을 잡고 내 나이를 견디어내고 사는 일의 슬픔 같은 것을 다 감당해내는 것만으로 벅찬 시점이라 생각했던 나는, 그가 너무 무거웠던 것 같다. 마음의 절대량...... 너의 중심을 잡는다는 게 무슨 소리냐, 네가 너를 감당한다는 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무런 답을 내어놓지 못할 터였다. (물소리, 28p)
- 그녀가 입안 가득 빵이나 과자를 문 채 당혹스러운 죽음에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을 나는 상상하기 힘들기에. 그녀의 '저 먼 곳'이. '저 건너편'이 평안하지 않을 것이기에. 아니, 무엇보다 그녀가 입안에 무언가 물고 죽었다면 남은 동안 나는 단 한순간도 편하게 먹을 수 없을 것이기에...... 날은 완전히 밝았고, 버스는 어느 작은 휴게소로 들어갔다. 잠에서 부스스 깨어난 사람들은 무언가 따뜻한 것을 먹기 위해 내렸고, 나는 그 무엇도 먹고 싶지 않았다. 남으로 내려올수록 봄빛은 찬란했다. (개미, 내 가여운 개미, 49p)
- 애매하고 불안정한 나이. 팍삭 늙어 체면도 힘도 자존심도 없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늘 하고 싶은 게 많고 계획으로 가득 찬 의욕 넘치는 나이도 아닌 그 어정쩡함. 나는 항상 그 불안정함이 불편하고 아슬아슬했었다. 동네 슈퍼가 아니면 맨얼굴로 외출하지 못하지만, 답답하다며 욕실 문을 살짝 열어둔채 볼일을 보는 나이. 부엌일이 싫기도 하지만 아직은 맛난 것을 먹고 싶은 나이. 하여 내가 잘 만들지 못하지만 본인이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끙끙 한숨을 쉬면서 손수 만들기도 하는 나이. 격식을 차려야하는 모임 자리가 있으면 코르셋을 앞에 놓고 언제나 고민하는 나이. (또 밤이 오면, 74p)
- 우리들은 저녁 일곱 시나 여덟 시쯤, 친구들이 다 모이기 편하게 시내 한복판에서 만나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하는 친목 모임에 나갈 수 없어 점점 그들과 멀어져갔고, 때때로 어렵게 월차를 내어 참석해도 친구들이 다 보는 인기있는 텔레비전 사극이나 유명한 개봉 영화를 보지 않아 대화에 낄 수 없었으며, 너무 오랜만에 보는 녀석들 앞에서 우습게도 낯을 가리고 머쓱해지는 바람에 쓸쓸해져서는 일찍 자리를 뜨곤 했다. 우리는 함께 근무하는 우리들끼리, 서로 미워하고 서로 아껴주고 서로 짜증내고 서로 가여워하며 똘똘 뭉쳤으며, 그 뭉침은 달리 말해 고립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립을 어느새 스스로 편안해하고 있었다. (옷 잘 입는 여자, 104p)
- 백열두 개, 백열 여섯 개 ...... 시간의 숨결이 느껴진다. 시간이 무척이나 더디게 흐르고 마치 어딘가에서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주위는 사실 무척이나 소란스러운데 가끔씩 목욕탕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귀가 웅웅 울리면서 나혼자 고립된 듯 멍하고 고요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이대로 혼자 또 다른 세상으로 빠져들 것 같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이 꼴로 넘어간다면 좀 슬플 것 같다. 토끼가 춤추고 코끼리가 기차를 모는 환상의 세계에, 눈을 부라리고 입에 빨대를 가득 꽂은 채 인간 대표로 놀러갔다 올 수야 없지 않겠는가. 머리를 한번 가볍게 흔들며 다시 정신을 차린다. (기록, 1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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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왠지 울적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