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섬세해졌을 때 알게 되는 것들 -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철학 에세이
김범진 지음, 김용철 사진 / 갤리온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작음, 연결, 부드러움, 결, 여유로움 <우리가 섬세해졌을 때 알게 되는 것들 - 김범진>

 

 

 

 

After Reading

 

 

 

 

  우리 동네에는 아직까지 살아 남아있는 작은 서점이 하나 있다. 그 구석에 헌책방이 마련되어 있는데 가끔은 그곳에 가서 좋은 책이 나온게 있나하고 기웃대곤 했었다. 이 책은 그 곳에서 골랐다. 오로지 표지에 사진에 마음이 가서 골라들었다. 처음엔 사진 에세이인줄만 알 정도로 표지의 사진이 마음을 끌었다. 그러나 읽어보니 사진보다도 글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의외로 반짝 빛나고 있는 철학 에세이였다.

 

  작가는 '섬세'라는 단어에 주목한다. 섬세한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그런 섬세한 사람이 이 세상에 넘쳐나기를 바란다. 섬세는 작은 것들이 서로 연결되 있는 것을 뜻하며 그 속에는 '결'이 존재하고 있다. 어떠한 한 이야기의 맥락에 비유할 수 있는 '결'은 누구나 고유하게 갖고 있는 것이며 섬세한 사람들은 그 '결'을 느끼기 위해 노력한다. 섬세를 대표하는 단어들은 작음, 감수성, 연결, 맑음, 부드러움, 생명, 느림과 여유다. 세상에 살고 있는 모두가 부드럽게 연결될 수 있는 조건이 바로 이 섬세함이 될 수 있으며, 끝이 어딘지도 모른 채 한없이 커가고 있는 세상에서 조용하지만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섬세함이다. 

 

  이 섬세함을 토대로 사회의 많은 문제들의 해결점을 찾기 위해 작가는 철학적 사유를 보탠다. 그리고 섬세함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일들과 섬세함이 활약하여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해간다. 간혹 작가가 '섬세'라는 키워드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 단어로 압축되어 있는,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바라던 사람들의 성정이다. 여유롭고 감성적이고 세심하게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이다. 최근들어 많이 제시되고 있는 내향성과도 '섬세함'은 접하고 있으며, 요즘 자연으로 가고 싶은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다 이런 마음의 갈망으로부터 온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조금, 조용해질지라도 자신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 자신을 보는 것처럼 남을 다시한번 돌아볼 수 있는 것.

이것이 작가가 바라는 섬세한 세상이다.

 

 

 

Underline

 

 

   - 사람들은 누구나 꿈꾸는 자신의 모습이 있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그럴 때 우리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과거의 상처와 흔적들을 무시하고 완전히 새로운 나를 세워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의 흔적과 결을 살려 그 위에 조금씩 더해가거나 줄여가는 것이다. 인격은 건축물로 비유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성장하고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면 내 안에 있는 과거의 아픔, 독특한 성격, 때로는 병리적으로 보이는 과도한 개성들을 모두 없애고 새로운 누군가가 되려 한다. 마치 바닷가에 난 소나무의 뒤틀린 결들을 곧게 만들어 버리려는 것처럼. 그러나 깊은 숨을 쉬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 결 속에 길이 담겨있다. 나무의 뒤틀린 결은 거친 환경 속에서 생존하고자 햇던 몸부림이자 상처이자 훈장이다. (47p)

 

 

  - 내가 다른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감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낳는다. 지금 나를 있게 해준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내가 받은 것 만큼 돌려주지 못한 채 오히려 폐만 끼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미안한 마음이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 내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면서 품어주는 자연과 대지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이다. 가장 깊은 연결은 가장 큰 존재, 즉 전체성과의 접촉이다. 나를 이루는 가장 본질적이고 깊은 부분이 다른 존재들, 그리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전체와 연결되어 있고 하나라는 자각이다. 이런 자각은 다른 존재에 대한 깊은 배려를 낳는다. (123p)

 

 

  - 과거에 느림은 왠지 게으르고 무책임한 인상을 주었다면 요즘에는 느림 속에 웰빙, 인간다움, 정성, 배려가 떠오른다. 섬세는 느림이다. 한 올 한 올 엮어가는 정성이며, 움직임 하나하나에 깊은 사색과 배려가 담긴 느림이다. 기계로 판박이처럼 찍어내는 편리함이 아니며, 자신의 편익과 이익만을 위해 달려 나가는 조급함도 아니다. 편의를 위해 내면의 소리와 자신의 기준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148p)

 

 

  - 아이의 의식은 아이가 보고 자란 하늘의 크기만큼 자란다. 의식은 공간과 매우 닮아 있다. 의식이 맑고 넓어지면 자신이 자각하는 공간 또한 함께 넓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무한히 확장된 의식은 우주에 비유된다. 광활한 대지와 하늘을 많이 접할수록 우리의 의식 또한 더 넓고 커진다. 아파트 단지에서 자라는 요즘 아이들은 좁은 하늘을 보고 자란다. 부모들은 아이가 누굴 닮아 저렇게 집중력도 없고 까질한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쉰다. 아이들은 보고 자란 하늘과 자연을 닮았을 뿐이다. 아이들은 아무 죄가 없다. (191p)

 

 

 - 삶 속에 어느 순간이 찾아온다. 그것은 신체의 감각과 함께 그리고 잔잔한 빛의 번짐과 함께 찾아온다. 그리고 그 빛은 시간이 흐르며 금색으로 번져 나중엔 그 순간을 떠올릴 때면 아련하게 축복처럼 쏟아지는 황금빛 입자들 가득한 장면으로 한가득 떠오른다. 그 순간은 소중하다는 말로는 담을 수 없을 만큼 경이와 아름다움으로 충만해서, 가령 누군가 집채만 한 다이아몬드를 준다고 해도 결코 그 순간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그런 순간은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찾아오기도 한다. (1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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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사진도, 물론 멋지고 분위기 있다.

의외로 굉장히 - 만족한 에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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