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의 인문학
한귀은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감성으로 전하는 인문 테라피 <모든 순간의 인문학 - 한귀은> 

 

 

 

 

 

After Reading

 

 

 

   스무 살이 되면 어찌됐든 마음도 넉넉해지고 생각도 커질줄만 알았는데, 자꾸만 내 마음이 좁아짐을 느낀다. 감정을 조일 수 있는 힘이 느슨해진 것 같다고 느낀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를 때가 행복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겠다. 하나하나 알아갈 수록 하나하나 허무해지기도 한다. 아마도 나이를 더 먹고 먹어도 비슷해질까? 이런 생각이 들때마다 소설보다는 자근자근 읽을 수 있는 에세이가 땡긴다. 생각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에세이라면 더더욱 좋을 터.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집어들었다. 작가의 이름은 낯설지만 표지의 카피부터 포근한, 에세이.

 

  제목부터 '인문학'이라는 따분해보이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만 내가 이 책을 에세이라고 칭한 것은, 역시 에세이를 읽는 만큼이나 산뜻한 기분을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문학이 빛을 발하는 아주 사적인 순간들'을 통해 마음을 다독여줄 감성 인문학을 말한다. 한마디로 인문 테라피다. 이 책은 페이지를 읽을 때마다 옆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인문학을 좀 더 일상적인 측면에서, 좀 더 감성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해나간다. 감성 인문학은 어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 말하던 '학이 아니라 악~'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공부하고 연구해 나가는 전문적인 인문학도 필요하지만 가끔은 즐기는 인문학도 필요하다. 역시 새롭기도 하고.

 

  작가는 역시 우리 곁에서 항상 맴돌고 있는 책,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을 통해서 인문학을 발견할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한다. 사람 사는 데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랑', 관계, 고독과 불안 등과 관계한 인문학적 감성을 우리에게 전한다. 생각보다 인문학은 우리 주위 많은 풍경들에 존재한다. '어, 이게 무슨 인문학이야'하고 생각할 만한 것들에도 존재한다. 그 풍경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가 자신에게 칭하는 인문학 딜레당트라는 호칭이 당신에게도 붙여질 것이다.

 

  모든 순간을 인문학적 감성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그것은 성숙한 행복을 향유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Underline

 

 

 

  - 숨쉬는 것 자체, 공부하는 것 자체, 산책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 행위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 건강을 위해, 진학하기 위해, 승진하기 위해, 살을 빼기 위해 우리는 이런 행위를 수단으로 한다. 만약 숨쉬기, 공부하기, 산책하기 등을 그 자체로만 즐긴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 그것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새삼스럽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일들, 목표로 하는 것들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것이 바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다. 내가 가두고 있던 '나',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이것을 '자아와 자기의 관계를 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이다. (38p)

 

 

  - 때때로 우리는 어떤 문제를 정확히 보기를 꺼린다. 정확히 보고 나면 그 문제를 정확히 해결해야만 하는데 그럴 용기가 없을 경우 우리는 차라리 문제 자체를 바꿈으로써 문제에 대한 제 깜냥만큼 대처하려고 한다. 자신이 그나마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렇게 해서 문제의 근원을 '나'로 돌려버리고 어떻게든 자신을 해코지함으로써 그 문제가 해소되었다고 믿고 싶어한다. (101p)

 

 

  - 나는 상실감조차도 어떤 의미로 재해석해야지만 인생의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경제관념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던 교원 임용고시 준비생이었던 나는 상실의 의미를 찾기 위해 각종 수험서들을 물리고 도서관 서가를 서성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비책을 찾기라도 할 듯 책들을 뒤졌다. 당시의 독서는 당연히 정독이 아니었다. 아니, 글자를 읽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책의 행간에 멍한 눈길만 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드문드문 어떤 단어가 들어왔을 것이고 나는 파편적으로 주워 모은 그 단어들을 내 맘대로 배치하여 또 다른 책을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쓰지 않은 책, 내가 읽지도 않은 책, 그것으로 혼자서 낸 상처는 조금씩 아물고 있었다. (147p)

 

 

 - <쇼핑의 유혹>의 저자 토머스 하인은 구매자의 양면성을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자못 진지한가 하면 경박하고, 민감한가 하면 탐욕적이고, 절약하는가 하면 양면성을 보인다"고. 그런데 이 양면성 때문에 쇼핑은 더욱 자극받게 된다. 뭔가를 살까 말까 망설일 때 우리는 스스로를 '진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경박하게' 사버린다. 자신을 '민감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신의 '탐욕'이 보이지 않게 된다. 늘 '절약해왔다'고 합리화하기 때문에 확 '질러버리는' 대범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180p)

 

 

 -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 그 이데아는 요샛말로 꼰대의 단어 같지만, 우리는 그동안 우아한 멘토의 아리송한 아포리즘에만 열광했기에 오히려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이데아를 추구하며 남과 '비교하지 말자'라고 하면 너무 비현실적인 처방일 것이다. 그래서 내게 스스로 내린 처방이 있다. 나는 남과 비교가 되어 슬슬 우울해지기 시작할 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애써 의식한다. 나의 부모님, 나의 아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은 나를 '인정'한다. 능력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자체를. 나는 그들에게 의미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것이 나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지 물어본다. 당연히 아니다. (230p)

 

 

 

 

Add...

 

이 책이 딱히 독자의 성별을 가리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여성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라서 그런지

여성의 관심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뭐, 표지를 보면 남자들이 이 책을 고르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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