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토커 - 달짝지근함과는 거리가 먼 영화 같은 인생이여
최광희 지음 / 마카롱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무비 스토커? Movie's Talker! <무비스토커 - 최광희>

 

 

 

 

 

 

  최광희 평론가에 대해선 잘 몰랐었는데, 거침없는 입담으로 영화매니아 사이에서는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TV에도 출연하기도 하고 유명한 김태훈 씨와도 짝을 맞추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최광희'라는 이름을 검색해보니 재밌고 솔직한 말들이 눈에 띄게 나온다. 이처럼 그의 지나치게 솔직한 생각들이 들어있는 <무비스토커>가 최근에 출간되었는데 나는 저자의 이름과는 관계없이 단순히 영화의 목록이 익숙하고 재밌을 것 같아서 이 책을 골랐다.

 

  이 책의 표지를 보는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Movie's Talker와 무비스토커 두가지의 의미로 이 책이 발음된다는 것. 그러나 이 책은 '무비스토커'보다 'Movie's Talker'에 가깝다. 저자는 맹목적으로 영화 자체를 사랑한다고 얘기한다기보다 좋은 영화는 좋다고, 나쁜 영화는 정말 싫다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을 추구한다. 영화를 영화 그 자체보다는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 우리 인생의 많은 것들에 대한 것들로 넓은 시야의 폭을 가진다. 책 속에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그 사례의 영화들에 대하여 얘기하는 형식으로 이 책이 진행되는데, 가끔은 지나치게 솔직하고 과감해서 '이렇게 써도 되나'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일단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저자가 평하는 영화들이 비교적 최신영화로 되어있어서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내가 영화 마니아가 아닌데도 이 책을 너무나 재밌게 읽었던 이유도 이 책의 여러 영화들을 이미 본 상태여서일 것 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영화들, 인셉션이나 다크나이트(이 영화들은 나말고도 수많은 팬들이 있겠지만.), 그랜토리노, 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한 주제에 대한 영화평론이 조금 짧은 감이 있어서 조금 더 파고들고 싶어하는 독자들은 아쉬운 부분이 좀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저자의 필력은 짧은 문장들 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지만 읽다보니 '이 책은 그냥 믿을만한, 전문적인 영화리뷰를 묶어논 건가?'하는 들기도 했다. 주제에 맞는 많은 영화의 목록들을 제시하기 보다는 영화의 장면들과 함께 좀 더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무리한 요구인가^^;) 어쨌든 이 책의 가장 핵심은 중간에 '영화도 리콜이 되나요?'라는 부분이다. 한마디로 영화를 통쾌하게 까는 부분! 까칠하고도 정확한 해석이 솔직하게 표현되어서 정말 재미난 부분이다. 영화를 제작한 쪽에서는 조금 아플지도 모르겠지만.

 

 

 

  - '장애인'이 등장하는 휴먼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볼 때면 심경이 복잡해진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고단한 삶 때문만은 아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 척박한 우리의 환경 때문만도 아니다. 내 복잡한 심경의 이면에는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과연 온당한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맴돈다. 쉬운 말로 '저들도 저렇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데 우리는 얼마나 오만한가!' 따위의 태도를 얘기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장애인은 나의 삶에 용기를 불어넣는 일종의 도구로 작용한다. 장애를 가진 삶을 헤아려보려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그들을 동정할 측은지심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는 데 장애를 동원한 셈이기도 하다. 재난영화를 보며 나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처럼 장애인의 삶이 비장애인들에게 위안을 주는 전시물이 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곤 한다. (60p)

 

  - 이 재능 넘치는 감독은 아무 생각 없이 쿵쾅대는 숱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찌꺼기들로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음을 <인셉션>으로 다시 한 번 증명한다. 꿈속의 꿈, 그 꿈속의 꿈속의 꿈까지 탐험하며 무의식의 근저에 도달한다는 상상을 대관절 누가 이렇게 흥미롭고 맛깔난 모험 오락영화로 담아낼 수 있겠느냔 말이다. 프로이트가 살아 있다면 놀란에게 큰절이라도 올릴 일이다. '인간의 무의식에 새겨진 근원적 상처가 어떤 추악함을 만들어내는가?'라는 질문은, 역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했던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에서 잘 제시한 바 있다. 이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무의식의 소유권은 온전히 우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 하나를 더 보탠다. 무의식의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외부 세계의 통제 시스템과 무의식과의 관계. 내가 인식하는 세계가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는 것처럼 인식의 깊은 곳에 깔려 있는 무의식 역시 과연 진짜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 보고자 하는 세계만 보고 싶어하는 우리의 습성을 이용해 누군가 당신의 무의식조차 지배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도전적 가설을 말이다. (72p)

 

  -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좋았던 시절의 빛바랜 회고를 통해 스러져가는 자신을 위무하지 않는 대신 현재진행형인 폭력의 악순환을 똑바로 응시한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떠나고 남을 어린 세대가 살아가기에 여전히 위험천만한 세상을 안타깝게 껴안는다. 그러고는 미안하다고, 너희에게 이런 세상을 남겨서 너무 미안하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건 어른의, 그것도 아주 존경할만한 어른의 넉넉한 품이다. 묵직한 경외심이 돋는다. (80p)

 

  - 역사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든 필연적 동기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가정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팩션에서만큼은 어느 정도의 가정법이 허용된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에 의해 당대는 물론 오늘날에 그 사건이 갖는 의미까지 곱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집단 무의식에 무작정 편승해 역사적 회한이라는 거대한 유산마저 바꿔놓고 낄낄 거린다면, 그건 그냥 동네 아이들끼리 즐기는 고무줄총 놀이나 다름없어진다. 그러고 있기에 영화는 너무 비싼 작업 아닌가? (116p)

 

  - 결국 영화는 사회의 거울이다. 에로스와 포르노를 혼동하고, 앞에선 손가락질하고 뒤에선 음미하고, 수면 위에선 '에헴'하고 물 밑에선 욕정의 배설구를 찾는 위선적 성문화가 여전한 이상, 여배우들은 늘 몸을 사릴 것이기 때문이다. (1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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