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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음식이 가져다준, 먼 곳의 당신 이야기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변종모>

 

 

 

 

  이런, 감성이 풍부하다못해 철철 넘치는 여행 에세이를 읽는 건 사실 조금 괴롭다. 현재 신분이고 상황이고 뭐든지 나몰라라 내팽개쳐두고 훌쩍 떠나서, 여행객이란 이유 하나로 약간의 허세를 듬뿍 담고서 어딘가를 거닐고 싶어진다. '혼자 기차를 타고 지금 있는 곳에서 남해 저 맨끝까지 가볼까.' 아니면 '세상 모든 알려진 맛집들을 통달하는 여행!' 아니면, '한 손에 노트하나 들고서 감성이란 감성은 다 끌어올린 채 미친듯이 써내려가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망상이란 망상은 혼자 다했다. 역시나 여행의 유혹은 정말로 쉬지 않고 찾아온다. 우연히 만난 책 속에서까지 말이다.

 

  사실 여행의 참 묘미는 '맛'이다. 나는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먹는 거라면 사족을 못쓰는 내가 친구와 첫 여행을 가면서 우리는 계속 이렇게 물었다. '여행 중에서 무전여행이 가장 이해가 안되'하고. 음, 어쨌든 무전여행이라고 하면 몇가지 목적이 있겠으나, 먹고 즐기는 걸 좋아하는 우리는 '무전여행은 맛있는 걸 먹지 못하는 고통'으로만 받아들였을 것이었다. 그만큼 여행을 하면서 먹는 음식은 나에게도, 친구에게도, 또 어떤 많은 사람들에게도 먹는 행위의 즐거움을 넘어서 무언가 여행 안에서만 느껴볼 수 있는 행복감이 뿌려져있는 유혹적인 것이었다.

 

 

   이 책을 쓴 변종모 작가 또한 음식에 대해 남모를 향수와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들을 여행하다가 문득 떠오른 그 음식을 도저히 잊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결국엔 직접 만들기까지 한다. 몇 퍼센트 부족하지만 기억 속의 그 맛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어 기어코 만들어 입에 한 술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는 점차 행복감을 맛본다. 낯선 곳에서의 익숙함, 그 미묘한 행복감을. 게다가 그에게는 신기하게도 음식운도 따르는데, 다른 나라에 가서 생전 모르는 사람에 의해서 따뜻한 식탁이 차려지고 또 한번 추억을 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는 음식에 대한 느낌 말고도 인도, 아르헨티나, 시리아 등 익숙하지 않은 여행지에 대한 그의 생각과 그 속에서 그가 만난 사람들, 추억들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멋진 사진들이 책의 많은 페이지를 장식한다. 그러나 그것들의 이야기는 또한번 따뜻한 식탁과 맛있는 냄새, 시원한 청량감과 만나게 된다. 달콤하고 시원한, 그리고 씁쓸한 맛, 그 여행의 기억이 또한번 음식의 향기와 마주한다. 이것은 이 책이 여느 '여행 에세이'와 같지 않다는 걸 알게 할 독특한 향기일 것이다.

 

 

  - 만두가 끓어오르는 수증기에서 냄새가 났다. 따뜻한 냄새. 이미 지나간 일들의 냄새라서 따뜻하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저마다 살아온 수많은 사연이 보글보글 끓는 수증기처럼 팽창해, 어느 날 그 아픔들도 기억 속에서 환하고 따뜻하게 끓어오르리란 것을 안다. 추억이란 잡히지 않은 실체이지만, 이렇게 열렬하게 끓어오르는 수증기처럼 분명 서로의 입김이 맞닿아 그려내는 이야기이므로 그것이 향긋하다 생각한다. 지나간 일이므로 아픔은 웬만큼 증발되었을 것이다. 이제 뚜껑을 열고 한김 식힌 다음, 좋은 생각만 하면서 꿀꺽 삼키고 나면 과거는 사라지고 다시 미래만 남을 것이다. 그 든든한 포만감으로 나는 또 남은 길을 가리라. 내게, 늘 당신과의 추억은 허기지지 않다. (40p)

 

  - 삶이란 문득 이렇게 경건한 것이다. 버릇처럼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기꺼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내는 것. 때로 외롭고 지루하거나 힘든 모든 것들은 스스로 이겨낸 뜨거운 마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내가 만난 한 가닥 한 가닥의 아름다운 마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걷는 일이 가까운 미래에 큰 포만감을 줄 것이다. 팔미라에서 처음 올리브 나무를 발견했을 때, 나는 그때부터 그 작고 푸른 열매가 좋았다. 이유없이 좋았다. 그렇게 이유 없이 좋아하다 보면 끝내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왜 사랑하느냐고 묻지 마시라. 그냥 사랑하고 그냥 좋아하는 그 마음이 가장 순수한 것을. 그것을 의심하지 마시라. (99p)

 

  - 귓가에 들리는 소리 하나하나가 눈에 보였다. 그 소리들을 보려면 눈을 감아야 했다.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이는 것들. 어쩌면 그것이 진정 살아 있는 것임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지나간 과거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일은 대수롭지 않지만 지금 현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풍경들을 떠나보내는 것은 아프다. 그것은 온몸으로 경험하는 현재이므로. 지금 현재가 이처럼 강렬할수록 늘 우리에게는 추억도 선명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추억을 떠올리며 자신의 길을 신중히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함이 곧 나를 위함이니. 그들의 아무렇지 않은 일상들이 나를 자주 취하게 만들었다. (124p)

 

  - 문득 말없이 떠났다가 떠나지 않은 것처럼 다시 돌아왔을 때, 그대는 그때의 나를 기억하는가? 나는 먼 곳으로 떠났지만 그대들을 생각하면 자주 가슴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갓 지은 한 끼의 식사처럼 소박한 그대들의 마음이 먼 곳에 나에게 달려와 자주 나의 발을 묶었다. 그렇게 절뚝거리며 다니던 길 위에서 그대와 같은 그대를 만나고 마침내 다시 그대들의 앞에 섰을 때, 그 누구도 변하지 않았음에 나의 마음은 또 얼마나 건강해졌는지 그대는 아는가. 나는 여전히 그대들이 필요하다. 떠나도, 떠나지 않아도 늘 함께 있을 수 있는 이유로 그대들이 필요하다. 흘린 밥풀을 서로의 입에 넣어주듯 살가운 그대들이 나는 그리웠다. (289p)

 

 

 작가님 블로그 http://maldive9.blog.me/

사진 글이 와, 진짜 많아요.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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