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더 월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일단, 그냥 살아보는 거야 <리빙 더 월드 - 더글라스 케네디> 

 

 

 


  

 

 

  이전의 어떤 책에서 만난 하워드가 인생의 전환점에서 지혜를 얻고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왔다면, 이 책의 주인공인 '미스 하워드'는 태어날 때부터 거듭되는 불행으로, 인생을 삐딱하게 터덜터덜 살아간다. 그녀가 어릴 때, 무심코 부모앞에서 했던 선언은 부모와 자식간의 응어리가 되고 하워드에게는 공허와 죄책감을 안겨주게 된다. 대학교수의 제자로서, 또는 비밀연애의 대상으로서 학업과 경력, 사랑과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듯 살아가는 제인 하워드. 그녀에게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쭉 행복한 순간만 주지 않는다. 불행, 절망, 충격, 좌절.. 죽음과 포기까지.. 세상을 사는 것에 대해 두려움과 허무함을 느낄만한 그런 일들이 계속 찾아오게 된다.

 

   도대체 실패와 역경, 좌절 속에서도 우리가 왜 삶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세상은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데 내가 왜 항상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까. 하지만 불행 속 그녀의 선택은 일단, 그냥 살아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인 하워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행한 상황 속에서 안간힘을 쓰며 세상을 넘나 들게 된다. 마음 밑바닥 속에서 끌어올린 그 힘은 처음엔 조금 약했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 스스로 치유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비로소 자신의 어떤 작은 마음가짐과 행동이 인생의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리빙 더 월드>는 절망 속에 빠져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로할 책임에는 분명하지만, 사실 가끔 등장한 억지스러운 설정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읽기 힘들게 만들었다. '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렇게 까지 나락으로 떨어뜨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불행한 설정을 대신 경험하면서 어쨌든 내가 살고 있는 순간에 감사할 그런 느낌은 충분히 들었던 것 같다. 실패에 무게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 덜한 힘듦에는 퍽 적응할 수 있겠다는 힘을 얻은 것 같다. 제인 하워드, 그녀도 어쨌든 일어날 수 있었으니까.

 

 

  - 갑자기 그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 -대중에게 보이는 모습 뒤의 개인적인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그의 암울한 현실이 인생을 얼마나 바꾸어놓았는지 알 수 있을 듯했다. 그의 분노와 답답한 처지에 대한 하소연을 들으면서 '인생에서 가벼운 짐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목적지에 다 와간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모든 일이 엇나가기 시작하는 게 바로 인생이라는 생각....... (39p)

 

  -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변을 걷다보니 갑자기 엔도르핀이 저절로 솟아나는 것 같았다. 마치 만물에 신성이 깃드는 순간을 경험하는 듯했다. 대자연에 압도적이고 위대한 힘에 저절로 경외심이 느껴졌다. 갑자기 삶의 시름도 저만큼 물러섰다. 어두운 빛깔의 성난 바다가 빚어내는 웅장한 풍경에 잡다한 생각들이 모두 녹아내렸고, 나는 비로소 환희를 느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 온몸을 관통했다. (145p)

 

  - "옳은 일을 해놓고도 피해를 당해야 한다니 너무 불공평해. 그렇다고 신념을 버리자니 양심이 허락하지 않을 테고. 결국 어떤 선택을 하든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라는 결론이네. 대단한 모순이지만 분명한 현실이기도 해."

 "왜 내 인생은 상호 모순되는 불운의 연속일까?" "우리는 해야 할 일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다/ 그리고 그 일이 우리를 살아가게 해준다는 생각에 기댄다." (182p)

 

  - 사람들은 흔히 잘못된 관계와 상황을 바로잡고 싶어 한다. 많은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온갖 수수께끼에 반드시 해답이 있다고 믿는다. 개뿔!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상처가 깊으면 치유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216p)

 

  - 천국은 두려움과 외로움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니까 혼자 있는 걸 겁내지 않을 거라 믿고 싶었다. 천국은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니까 눈 한 번 감았다 뜨고 나면 60년의 세월이 흐르고,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한 엄마가 암에 걸려 딸과 재회하게 된다고....... 그렇게 만난 엄마와 딸은 하느님의 자애로운 보살핌 속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천국의 생은 생이 아니지 않은가? 말 그대로 천국이니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니까. 사람들은 어떻게 그 공허한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런 개념이 실제로도 존재한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 고통을 덜어주려는 의도는 가상하지만 결국 비참한 희망에 불과한 것을...... 천상이라는 개념을 발견하고 싶다면 브루크너나 바흐의 칸타타를 들으면 된다. 산길에서 하이킹하면 된다. 비행기에 올라 하늘을 누비면 된다. 그 대신 내가 극복하지 못할 상실감에 빠져 있는 동안 사후 세계에서 내 예쁜 딸을 잘 보살펴준다고 설득하려 들지는 말기를....... (404p)

 

 

 

 이 위의 404p 발췌부분은, 좌절감에 휩싸인 사람에게 어떠한 행동이 가장 큰 위로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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