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할 이유를 찾는 책 읽기 <카프카의 서재 - 김운하>
가끔은 어둡고 캄캄한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외로울 때, 모든 것에 허무감이 밀려올 때, 더이상 삶에 대한 의지가 없어질 때 다시 살 수 있게 만드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김운하 작가가 딱 내 나이쯤이었을 때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한 것이 '책과 독서'였다. 그는 그 책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하나하나 깨우치기 시작했고 '나'에 대한 존재에 대한 사유를 통해 살아갈 힘을 얻기 시작했다. <카프카의 서재>는 그가 힘을 얻고 자신의 존재를 탐구할 수 있게 한, 그가 사랑했던 십여권의 책의 목록이다. 쿤데라, 카뮈, 니코스 카잔차키스, 몽테뉴... 그 밖에도 많은 작가들의 책 속 부분부분 문장들이 그에겐 힘든 삶의 과제의 해답이 되어 주었다.
'우리 머리 위에 있는 별의 심연처럼 위대하고 오묘한 것이 인생' 카프카가 삶에 대해 했던 말이다. 작가가 카프카가 남긴 글들을 읽고 동요했듯이 (그가 제목에 카프카의 이름을 넣은 것도 카프카에 의해 상상할 수 없는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나도 김운하 작가의 책을 거쳐 들어온 카프카의 글들에 동요했다. 어느하나 정확한 것 없이 지나가는, 그래서 답이 없고, 그래서 더 오묘하고 뒤죽박죽이며 순식간에 빠르게 가는 인생. 그 인생을 사는 법을 지금 나도, 책으로 배우고 있다. 나중엔 작가처럼 그 목록에 저마다 소중하고 귀중한 이름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시간에 대한 관념을 두 가지로 나누어말했다고 한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크로노스는 우리의 육체를 지배하는 시간이자 물리학적인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시간이다'(181) 카이로스란 작가에 의하면 '목표물을 향해 화살을 당기는 순간'이다. 그 결정적인 시간이 삶을 살면서 몇번이나 나에게 왔을까? 그리고 나는 얼마나 그 시간들을 손에 잡을 수 있었고 얼마나 손 사이로 놓쳐버렸을까? 그러나 지나간 놓침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 '카이로스'의 시간들을 제대로 잡아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를 뿐이다. 카이로스와 크로노스 그 시간들이 서로 꽉 채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길 뿐이다.
삶 속의 모든 것, 그리고 그 사이에 서있는 나. 그것을 파악하는 철학적 깊이 때문에 감당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힘든 만큼, 뼛속 깊이 깨달을 수 있는 교훈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실제의 삶은 일관된 주제가 없는, 다양하고 서로 무관한 에피소드의 연속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인생이라는 소설에서 무엇이 에피소드이고 아닌가를 결정하는 기준이 지극히 상대적인 관점에 따르며, 불순물처럼 취금될 수 있는 사소한 에피소드 하나가 실은 운명을 좌우하는 열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더 나쁘게는 자기 인생이라는 소설을 써 나가는 작가에게 그런 에피소드의 주도권이나 결정권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 25p
시간이 우당탕 소리 내며 깊은 계곡을 세차게 흘러내리는 강이라면, 인간은 거기에 실려 떠내려가는 작은 나뭇잎들이다. 그러므로 운명이, 인간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예비해놓았는지,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놓을지는 미리 알 수 없다. 그저 방황하며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이 아이러니의 법칙을 지배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한, 삶은 어리석고 오만한 열광으로 시작되어 씁쓸한 회한으로 마감되는 덧없는 것이다. 저 경이로운 아이러니는 우리의 삶을, 우리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광대가 연주하는 가락에 맞추어 춤추는 서커스의 곰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러고는 모든 진실을 깨닫게 된 연후에야, 우리는 비탄에 젖은 목소리로 아이러니를 운명으로 탈바꿈시키며 스스로를 위안할 뿐이다. - 37p
청춘이라는 짦은 터널을 다 통과한 후 뒤를 돌아볼 때, 그때 가서야 청춘의 방황이 방황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그렇게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보아야만 방황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 - 42p
삶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 행위는 이미 그 자체로 사회적인 행위이다. '의미'라는 언어적 범주는 이미 나를 포함한 타자들의 세계를 전제로 한다. 의미는 오직 사회 속에서만 발생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지는 자들과 그 질문을 이해할 수 있는 자들이 없다면, 세계에는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98p
나는 이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내 삶을 생각할 때마다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왜냐고? 세상에 희극도 이런 희극이 없어서다. 하긴 니체도 고뇌가 너무 많은 인간만이 웃음을 발명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을 때 우리는 웃음을 터뜨린다. 우리 인생이 꼭 그렇다. - 120p
내가 가지고 있는 언어들은 실은 이 사회의 속박이며 굴레에 불과하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책들은, 나를 결박하고 있는 문법들로부터 나를 해방시킨다. 사랑, 독서, 글쓰기, 음악, 밤의 어둠, 침묵.... 이런 것들은 우리를 익숙한 세계와 결별하도록 요구한다. - 162p
각 순간과 마주해 우리는 언제나 마치 그것이 영원인 것처럼 여기고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각 순간은 우리에게서 다시 덧없는 것이 되어버리기를 기다린다. - 모리스 블랑쇼 <기다림 망각>
가장 좋았던 한 부분. 발췌문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