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0시 5분
황동규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도 이런 '눈'을 갖고 싶다 <겨울밤 0시 5분 -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앞구절만 들어도 귀 안에 오래도록 맴돌았던 말인양 가깝게 들리는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로 꼽을 정도로 애송되고 여기저기 쓰여지는 시이다. 그리고 <겨울밤 0시 5분>. 이 시집은 황동규 시인의 열 네번째 시집이다. '겨울밤 0시 5분'. 시리지만 따스한 이 시집에 있는 보물같은 시들은 그가 말했던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그런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별 하나가 스르르 환해지며 묻는다. '그대들은 뭘 기다리지? 안 올지 모르는 사람? 어둠이 없는 세상? 먼지 가라앉은 세상?

어둠 속에서 먼지 몸 얼렸다 녹이면서 빛 내뿜는 혜성의 삶도 살맛일 텐데.' <겨울밤 0시 5분>中

 


 

 

 

 

'세상에 헛발질해본 사람이면 알지. 저 소리, 밖으로 내놓지 않고 마냥 안으로 끌어만 당기는 저 음성 "이 저녁 견딜만 하신가?" <늦가을 저녁비>中

 

 

 

 

 

'몸과 주위가 온통 환해지는 순간을 두 눈 크게 열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기다림이 없으면 끄트머리도 없지요.

공기 속으로 채 풀어주지 못한 말이나 소리 같은 것 제멋대로 터지지 않게 목구멍 속 어디엔가 묻어두고 살다가 저절로 싱거워진 기쁨 같은 것도 새로 싹 틀까 않을까 걱정말고

몸속 어디엔가 심어두고. 화성이든 그 어디든 뇌 구석구석까지 환하게 비칠 항로의 끄트머리를 기다리겠습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갈 준비 돼 있다>中 (첫 여성 우주비행사 발렌티나가 꿈을 이야기한 한 마디)

 

 

 

잠깐!

삶이 잠깐 동안이라는 말이 위안을 준다.

잠깐이 몇 섬광(閃光)인가? <잠깐동안>中

 

 

 

 

줄기 하나가 휙 몸을 틀며 팔을 아프게 친다. 추억 조각 하나가 튕겨나와 반짝인다. 눈 감고 한없이 눈발에 몸 맡기고 누웠다 일어난 서해안 바닷가.

팔다리와 몸통에서 빠져나갔던 감각들이 하나씩 돌아오고 바다는 천천히 움직이는 한 덩이 빛 감춘 황홀한 색채였다...

다시 감았다가 풀어주며 몸 전부를 내어놓을까? 깨어지는 색유리의 반짝임과 찌름을 한 느낌으로 지닌 저 엉겼다 튕겨 나오는 추억 쪼가리들! <추억은 깨진 색유리 조각이니>中

 

나도 이런 '눈'을 갖고 싶다. 아무것도 아니어보일 사소한 추억 쪼가리들, 계절의 환희들, 그 대상들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다시한번 특별하게 재구성해볼 수 있는 눈.

황동규의 시들은 글감이 다양하다. 각각의 계절들 속에 파묻혀있는 소중한 글귀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가는 자신만의 언어인 홀로움(외로움을 통한 혼자 있음의 환희)을 그의 많은 시에서 드러내지만 시집을 읽은 나는 외롭지 않았다. 외로움을 통한 환희를 느껴버린 것일까? 겨울밤 0시 5분, 지나버린 혹은 새로운 시작.

 다가올 빛이나 어둠을 기다리는 지금, 2012년의 끝을 <겨울밤 0시 5분>과 함께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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