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코츠키의 경우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7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이수연.이득재 옮김 / 들녘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쿠코츠키의 '특별한' 경우 <쿠코츠키의 경우 -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이 모든 것은 환상이자 기만이며, 곧 누군가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그녀에게 올 것이라고. 그 귀띔을 통해 엘레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 의미야말로 삶 자체보다 더 절대적인 진실을 알게하는 열쇠라는 것을. -23p

 

러시아 여류작가의 작품입니다. 700페이지가 넘는 이 묵직한 책이 '박경리 문학상 수상'이라고 적힌 띠지를 단것을 보고 처음엔 갸우뚱했었습니다. 어라? 러시아 작간데 박경리 문학상?... 알고보니 2011년부터 매년 세계문학 발전에 탁월한 업적을 세운 국내외 작가 중 1명을 선정해 수상한다는 네이버님의 말씀. 아하, 그렇구나. 앞으로도 박경리 문학상의 인지도가 조금씩 더욱더 올라갔으면 좋겠네요. 여하튼 이 두꺼운 <쿠코츠키의 경우>는 이름부터가 특이합니다. 쿠코츠키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생소할 뿐만 아니라 '경우'라는 낱말이 제목에 오니 조금은 어감이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쿠코츠키의 경우>는 파벨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철저히 금욕적인 생활로 내면투시를 갖게된 산부인과 의사 파벨은 어느날 엘레나라는 환자의 자궁을 모두 들어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홀리게 됩니다. 그녀에겐 이미 두살난 딸이 있었는데도요.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해온 가정부 바실리사, 그리고 시간이 지난후 만난 소녀 토마와 함께 가족을 이루게 됩니다.

 

 

 

 

책이 워낙 묵직하고 두껍다보니 이야기는 4부분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그 중 2부는 가장 놀라우면서도 몽환적인(?)이야기로 느껴졌습니다.  2부는 엘레나의 의식세계로 이루어져 있죠.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보는 듯한 느낌도 났습니다.

 

 

타냐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타인의 요구, 가장 약한 형태이기는 했지만 외부의 강제력에 맞닥뜨린 셈이었다. 조금전까지는 주위사람들이 바라는 것과 자신의 바람이 행복할 정도로 잘 맞아, 다른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타인의 요구에 복종하는 것, 그것은 어른이 되는 과정일까? -67p

 

이렇게 각자의 비밀스러운 세계를 가진 두 사람이 함께 살고 있었다. 한 사람에게 세상은 물질적인 것이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물질적인 것 외에 다른 무엇인가가 세상에 있다는 것을 믿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것은 상대방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지식에는 그 나름의 진위성과 한계가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76p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무섭고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일이 바로 이 '경계'를 넘어가는 것이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경계란 일상적인 생활과 뭔가 다른 세계, 마치 죽음처럼 알고는 있지만 설명이 불가능한 그런 세계 사이에 놓인 것이다. 아직 한 번도 죽지 않은 사람이 과연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나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잠깐의 순간, 조금이나마 죽음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계를 넘는 일에는 이동은 있지만, 어떤 법칙에 따라 그것이 일어나는 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166p

 

무엇을 이야기했는지는 기억할 수가 없다. 다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때 깨달았던 것이다. 그것은 꿈속에 있을 때 모든 일상적 삶이 꿈으로 변한다는 것, 곧 현실과 꿈은 한 천조각의 앞면이자 뒷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의 상채, 그것은 무엇일까? 내가 제도 작업을 할 때 위에서 보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190p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소비에트와 전쟁시대입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쿠코츠키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요. 새로운 만남으로 만들어진 가족이 각자 자신의 자리를 찾고, 만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이상적인 가족이 어떻게 자리를 잡는지 무척이나 긴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흥미롭고 자극적인 소재가 많은 편입니다. 일단 전쟁 배경이며 낙태, 내면투시, 삶과 죽음의 중간단계, 의식의 변화, 히피, 톨스토이 주의 등. 수많은 페이지와 글자들 속에서 자칫 지루해질때마다 새로운 흥밋거리가 되어준 것 같습니다.

 

 

 

 

 

가장 행복한 상황은 일상의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때 만들어진다. 물론 일상의 요소들은 어떻게든 공존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것들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갈라놓는다. - 678p

 

고차원적인 이야기들과 새롭게 접하는 '러시아 문체(번역투?)'에 대한 생소함들 때문에 읽다가 부담이 될 때도 더러 있었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삶과 가족의 모습에 조금은 이해할만한 요소들이 있어서 다행히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서로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가족의 구성원인 파벨과 엘레나, 타냐, 토마, 바실리사는 핏줄은 다르지만 그렇게 맞물리고 부딪히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간 것이었습니다. 정치, 종교적인 탄압의 세파속에서도 그들 누구하나 나가떨어지지 않게 한 것은 가족이란 틀이였지 않을까요. '가족'의 의미가 그들 개인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것이 아닐까요.

우리도 '모두 속의 그냥 개인'이 아니라 '모두 속의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것. 새롭게 접한 <쿠코츠키의 경우>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p.s 들녘출판사의 '상처를 주는 소설:일루저니스트'. 이 책이 왜 이렇게 분류되었는지는 더욱 생각해보아야겠네요 ㅜ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