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보급판) - 고문기술자 이근안!! 그는 누구인가?
김근태 지음 / 중원문화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남영동 - 김근태> 일어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초판 1쇄가 87년 5월, 원고가 출판사로 들어왔을 때에는 박종철 열사의 사망소식이 있었던 때였다. 민주항쟁이 불같이 일어날 때 나왔던 것이다.

군부독재가 이루어지던 80년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고문에 시달려 하루도 참혹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 중 잔혹한 행위의 대상이 되었던 김근태 님이 쓰신 책이 이 <남영동>이다. 이번에 남영동 1985라는 영화와 군부독재를 비판하는 영화가 개봉하면서 다시 찍어낸 책이 내가 나눔으로 받은 책이다.

김근태 의원은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끄는 인물로 두번의 구속을 당하였고 (그 중 85년 아무도 몰래 남영동으로 끌려가 끔찍한 일을 당하셨다.) 2004년에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활동하셨고 국회위원으로 많은 활동을 하셨다. 그리고 얼마전 2011년 12월 말일, 고문후유증으로 몸이 쇠약해지면서 세상을 떠나면서 남영동의 비밀 '고문 기술자'에 대해서도 세상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나도 김근태 의원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었다.

 

 

 


 

 

1부는 김근태 의원님께서 직접 쓰신 탄원서 내용이 대부분이다. 2부는 징역을 살 당시 아내와 사람들에게 보낸 옥중서신들로 되어있다.

읽기 편한 책이 아니다. 이야기 면에서도, 형식 면에서도 ... 이야기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이 끔찍해서 너무 아프다. 

그리고 일부의 각색없이 김근태 의원의 목소리로 그대로 담은 탄원서와 옥중서신이라 더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읽어야만 했고 기억해야만했다.

 

 

  

 

 

 

그러나 본인은 피신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우선 민주운동단체 대표였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당시는 피신으로 인한 긴장과 불안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으며 정말 내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본인이 당할 끔찍한 일이 앞에 있는 줄 알았다면, 선택은 너무나 분명했을 것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는 물론, 우리 모두를 위해서, 아니 정치군부를 위해서도 피신했어야 했습니다. 저들은 핀으로 본인을 과녁에 고정시켜 놓고, 복수심을 불태우며 소리없이 칼날을 갈고 있었던 것입니다. 때를 기다리며 언제나 무엇이든지 감행할 채비를 갖추고 노려봤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약간의 냄새가 나는 것으로 단정하고 평상시 키워 왔던, 반드시 불온, 불순하고 거대한 무엇이 있을거라는 기대와 열망을 확인하는 작업에 돌입한 것입니다. 이 확인 작업을 위해서는 그 무엇을 해도 좋고, 어떤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37p

 

이 남영동에 끌려온 이래 쉴 새없이 작고 왜소해져서 그 시멘트 바닥에 녹아 없어져 버릴 것 같았던 나는, 짓밟히는 검불처럼 볼품도 무게도 없어져 갔습니다. 어떻게 당해도 좋은, 그래도 마땅한, 마침내 공중으로 사라져 버릴 왜소함 그 자체였습니다. -48p

 

이 고문자들이 시종 뇌까리는, '심장마비라는 의사의 진단서를 붙이면자신들은 완전히 발뺌할 수 있다. 어디 외상이 남아있는가'라는 협박이 그렇게 위협적으로 다가올 수가 없었습니다. - 75p

 

나치 수용소에 감금되어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종전과 더불어 풀려나온 어느 유태인 정신과 의사의 피맺힌 기록이 생각납니다... 인격의 와해, 인간의 허약함을 송두리째 폭로하는 것으로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분노하고 저주해야 할 그 고문자들을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첫날 혹은 둘째 날에는 분노할 수 있는 능력이 박탈되었던 것입니다. 삶과 죽음의 열쇠를 갖고 있던 그 고문자들에게 모든 힘을 다하여 아양을 떨어야 했던 것입니다. - 95p

 

우리 사회가 살아남을 수 있는 동력은 이런 사람들이 여기저기 최악의 곳에서조차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성의 절망적인 측면, 자신들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인간 동료에게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악마적 측면을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111p

 

피해와 부담은 늘 자신 혹은 나와 비슷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만 짊어져야 하는가. 민주화의 귀결은 우리에게만 돌아오는 것이 아닌데, 전제와 자의적 지배에서 진정한 법 지배의 실현 채무는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의 정치군부가 이런 나약함, 비열함의 틈을 뚫고 끊임없이 공포심을 조장, 확산시킴으로써 자신들이 지배를 계속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이 무서운 쇠사슬을 어떻게 끊어버릴 수 있을 것인가? - 148p

 

이제 본인은 징역을 삽니다. 높은 담과 부자유, 징역의 외로움과 슬픔을 뚫으며 살 것입니다. 쇠창살 너머 하늘의 별에서 윤동주 시인의 눈물을 만나면서 이 징역을 살 것입니다. 85년 9월, 정치군부의 고문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달래며 회복하는 과정으로서 징역을 살 것입니다. 80년 5월, 부릅뜬 눈으로 정치군부의 총칼에 의해 아스팔트에 쓰러졌던 망월동 시민들의 원혼의 통곡소리를 들으며 징역을 살 것입니다. 이 징역 속에서 민주화의 그날을 꿈꾸며 징역을 깨면서 살 것입니다. -218p


 

 

김근태 의원의 고문, 또한 다른 분들의 고문을 도맡아했다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이 책에서 이름이 제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후에 밝혀졌다. 관절빼기와 볼펜고문의 달인이었던 이근안은 한동안 목사로 활동했었다. 그리고 자기가 한 짓들은 고문이 아니라 애국이었다는 당체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였다는 이야기를 본적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에 대해 네티즌이 비판을 한 글을 보았는데 댓글에 '구원, 예수...어쩌구' .......... 뭐라 할말이 없다.................

 

모든게 철저하게 계획되고 고문을 집행하고, 나중에 혹여 문제될 일이 있을까봐 티나지 않는 방향으로 고문을 끔찍하게 진행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기술적인 고문이 필요했던 거였다.)

 사람취급도 하지 않았던 남영동에서의 날들에서, 첫번째 고문이 5시간동안 이루어진 물고문이었다. 그리고 전기고문, 모욕, 굶주림, 정신적 고통.. 

그리고  김근태 의원이 옥중에서 고문의 증거로 남겨놓았던 상처딱지, 그 마지막 희망마저도 군부정부가 빼앗아갔던 이야기.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더 경악스러운 이 이야기들을 듣고 정말 많이 화가 났다.

 

 

 

 

 

- 고문의 기록 -

 

몸 전체가 시퍼렇게 핏줄이 솟고 헉헉 꺼이꺼이 목은 쉬어 가는데 이것은 멱이 따진 돼지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것 같았습니다. 소리를 지른다고 강하게 전류를 통하게 하고,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이빨로 혀를 꽉 물으면 혀를 빼라고 강하고도 긴 전류를 흘려보내고, 끙끙대면서 참는다고 또 그러고, 이들의 목표는 총체적인 혼란, 착란 상태로 돌입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친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온통 휘감고 그 희번덕거리는 눈동자가 내 눈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환상이 공포와 광란의 소용돌이로 닥쳐왔습니다. 이것은 슬픔이라든지 외로움이라든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잔인한 파괴, 그 자체였습니다. 담요는 땀에 흥건하게 젖는데 물을 쏟아부었던 몸의 각 부분은 금방 말라 버리고, 특히 머리털은 곧 말라서 물고문을 수시로 해야 했습니다. 이 고문기술자가 내 가슴에 올라타고 쿵쿵 굴리는데도 전혀 무게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운동화 발바닥으로 얼굴을 쓱쓱 문대고 경멸적으로 걷어차도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도 않고 심리적 거부감이 일어날 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완전히 지쳐 늘어지기 시작할 때, 이 날의 주제가 제기되고 추궁됐습니다. - 68p

 

리뷰를 뭐라고 써야할 지 모르겠다. 처참하게 짓밟혀진 김근태 의원님의 그 당시 모습이 그냥 '안타깝다'라는 말로는 부족할 것 같다. 의원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피로 죽음으로 얻어낸 지금의 이 사회를 감사하게 살아야될것 같다. 물론 아직도 부조리함은 있지만.... (이런 기분을 얼마전 느껴보았었다. 사람들이 물대포 맞는 모습을 보고) 잊지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일어나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영화를 볼까, 말까... 영상으로 보는건 더욱더 충격일것 같아서 고민이다. 그래도 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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