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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이야기 ㅣ 이청준 문학전집 중단편소설 10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표지와 비슷한 어둡고 축축한 그림을 포함해서 99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이 얇은 책은 이청준 작가의 <벌레 이야기>입니다. 용서와 구원의 소름끼치고도 처절한 이야기를 담고 있죠.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평범하게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던 가족에게 갑자기 불행한 일이 닥칩니다. 바로 얌전하고 착한 그들의 아이 알암이가 유괴를 당하고 시체로 발견되게 되는 것이죠. 이후 범인이 밝혀지고 그 후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아내를 관찰하는 남편의 시선으로 소설이 서술됩니다. (원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 였는데 소재가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
혹시 어디서 본 이야기 같으세요?
바로 영화 <밀양>의 원작입니다. 배우 전도연씨가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었죠. 영화를 읽고 책을 읽은 저는 소설을 읽는 내내 전도연의 얼굴을 떠올릴 정도로, 영화에서 그녀의 연기가 말로 할 수 없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영화와 책이 조금은 다릅니다. 영화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관찰하는 대신에 새로운 남자인 송강호가 전도연을 관찰하는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요. 특히 포스터에서는 책과는 다르게 '이런 사랑도 있다' 라는 카피가 들어갔지만 영화와 책 둘다 '용서의 문제와 종교' 에 대해 다루고 있네요.
"참담한 비극 속에서 견뎌나갈 힘의 원천"
처음에 아이를 잃었을때 아내에게 그것은 희망과 기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시체와 범인이 밝혀지고 그녀는 속절없이 무너져 희망의 끈을 놓고 맙니다.
그리고 이제는 지탱의 도구가 바뀌게 되죠.
희망과 기원에서 '원망과 분노와 복수의 집념'으로. 그리고 그것은 후에 종교의 힘이 한몫했음을 남편은 깨닫게 됩니다.
죽은 아이를 사랑으로 보살펴주리라는 구세주에 대한 믿음, 잠시 그 불꽃은 '파박'하고 튀어 아내는 종교에 빠지게 되죠.
그치만 그것도 순간일 뿐 사무친 원망과 분노가 다시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살인마가 감방에 들어가게 된 그날, 아내는 '복수의 표적'마저 잃게 되죠.
여기서 작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범행을 자백한 그 순간부터 위인은 아내의 보복을 피해 당국의 보호를 받게 된 격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참사와는 직접 상관이 없는 사람들끼리 범행의 목적과 과정을 추궁하고, 재판에서 그의 죽음을 결정지어 튼튼한 벽돌집 속으로 그를 들여보내 버렸다.' 아내의 복수심은 활활 타오르고 또다시 신앙심에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비극의 선택을 하게됩니다.
바로 교도소에 가서 살인마를 만나는 것.
이미 주님을 영접하고 용서를 받았다는 그 살인마를 만나고온 아내는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집사님 말씀대로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고 있었어요. 나는 새삼스레 그를 용서할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어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그를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용서될 수 있어요?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주님께선 내게서 그걸 빼앗아버리신 거에요....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
이 절망의 뿌리가 된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듣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끔찍하네요.
책에서는 위의 그림처럼 갈기갈기 그려져 있는 듯한 스케치로 나름의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그 분위기처럼 마지막도 비극으로 끝나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잘 기억은 안나지만 조금 긍정적으로 막을 내렸던 것 같네요. 아동범죄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런 책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사회라니, 안타깝습니다.
이청준 작가가 왜 <벌레 이야기>라고 제목을 붙였는지는 조금 알것 같습니다. (그냥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아내는 정부의 관여와 신의 구원 앞에서 벌레처럼 작아져버렸습니다. 용서의 권리를 빼앗겨버린 채로. 구세주에 대한 배신감은 너무나 컸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죠. 살인마 스스로 신의 구원을 받은 이후 처음의 인내의 끈을 잡을 수 있었던 원인인 복수와 분노로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인간은 신앙앞에서 한 낱 벌레로 추락해버린거죠. 인간의 존엄성이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습니다.
굉장히 무거운 주제입니다. 거기다 종교까지. 인간의 존엄성과 용서의 문제, 개인의 신앙과 종교가 용서에 관여할 수 있는 정도, 그리고 용서와 구원의 권리에 대해서는 저또한 좀더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아, 아내의 그 절망과 고통의 뿌리가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를 차마 짐작이나 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