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여행산문집
이병률 지음 / 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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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좋다, 라는 말은 당신의 색깔이 좋다는 말이며, 당신의 색깔로 돌아가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 색깔이 맘에 들지 않는다, 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했을 경우, 당신과 나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지켜야 하는 사이라는 사실과 내 전부를 보이지 않겠다는 결정을 동시에 통보하는 것이다. 색깔이 먼저인 적은 없다. 누군가가 싫어하는 색깔의 옷을 입고 있다고 해서 그를 무조건 싫어할 수 없듯이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어떤 색으로 비치느냐에 따라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색깔의 옷을 입었더라도 그 기준은 희생될 수 있으며 보정될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데는 방향이 문제인 적은 있어도 색깔이 문제일 수는 없다 (자주 방향과 색깔이 혼동되는 건 사실이다.)

 

 

몇년 전에 서점의 에세이 서가에서 시간을 때우다 이병률 작가의 '끌림' 이란 책을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예쁜 사진과 좋은 글들에 반해서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위시리스트에 넣어놨었는데 딱히 메모해놓지 않아서 잊혀져버렸나봐요. 그 기억속의 '끌림'이란 책이 두번째 편으로 나왔다길래 이번엔 서점에 바로 달려가서 데려왔습니다.  '끌림 두번째 이야기' 이지만 제목은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라고 나왔네요. 좋아요. 에메랄드 빛 표지도 너무 맘에 듭니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는 책 표지에도 써있다시피 '여행산문집'입니다. 작가가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들과 시선들을 카메라에 담고 그것들을 엮어놓은 책이에요. 얼마전 여행의 매력을 진하게 느끼고 온 터라 책 속의 여행기록들을 보니 공감과 부러움을 함께 느끼게 되네요.. 세상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느끼고 쓸쓸함도 느낀 그의 흔적들.. 그 기록들은 자유롭게 여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지만 불평은커녕 대리만족의 행복을 저절로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그 여행스토리든 장소의 소개든 딱딱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게 제일 좋았습니다. 여행하면서 들어간 '평범식당'에서 만난 부부이야기, 공항 건물을 지나자 마자 아바야라는 의상을 벗어던지더라는 아랍 여인들의 이야기, 22살의 부랑자 청년이야기들이 자꾸 기억에 남아요...  

 

여행이란 말을 자꾸 하게 되니까 갑자기 동네 서점에서 여행서적을 며칠에 걸쳐 책 속으로 들어갈 듯이 읽고 있던 아저씨가 생각이 나네요. 여러 나라들의 여행서적을 번갈아 읽고 있던 아저씨. 그 분은 어떤 이유로, 어떤 마음으로 읽고 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스무 살, 카메라의 묘한 생김새에 끌려 중고카메라를 샀고 그 후로 간혹 사진적인 삶을 산다. 사람 속에 있는 것, 그 사람의 냄새를 참지 못하여 자주 먼 길을 떠나며 오래지 않아 돌아와 사람 속에 있다.[YES24 제공]' 

 

작가의 소개처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에서는 세상의 여러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사는 풍경들, 겪고 들은 사랑이야기 그리고 작가 개인의 고민과 생각들이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 시선도 아주 따뜻합니다. 게다가 사진들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절로 좋아지네요. 사진들을 찍고 바로 글귀를 적어나갔는지 아니면 쓴 글에 사진들을 끼워맞췄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진과 글이 오묘하게 어우러져서 슬쩍슬쩍 감성을 건드리는 듯 합니다.

 

 


 

 

"말 한마디가 오래 남을 때가 있다. 다른 사람 귀에는 아무 말도 아니게 들릴 수 있을 텐데 뱅그르 뱅그르 내 마음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말. 한마디 말일 뿐인데 진동이 센 말. 그 말이 나를 뚫고 지나가 내 뒤편의 나무에 가서 꽂힐 것 같은 말이."

 

 

너무너무 공감가서 철렁했던 이 말.

 

 


 


 

 

"나도 나 스스로를 M사이즈라고 여기는 적이 많다. 옷도, 사람도 실제로는 L이어야 하지만 때로 XL이겠지만 나는 나를 M이라는 상태로 놓아둔다. 나는 이세상에서 나란 존재가 눈에 띄지 않는 게, 그 상태가 감사하다. 평범이란 말보다 큰 말이 세상에 또 있을까."

 

 평범함을 추구하는 그,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써내려가려고 글을 썼는데 덜컥 그 길에 접어들었다는 작가. 페이지도 목차도 없는 여행산문집을 쓰는 작가. 리뷰를 쓰다보니 그의 시집도 읽고 싶어지네요. 시인 이병률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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