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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건 사랑이야기
자크 스테른베르그 지음, 권수연 옮김 / 세계사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자크 스테른베르크 (Jacques Sternberg). 벨기에 국적의 폴란드계 유대인 작가가 쓴 사랑에 관한 콩트집인데요. 특이한 점은 프랑스어로 책을 쓴다고 하는 것이네요. 책의 제목이 로맨스소설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한.. 약간은 애매한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되었답니다. 이 책을 읽고나니 몇달 전 <다른 남자>라는 사랑에 관한 단편집을 본 것이 떠오릅니다. <더 리더>의 작가인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이었어요. 그 당시 제가 리뷰를 쓸 때 부제를 '사랑에 관한 여섯가지 고찰'이라고 붙였었는데요. ' 그 책이 저에게 '이런 것도 사랑이구나'하는 생각을 주었다면 이번엔 '사랑이 도대체 뭐야?!'하고 의문이 들게하는 책입니다. 이 두 권의 책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사랑의 여러 단면을 보여주고 있어요.
40여개의 아주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은 콩트라는 단어의 뜻과 같이 발칙한 유머, 기지를 발휘하는 작가의 센스도 엿볼 수 있고 가끔은 따뜻한 이야기들도 보입니다. 사실 콩트로 시작해서 콩트로 끝나는 모음집이기 때문에 정말 재미있는 편도 있었고, 보다가 훅 하고 어이없게 끝나버리는 편도 간혹 있었고 노골적인 장면으로 약간 민망해지는 부분도 있었어요. 하지만 전 읽고나서 '참 이 책은 사람들의 사랑에 관한 수닷거리 같다' 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우리 일상 속에서 한 순간에 지나가는 설레임, 아픔을 불러오는 것들, 배신과 거짓말, 쓸쓸함과 무관심 그리고 행복을 포함한 모든 감정들이 담겨진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간혹 사람들은 가슴 속에 무언가 남겨두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 괜찮아' 하는 것처럼 우스갯소리로 얘기하곤 하잖아요? 딱 그 장면이 떠오르더라구요. 제목의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끔은 우스워도, 허무해도, 슬프거나 기뻐도, 망상 속 이야기 같아도 '그렇지만 이건 사랑이야기'라는 것을요.
가장 좋게 보았던 세밀한 감정묘사.
"... 내 희망은 이내 산산조각이 났다. 내 온몸이 굳은 기계로, 뇌는 물렁물렁한 스펀지로 퇴화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일어섰음에도 여자는 자리에 못박힌 듯 앉아 있었다. 문은 이미 열렸다. 나는 뒤를 돌아 여자에게 마지막 눈길을 던졌다. 명백한 의심, 거대한 무력감에 빠진 그녀가 내게 실망에서 비롯된 샐쭉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펼쳐진 양손이 순간, 위로 쳐들리며 짙은 회한의 감정을 표현했다. 굳어버린 몸으로 목청 높인 소리보다 더 아프게 '왜?!'를 외치는 그녀처럼, 아주 천천히, 그토록 슬프게" - 노선 (Le trajet) 편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나는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내 곁에서 왜 그토록 느긋해지는지, 그녀가 왜 자신의 처지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이 마치 우리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만남을 계획이라도 했던 양 나를 그녀의 하루 속으로 끌어들였는지, 나로선 잘 알 수가 없었다 " - 거짓말 (Le mensonge) 편
"250쪽이 넘는 장편소설을 쓰는 건 어지간한 재능만 있는 작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270편의 콩트를 써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건 리듬이 아니라 영감이다. 즉 270가지의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이다. " - 자크 스테른베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