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언어는 잔잔히 박동하는 듯하면서도 가끔은 어두운 질문들을 던지고, 나는 그 지점들에 멈춰서 생각한다. 오답과 죽음, 불신과 고립... 글의 초반 눈부신 여름의 추억을 상기했지만 시집에서는 꽤나 어두운 시어들도 많이 등장하는데 왜인지 모르게 아주 깊이 어두워지지는 않는다. 적당한 온도를 유지한다. 이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시를 좋아하게 된 건 시인이 만든 공백으로 ‘열려 있는’ 느낌이 좋아서였는데, 사실 시집 한 편을 읽으면서 모든 행간에 집중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읽기는 조금 버겁긴 하다. 그러나 이렇게 긴 호흡을 다시금 할 수 있게 하는 건 무심코 읽다가 만나는 이런 멋진 문장들 같은 것.
권누리 시인의 「한여름 손잡기」 가 좋았던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표지를 닮은 시인의 색채가 일정한 온도로 유지되고 있어서였다. 한 쪽은 영롱하게 빛나고 한쪽은 바래진 채로 구르는 물방울 같은 시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