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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 With Frida Kahlo ㅣ 활자에 잠긴 시
박연준 지음 / 알마 / 2018년 5월
평점 :
모호한 것들을 만날 때 나는 당황하고 막막해진다. 시의 문장 속에 담긴 생각을 파악하지 못해서 답답해진다. 어떤 예술 작품 앞에서 창작자의 마음을 골똘히 생각한다. 사랑 앞에서 시시각각 널뛰는 기분이 못마땅하다. 문학과 예술과 사랑, 나는 이것들을 아직 다 알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이 능숙한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이들이 다 같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정확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이 모호함이 자유롭고 능동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각각은 더욱 풍성해진다’. 그림과 시와 사랑, 셋의 공통점이라 생각한다.
이 셋 모두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는 정말로 풍성한 책이다. 사실 이 책은 ‘활자에 잠긴 시’라 이름으로 예술과 문학을 접목시킨 시리즈 중 한 권의 책인데, 화가 ‘프리다 칼로’와 시인 ‘박연준’이 주인공이다. 박연준 시인은 책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번역’한다. 그림에 대해 해박하지 않을뿐더러 낮은 수준의 미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솔직하게 밝히는 시인은, 그림 번역을 선택한 이유에 대하여 그림과 시의 공통점을 말한다. “그림과 시는 비와 눈처럼 닮았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 미술 평론가의 해석 대신에, 시인은 “‘왜’라는 물음 대신 이미지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보았다"라고 말한다. 장르의 변형은 시인에게도 도전이지만, 그림 속에 살아 숨 쉬는 프리다 칼로의 영혼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나는 프리다 칼로의 형상을 한 시의 관절들 ―기형으로 꺾이다 나뭇가지처럼 자라나는 창작 욕망, 날것으로 파닥이는 혀, 꿰뚫는 시선, 우회하지 않는 손가락, 달을 가리키는 입술―에 매료되어 이 책을 썼다. 쓸모없어 보이는 이야기들과 주변을 맴도는 나 자신의 이야기들이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이룰 것이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를 기억한다. 청소년기 사고로 몸 한가운데 강철봉이 박힌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낸 자화상은 한동안 잊히지 않고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있었다. 그림과 함께 알게 된 그의 삶은 고통과 비극이 넘쳐 났다. 사랑하는 사람은 줄곧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여성 편력과 외도로 그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런데도 프리다 칼로는 그를 목숨처럼 사랑했다. 그의 그림 속에는 그가 사랑했던 ‘디에고 리베라’의 모습이 종종 담겨 있으며, 때로는 상처 입은 마음과 눈물이 그대로 담겨 있다. 프리다 칼로의 사랑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프리다 칼로는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사랑이 필요했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선택한 사랑과, 삶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시인을 통해 이 책에서 몇 편의 시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시인이 생각하는 사랑과 삶의 자질구레한 모습들이 더해졌다. 이 책은 프리다 칼로를 향한 애정의 기록이기도, 온갖 감정을 드러냈던 한 여인의 삶을 통해 쓴 사랑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림과 시와 사랑, 셋이 만나 풍성하기도 하거니와 각각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사랑을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사랑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인생이 어떤 원리로 흘러가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봄나무에 꽃망울이 맺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늙은 개의 입에선 비린내가 나고 눈곱이 많이 생기는 새끼의 건강은 좋지 못하다는 것을 ‘그냥’ 아는 것처럼, 받아들일 뿐이다. 살아 있는 것은 왜 늙는지, 왜 죽음을 피할 수 없는지 답을 알 수 없다. 그저 늙은 동물을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 사람처럼 동물도, 늙으면 휜다, 모든 면에서. 익은 모과에선 향이 나고 오래된 모과는 기어코 썩는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냥’ 아는 것. 어떤 사랑은 죽지 못한다.
외로움이란 누구를 골라 찾아가고 비켜가는 감정이 아니다. 불시에, 누구에게든 온다. 비나 눈처럼. 온다.
이제 나는 외로운 상태를 ‘조금’ 안다. 하나일 때보단 둘일 때 오롯해지는 감정. 젖은 옷 같은 것. 비에 젖은 옷 아니라, 눈에 젖어 시나브로 축축해진 옷. 입고 있기엔 축축하고, 벗어 말리자니 유난을 떠는 일 같아 감추게 되는 것. 설명할 수 있지만, 하려다 마는 것.
"탁자를 벽으로 밀고, 밀고, 밀면 벽에 닿지. 벽에 닿으면 어느 순간 벽을 뚫고 벽 너머의 세계로 갈 수 있을 것 같거든? 정말, 벽 너머로 말이지. 아주 잠깐. 테이블이. 벽 너머로. 그 기분과 비슷해. 황홀하지. 경험할 수 없는 것을 경험하(려)는 일이니까. 벽 너머로 갈 수만 있다면! 동시에 불행한 일이기도 하지. 불가능한 일을 하려는, 하염없는 짓이니까. 끝나면 벽 밖으로 다시 튕겨져 나와야 하거든. 나는 다시 벽 밖의 사람이 돼. 허기지지(원래 사랑에 빠진 자는 허기지잖아?). 다른 사람이라는 벽. 사랑이 벽 밖에서 거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게 비극이지. 그렇지만 또 시도하는 거야. 벽 속으로, 벽 너머로, ‘잠시’라도 들어갔다고 착각하기 위해서. 당신이라는 벽, 말이야. 사랑의 환락을 경험하려고. 환락 끝에 마주하는 게 다시 벽일지라도. 다시 우리는 테이블을 밀고, 밀고…. 밀어 보는 거지."
마음이 변해서 사랑이 죽는 게 아니야.
돌보지 않아서 사랑은 죽는다.
살아 있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돌보지 않으면 죽어. 이 자명한 진리를 사람들은 모를 때가 많아. 특히 더 많이 사랑받는 자들은 모르지. 사랑이 어디에서부터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어. 그러나 끝난 사랑은 누군가 돌보지 않은 결과야. 가꾸지 않으면 집 안에서 자라나는 모든 것은 죽는단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사랑은 깨지기 쉬운 원료로 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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