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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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거나 특별히 이름 붙이지 않아도 계급은 옛날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 유치한 비유라 할지 몰라도 비슷한 계급의 분포도를 따진다면 꼭 피라미드 모양과 같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 사회 속에서 우리는 늘 날카로운 꼭대기와 땅에 붙어 묵직하게 자리 잡은 아래쪽을 본다. 까마득하게 놓여 있고 더 이상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1%의 세계는 가장 작지만 너무도 견고하게 버티고 있다. 세상의 불평등을 이야기할 때 그 1%를 빼놓고 말하기란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20 vs 80의 사회>의 저자 '리처드 리브스'는 그동안의 수많은 불평등 담론이 최상위 1%에 초점을 맞추던 것과는 달리 조금 더 범위를 확대한다. 이제 사회는 점점 발전되고 교육의 수준 또한 높아지고 있으니 달라진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기를 상위 20%, 중상류층이라 불리는 이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파워를 지니고 있다. 기자, 연구자, PD, 교수…… 공공 담론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이들은 숨 막히는 경쟁의 사회에서 조용히 우위를 점하고 있다. 최상위층에서의 불평등을 간과해도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진짜 격차는 중상류층과 그 아래 모든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파워는 2015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기획한 ‘529 플랜’ 개혁안과도 관련이 있다. 자녀의 대학 학비 마련을 위한 장기 저축상품인 529 플랜의 세제 혜택을 없애기 위한 개혁안은 의회에 도착하기도 전에 엄청난 반대로 무산되었다. ― 529플랜이 제공하는 세제 혜택의 90퍼센트 이상이 소득 기준으로 상위 25퍼센트에 속하는 가구로 들어간다. (14쪽)

중상위층에 포진한 사람들이 모두 불공정한 방법을 택하는 것은 아니다(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지만).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활용하여 그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한다. 그러나 저자는 세대 간의 소득 격차가 기회의 격차와도 연결되는 현실을 지적한다. 자녀(가족)의 안위를 위해 택하는 ‘기회 사재기’가 영속적인 불평등을 야기하는 대표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 기회 사재기 매커니즘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 동문 자녀 우대와 같은 불공정한 대학 입학 사정 절차, 알음알음 이뤄지는 인턴 자리 분배’. 이들은 ‘유리 바닥’으로 불리며 지위의 대물림의 한 수단이 된다.

"아메리칸 드림이 죽었다고, 또는 죽어 가고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 미국 정치인들 사이에서 유행인 듯하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은 죽지 않았다. 아메리칸 드림은 살아 있고 건재하지만, 중상류층인 우리가 그 꿈을 사재기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그 꿈을 공유할 의지가 있는가?" (33쪽)

책의 초반부터 저자는 시종일관 ‘우리’라는 주어를 택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분야의 손꼽히는 연구원으로서 그는 자신이 공격하고 있는 상위 20% 중상류층에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겪고 가까이서 목격한 일들을 통해, 자신이 택할 이득을 포기하거나 양보할 의지를 보인다. 저자는 사회의 전체적인 수준을 위쪽으로 끌어올리고 더 많은 경쟁자가 시장에 진입하게 하는 것이 목표이며,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가장 고려되어야 할 것은 불리한 조건에 있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돕거나 투자해야 된다는 것이다. 악순환을 깨기는 쉽지 않지만 그는 용기 있게 발언한다.

“모든 지점에서 개입이 필요하며, 이는 위쪽에서 벌어지는 계급 분리와 계급 영속성의 정치적 함의를 우리 중상류층이 회피하지 않아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대체로 괜찮게 산다면 소득 계층에서 한두 단계쯤 떨어지는 게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미국의 현 상황을 전제로 쓰인 책이지만, 책을 읽는 사람 모두 이 현실이 우리나라와 거의 다르지 않다고 인식할 것이다. 중상류층의 ‘안전하게 살기 위한’ 그들만의 전략과 위선이 영영 사라지지는 않을 테지만, 자기반성을 토대로 한 저자의 문제 인식과 대안은 분명 큰 가치가 있다. 정말 그의 말대로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평화로운 세상일까.

불평등은 매우 열띤 정치 논쟁이 벌어지는 사안이다. 오바마는 불평등이 "우리 시대가 직면한 어려움의 본질"이라고 언급했는데, 실로 그렇다. 하지만 너무나 자주 불평등 담론은 상위 1퍼센트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다. 나머지 99퍼센트는 모두 비슷하게 불행한 처지라는 듯이 말이다. 1퍼센트의 최상류층에만 관심을 집중하면 중상류층인 우리가 다수 대중과 같은 배를 탔다고 믿기 쉬워진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 P16

우리가 기회를 사재기하면 우리 아이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다른 아이들은 기회가 차단되어 피해를 본다. 우리 아이가 동문 자녀 우대로 대학에 가거나 연줄로 인턴 자리를 잡으면 다른 아이들은 그만큼 기회가 줄어든다. 이런 행위에 대해 ‘불공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도덕적으로 큰 문제가 있음을 보여 주는 징후일 뿐이다. 너무나 많은 미국의 중상류층이 자신과 자녀의 성공을 전적으로 본인의 재능과 머리와 노력 덕분이라고 굳게 믿는다. - P28

기회가 ‘반경쟁적인’ 방식으로 분배될 때 사재기라고 부를 수 있다. 앞 장에서 언급했듯이 미국의 중상류층은 사립 학교, 명문 대학, 전망 있는 첫 직장과 같이 희소하고 가치 있는 기회들을 다른 계층 사람들보다 많이 누린다. 중상류층이 더 많은 기회를 분배받는 데에 개인의 성과와 하등 상관없는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다면 반경쟁적인 기회 사재기가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 P153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비용이 하나도 안 드는 것처럼 말해서 당신을 바보 취급하지는 않겠다. 기회 사재기를 줄인다는 말은 중상류층이 지금보다는 어느 정도 손해를 봐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 손해가 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동네는 지금보다 약간 덜 고급스러운 동네가 될 것이다. (하지만 덜 지루한 동네가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 복도에서 가난한 아이들도 마주치게 될 것이고, 아이비리그 대학에 가려고 기를 쓰기보다 꽤 좋은 공립 대학에 진학하는 것에 만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정도도 감수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희망은 없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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