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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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는가. ‘잊고 싶다’는 수식어는 부정적인 감정을 동반한다. 그것은 잠깐 지나가는 감정이 아닌, 일종의 터닝 포인트다. 선득하고 끈적하게 따라오는 까만 그림자 같은 것. 발을 담그다가 점차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깊은 웅덩이 같은 것. 누구에게나 존재할 것 같지만 기억의 회상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고통의 정도가 달라지는.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부끄러움>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말다툼 끝에 어머니를 지하실로 끌고 들어간 아버지에 손에는 낫이 들려 있었다. 날카로운 비명과 울음이 가득했던 끔찍했던 순간. 이후 부모님은 평소와 다르지 않게 행동하며 일상을 산다. 아무렇지 않게 무마된 기억은 지워지지 않은 채 화자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그렇게 남은 감정은 다름 아닌 ‘부끄러움’이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부끄러움의 정의, 가벼운 수치심이나 슬픔을 넘어 다양한 감정의 복합체로 여겨진다. 소설은 이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설명하기 위하여, 어릴 적 ‘나’를 둘러싼 세계를 정밀하게 되짚는다. 전쟁 이후의 궁핍한 생활, 열두 살의 순수한 나이, 서로를 감시하는 주변 사람들 …… 가족과 학교, 시골 마을의 굴레 안에서 ‘나’는 이제 친구들과 다르게 자신이 불행 속에 소속되었다고 ― 부끄러움 속에 편입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바라보는 풍경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이 소설은 그저 세밀한 감정을 늘어놓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감정의 해부학 (작품 소개 _신수정 평론가)’에 가깝다. 뼛속 깊이 스며든 감정을 이리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그 감정을 이미 처절하게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는 작가 ‘아니 에르노’의 철칙대로 쓰였으나, 이 소설에 투영된 기억은 작가의 어떤 자전적 경험보다도 더욱 어려웠던 것이라 작가는 밝히고 있다.

 

“나는 처음으로 이 장면을 글로 옮겼다. 지금까지는 일기에서조차 이렇게 쓰는 것이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마치 징벌을 야기하는 금지된 행위처럼. 어떤 글이든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는 금기. (이전처럼 여전히 글을 쓸 수 있으며 아무런 끔찍한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방금 전에 확인하니 드는 일종의 안도감.)”

트라우마를 고백하기로 결정했던 순간부터, 글을 완성하고, 그토록 감추려 했던 기억이 세상에 모두 알려지기까지 작가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라 짐작한다. 그리고 그 고통은 소설 속에, 마침표 하나까지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누군가의 마음의 심연을 이리도 가까이 들여다보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깊고 깊다.

 

며칠 전부터 나는 1952년 6월의 일요일과 함께 있었다. 그 사건에 대해 쓸 때면 그때 일이 ‘또렷하게’ 보였다. 형태도, 색깔도. 심지어 목소리까지도 들렸다. 지금 그 장면은 흐릿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무성 영화로 변해 마치 해독 장치도 없는 유선 방송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 장면을 언어와한다 해도 의미의 부재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1952년부터 항상 그래왔듯, 그것은 광기와 죽음의 장면이었고, 나는 내 삶의 다른 사건들의 고통을 가늠하기 위해 항상 그 장면과 비교했지만, 그와 같은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나 주변 세계를 생각할 때 사용했던 단어들을 되찾는 일이다. 정상적인 것과 용납될 수 없는 것, 심지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1995년의 나라는 여자는, 조그만 자시 도시와 자기 가족 그리고 사립학교만 알고 있어서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제한되었던 1952년의 소녀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다. 그 소녀 앞에는 살아야 할 무한한 시간이 놓여 있었다.

열두 살 시절의 세계의 법칙을 드러내다 보니 꿈속에서 느꼈던 미세한 중압감과 폐쇄감이 슬며시 나를 사로잡는다. 내가 찾아낸 어휘들은 불투명하고, 요지부동의 바윗덩어리이다. 명확한 이미지는 빠져 있는 어휘들. 사전을 찾으면 나오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그런 의미마저도 빠져 있는 어휘들. 그 주위에는 어떤 초월도 꿈도 없다. 그저 물질들처럼 있다. 내 유년 시절의 사물과 사람들에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하나가 된 일상어. 내가 딱히 가지고 놀아볼 수 없는 언어들. 일종의 법령집.

우리는 술을 마시지 않거나 싸우지 않는 사람 또는 시내에 갈 때 정장을 차려입는 사람 같은 정상적인 범주에 더 이상 포함되지 않았다. 개학일마다 깨끗한 교복을 입고 예쁜 기도서를 가지고 있으며 어디에서나 1등을 하고 기도문을 줄줄 외웠지만, 나는 더 이상 다른 여학생과 같지 않았다.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만 것이다. 순진무구한 사립학교에서는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았고, 그것을 통해 말끝마다 "아무튼 그런 걸 보고 사는 게 불행한 일이야"라는 이야기 속에 범람하는 폭력, 알코올의존증, 정신병의 세계 속에 딱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식으로 소속되고 말았다.

그해 여름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거론하면서 나는 내가 ‘그제서야 나는 알게 됐다’라든지 ‘나는 -를 깨달았다’라고 쓰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런 단어는 체험한 상황에 대한 명징한 의식이 있음을 상정한다. 거기에는 이 단어들을 모든 의미 외적인 것에 고정시키는 부끄러움의 느낌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무거움, 그 무화 작용을 내가 느끼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최후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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