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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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라는 단어를 보면 흔히 타인의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마음을 다잡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정신학적 용어에 따른 애도의 의미는 ‘모든 의미 있는 상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을 뜻한다고 한다. 애도의 대상과 방향은 고정되지 않고, 오로지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회복하는 과정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철학자 김진영 선생이 임종 3일 전까지 꼬박꼬박 써 내려갔던 일기를 모은 이 책이 단순히 ‘투병일기’가 아니라 ‘애도일기’인 것은 그가 병상에 누워 애도하며, 삶을 긍정하고 투쟁한 기록이 꼼꼼히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이 애도일기라는 부제에는 다른 암시도 있다. 그가 번역한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절절하게 표현한 텍스트를 우리말로 옮긴 이가 김진영 철학자였다. 그 아름다운 글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아침의 피아노> 속에서 그는 번역한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현재의 감회를 전한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다름 아닌 부끄러움과 괴로움이다. 타자를 향한 사랑으로 인한 고통을 표현했던 당시 화자에 비해, 자신의 고통을 걱정하는 이기심이 부끄럽다는 것이다. 사랑의 대상이 현존하는 자신은 지극히 행복하고, 그것들을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지금 살아 있다는 것 - 그걸 자주 잊어버린다.”

병환과 죽음 앞에서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순간순간 눈물이 솟구칠 때도 있으나 저자는 매일 아침 살아있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오랜 시간 타자들 앞에 서 있었던 자신의 존재, 말, 시간, 사랑의 순간들을 기억한다. 어느 하나 무의미한 순간들은 없었다. 자기를 긍정하는 것이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하고, 노력하고 투쟁했던 한 철학자의 삶이 이 책에 모두 들어 있다. 짧은 글들의 모음이지만 텍스트를 둘러싼 여백에 포함된 한숨과 긴장, 슬픔과 고독의 시간들을 모두 읽어낼 수 있다면.

처음에 이 책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애도일기’라는 부제와 ‘아침의 피아노’라는 제목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죽음은 내 좁은 식견으로는 아침보다 ‘저녁’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예상이 틀렸다. 이 책은 정말로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아침이다. 사랑과 아름다움을 말하고, 자신의 삶을 누구보다 힘차게 걸어나갔던, 한 철학자의 내밀한 기록이다.

 

흐른다는 건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흐르는 것만이 살아 있다. 흘러가는 ‘동안’의 시간들. 그것이 생의 총량이다. 그 흐름을 따라서 마음 놓고 떠내려가는 일 - 그것이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자유였던가.

나 또한 나의 하류에 도착했다. 급류를 만난 듯 너무 갑작이어서 놀랍지만 생각하면 어차피 도달할 곳이다. 적어도 지금가지 나의 하류는 밤비 지나간 아침처럼 고요하고 무사하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공부하고 돌아오는 나에게 큰 서재를 만들어주고 싶어 하셨다. 여기가 그 서재가 아닐까. 나는 여기서 한 권의 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 나와 나의 다정한 사람들, 미워하면서도 사실은 깊이 사랑했던 세상에 대해서 나만이 쓸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지금 내가 하류의 서재에 도착한 이유가 아닐까.

방금 아이가 묻던 말이 생각난다. 신기해 빗방울은 왜 동그랄까. 나는 대답했었다. 바보야 물이 무거우니까 떨어지면서 아래로 맺히는 거지. 그것도 몰라? 누가 그걸 몰라. 그래도 물방울이 신기해. 너무 예쁘잖아…… 문득 차라투스트라의 한 문장 : "인간은 가을의 무화과다. 인간은 무르익어 죽는다. 온 세상이 가을이고 하늘은 맑으며 오후의 시간이다." 무르익은 것은 소멸하고 소멸하는 것은 모두가 무르익었다. 니체는 그 순간을 ‘조용한 시간 Der stille Stunde’이라고 불렀다. 조용한 시간 - 그건 또한 거대한 고독의 순간이다. 사람은 이 난숙한 무화과의 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 평생을 사는가.

내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내가 끝까지 사랑했음에 대한 알리바이이기 때문이다.

군포 병원으로 면역 항암제를 맞으러 가는 길. 꽉 막힌 고속도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차들을 내다보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어머니 얼굴. 강렬한 그리움, 아니 그리움이 아니다. 살아서 한 번도 품어보지 않았던 욕망의 충동. 어머니의 품 안에 안기고 싶은, 아니 품 안으로 파고들고 싶은, 그렇게 어머니의 몸속을, 그 몸 안의 어떤 갱도를 통과하고 싶은 절박한 충동.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멘트 바닥을 천공하는 지렁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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