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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맑음 - 청소년과 함께 읽는 5.18 민주화 운동 이야기 ㅣ 창비청소년문고 33
임광호 외 지음, 박만규 감수, 5.18 기념재단 기획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지난해, 우연히 뉴스 기사를 읽고 경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2019년 촛불 집회 당시 엄청난 군 병력과 탱크, 장갑차 등으로 무력 진압을 하려고 했던 문건이 드러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무력시위로 변질될 때를 대비한 병력이라고는 하지만 촛불을 들고 질서를 지키며 평화적인 시위를 했던 시민들에게 이런 ‘거리를 쓸어버릴 만한’ 군 병력이 가당키나 할까요. 그 이야기를 듣고 ‘만약’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어디에선가 작은 충돌이라도 일어난다면, 거리에 있는 수많은 시민들을 ‘폭도’로 만들어버리는 건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만약’을 상상하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것은 1980년 5월의 광주였습니다.
“열받아서 몰입이 잘 된다”는 이유로 근현대사를 열심히 공부했지만, 성인이 되기 전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이후, 교과서보다는 문학이나 만화, 영화, TV 시사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알아갔지요. 식민 통치를 받고, 수차례 전쟁을 겪고,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가 되기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는 아픈 역사 투성이지만, 가장 가슴 아픈 역사는 국가가 국민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건들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가까운 과거의 역사인 5.18은 너무나 깊게 새겨진 숫자였습니다.
<5월 18일, 맑음>은 그날의 기억을 사실대로 전달함과 동시에, 역사를 어려워하는 학생들과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쉽고 친근하게 기술한 책입니다. 광주에서 벌어졌던 열흘간의 항쟁뿐 아니라, 운동이 발발하기 전 대한민국의 상황, 그리고 5.18 이후 현재까지의 노력 등을 꼼꼼하게 담았습니다. 또한, 각 장마다 민주주의, 국가 폭력 등과 같은 키워드를 조금 더 정확하게 설명하는 한편, 세계 속에서 5.18과 유사한 풍경을 그려낸 일들을 함께 소개하기도 했지요.
책은 어렵지 않게 편안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사소한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소해 보이는 일들은 5.18의 진실을 하나하나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최초 사망자가 우연히 길을 걸어가던 청각장애인이었다는 것과, 그해 공수부대에서 수개월 동안 강도 높은 훈련과 세뇌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당시의 상황이 눈뜨고 보기 힘들었던 무차별적인 폭행과 진압이었다는 점을 반증합니다. 영화 <택시 운전사>에도 등장했던 독일인 기자 ‘힌츠페터’는 “베트남 전쟁에서 종군 기자로 일할 때도 이렇게 비참한 광경은 본 적이 없다(82쪽)”고 말했다고 하지요. 어떤 설명을 하든 그때의 상황과 같을 수 있을까요.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만들어진 책은, 그 생생한 역사의 눈물 때문에 결코 편안하게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몸이 떨렸습니다.
“원망스럽다, 이런 것들은 별로 없었어요. 기왕에 나는 죽겠다고 생각을 했고, (……) 당신들은 살아서 다음에 제대로 이야기해 주겠지. (……) 10년이 갈지, 100년이 갈지. 그거야 모르지만은 언젠가는 이 얘기가 나오겄지, 그렇게 생각을 했죠. (122쪽, 양인화, 당시 시민군의 증언)”
하나하나 기억할 것들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들불야학’을 통해 노동자를 교육하다가 민주화운동을 이끌게 되었던 ‘윤상원’ 열사의 이름과, 생생하게 남은 증언의 주인공들, 시위에 참여하고 시위를 도왔던 사람들과, 남모르게 눈물 흘리며 현재까지도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유족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 ‘아픔의 연대를 향해’를 통해 기억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아픈 역사를 단지 역사적 사실로만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끊임없이 끌어올려 현재의 상황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갈 청소년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조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국가의 그 누구에게도 국민의 인권을 마음대로 줄일 권리는 없습니다. 대통령일지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이 만든 법에서 나오고 국민은 누구나 그 법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역시 국민의 한 사람이며 그가 가진 권력은 국민들에게 잠시 위임받은 것일 분입니다. 유신 공화국에 살던 사람들이 바란 민주주의는 그렇게 추상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 같은 사소한 일부터 소신대로 신문 기사를 쓰고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는 것,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것 같은 작지만 소중한 자유와 권리를 지키고자 했지요. - P35
공수 부대는 한층 더 잔혹하고 무차별적이었습니다. 이성을 잃은 듯 사무실이나 주택, 여관까지 마구 들어가 곤봉으로 때리고 대검으로 찔렀습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잡혀 오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속옷만 입게 한 채 마치 군대에서 하듯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등을 시키며 기합을 주었지요. 따라 하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구령에 늦을 경우 여지 없이 곤봉을 휘둘렀습니다. 가톨릭 사제조차 "옆에 총이 있었다면 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라고 느낄 지경이었습니다. 공수 부대와 함께 시위 진압을 맡은 경찰 간부마저 시위대에게 "제발 집으로 돌아 가라, 공수 부대에게 걸리면 다 죽는다"라며 울먹였지요. - P56
"몸이 약해서 보기에 그 헌혈허시면 안 되겠다고 그러면 막 화를 낸 거예요. 내가 죽어도 이럴 때 피 한 방울도 안 주면 내가 시민이 아니지 않냐. (……) 그때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슬펐고, 또 가장 인간으로서 감동적인 순간들을 너무 많이 체험을 한 거죠." 헌혈 행렬에는 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웠던 가정주부나 젊은 여성들이 특히 많았습니다. 그 와중에 안타까운 일도 생겼습니다. 전남여성 3학년 박금희 학생이 광주기독병원에서 헌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 총을 맞고 사망한 것입니다. 박금희 학생은 헌혈했던 병원으로 다시 실려 오고 말았습니다. - P98
만약 어느 도시에서 치안이 사라진다면, 즉 경찰이 모두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잘못을 저질러도 처벌할 사람이 없다면? 남의 집 담을 넘는 도둑들, 은행마다 들이닥쳐 자루 한가득 돈을 실어 나르는 강도들, 내키는 대로 거리에 불을 지르며 화를 푸는 이들로 도시는 큰 혼란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계엄군이 시 외곽으로 철수한 21일 이후부터 다시 진입해 들어온 27일까지 광주는 사실상 치안이 사라진 ‘무정부 상태’였습니다. 군인도 경찰도 없었지요. 하지만 광주는 혼란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였습니다. 도시는 무척 안전했습니다. - P107
"도청 정문을 나설 때, 한편으로는 비겁하게 나 혼자만 살기 위해 빠져 나가는 것 같은 심정과, 또 한편으로는 저 많은 젊은이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는 운명의 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닦아도 닦아도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많은 시민이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지만 남아 있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도청 YMCA 건물에 있다가 집으로 가라 하면 도청으로 가고 도청에서 가라 하면 다시 YMCA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도청에 남은 그 누구도, 돌아가는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비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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