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 없는 직장 - 갑을노동의 사회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22
류문호 외 지음 / 스리체어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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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 날들이다. 언론을 통해 회자된 것들은 일부분일 뿐, 밝혀지지 않거나 꾹 참고 입을 닫아버린 일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사용자와 근로자의 비대칭 관계가 당연시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디까지가 근로자의 인격 침해에 해당하는지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14쪽)” 재벌, 임원들의 폭언, 상사나 동료의 괴롭힘, 성희롱, 임금 착취를 당하는 근로자들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어느 정도까지 참아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워 상황에서 벗어날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한 백화점에선 진상 고객이 근로자에게 험한 욕설과 폭행을 하는 사건도 있었다. 공개된 영상 속에선 어느 누구도 적극적으로 진상 고객을 말릴 수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이처럼 인권을 무시당하는, 수직적 상하 관계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디서나 존재한다.

 

<인권이 없는 직장>은 실제 한국의 노동 속에서 ‘갑을 노동’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한다. 다양한 노동 형태만큼이나 갑을 노동의 모습도 다양한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직장 내의 괴롭힘, 직장 내의 무례함, 직장 내의 성희롱, 비공식 고용과 열정 페이, 진상 고객의 갑질, 노동 감시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의 현실을 파악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이 존재하긴 하지만, 피해자의 고통 정도와 별개로 법적 규제와 처벌의 판단은 애초에 수직적인 관계로 이루어진 직장 내에서 애매모호한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책 속에서는 다양한 케이스와 그에 따른 해결책을 알려주는데, 일단 중심이 되는 주장은 근로자 인권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서 포괄적인 접근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 내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경우,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조직적 문제로 파악할 것, 사용자가 근로자의 교육을 담당할 것이 요구된다. 마찬가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경우 과잉 친절을 방지한 세심한 인사 관리가 요구된다. 결국 고통을 주는 ‘가해자’의 처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구조, 조직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전체적으로 딱딱한 문체와 나열식으로 쓰인 글이 읽기에 쉽지는 않았지만, ‘올바른 노동’에 대해 고민한다는 측면에서 좋은 영향을 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특히, 직장 스트레스로 자살한 사람의 ‘심리적 부검 (자살로 사망한 사람과 관련해 수집된 포괄적 정보를 분석해 자살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방법)’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사회적 타살로 인해 한 사람의 생명이 스러지기 전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슬프지만, 그 사람의 마지막을 정리해주는 것이 조금이나마 인권을 보듬어주는 것이라 여겨졌다. 아,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일하는 어떤 곳이나 스트레스는 있겠으나, 사람을 피 말리게 하는 괴롭힘은 부디 없어졌으면 좋겠다.


 

 

● 20쪽,
우리나라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업무 수행 과정에서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것 또는 상급자의 지휘, 명령 과정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하곤 한다. 근로자에게 괴로움을 줄 수 있는 상급자의 언행이 정당한 지휘, 명령권의 행사라는 명목으로 합리화되는 경우가 더 많다. 직장 내 괴롭힘을 집단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따돌림이라는 지엽적 문제로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 40쪽,
조금 쉽게 표현하자면 직장 내 괴롭힘은 쇠망치로 때리는 행위로, 직장 내 무례함은 뿅망치로 대리는 행위로 비유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쇠망치로 때리는 행위는 누가 보더라도 가해자가 상대방에게 위협, 폭력을 가하려는 의도와 행위, 피해자의 피해 상처 등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사회 통념 상 또는 법률상으로 금지되는 위법한 행위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뿅망치로 때리는 행위는 가해자의 의도, 피해자의 피해 양상, 위법성이 명확하지 않고 모호하다. 즉각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피해자는 결국 스트레스와 괴로움이 쌓이고 일상, 직장 생활에 지장을 받게 된다.



● 73쪽,
일부 기업에서는 "무급 인턴이라도 하겠다는 대학생이 수십 명씩 밀려들오 오는데 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도 모자라 돈까지 줘야 하느냐"며 억울함을 표하기도 한다. 인턴에게 순수하게 교육만 시킬 것이냐고 반문하면 ‘일을 시키는 것도 교육’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인사 실무자도 있다. 그러나 이는 소수의 공급자와 다수의 수요자 사이에서 갑의 위치를 활용 혹은 남용하는 공급자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이다.




● 126쪽,
직장 내 괴롭힘과 무례함, 직장 내 성희롱, 열정 페이, 진상 고객, 스트레스와 자살 등의 문제는 분명 근로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노동법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이는 노동법이 노동의 현실에 제공해야 할 일정한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한 ‘노동법의 공백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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