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발전'이라는 말은 잠재력이 잘 발현되어 종국적으로 자연스럽고 모자란 데 없는 난숙한 상태에 도달하는 과정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이 말이 진보, 진화, 경제 성장이라는 말과 거의 같은 뜻으로 왜소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이런 세속적 의미의 발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총망라한 듯한 느낌을 주는, 아주 두툼한 책이다.

자그마치 18가지 측면(환경, 평등, 도움, 시장, 요구, 한 세계, 참여, 계획, 인구, 빈곤, 생산, 진보, 자원, 과학, 사회주의, 국가, 기술)으로 나누어 발전의 핵심을 여러 학자들이 낱낱이 까발리고 있다. 이 책은 이 세속적 의미의 발전을 고발할 뿐만 아니라 발전에 대한 추도사의 냄새를 풍기는 책이다.


▲ <反자본 발전 사전>(볼프강 작스 외 지음, 이희재 옮김, 아카이브 펴냄). ⓒ아카이브
이 세속적 의미의 발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종료 직후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취임 연설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이 책은 보고 있는데, 이 연설에서 트루먼 대통령은 세계의 저발전 지역을 없애기 위한 '발전의 시대'를 열자고 선언하였다고 한다. 미국이 발전의 깃발을 높이 쳐들고 모든 나라에게 내 뒤를 따르라고 소리쳤으며, 신기하게도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 깃발의 뒤에 줄을 섰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전의 시대가 열렸고 지난 반세기가 발전의 시대가 되었다.

트루먼 대통령이 선언한 발전의 개념은 요컨대 경제 성장이나 경제적 생활수준의 향상을 의미한다. 경제 성장이나 경제적 생활수준의 향상은 국내총생산이나 1인당 소득수준으로 표현된다. 이런 양적 잣대를 들이대면 발전의 정도를 금방 식별할 수 있다. 국내총생산의 규모가 크고 1인당 소득수준이 높은 나라는 발전된 나라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발전되지 못한 나라(저발전 국가)다. 발전의 정도에 따라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으로 줄 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부자로부터 극빈자까지 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트루먼 대통령이 발전의 시대를 선포한 바로 그날 세계의 20억 인구가 '저발전인'으로 낙인 찍혀버렸다. 이제 저발전과 가난은 치욕이 되었다.

국내총생산으로 따지면 한국은 세계 15위 안에 드는 경제 대국이지만, 겨울철 연탄 한 장이 아쉬운 판자촌 빈민에게는 이 말이 믿겨지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발전의 뒤안길에서 이제까지 오롯이 살아온 남아메리카 오지의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가 후진국이요 빈국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알고는 의아해할 것이다. 옛날 라다크를 방문했던 어떤 서양인이 원주민에게 당신의 나라에는 가난한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고 물었더니, 그 원주민은 그런 사람을 알지 못한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단다. 그러나 라다크가 일단 발전의 대열에 끼어든 후에는 사정이 아주 달라졌다. 이곳의 많은 원주민들은 이제 자신들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잘 사는 나라들이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세속적 의미의 발전을 이 책의 한 필자는 "엽기적으로 변형된 발전"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세속적 의미의 발전이 그렇게 엽기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정의의 핵심인 평등 사상으로 포장되어 있어서 누구나 추구해야할 규범적인 것이 되었다.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잘 살 권리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똑같이 잘 살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서 평등주의가 이 세상에 실현되기 위해서는 저발전 국가는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하며,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따라 잡아야 한다. 따라 잡기 위해서는 발전해야 한다.

1974년에 채택된 '신국제 경제 질서 확립 선언'에서 유엔(UN)은 "불평등을 시정하고 불의를 바로 잡아 발전국과 발전도상국 사이의 점점 벌어지는 거리를 없애고 경제 발전의 속도를 책임지고 꾸준히 끌어올리고자 한다"라고 천명하였다. 발전이라는 말과 평등주의가 합쳐지면서 세계의 발전을 통해서 평등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는 발상으로 발전하였다. 이렇게 품위 있게 포장된 발전의 담론에서는 하향 평준화라는 말은 없고 오직 상향 평준화라는 말만 흘러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선진국이나 후진국 모두 발전을 위한 경쟁으로 빨려 들어갔다. 특히 후진국의 급선무는 저발전의 오명을 빨리 벗어 던지는 것이었다. 어떻게 빨리 발전할 것인가?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꼽혔다. 특히 동구권이 무너진 후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범지구적 확산은 더욱 더 탄력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도입되고 정착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적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후진국의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나 전통적 생활양식, 특히 공동체 의식이나 끈끈한 인간관계는 시장 경제의 활성화에 큰 장애물이므로 깨끗이 청산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오직 합리적으로 자신의 득과 실을 계산하는 경제인만을 필요로 한다. 이 책은 이 장애물 제거 과정을 "사람의 뿌리를 잘라서 경제인으로 도려내는 작업"이라고 표현하였다.

애당초 미국이 발전의 기치를 높이 내걸었기 때문에 발전의 숨은 의지는 자연히 서구화(미국화)일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식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이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확산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제 세계 어디를 가나 비슷한 행동과 생활양식을 목격하게 된다. 비슷한 쇼핑몰에서 쇼핑하고, 똑같은 첨단 전자제품을 사용하며, 똑같은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똑같은 모습의 관광객이 되어 세계를 부비고 다니며 돈을 뿌려댄다. 심지어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에서조차 코카콜라와 햄버거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양복과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인들이 자동차 소음과 매연으로 뒤덮인 길거리를 활보한다.

이제 지역별 고유의 문화와 전통적 생활양식을 제대로 보려면 아주 낙후된 지역(저발전 지역)을 찾아 가야만 한다. 발전의 시대에 이런 전통적이고 고유하고 토착적인 것들은 발전의 장애 요인으로 지탄받으면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기껏해야 눈요기 감에 불과하게 되었다. 세계 어디에서나 미래에 대한 희망은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이요, 마음껏 소비하고 즐기는 것이다. 이제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의 민족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자신들의 생활양식을 자신들의 독자적 생각에 따라 자신들 나름대로 정의할 기회마저 빼앗겨버렸다.

그러면 발전을 통한 평등주의가 약속대로 실현되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40년도 넘은 지금 발전은 지독한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이 책은 단정한다. 우선 각종 통계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 책은 세계은행의 1988년 <세계 발전 보고서>를 인용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1986년 20개 자본주의 부자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만3000달러였고 1965년 이래 연평균 증가율은 2.3%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해마다 약 300달러씩 증가한 셈이다. 반면에 같은 해 가장 가난한 33개 후진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70달러였으며, 그 증가율은 3.1%였으니 해마다 약 8.4달러씩 증가한 셈이다. 한 쪽에서는 소득이 매년 300달러씩 불어나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8.4달러씩 늘어나니 부국과 빈국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빈국의 경제성장률이 부국의 경제성장률보다 조금은 높기 때문에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빈국이 부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 때가 과연 언제쯤일까? 과거의 성장률이 미래에도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127년 후 빈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986년 부국의 1인당 국민소득에 이르게 되며, 약 500년이 지나야 빈국이 부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 설령 빈국의 연평균 소득증가율이 5%라고 가정해도 약 150년이 지나야 빈국이 부국을 간신히 따라잡을 수 있으며, 이쯤 되면 세계의 1인당 국민소득은 40만 달러가 된다. 말하자면, 방글라데시나 아프리카 최빈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40만 달러 수준으로 올라서야 비로소 이 지구에 평등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중국과 인도를 제외한 빈국이 연 5%의 성장률을 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의존하는 발전으로는 범세계적 평등주의 약속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빈국은 부국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가 없다"고 이 책은 단언한다. "따라잡기를 통한 평등은 현실의 불평등을 조직하고 합리화하는 신화에 불과하다." 사실, 오늘날에 와서는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도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일부 경제학자들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빈국이 부국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고 이 책이 단언하는 데에는 더 큰 이유가 있다. 바로 지구의 한계가 그것이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에 퍼진 자본주의 시장은 원래부터 화석연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생산 방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은 자연자원의 고갈을 경시하며 환경오염을 무시하는 체제다. 마치 신용카드가 보편화되면서 우리 사회가 외상으로 사는 사회가 되었듯이 자연자원에 관한 한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외상으로 유지되는 체제다.

발전의 원동력으로 전 세계에 퍼진 자본주의 시장은 결과적으로 막대한 자연자원을 소모하면서 엄청난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함으로써 이미 지구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세계적 발전이 계속된다면 이 지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 후진국이 선진국을 따라잡음으로써 전 세계적 평등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지구가 네댓 개 더 필요하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시장을 업은 발전을 통하여 전 세계적 평등주의를 구현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대답이 없다는 점이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큰 아쉬움이다. 하기는, 자본주의 시장을 바탕으로 한 발전을 설득력 있게 구체적으로 까발리는 것만 해도 벅찬 일이니 일단 그렇다고 해두자. 이 책은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지도 않는다. 발전 전략을 택함에 있어서 저간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별 차이가 없었다고 보고 있다.

이 책의 필자들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밑바탕에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탐욕이 작용하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이 탐욕이 이제 지구인의 생존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무한한 탐욕을 억제함으로써 옛날처럼 시장이 경제적인 영역을 벗어나지 않도록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결국 이 책은 발전으로 인해서 소탕되었거나 뒷전으로 밀린 것들을 다시 살려낼 것을 요구함과 동시에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을 주장한다. 미국식 생활양식에 젖은 세계의 다수인에게, 특히 세계의 부유층에게 과소비에 대한 부끄러움과 과시 소비의 유치함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자발적 빈곤이 찬양되어야 하며 우리가 잃은 자기 절제력을 복원해야 한다고 이 책은 힘주어 말한다. 그리고 발전의 시대는 이제 서서히 지고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러나 세속적 의미의 발전을 신봉하는 사람들, 특히 경제학자들은 이 책에 대하여 많은 질문을 쏟아낼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이 책은 마치 선진국이 세속적 의미의 발전의 개념과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후진국의 입에 억지로 쑤셔 넣은 것처럼 서술하고 있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스스로 원해서 자발적으로 채택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에 걸쳐 이 발전의 개념과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성공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고 이들은 주장할 것이다.

경제학자가 늘 주장하듯이 만일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합리적인 사람들이 스스로 원해서 선택한 것을 어떻게 나쁜 것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아쉽지만, 이 책에서는 이런 식의 질문에 대한 분명한 해명을 찾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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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도 그렇지만 '사랑'은 철학에서도 가장 적게 연구된 학문 분야의 하나였다. 사랑만큼 모호한 감정을 동반하면서 다양한 행동의 종을 뽐내는 심리 복합체가 또 있을까. 우연한 만남을 운명으로 만드는 힘, 사랑. 68 혁명 이후 각종 사회적 담론과 해체주의의 영향으로 더욱더 가난한 담론으로 치부되어 왔던 '사랑'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책이 등장했다. 이 지구상에 사랑에 웃고 사랑에 우는 사람들을 위한 책. 바로,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조재룡 옮김, 길 펴냄)이다.

먼저 저자인 알랭 바디우에 대해서 알아보자. 바디우는 1937년 모로코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파리고등사범대학의 교수이다. 아버지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사회주의자였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툴루즈 시장을 지내기도 했다. 바디우는 젊은 시절에는 사르트르주의자였고, 이후 알튀세르의 충실한 지지자가 되었지만, 1968년 5월 혁명 이후 확고한 마오주의 노선을 취하며 알튀세르와 결별했다.

철저한 좌파 논객인 바디우는 '복수(複數)의 진리'를 내세우며 이주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직접 팻말을 들고 시위에 나서는, 행동하는 철학자로도 유명하다. 탈근대 철학자들의 '차이의 철학'과는 다른 관점에서 각종 소수자들을 배려하는 철학을 지향하는 그는, 나와 남을 봄에 있어서 '차이'보다는 '같음'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 어렵고 중요한 일이라고 설파한다.
 

▲ <사랑 예찬>(알랭 바디우 지음, 조재룡 옮김, 길 펴냄). ⓒ길
약력만 보아도 타협을 모르는 꼬장꼬장한 이상주의자 교수로 보이는 바디우는 일단 <사랑 예찬>의 서두에서 사랑을 통해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진정 존재론적으로 위험하고 매혹적인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의 선택에 위험성을 제거하려는 자본주의 사회의 합리적 노력을 아주 세게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를테면 조건이 맞는 짝을 찾아주는 결혼 정보 회사나 만남 알선 사이트 같은 것.

사랑에 안전한 개념을 부각시킬수록, 사랑과 연관된 보험인 이들 결혼 사이트는 승해지고 사랑은 일종의 '증여'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디우의 시선으로 보면, 모든 사랑의 시작이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는 일종의 실존적인 시(詩)인 바, 사랑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랭보의 말대로 재발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알랭 바디우가 주장하는 '재발명되어야 하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에 대한 바디우의 담론은 매우 특이하다. 그가 일단 사랑과 섹스는 절대 등가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육체의 결합으로 하나가 된'이란 시적 개념은 바디우에게는 하나의 기만일 뿐이다. 왜냐하면 타자의 몸이 매개하지만 바디우의 입장에서 사랑이란 언제나 제 자신의 쾌락이고, 성적인 것은 결합하지 않고 분리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디우는 사랑을, 남녀 간의 사랑을, 진리를 생산하는 절차라고 정의한다. 바디우에게 진리란 혁명이고 기존의 지식 체계의 교란이며, '차이'를 통한 '같음'으로 가는 가장 일상적이고 위대한 진리 체계가 바로 사랑이다. 그의 논리대로 따르면, 남녀가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선언을 하는 순간, 수많은 우연이 운명으로 고정된다. 인생의 운명적인 순간에는 늘 사랑이 존재한다.

책을 읽다보면 필자 역시 사랑이, 연애가, 진실하다 못해 숭고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바디우의 사랑 예찬 속 사랑은 역시 철학자의 사랑은 아닌지 의구심도 생긴다. 결혼이란 물적 토대를 이룬 오랫동안 제도권 안에서 사랑이란 감정을 일상으로 녹여내야 하는 필부필녀에게는 잡을 수 없는 파랑새 같은 사랑. "사랑이란 내가 내 살을 도려낼 때 사용되는 칼이 바로 그대"라는 걸 뜻한다는 카프카식 사랑의 상처는 사라지고 사랑의 이상향만 남은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디우의 책을 읽다보면 마치 사랑에 빠졌을 때, 서로에게 느꼈던 그 몽롱한 황홀경 같은 것이 다시금 문득문득 느껴져서 호흡을 멈추게 된다. 세상에 붕 떠서 모든 사랑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았던 때.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의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여겨졌던 때.

"사랑은 개인인 두 사람의 단순한 만남이나 폐쇄된 관계가 아니라 무언가를 구축해내는 것이고, 더 이상 하나의 관점이 아닌 둘의 관점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삶이라 하겠습니다. 최초의 장애물, 최초의 심각한 대립, 최초의 권태와 마주하여 사랑을 포기해 버리는 것은 사랑에 대한 커다란 왜곡일 뿐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공간과 세계에 시간이 사랑에 부과하는 장애물들을 지속적으로 간혹은 매몰차게 극복하는 그런 사랑일 것입니다."

연극 연출가와 대담 형식으로 이루어진 책을 읽으면 마치 바디우가 내게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고, 이런 이야기를 들은 나는 다시 이런 사랑을 꿈꾸게 된다. <사랑 예찬>을 읽으니 진정한 사랑을 하고픈, 권태마저 매몰차게 극복하고, 이상적이고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순수한 사랑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니 이미 있는 남편이란 이름의 친밀한 타인에게서 다시 생경한 감정 파도를 느끼려고 마음에 돌 하나 던져야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싱그러운 사색의 색깔로 사랑을 채색하는 기막힌 염색사-사색가는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삶> 이후 알랭 바디우가 처음이다. 소설가인 키냐르는 사랑은 본질적으로 반사회적인 면이 있다고 했는데, 바디우의 철학적 성찰은 더 나아가 '둘'의 모험인 사랑을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그러니 지금 사랑하는 이들이여, 바디우의 <사랑 예찬>을 통해 둘과 하나가 공존하는 "사랑의 지속성, 약속, 충실성, 헌신" 등을 느껴 보시기 바란다. 진정한 사랑이 실종된 시대. 낭만적 사랑을 입에 떠올리기에도 겸연쩍고, 하나의 자본처럼 은밀하게 거래되는 이 시대에, 바디우의 사랑에 대한 사색은 새삼스럽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그에 따르면 "사랑의 적은 경쟁자가 아닌 바로 이기주의"라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사랑 예찬>은 비록 바디우의 철학을 모르더라도 '지금 사랑에 빠진 이'들을 위한 최적의 연애 철학서이다.

알랭 바디우의 <사랑예찬>은 사랑을 사랑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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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 없는 사람도 신앙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럴 때다. 고생이 뻔한, 그러나 옳다고 믿는 선택을 해야 할 때, 신앙이 도움이 된다. 세상은 알아주지 않아도, 신(神)은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실제로 이런 믿음으로 많은 이들이 외로운 선택을 한다. 물론 이런 선택이 늘 옳은 것은 아니지만.

'염치'를 일깨워주는 '공정한 기록'의 힘

그렇다면 신앙이 희미한 사회에선 무엇에 의지해서 힘든 선택을 할까. 조선 역사에 힌트가 있다. 조선의 정치인들은 역사에 의지했다. 현실에선 인정받지 못한 결정이지만, 뒷날 역사가들은 제대로 평가해주리라는 믿음이다.

'사화(士禍)'라는 피바람을 부를 만큼, 조선 사회에서 역사 기록이 첨예한 정치 쟁점이었던 이유다. 역사를 제대로 기록한다는 믿음은, 외로운 선택을 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안타까운 대목은 조선 문명이 해체되면서 기록의 전통도 함께 사라졌다는 점이다. 역사가의 눈치를 보지 않는 이들이 부끄러움을 알기란 쉽지 않다. 염치 불문하고 눈앞의 이익을 쫓을 따름이다.

김수영 시인은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고 했는데, 그렇다. 기록은, 아무리 더러운 기록이라도 의미가 있다. 아니 더러운 기록이라서 더 의미가 있다.

똑같이 외환 위기를 겪었는데, 한국엔 없고 타이엔 있는 것

여기, 더러운 시대의 기록이 있다. 하숙비를 못 낸 대학생이 동아리방에서 잠을 청해야 했던, 윤택한 사업가 집안이 한순간에 거리로 내몰렸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노·사·정 담판에서 오히려 통 크게 양보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정리 해고 통보 밖에는 없었던 시대에 관한 기록이다.


▲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강경식 지음, 김영사 펴냄). ⓒ김영사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한국 경제 수장이었던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현 동부그룹 상임고문)가 꼼꼼하게 적은 기록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김영사 펴냄)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적어도 강 전 부총리는 기록의 가치와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그의 글을, 조금 길지만 인용해 본다.

"외환 위기를 겪은 아시아의 나라 중에서 태국도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위기의 원인, 무엇을 잘못했는가, 누가 잘못했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에 대해 보고서를 만들어 발표했다. (…) <누쿨 보고서>가 그것이다.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은 정부 차원의 조사위원회를 구성한 일이 없다. 물론 <IMF 백서>도 없다. 한때 한국전쟁 이후의 최대의 국난이라고 하면서도 왜 그렇게 엄청난 위기를 겪게 되었는지, 앞으로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든 일이 없다. (…) 엉뚱하게도 사법부의 공판 기록은 있다(법원의 1심 공판은 27차례 열렸고 증인의 수는 50명이다). 나라의 수준이 이렇게밖에 되지 않는지,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한국에 <누쿨 보고서>와 같은 게 있었다면 그 내용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단지 두 사람의 잘못으로 겪지 않아도 될 외환 위기를 당했다는 내용이었을까?

김대중 정부는 한국이 외환 위기를 조기에 졸업한 것을 두고 큰 치적으로 자랑했다. 처음 위기를 당했을 때를 생각하면 그렇게 자랑할 만한 일이다. <외환 위기 백서>가 없는 것처럼 <외환 위기 조기 졸업 백서> 또한 없다. 국내에선 IMF 자금의 조기 상환을 두고 졸업했다고 기뻐했지만 해외에서는 위기의 원인이었던 구조적 취약점을 보완한 점을 평가했다.

이렇게 외환 위기 졸업의 의미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외환 위기를 가져온 원인을 제거하고 다시 그런 위기를 겪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했는가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졸업 기준에 대한 혼선은 외환 위기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백서가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1997년 환란의 기억, 우린 그저 빨리 잊으려고만

명료하면서도 신랄하다. '외환 위기 조기 졸업'의 진짜 의미를 따져 묻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외환 위기 졸업'의 의미를 곱씹다보면, 우리가 과연 1997년 외환 위기를 졸업한 게 맞느냐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질문이다.

1997년의 더러운 경험을, 우리는 그저 빨리 잊고 싶을 뿐이었던 것 아닌가. 단지 몇 사람을 희생양 삼아서 모든 것을 덮어버리려 한 것 아닌가.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이 희생양이었다고 주장한다. 인용한 부분에 나오는 '단지 두 사람'은 저자와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가리킨다.

이 책의 문제는, 이처럼 정말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대목에서 오히려 김이 샌다는 점이다. 저자의 말은 옳다. 당시 우리 사회는 '단지 두 사람'을 욕하는 것으로 더러운 기억을 떨쳐 내려 했다. 그러나 저자의 바람대로 한국판 <누쿨 보고서>가 나왔다면, 그 '단지 두 사람'은 과연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을까. 한국판 <누쿨 보고서>가 의미 있는 기록이 되려면, 공정성이 핵심이다. 그러나 한국판 <누쿨 보고서>를 기다리는 저자의 글은 이미 공정성을 잃었다. 자신에게는 너무 관대하고, 남에겐 가혹하다.

저자가 공정한 기록의 가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이런 이중 잣대는 더욱 씁쓸하다.

반성인가, 아니면 반박인가

이 책의 본문은 "1997년 3월 5일 경제부총리 임명장을 받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19일 그가 경질될 때까지 그가 한 일은 모두 정당하거나 피치 못해서 한 것이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예컨대 자금난에 빠진 기아자동차를 제때 부도 처리하지 못한 점이 잘못이라면서도, 그는 그게 자기 탓이 아니라고 한다. 대통령이, 기업인이, 정치권과 언론이 잘못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임창렬 부총리 취임과 정권 교체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 남 탓이다. 억울한 심정이 절절이 묻어난다.

하지만 외환 위기의 결정적 원인으로 꼽히는 종합금융회사 문제, 즉 이들 회사가 낮은 이자로 단기자금을 들여와서 높은 이자로 장기 대출을 일삼는 탓에 생겨난 자금 순환 불일치에 대한 안일한 인식, 위기가 임박한 상황에서도 금융 개혁 등 거창한 의제에만 매달린 점, 오락가락한 외환 시장 대응 등은 보수, 진보 구분 없이 저자를 향해 쏟아내는 비판이다. 또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삼성그룹과 긴밀히 유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아무런 해명이 없다. 저자의 기록이 의미 있는 것이려면, 이런 비판을 인정하고 겸허히 반성하거나, 아니면 이를 제대로 반박하는 내용이 담겨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윤증현 등 "앞길이 창창한" 후배 관료들을 정치적 비난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따뜻한 마음이다. 후배 관료들이 고마워할 법하다.

'直言' 하는 후배에게 진짜 용기 주는 건 잘못 인정하는 선배

그러나 그가 진실로 챙겨야 할 후배 관료들, 나라의 장래를 위해 외로운 결단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을 위해 필요한 기록은 따로 있다. 남에게 들이댄 잣대와 마찬가지의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댄 정책 수장의 기록이다. 위기 앞에서 '직언(直言)'을 결심한 젊은 관료에게,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는 선배를 보는 것만큼 용기를 주는 것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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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우울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잘 나가는 금융인 남편 덕분에 돈 아쉬운 줄 모르고 살고 있다. 아이들도 학비가 비싼 훌륭한 사립학교에 다니면서 엘리트로 잘 자란다. 넓은 정원과 수영장까지 갖춘 안락한 저택, 여자가 손수 차린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는 남편과 아이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행복한 스위트홈을 꾸렸다고 자부하는 여자는, 자신이 왜 아프고 힘겨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의사들이나 심리학자들도 여자의 증상에 어떤 이름도 붙일 수 없었다.

1950~60년대 미국사회 중산층 주부들이 앓고 있었던 그 증상, 완벽하고 안락해 보이는 삶에 등장한, 이름도 모르고 이유도 알 수 없는 우울과 두통, 허무함. 여자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었기에 해결책도 구할 수 없었다. 베티 프리단은 명문 대학을 졸업한 동창생들을 인터뷰하면서 여자들의 우울이 말하고 있는 바를 알게 되었다. 아내와 어머니 역할을 신비화하고 오로지 이 역할로 여자의 정체성을 설명하려는 것, 즉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istique)'로 포장된 현모양처가 되느라 여자들은 오랫동안 앓아왔던 것이다.

50~6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나아졌을까? 남자들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고등교육을 받고 직장에서의 차별도 많이 해소된 지금, 여자들은 과연 '여성의 신비'에서 벗어났을까? 레슬리 베네츠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뉴욕타임스> 기자였던 베네츠는 수많은 여성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1950년대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주목한다.


▲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레슬리 베네츠 지음, 고현숙 옮김, 웅진윙스 펴냄). ⓒ웅진윙스
1950년대는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을 해놓고, 산뜻한 화장에 주름장식 앞치마를 두른 채 차가운 마티니 한 잔을 들고 문 앞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현모양처가 미덕인 시대"였다. 젊은 여성들은 스위트홈을 꿈꾸며 하버드 대학 로스쿨 졸업이라는 학력과 변호사라는 커리어를 뒤로 한 채, 1950년대의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전업주부의 삶을 선택한다. 자신이 손수 요리한 음식을 가장 좋아한다는 가족을 위해서 말이다.

이는 미국 사회에 만연한 신전통주의와 관련 있다. 사회는 여성들이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는데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데 미온적이고, 언론은 여자가 가정을 '지키면서' 갖게 되는 여러 장점을 강조한다. 아이의 발육이 '정상적'이라는 그런 류의. 덕분에 2005년의 전업주부는 10년 전보다 120만 명이나 늘어났고, 집안일에 12시간 이상을 보내는 여성들의 수가 전후 베이비붐 세대보다 1970~80년대에 태어난 X세대에서 2배나 많다. 여성들은 대학 졸업장을 직업 경력을 갖는데 쓰지 않고, 강도 높은 육아 활동과 집안일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데 쓴다. 모든 에너지를 가정에 쏟아 자녀를 최고로 키우기 위해 '사커맘'(축구장을 따라다니면서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는 중산층 주부)이 되는 여성들을 두고, '신종 아내'라는 말까지 생겼다.

'신종 아내'들이 1950년대 현모양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자발적인 '선택'으로서 전업주부의 삶을 설명한다는 점이다. 여성들은 가정을 지키는 사람으로서의 의무감을, '강요'나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말한다. 보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이 싫어서, 혹은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서비스를 가족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다는 이유로 여자들은 직장을 버리고 가정에 안주한다. 그런 선택에 후회 없다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가정으로 '귀환'한 여성들에게 보수 언론은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가정에 안주하는 것을 선택했고, 후회란 없다는데 다른 말이 무에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스위트홈의 환상은 깨지게 마련이고 남편에게 귀속시킨 삶을 선택한 대가는 언젠가 되돌려 받게 되어 있다. 세상 누구보다 활기차 보이는 전업주부들은 그 완벽한 모습 뒤에 좌절과 환멸, 걱정, 분노와 두려움이 범벅된, 이름붙일 수 없는 감정들에 휩싸이고 있다.

아이와 함께 있어주어야 좋은 엄마라 생각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했지만, 끝없는 집안일과 존중받지 못한다는 자존감의 상처를 안고 산다.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전업주부로의 선택을 지지해주었던 남편은,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자 노골적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아내를 구박한다. 영원히 잘 나갈 것 같았던 남편이 실직한 후 겪게 된 경제적 어려움은 직장을 그만둔 것을 후회하도록 만든다.

이는 여성들이 '선택'이라는 말 속에 숨어있는 함정을 직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베네츠는 말한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었음에도, 여성들에게 결혼과 함께 퇴직을 강권하는 기업 문화는 여전하고, 여성들 스스로도 노동 시장에서 부딪치는 장애를 극복해 낼 만큼 투철하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전업주부로의 '선택'은, 자유로운 선택권을 지닌 사회적 개인의 자발적 표현이 아니라, 여성을 아내나 어머니로 국한시키려는 사회적 분위기와, 자신의 운명을 남편에게 귀속시키는 것의 위험성을 알지 못하는 여성들의 무지함 때문이다. 말하자면 여성을 노동 시장 밖으로 몰아내려는 체제와 그 체제에 도전하지 못하는 여성 개인의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여성들이 이런 '선택'을 하는 이유에 대해 베네츠는 "전업주부가 되는 과정에서 어떤 선택이 가족에게 이로운 일이며 자신에게 최선인지 대부분의 여성이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다"면서 이는 "사회가 아내와 어머니라는 이름을 내세워 자신의 이익보다는 가족의 입장에서 모든 문제를 생각하도록 여성을 부추긴 탓"이라 설명한다. 전업주부의 삶에 안주한 여성들은, 영원히 남편이 자신을 먹여 살릴 것이라는 환상에 중독되어, 남편과 아내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 책의 원제목인 '여자들의 오류(The Feminie Mistake)'이다. 수백만 달러를 벌고 있는 남편이 어느 날 아침 "사랑이 식었다"며 이혼을 선언하면서 빈털터리로 쫓겨나고, 가정의 재정 문제는 남편이 알아서 할 것이라 밀쳐두었다가 남편이 파산한 걸 뒤늦게야 알고는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아내들이 수도 없이 많건만, 여전히 여성들은 그런 일이 자기 삶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며 자신의 생계를 남편의 통제 하에 둔다. 이런 여성의 삶을, 숙주의 운명과 함께 하는 '기생충'의 삶이라고 저자는 주저 없이 말한다.

그렇다면 자기 삶의 통제권을 스스로 갖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베네츠는 몇 가지 도움말을 들려주는데 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경제적 위험이 자신만은 피해갈 거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계획을 세울 것, 둘째, 경제적 자립을 통해 인생의 주인이 될 것. 셋째, 일을 중단했다면 다시 일을 찾기 위해 전략을 세우고 움직일 것. 넷째,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최고가 아니라 최선의 방법을 찾으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꾸려나갈 것.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하건 간에 엄마나 아내라는 역할이 아닌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나갈 것.

이 책의 한국 제목이기도 한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확고하게 답하고 있다. 여자에게 일은 생존이며 자립이고 자존감이며, 잠재력을 성취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고 사회에 공헌하는 길이다. 일하는 여성이 결혼 생활을 더 평등하게 만들어나가며 행복지수도 높고, 일하는 엄마를 둔 자녀들이 전업주부 엄마를 둔 아이들보다 사회성이 일찍 길러진다는 등, 저자가 책의 구석구석에서 강조하는 효과는 사실 부수적인 것이다. 일은 그 자체가 여성에게 사회적 인간으로 성숙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부여해주며,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그 기회를 놓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베네츠의 거침없는 충고는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디려는 젊은 여성들이나, 가정과 직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여성이 행복해지기 위해 가정과 직장 중 하나의 영역에만 머무를 필요는 없으며,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능력 있는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아이는 자라고 육아는 10년이면 족하니, 그 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버티고 견디면 된다.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나서 얼마나 힘든 상황에 직면하는지를 알고 하는 소리이기에 더욱 설득력 있다. 육아를 위해 직장을 포기한 여성들은 육아 이후의 기나긴 삶 동안, 엄마의 손길이 그다지 필요치 않을 만큼 성장한 아이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 엄마 역할을 멈추게 해줄 다른 역할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직장 생활에서 어려움에 부딪힐 때 구질구질한 삶을 구원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로 결혼을 감행한 여성들은, 스위트홈에 대한 질긴 환상을 부여안으며 스스로의 삶에 위안을 얻을 것이다. 이렇듯 무지와 무책임과 근거 없는 환상이 삶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여성들은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심정으로 자신의 생활을 세세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이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여성이 '여성의 신비'에 도전하고 여성을 둘러싼 편견과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일이, 온전히 여성 개인만의 책임으로 국한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대학 교육까지 받고, 삶의 통제권을 자신이 쥐고 있으며, 경제적 자립을 실현하는 '잘난 여성'이 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베네츠 자신이 잘 나가는 기자인데다 가정과 양육을 성공적으로 잘 해낸 인물이고, 인터뷰하는 많은 여성들이 중산층 이상의 삶을 누리는 여성들이기에, 자칫 '일을 놓지 마라'는 저자의 조언은, 자아의 성취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평생 일해야 하는 여성들에게는 뻘쭘한 이야기일 수 있다.

게다가 아무리 기를 쓰고 전략을 세워도 경제적 자립을 성취하기에 너무나 열악한 조건에 처한 여성들도 많다. 사실 이 여성들에게 '일을 통해 독립을 성취하라'는 조언보다는, 그 열악한 조건을 개선하는 싸움에 함께 하는 것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이건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또 한 가지, 이 책에 등장하는 '기생충의 삶'과 '찌르레기의 삶'의 대립 양상은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지불 되지 않는 가사 노동을 수행하는 전업주부는 경제적으로 가장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뜻에서 기생충으로 비유되고, 아이를 자기 손으로 기르지 않고 남의 손에 맡긴다는 의미에서 직장 여성들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그 둥지의 새가 키우도록 하는 찌르레기와 비유된다.

미국에서 전업주부와 직장 여성 간의 대립 양상과 찬반 논란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서로의 삶을 비하하여 빗대는 말로 쓰는 문구들이다. 직장 여성은 모든 것을 챙겨주는 전업 아내를 둔 직장 남성과 경쟁해야 하며, 이는 가장 이데올로기와 맞물리면서 직장 여성의 노동 수행 과정을 힘들게 한다.

전업주부의 입장에서 직장 여성은 가사 노동에서 벗어나 있으며 경제적 풍족함을 누리면서 남편의 직업을 위협하는 존재로 와 닿는다. 그러나 전업주부와 직장 여성의 이 같은 대립은 남성 가장 이데올로기를 부각시켜 여성 내부의 차이를 조장하고 대립하게 하는 사회와 언론이 만들어놓은 대립각이지, 서로가 적대적인 이해관계를 갖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직업 여성이 남성의 보완물이 아니라 완전한 노동력으로 인정받으면서 노동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면, 모든 여성들의 노동은 평가 절하될 것이며, 언제든 노동 시장에서 여성을 퇴출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업주부의 역할을 수행하는 여성의 노동 또한 존중받지 못한다. 가사노동을 돈으로 환산하여 그 가치를 평가하려는 시도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여성 노동의 증가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어쨌든 이 책을 집필한 베네츠의 목적은 직장과 가정의 조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을 격려하고, 남편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여성들을 각성시키기 위해서다. 이는 누군가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사회로 치닫고 있는 배경이 깔려 있다. 베네츠의 말대로 이제 부부 둘이 벌어도 번듯한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고, 세계를 휩쓴 경제 위기는 하루아침에 수많은 사람을 실직자로 만든다.

"여자라고 해서 육아를 이유로 그렇게 오랜 시간 당당하게 휴직할 권리는 없다"는 책 속 인물의 이야기처럼, 육아와 가사에 집중하는 시기에 자본주의적 노동이 면제되었던 여자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노동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 또한 마찬가지다. 남자의 경제력으로 평생 가계를 꾸려가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싱글 남성들의 80%는 돈 버는 아내를 원하고, 기혼 남성들 대부분은 가장 훌륭한 내조는 맞벌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여성들이 사랑과 결혼 속에서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질구질한 직장 생활에서 여자를 구원해 주고, 위험한 사회로부터 안전막이 되어줄 결혼이라는 환상이 깨어진 지 오래인데, 정작 여자들만 그것을 모르고 있다. 여성들은 안전을 찾아 결혼을 하지만, 그 안에서도 독립성의 온전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하는 무한 책임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냉혹함을 느끼고 사는 이라면, 일이 여성에게 생존이며 자립이라는 저자의 말을 더욱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와 어머니 역할을 신비화하는 '여성의 신비'에서 빨리 벗어날수록, 남편이 영원히 나를 책임질 것이라는 '여성의 실수'를 범하지 않을수록, 여자들은 무한 책임의 시대적 조류에 표류하지 않고 유영할 자유를 얻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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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치의 계절이다.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같은 해 4월 12일에는 제19대 총선이 치러진다. 1987년 이후 20년 만에 총선, 대선이 같은 해에 치러지는 2012년은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서 한국 사회가 시장 중심의 미국의 길을 그대로 따를지, 아니면 유럽의 길처럼 다른 방향을 모색할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난 6·2 지방 선거에서 미국식의 선별 복지를 주장하는 쪽(여당)과 유럽식의 보편 복지를 주장하는 쪽(야당)이 '무상 급식'을 놓고 겨뤘던 것은 2012년 선거의 예고편이었다.

현재까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2012년 대선의 유일한 '상수(常數)'다. 연초에 쏟아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선 주자 중에서 박 전 대표는 부동의 1위다. 박 전 대표의 텃밭인 영남은 물론이고 수도권, 호남에서도 지지율 1위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2013년부터는 '박근혜의 대한민국'에서 살 가능성이 크다. (보수적인 재외 동포의 표도 한 몫 할 것이다.)

이런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열광을 어떻게 볼 것인가? 최근에 나온 <박근혜 현상>(김종욱·김헌태·안병진·이철희·정한울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은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이다. 대체로 박 전 대표의 맞은편에 서 있는 필자들은 '박근혜'라는 창으로 한국 사회, 한국 정치의 현실을 살핀다.


▲ <박근혜 현상>(김종욱·김헌태·이철희·정한울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위즈덤하우스
'프레시안 books'는 <박근혜 현상>을 염두에 두고 색다른 자리를 마련했다. '정치인 박근혜'를 오랫동안 주목해온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 한국 사회에서 복지 국가를 건설하는 실천에 앞장서온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학교 교수)가 <박근혜 현상>의 저자인 이철희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났다.

박근혜 파워는 거품인가? 지금의 지지율은 최고 정점인가, 상승 시점인가? 박근혜 매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박근혜의 복지는 양날의 칼인가? 이명박과 박근혜는 계속 한 배를 탈 것인가? 야권에서 박근혜 대항마가 나올까? 박근혜 대항마가 나오기 위해서 야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대항마는 박근혜를 이길 수 있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놓고서 세 사람은 때로는 언성을 높이며 격론을 벌였다. 마침 <박근혜 현상>의 저자인 이철희 부위원장이 민주당의 브레인이라서 토론이 더욱더 흥미진진했다. 다음은 지난 1월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옥인동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좌담의 주요 내용이다. 사회는 전홍기혜 정치팀장(편집부국장)이 맡았다.

'프레시안 books'는 앞으로도 책을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시도에 맞춰서 이런 토론자리를 적극적으로 마련할 예정이다.


▲ 왼쪽부터 이철희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박근혜 효과> 저자), 전홍기혜 프레시안 정치팀장(편집부국장),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프레시안 기획위원),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우리는 박근혜를 모른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연초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 주자 중에서 부동의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중이다.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이런 열광은 실체가 있는 것인가? 또 박 전 대표에 대한 열광은 어떤 시대정신을 반영하는가? 이런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번에 나온 <박근혜 현상>은 이런 의문에 나름의 답을 시도했다.

이철희 부위원장은 <박근혜 현상>의 저자로 참여했다. 이 책을 기획하고 집필한 이유는?

이철희 : 방금 얘기한 대로 박근혜 전 대표는 오는 2012년 대선 게임에서 부동의 '상수(常數)'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현재 거론되는 대선 주자 중에서 압도적인 지지율 1위를 차지하게 된 이유를 제대로 짚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3김(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이후에 지도자가 만들어지는 새로운 메커니즘도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서 열광(보수) 혹은 폄하(진보)하는 최근의 분위기를 깨고 싶기도 했다. 특히 박 전 대표와 겨뤄야 하는 진보·개혁 세력에게 너무 겁먹지 말자 이런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박근혜 현상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면, 분명히 진보·개혁 세력의 대응 방안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성국 : 방금 이철희 부위원장이 박근혜 현상에 주눅 들지 말자, 지레 포기하지 말자 이렇게 얘기했는데…. 그러나 연초의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진보·개혁 세력이 겁을 먹지 않을 수 없다.

거의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표는 30%의 지지율을 얻었다. 반면에 여야의 주요 대선 주자는 전부 한 자리 숫자다. 박 전 대표가 평균 네 배 정도 앞섰다. 1대 1 가상 대결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박 전 대표는 상대방에 비해서 평균 세 배 정도 앞섰다. 유시민 전 의원도, 손학규 민주당 대표도 박 전 대표와는 게임이 안 된다.

이런 상황을 놓고 진보·개혁 세력은 실제로 야권 후보들이 본격적으로 레이스를 시작하고 또 후보 단일화를 통해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 1대 1로 선거를 치르는 상황이 되면, 전통적인 야권 지지층이 결집하고 여기에 이명박 정부 심판론이 얹어지면서 지난 6·2 지방 선거와 같은 야권 승리의 재연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과연 그런가? 선거는 누구와 누가 대결하느냐 즉 후보 구도가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이것을 염두에 두면, 올 초 1대 1 가상 대결 여론조사 결과는 굉장히 비관적이다.


▲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프레시안 기획위원). ⓒ프레시안(최형락)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진보·개혁 세력은 박근혜 전 대표는 더 이상 표를 모아올 만한 잠재력이 없는 최고점에 있는 반면에 야권 후보는 앞으로 상당히 표를 결집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과연 그런가? 지금 박 전 대표가 정점에 서 있는가? 아니다. 박 전 대표는 더 득표할 확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추가적인 지지율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우선 작년 초와 작년 하반기가 다르다. 박근혜 전 대표는 2010년 초에 20% 중반대의 지지율을 기록하다가, 하반기에 20% 후반에서 30% 초반대로 지지율이 올랐다. 꾸준한 상승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야권 후보 역시 표의 확산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고정이고, 야권 후보만 잘 쫓아가면 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얘기하자. 진보·개혁 세력 중 상당수는 여전히 '박근혜 불가론'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이런 식의 프레임은 정말로 박근혜 전 대표를 잘못 보고 있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정치 경력이 40년 정도 되는 노회한 정치인으로 보는 것이 맞다. 잘 알다시피, 박 전 대표는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피살되고 나서 20대 초반에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5년 넘게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20대 초반부터 권력의 생리를 정확하게 파악할 기회를 가졌다. 물론 전두환, 노태우 정부 때 10년 가까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연금당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투옥당한 시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정치인에게 그런 시기야말로 폭발적 정치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그 10년 동안 배신, 좌절을 감내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대중 앞에 정치인으로 나섰다. 이런 전 과정을 살피면, 박 전 대표는 통상 40년 가까이 정치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을 겪은 정치인이다. 그는 정치를 하는 과정에서 어떤 위기가 올 수 있고, 그것을 극복하려면 어떤 노하우가 필요한지 나름대로 정리를 하고 있는 정치인이다.

확실히 말하건대, 박근혜 전 대표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진보·개혁 세력은 박 전 대표를 잘 모른다.

박근혜, 시대정신을 포착하다

이상이 : 고성국 박사의 지적에 상당히 공감한다. 그런 맥락에서 <박근혜 현상> 책 제목을 잘 달았다. 박근혜 '현상'이라고 이름을 붙이려면, 박 전 대표를 둘러싼 상황이 현재 한국 사회의 흐름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박 전 대표를 둘러싼 상황은 달라진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박근혜 전 대표의 아버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두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우선 그는 한국의 경제 기적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모든 국민들이 그 점에 대해서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그는 민주주의를 압살한 독재자다. 독재를 하면서 노동자, 농민, 서민의 고혈을 빨았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런 아버지의 좋은 유산과 나쁜 유산을 다 물려받았다. 박 전 대표가 처음 대선에 출마했을 때는 정치인으로서 희망이 별로 없었다. 그 때만 하더라도, 독재자의 딸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당내 경선에서 패배하고 또 이명박 대통령과 갈등하는 등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박 전 대표는 굉장히 달라진 면모를 보이고 있다. 최근 복지 국가를 공세적으로 표방한 것은 한 예이고. 또 요즘엔 수첩도 안 들고 다니고. (웃음)


▲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 현상과 관련해서는 한국 사회의 중요한 변화도 언급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보통사람의 삶을 둘러싼 정치·경제·사회 조건이 어떤가? 지난 10년간 양극화가 심화되는 등 보통사람들이 삶이 더욱더 불안해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성장과 복지에 대한 열망이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전 대표는 '성장'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꿈은 성장을 통해서 국민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것"이라며 그것을 '복지'와 연결시키는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앞뒤가 딱 맞는 기막히도록 치밀하게 기획된 행보를 보여준 것이다.

이런 이미지 만들기를 통해서 박근혜 전 대표는 국민에게 성장도 잘해 줄 것 같고, 복지도 잘해 줄 것 같은 그런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박 전 대표의 보수적인 온정주의가 불안한 삶에 지친 국민들에게 '가정을 책임지는 따뜻한 가부장'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실제로 여론조사를 해보면, 복지 정책을 제일 잘 추진할 것 같은 지도자도 박 전 대표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실제로 보편적 복지를 추진할 의사는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박 전 대표가 시민의 사회권으로 복지 제도가 구비된 복지 국가를 자신의 비전으로 내세울지, 아니면 단순히 이미지 만들기의 수단으로 복지를 떠드는 수준에 그칠지는 앞으로 더 두고 봐야겠지만.

박근혜 이미지는 진화 중

고성국 : 박근혜 전 대표의 이미지가 계속 진화 중이다. 사실 이미지만 놓고 보면 박 전 대표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이미지가 강하다.

육 여사가 가졌던 사회적 모성, 이런 이미지가 박 전 대표에게 많이 남아 있다. 실제로 육 여사가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할 때 진정성이 없었던 게 아니고.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육 여사를 좋게 추억하는 것이다. 이렇게 박 전 대표에게 육 여사의 이미지가 투영되면 될수록 복지 국가를 둘러싼 논쟁에서 그는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할 게 있다. 흔히 (박근혜 전 대표를 폄하할 때) 내용 없이 이미지만 있는 정치인이라고 부정적으로 말하곤 하지만, 이미지라도 챙기는 게 어디냐? 더구나 이미지가 힘을 가지려면 진정성 있는 행동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박 전 대표는 5년 6개월의 퍼스트레이디를 하면서 아버지의 그늘을 어루만지는 육영수 여사의 역할을 실제로 했다.

즉, 박근혜 전 대표가 60~70대 노인의 손을 어루만지는 것을 단순히 이미지 정치라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진정성 없는 조작된 이미지라고 폄하할 때, 그 노인들은 또 국민들은 육영수 여사의 역할을 대신했던 박 전 대표를 기억하는 것이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박 전 대표는 만만한 정치인이 아니다.

박근혜 파워, 거품인가?


▲ 이철희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이철희 : <박근혜 효과>의 저자 중 한 사람으로서 솔직히 말하자면, 박근혜 전 대표의 최근의 높은 지지율에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35~40% 정도 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면, 박 전 대표의 35% 언저리의 지지율은 대단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한나라당이든 박근혜 전 대표든 기본적으로 영남과 보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우선 인구 구성에서 영남이 차지하는 비중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수도권 거주자를 제외한 나머지 인구의 절반이 영남에 산다. 우선 이런 (경상남도, 경상북도 가릴 것 없이) 영남 전부를 박 전 대표가 가져가는 것이다.

여기에 저소득층, 저학력층, 고연령층으로 대표되는 보수층이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층이다. 이들은 지난 10년간의 양극화 등으로 벼랑 끝에 몰린 이들로서 박정희식 고성장에 대한 아주 강한 향수를 가진 이들이다. 이렇게 영남, 보수가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데다, 보수 언론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중계하는 상황에서 35% 지지율은 결코 높은 게 아니다.

물론 지금까지 나타난 박근혜 전 대표의 존재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이것은 한국 사회의 여론을 결정하는 역관계를 대변하는 것일 뿐, 박 전 대표 자신의 카리스마와 같은 리더십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지도자로서 박 전 대표는 여전히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 상태다.

여론조사에 현혹되어서 이런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박근혜 현상의 본질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 더구나 앞으로 박근혜 전 대표가 계속 승승장구할지도 미지수다. 다시 얘기가 나오겠지만, 지금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내세우는 복지는 그에게 득이 되기보다는 덫이 될 가능성이 크다.

프레시안 : 진짜 인색한 평가인데…. 고성국 박사가 이견이 있을 듯하다.

고성국 : 당연히 여론조사는 특정 시점의 한 단면일 뿐이다. 그러나 그 단면이 보여주는 것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은 전국 평균 35% 정도이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50% 정도, 서울·수도권에서는 30% 정도다. 그렇다면 서울·수도권의 30%를 높은 걸로 봐야 하는가, 낮은 걸로 봐야 하는가?

대구·경북에 기반을 갖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가 서울·수도권에서 30%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높은 것이다. 사실상 전국적으로 고르게 지지를 받는 것이다. 제일 약점으로 보이는 것이 20대 지지율 25%이다. 이것도 낮은 것인가? 평균에 비해서 10% 낮지만 대선 레이스가 시작하는 시점에서 20대의 25%의 지지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봐야 한다.

지역의 경우에는 충청권의 지지율을 잘 살펴야 한다. 영남을 빼더라도 박근혜 전 대표는 충청권에서 상당한 지분이 있다. 육영수 여사가 충청북도 옥천 출신인 데다가, 세종시를 둘러싼 논란 등에서 박 전 대표가 취한 전략적 행보 때문에 충청권의 표의 상당수가 박 전 대표를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야권이 박근혜 전 대표를 선거에서 이기려면 영남에서 어느 정도 표를 가져와야 하고, 충청권에서는 최소한 절반은 가져와야 하고, 수도권에서는 유의미하게 압도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 되어야 승부가 되는데, 야권이 과연 대구·경북, 부산·경남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만큼 표를 가져올 수 있을까?


ⓒ프레시안(최형락)
또 박근혜 전 대표가 군림하는 상황에서 과연 여권에서 지난 1997년 대선 때처럼 '이인제' 같은 변수가 나타날 수 있을까? 가능성은 제로(0)다. 이미 충청권은 박 전 대표가 절반 이상은 선점한 상황이다. 당선 가능성이 있는 충청권 출신 인사가 야권 대선 후보가 되지 않는 한 야권 후보가 이 지역에서 박 전 대표를 이기기는 쉽지 않다.

결국 수도권이 야권의 승부처인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미 수도권의 3분의 1을 박근혜 전 대표가 가져간 상황이다. 실전에서 과연 야권 후보가 수도권에서 20% 정도의 격차로 박 전 대표를 압도해서 영남, 충청에서 잃은 표를 상쇄할 수 있을까?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쉽지 않다.

이런 객관적인 여론 지형을 살펴보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박근혜 전 대표가 갖는 표의 확산성이다. 이철희 부위원장은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일시적인 것일 수 있다는 뉘앙스의 지적을 했지만, 그렇지 않다.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자의 충성도는 유시민 전 의원 지지자가 보여주는 것만큼이나 강하다.

더구나 지난번 총선에서 보았듯이 박 전 대표의 지지자는 이방호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지방분권촉진위원회 위원장), 이재오 의원(특임장관)을 떨어뜨릴 정도로 행동력을 가진 이들이다. 그리고 여러 차례 선거에서 봐왔듯이, 대세론이 유지되면 표는 결집하는 게 일반적이다. 박근혜 대세론이 강화될수록 표의 확산성도 강화되는 것이다.

이미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세론이 형성이 되었고, 박 전 대표는 이제 그 흐름을 타면 되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물론이고 다른 어떤 후보도 자신의 대세론을 일부러 망가뜨리는 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이런 박 전 대표의 대세론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변수가 있을까? 물론 있기는 하다.

한 가지는 한나라당 분당을 가져올 만한 보수 세력의 심각한 분열이다. 다른 한 가지는 야권에서 지금부터 진보·개혁 세력의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모으며 2002년 경선 때의 노풍(盧風)과 같은 강력한 바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다 가능성은 낮다.

이철희 : 박근혜 전 대표가 강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대세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역시 여러 차례 확인해 왔듯이 여론조사의 지지율은 실전에서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 지난 6·2 지방 선거에서 확인했듯이, 여론조사만 놓고 보면 충청권에서 야권이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는데 결국에는 뒤집어졌다. 숫자가 보여주지 못하는 흐름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우선 전국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노골적인 반감을 표시하는 약 45%의 '반(反) MB' 블록이 있다.

프레시안 : 그런데 그 '반 MB' 블록 안에 꼭 '반 한나라당', '반 보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지지자 중에도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반감을 가지는 이들이 상당수 있으니까.


ⓒ프레시안(최형락)
이철희 : 그렇다. 하지만 비율을 놓고 보면 반 한나라당, 반 보수가 압도적으로 많을 테고, 막상 여권 대 야권이 1대 1로 양자 대결하는 상황이 오면 그들 대부분이 야권 후보에게 표를 모아줄 것이다. 아직 2년 가까이 선거가 남은 상황에서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일희일비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고성국 박사의 분석과는 달리, 박근혜 전 대표는 수도권에서 여전히 안착이 안 되어 있다. 수도권 여론조사의 흐름을 보면,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하면서 수도권의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에서 상당히 이탈했다. 이것을 야권 지지율이 메웠다.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박근혜 전 대표는 호남과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도 대선 주자 중에서 지지율 1위다. 그가 반 MB 행보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35%는 그리 높은 게 아니다. 그가 아니라 카리스마가 있는 다른 이였다면 40%를 일찌감치 돌파했을 것이다.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결코 견고하지 않다.

이상이 :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 35%의 의미를 고성국 박사는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이철희 부위원장은 인색하게 보는데…. 나는 그 중간쯤의 입장이다. 우선 얘기를 들으면서, 한 가지 기억해야할 사실이 있다. 이철희 부위원장의 지적대로라면 여권 대 야권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지금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야권 표가 상당 부분 이탈할 것이다.

그렇다면 똑같은 논리로 지금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층의 표도 박 전 대표에게 집중될 것이다. 지금 김문수 경기도지사, 오세훈 서울시장, 정몽준 의원 등을 지지하는 표도 야권 후보보다는 박 전 대표로 올 가능성이 크니까. 그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지금 박 전 대표의 높은 지지율을 인색하게 평가할 일은 아니다.

다만, 지금보다 더 확장성이 있을 것인가? 나는 회의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진 자들이 한나라당의 지지 기반이다. 이념적으로 보수 성향이고, 소득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시장주의자들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표를 확장하려면 이들과는 다른 계층, 서민·중산층의 표를 가져와야 한다. 즉 이념적으로 중도 진보 성향의 표를 잠식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내세운 게 복지 전략이다. 그러나 이게 바로 박 전 대표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박 전 대표는 복지 전략으로 서민·중산층의 눈길을 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박 전 대표의 전통적인 지지 기반의 핵심인 자산 계층의 이해에 반한다.

만약 박근혜 전 대표가 전통적인 지지 기반의 이해에 반하면서까지 복지를 강화한다면 서민·중산층의 표는 더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전통적인 지지 기반이 이반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한나라당이 심각한 내홍을 겪거나, 당이 쪼개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오세훈 시장, 김문수 지사가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강경 보수 행보를 걷는 것이고.

두 번째 제동 요인은 박근혜 전 대표에게 항상 따라붙는 '독재자의 딸'이라는 이미지다. 많은 국민이 이명박 대통령의 권위적, 일방적 통치 행태에 염증을 느끼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재자의 딸이라는 이미지가 선거 때 불거지면 상당수 국민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제동 요인은 남북 대치에서 비롯된 한반도의 안보 불안이다.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여성 군 통수권자에 대한 불안이 없을 리 없다. 선거에서 이런 문제가 부각된다면 박 전 대표에게 플러스가 되기보다는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은 아무래도 표의 확산성을 막는 장애물이 아닐까?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 매력의 정체는?

프레시안 : 자연스럽게 박근혜 전 대표가 지역적, 계층적으로 얼마나 확장성을 가질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 부분을 좀 더 얘기해 보자.

고성국 : 좀 다른 각도에서 확장성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박근혜 전 대표를 볼 때 그의 '매력'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인물이 중심이 되는 대통령 선거에서는 개인의 매력이 계층적 한계,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는 큰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우선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박근혜는 왜 정치를 하는가?'

박근혜 전 대표가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그 이유는 아버지의 명예 회복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달라졌는가? 아버지의 명예 회복은 뒷전이고, 좋은 나라 만들기와 같은 것으로 바뀌었는가? 아니다. 여전히 박 전 대표는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의 그 이유를 여전히 염두에 두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미 30년 전에 죽은 사람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대통령을 한다? 이건 뭐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박근혜 전 대표는 아버지를 자기 식으로 재해석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원했던 것은 복지 국가다' 이런 유의 얘기를 하는 것이다. 듣기에 따라서 생뚱한 말이지만, 박 전 대표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얘기이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지점이 발생한다. 박근혜 전 대표는 아버지의 틀에 갇혀 있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아주 자유로울 수 있다. 왜냐하면, 박 전 대표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자신의 생각을 '박정희'라는 프레임 속에서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건 내 생각이 아니야' 이렇게 토를 달 수 없으니까.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박근혜 전 대표는 여권의 어느 후보보다도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 박 전 대표가 김문수 지사, 오세훈 시장과 다르게 거침 없이 복지를 입에 담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유연함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야권의 어떤 후보도 갖지 못한 박 전 대표만의 매력이자 장점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매력을 상징하는 또 다른 열쇳말은 신의다. 박 전 대표는 아버지에게 조아렸던 이들이 아버지가 죽고 나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지켜보았다. 누가 어떻게 아버지를 매도하고, 외면하고, 배신했는지…. 20대 중반에 그런 배신의 모습을 보면서 박 전 대표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신의가 무엇인지.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싸고 이명박 대통령, 정몽준 의원 등과 대립할 때 계속해서 약속 즉 신의를 강조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그는 보수, 진보가 문제가 아니라 신의 혹은 신뢰의 프레임으로 그 문제를 본 것이다. 보수, 진보와 같은 이념적 프레임으로 보면 신뢰 프레임을 가진 박 전 대표는 아주 이상한 정치인이다. 종잡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바로 이런 신뢰 프레임이 오히려 국민에게는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다. 바로 박근혜 전 대표만이 갖는 매력이기 때문이다. 사실 바로 이런 자기만의 매력이야말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정치인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고 지금 여권, 야권의 대선 후보에게 결핍된 것이다.

당장 김대중, 노무현 등은 이름 석 자만으로는 주먹을 불끈 쥐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매력이 있었지 않나? 이제 처음으로 전국 선거를 치르게 되는 정치인 박근혜도 바로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적, 계층적 확산을 넘어서는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 복지, 양날의 칼?

이상이 : 나 역시 박근혜 전 대표의 매력을 아주 높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과연 다음 대선에서 그렇게 큰 힘을 보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지난 10년을 거치면서 한국 사람은 강퍅한 삶 속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는 데 익숙해졌다. 내 삶의 개선에 무슨 도움을 주는가? 지난 6·2 지방 선거 결과가 그것을 보여주었고.

2012년 대선에서는 그런 흐름이 훨씬 더 강화될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표가 그런 사람들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을까? 아까 얘기했듯이, 한나라당의 계급적 성격을 감안하면 박 전 대표가 적극적으로 서민·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내세울 가능성은 거의 없다. 보편적 복지를 말하지 못하고 선별적 복지만 언급하는 수준에서는 표의 확장성은 기대할 수 없다.

고성국 : 그렇게 볼 건 아니다. 대통령 선거 때 후보는 구체적인 정책이 아니라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일 비전을 제시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후보에게 구체적인 정책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권력을 잡고 나서야 비로소 정치적인 역학 관계, 내외적인 경제 상황 등을 염두에 두고 비전에 부합하는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도록 노력할 뿐이다.

과거의 선거를 보면, 항상 굵직한 한두 개의 이슈를 중심으로 승부가 났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전 대표는 이미 맞춤형 복지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야권 후보가 그것에 상응하는 보편적 복지의 철학이 담긴 비전을 내놓으면, 대선에서는 그 두 가지를 놓고 복지 논쟁이 벌어질 뿐이다.

더구나 많은 이들은 표를 던질 때, 자신에게 매력을 호소하는 후보를 정해놓고서 정책에 관심을 가진다. 보편적 복지, 선별적 복지 중에서 후보가 어느 쪽을 주장하는지를 놓고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시민은 소수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앞에서 얘기한 박근혜 전 대표의 매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확장성의 근거다.

박근혜, 속은 텅 비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철희 : 물론 박근혜 전 대표가 개인의 매력은 충분하다. 스토리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통령이 된 사람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과 비교했을 때 그 스토리가 특별히 더 감동적인가? 지금 경쟁하는 대권 주자 중에서는 돋보이지만 과거의 대통령과 비교해보면 별 게 없다. 특히 서민이 좋아할 만한 스토리는 아니다. 잘 봐줘야 궁정 스토리 아닌가?

박근혜 전 대표는 세종시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독단적이라는 이미지를 주었다. 아까 이상이 교수도 지적했듯이, 지금 국민은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독단, 독선에 염증이 난 상황이다. 그런데 박 전 대표도 그런 면에서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 확인이 되었다.

더구나 박근혜 전 대표가 보수 언론의 선전 탓에 '대통령에게 NO라고 말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지만, 과연 그런가? 전 국민의 70%가 반대하는 4대강을 뒤집는 사업에 박 전 대표가 한 번이라도 반기를 든 적이 있었던가? 침묵하는 사안이 무수히 많다. 한국의 기형적인 언론 지형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박 전 대표가 이처럼 부각되지 못했을 것이다.

박근혜의 매력이 큰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고 보는 더 큰 이유는 시대정신의 결여다. 2002년 노무현, 2007년 이명박은 시대정신을 포착했고 그 흐름을 타고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과연 박근혜 전 대표는 2012년의 시대정신을 구현할 만한 리더십이 있는가? 혹시 한 정치인에 대한 팬덤 현상에 불과한데, 우리가 너무 많은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성국 : 오늘 계속 부딪히는데…. (웃음) 박근혜 전 대표가 모든 문제에 대해서 말을 할 이유가 없다. 사실 얘기를 안 하는 게 박 전 대표 입장에서는 제일 좋은 선거 전략이니까.

이철희 : 무지의 표출이다. (웃음)

고성국 : 실제로 박근혜 전 대표가 어떤 사안에 무지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다른 문제다. 지지율 1위로 앞서가는 후보가 왜 말을 많이 해서 쟁점을 만들겠는가? 앞서가는 후보는 쟁점을 최소화하는 게 가장 똑똑한 대응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여야 간 후보 토론회가 열리면 분명히 야권에서 대북 문제를 주제로 박 전 대표를 공격할 것이다.

전쟁 어쩌고저쩌고, 그런 질문이 나왔을 때, 내가 박 전 대표라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만나봐서 아는데….' 공격하는 야당 입장에서는 박 전 대표가 대북 정책에 비전도 없고, 대안도 없고, 답답한 후보겠지만 TV를 보는 국민은 그의 저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아, 김정일과 독대한 유일한 정치인이 박근혜지!'

이철희 : 고성국 박사가 사실상 박근혜 전 대표에게 공개 자문을 해준다. (웃음)

박근혜, 여성과 궁합이 맞을까?

프레시안 : 여기서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아까 잠깐 나왔던 얘기를 짚고 가자. 많이 부각되지는 않지만,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그가 여성이라는 게 대통령 후보로서 어떤 효과를 낳을까? 지난 선거에서 아주 중요한 유권자로 급부상한 30~40대 여성들이 과연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할까?

이철희 : 사실 30~40대 여성의 계층적 특성만 놓고 보면 박근혜 전 대표와 자동적으로 통할 거리는 별로 없다.

이상이 : 이 30~40대 여성이야말로 보편적 복지에 대한 수요가 가장 높은 이들이다. 육아, 교육, 주거 문제 등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를 온몸으로 겪는 이들이니까. 그런 점에서, 말 그대로 박근혜 전 대표가 하기에 달렸다. (웃음) 박 전 대표가 30~40대 여성을 어떻게 감동시킬 것인가? 지금까지 그가 해온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고성국 : 30~40대 여성이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할 것인가? 반반이다. 30~40대 여성은 실제로 아이들 키우고, 학교를 보내고, 맞벌이 하는 세대다. 그 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는 얼음 공주가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알겠는가' 이런 정서적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반면에 30~40대 여성이 갖는 긍정적인 감성도 있다. 이 세대는 삶에 찌들고 보릿고개를 걱정한 어머니 세대의 특징과는 다르게 밝고 긍정적이다. '이 세상의 반은 여성이다' '여성이 세상의 주인이다' 등…. 이런 긍정적인 감성이 이제 우리도 여성 대통령을 내놓을 만하다, 이런 공감으로 모아질 수도 있다.

두 가지 경향이 다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감성적인 이질감이 분명히 존재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박근혜 전 대표가 당당한 여성의 꿈의 구현체로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양쪽 다 가능하다. 결국 이상이 교수의 말대로 박 전 대표가 하기에 따라 달린 것 같다. 여기에 몇 가지 사건이 있어야 할 테고.

박근혜 전 대표가 이 점을 모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박 전 대표가 조카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게 아닐까? 그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렇게 그런 부분에 대한 그의 노력이 분명히 있고. 다만 그게 성공할지는 모르겠다.


ⓒ프레시안(최형락)

이명박-박근혜 계속 같은 배를 탈 것인가?

프레시안 : 박근혜 전 대표의 높은 지지율의 한 요인은 그가 이명박 대통령과 불화한 탓도 있다. 대통령과 여권 대선 주자 사이의 갈등 역시 향후 대선 게임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텐데….

이철희 : 2010년 8월에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 회동을 하고 나서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이 미세하게 올랐다. 2008년 여름 촛불 정국 때처럼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일 때는 반 MB 행보가 지지율 상승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중도 실용을 표방하면서 40~50% 지지율을 얻는 상황에서 박 전 대표의 반 MB 행보는 오히려 손해다.

지금은 둘이 같이 가는 상황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35%에서 40% 지지율을 넘볼 수 있게 된 것도 이명박 대통령과 같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같이 갈 수 있을까? 어느 순간에 여권 내에서도 반 MB 흐름이 봇물처럼 터질 텐데. 바로 그 때 야당 쪽에서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고성국 : 지금까지는 박근혜 전 대표, 이명박 대통령 둘 다 조심하는 상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 연설에서 복지 포퓰리즘을 비판하면서도 '맞춤형 복지'라는 말은 반복해 준다. 즉, 연말에 박근혜 전 대표가 발표한 박근혜식 복지는 비판을 안 하고 넘어간 것이다. 이렇게 임기 말까지 조심조심 간다면 둘 다 윈-윈(win-win)하는 행복한 상황이 될 것이다.

사실 대통령과 여권 주자 사이에 갈등이 생기더라도 지는 권력인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별로 할 게 없다. 현실을 감수할 뿐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몇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갈등 상황에서 대통령, 청와대가 계속 딴죽을 걸더라도 무시하는 방법이다. 박 전 대표는 이렇게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기본적으로 박근혜 전 대표의 정치 스타일은 네거티브 방식이 아니다. 가장 네거티브한 대응을 해야할 때도 포지티브 방식으로 포장하는 게 박 전 대표의 스타일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결별하면 안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모욕을 주거나, 공방을 하면서 헤어지기보다는 무시하는 방식으로 결별할 것이다. 무시를 받는 처지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물론 이명박 대통령 측에서 뜻하지 않은 강한 반발 같은 게 나올 수 있다. 이 대통령 주변에도 대통령과 생명을 같이 하겠다, 이런 이들이 분명히 있으니까. '이렇게 무시당하는 상황을 참지 못하겠다' 이러면서 참지 못하고 나설 수 있다. 그런 갈등이 심화하면 한나라당 분당까지는 안 가더라도, 박근혜 전 대표의 한나라당 표를 깎아먹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만약 여야 간 대선 승부가 박빙으로 치닫는다면, 이런 상황은 박근혜 전 대표로서도 반갑지 않은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실 박 전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 사이의 심각한 불화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2012년 총선에서도 친이(親李) 핵심 세력에게 심한 상처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즉 현역 중심으로 공천을 줄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무난히 관리하면서, 일단 정권 재창출 후에 보자, 이런 방식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여권의 갈등 요인이 두드러지지 않는 점도 야권에게는 결코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다. 1997년의 여권 분열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

'박근혜 대항마'의 조건은?

프레시안 : 박근혜 전 대표가 2012년 대선의 '상수'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진보·개혁 세력은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 일단 박근혜 전 대표의 힘을 가장 높게 평가한 고성국 박사부터 제안을 한다면?

고성국 : 여러 번 강조했듯이 박근혜 전 대표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지금의 진보·개혁 세력의 모습을 보면 답답하다. 자,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서 논쟁적으로 주장을 하고 싶은 게 있다. 박 전 대표에게 야권이 대응할 구체적인 방법이다.

1987년 이후 총 다섯 번의 대선이 있었다. 50만 표, 200만 표, 500만 표 등의 표차로 승부가 갈렸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야권이 선거 기간 내내 질질 끌려 다니다가 200만 표 정도로 패하고, 박근혜 전 대표가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야권은 하루빨리 최소한 50만 표 승부를 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사실 정동영, 손학규, 천정배 등이 다 모여도 구도를 바꾸는 게 쉽지 않다. 국민을 감동시킬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식으로 구도를 짜야 한다. 그래서 내가 최근에 몇 차례 언급하는 것이 바로 '신(新) 40대 기수론'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민주당이 486인 이인영 대표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전 대표도 원희룡, 나경원, 남경필 의원과 같은 당내 486이 당의 전면에 나서야 수도권에서 더욱더 탄력을 받을 수 있다. 486이 6·2 지방 선거에서 전면에 등장했듯이, 앞으로 2년간 486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서 수도권을 상대로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여야 어디서 먼저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수도권 지형이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야 어느 쪽이 더 가능성이 있는가? 한나라당은 지난 6·2 지방 선거에서 참패한 터라서, 수도권 의원을 중심으로 당 재편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반면에 민주당은 6·2 지방 선거의 승리에 취해서 다급함이 안 보인다. 2012년 총선도 6·2 지방 선거가 재연될 것이라 믿는 것 같은데…. 지금과 같이 안이하게 대처하다가는 어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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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을 포착해야 이긴다!

이상이 : 대통령 선거와 같은 격변기에는 시대정신을 잘 포착하는 정치인이 결국 승리한다. 사실 대선 때마다 그 당시의 시대정신이 있었다. 1997년 김대중의 시대정신이 민주주의였다면, 2002년 노무현의 시대정신은 자유주의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패착으로 득을 본 면도 있지만 2007년의 시대정신은 성장주의였다.

그렇다면 2012년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지난 6·2 지방 선거를 통해서 복지 국가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부상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세금을 내는 중산층의 70% 정도가 복지 국가를 위해서는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다는 의견도 비춘다. 놀라운 변화다. 이 새로운 시대정신을 포착하는 후보야말로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다.

일단 박근혜 전 대표는 이 시대정신에 대해서 감을 잡았다. 박 전 대표는 대선 주자 중에서 가장 먼저 복지를 자신의 열쇳말로 내놓았다. 그러나 과연 지지 기반과 배치되는 이 열쇠를 끝까지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이 복지국가라는 시대정신을 적극적으로 구현하려고 노력한다면 충분히 승산은 있다.

일단 복지국가 정치동맹이 중요하다. 민주당은 자기희생적 결단이 필요하다. 민주당 자체가 좌 클릭, 좌 클릭해서 당의 정체성 자체를 복지국가 정당으로 만드는 게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같은 진보정당과 정치 동맹을 맺어야 한다.

정치 동맹의 가장 최고의 모습은 하나의 당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총선 전에 하나의 당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복지 국가를 핵심 비전으로 내세운 중도 진보 정당이 탄생해야 한다. 물론 지금처럼 중도 진보에서 중도 보수까지 어정쩡하게 걸쳐 있는 민주당으로는 이런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우선 민주당이 변해야 한다.

방금 고성국 박사가 40대 기수론을 제기했다. 정치 공학적인 40대 기수론은 국민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복지 국가를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이며 환골탈태하는 가운데 40대 리더들이 전면에 등장해 역동적으로 경쟁을 한다면, 이런 과정 속에서 힘을 가진 후보가 등장할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한나라당과 제대로 진검 승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박근혜 전 대표는 저렇게 지지 기반의 이해에 반하는 복지 정책을 강하게 주장하는데, 손학규 대표가 나서서 강하게 복지 얘기를 한 적이 있는가? 박 전 대표나 한나라당은 변화하는데 민주당은 항상 지리멸렬하니까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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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무엇이 문제인가?

이철희 : 아까 이상이 교수도 의심했듯이, 과연 박근혜 전 대표가 말하는 복지 정책이 진정성이 있는 것인가? 민주당은 손학규 대표가 아니라 당론으로 무상 급식, 무상 교육, 무상 의료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민주당이 발표를 하면 뭐하나. 언론은 진정성이 의심되는 박 전 대표의 복지 비전은 대서특필하고 민주당의 발표는 무시하고 폄하한다.

이상이 : 당론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들이 그것을 내세우면서 적극적으로 논쟁을 만들어내는 게 필요하다. 당은 계속 무상 교육, 무상 의료를 주장하는데 정작 손학규 대표를 포함한 대선 주자는 그런 문제에 침묵을 하니 진정성이 의심을 받는 것 아닌가?

고성국 :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까 언론 환경을 놓고도 민주당이 이제는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다. 민주당은 비우호적인 언론 환경에 불만만 토론할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식으로 뒤통수만 맞으면서 보수 언론에 끌려 다닐 것인가?

아예 보수 언론에 잘 보이려고 노력을 해보든지, 아니면 노무현 대통령처럼 조·중·동과 같은 보수 언론과 전쟁이라도 불사하라. 유시민 전 의원도 보수 언론과 적대하는 전략을 취하면서 의석 하나 없는 국민참여당의 지지자를 결집하는 효과는 누리지 않나? 지금 민주당은 보수 언론을 회유하고 설득하지도 못하고 또 정면승부를 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이다.

민주당, '박근혜 악순환'을 극복하라!

이철희 : 그런 점은 충분히 인정한다. 또 민주당도 언론과 관련해서 조만간 결단을 내릴 것이다. 방금 나온 제안에도 동의한다. 내가 아는 한, 구체적인 프로세스에서는 차이가 있더라도 방향 자체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민주당 내에 반대하는 의원이 있기는 하지만 대세는 그런 방향이다.

고성국 : 특히 민주당은 박근혜 전 대표와의 경쟁에서 신경을 써야할 부분이 있다. 지난 3년간의 정치 흐름을 보면, 분명히 싸움은 민주당이 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논란의 중심에 선 사람은 박근혜 전 대표였다. 한나라당 대 민주당의 논쟁이 되어야 하는데 자꾸 친박 대 친이의 논쟁으로 변화한 것이다. 미디어 관련 법도 그렇고, 세종시 수정안도 그렇고.

민주당에게 불리한 언론 지형 탓도 있겠지만 민주당 의원, 특히 잠재적 대선 주자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지는 않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서 지난 전당 대회 때 정동영 의원이 부유세를 제시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논쟁적인 정책에 대해서 당내의 토론이 없었다.

손학규 대표부터 찬성하면 찬성, 반대하면 반성 이런 식으로 논평이 나오고 논쟁으로 발전해야 하는데, 흐지부지 넘어갔다. 그러니 당연히 민주당의 중요한 정책이 이슈가 안 되고, 당연히 언론에서도 소외된다. 이런 악순환을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계속 박근혜 전 대표, 한나라당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이철희 : 사실 민주당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부분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여당이 '예산 날치기'처럼 계속 때리는 상황에서 솔직히 정신이 없다. 싸움의 선택지도 제한돼 있다. 숫자로 밀어붙이는 걸 용인하면 무기력하다고 비판을 받고, 본회의장 점거를 하면 당장 몸만 쓰는 떼쟁이로 몰아붙인다.

뭘 해도 욕을 먹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여러 가지로 피폐한 상황이다. 솔직히 민주당이 한 것보다 훨씬 더 비판을 받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나?

희망의 근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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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이상이 교수가 제안한 민주당의 좌 클릭과 복지 정치 동맹을 전제로 한 야권 통합은 얼마나 가능성이 있을까? 마지막으로 얘기해 보자.

고성국 : 안타까운 얘기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상이 : 그렇게 안 되면 민주당은 희망이 없다.

고성국 : 그렇다. 희망이 없다. 지난번 7월 선거, 6월 선거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행태가 있다. 한 번 생각해 보자. 태도도 좋고 격조가 있는 사람이 이념이나 정책이 다를 경우에는 같이 할 수 있다. 이념, 정책이 다를 것 같지 않은데 태도가 못 마땅하고 기질이 안 맞는 사람은 일을 같이 할 수 없다.

사실 일반 국민이 보기에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의 차이가 한나라당과의 차이를 염두에 두면 크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뭐가 다른가? 그러나 이념, 정책이 아니라 태도, 문화는 상당히 다르다. 지난 10년간 특히 2002년 경선 때부터 쌓여온 서로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있다.

더구나 워낙에 압도적인 상대 앞에서 '분열하면 다 죽는다' 이런 지지자의 압박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통합을 하더라도 문제가 남는다. 과연 통합을 했을 때 플러스 알파(α)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6·2 지방 선거 때 통합 시도가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경기도에서 유시민 전 의원으로 단일화했지만 실패했다. 지난 7월 선거 때도 은평(을)에서 장상으로 단일화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단일화하면 1+1이 2.5 정도의 시너지 효과가 나와야 하는데, 몇 번의 경험은 1+1이 고작 1.5 정도밖에 안 되었다. 이렇게 쌓인 실패의 경험이 이후의 통합 논의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이런 기질의 차이, 실패의 경험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면 중도 좌파에 터한 집을 새로 짓고 뭔가 새로 하자, 이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더구나 더 중요한 것은 설사 지난 경기도지사 선거 때처럼 막판에 통합을 했다고 하더라도, 플러스 알파를 창출하지 못하는 통합이라면 결코 박근혜 전 대표를 이기지 못한다.

만약 유시민 전 의원으로 단일화가 된다면 민주당 전 당원이 내 일처럼 나서야 한다. 또 손학규 대표로 단일화가 된다면 민주노동당의 전 당원이 내 일처럼 나서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지금의 야5당, 시민단체의 상황을 염두에 뒀을 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상이 : 나눠 먹기식 선거 연합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방 선거 때야 나눠 먹을 자리가 많아서 부분적으로라도 가능했지만, 국회의원 대선은 선거 연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복하지만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시대정신을 껴안는 정계 개편이다. 야권이 중도 진보의 복지 국가로 제대로 구현하고자 민주당의 환골탈태를 전제로 한 정치 동맹을 만든다면 가능성이 아예 없지 않다. 분명히 그런 권력 의지에 국민이 응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야권이 정권을 탈환할 유일한 길이다.

이철희 :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민주당에 몸담고 있으니까 변명을 해보자. 지방선거, 대선, 총선에서 내리 진 정당이 3년 만에 지방 선거에서 이겼다. 3연패한 정당이 불과 3년 만에 기력을 회복한 일은 세계 정당사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거의 회복 불능 상태에 있었던 당이 이제 활기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민주당에 기력을 불어넣어준 국민의 열망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서 통합을 만들어 갈 것이다. 다만 기존의 조직, 규칙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각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진통은 불가피하다. 다만 큰 흐름은 민주당이 갈피를 잡고 있다.

물론 대선에 앞서 큰 집을 못 지으면 지는 것이다. 제대로 못 하면 거기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지.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3연패한 정당에 3년 만에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민심이 이명박 정부, 한나라당 더 나아가 박근혜 전 대표에게서 이반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흐름에 주목하면 싸움은 절대로 일방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야권이 정권 탈환에 실패한다면 그것은 박근혜 전 대표가 강해서가 아니라,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제대로 못한 탓일 것이다.

이상이 :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첨언하자. 정치에 있어서 역동적 성장은 언제나 가능하다. 정치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야권이 복지 국가를 화두로 역동적으로 성장한다면, 국민은 기꺼이 야권에 표를 줄 준비가 돼 있다. 그 점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고성국 : 야권 연합을 한다면 민주당 중심이 현실적이다. 민주당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과 대등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민주당 중심의 통합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이런 통합이 현실이 되려면 민주당이 두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독자적으로 박근혜 전 대표에 대응할 만한 몸집과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안 될 연합도 된다. 객관적으로 민주당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싸울 수 없다는 판단이 전제된다면, 결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이 민주당을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이 독자적으로 정권을 탈환한다' 이렇게 절박하게 움직여야 일이 진행된다.

지금처럼 '가다 보면 연합도 되고 어떻게 되겠지' 하고 막연하게 있으면 절대로 연합을 끌어내는 추동력이 안 생긴다. 둘째, 예컨대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관악(을)에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은 어렵겠지만 김희철 의원을 움직일 수 있는 과단함과 결단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민주당의 진정성이 상대도, 국민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프레시안 : 오랜 시간 열띤 토론하느라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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