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 없는 사람도 신앙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럴 때다. 고생이 뻔한, 그러나 옳다고 믿는 선택을 해야 할 때, 신앙이 도움이 된다. 세상은 알아주지 않아도, 신(神)은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실제로 이런 믿음으로 많은 이들이 외로운 선택을 한다. 물론 이런 선택이 늘 옳은 것은 아니지만.
'염치'를 일깨워주는 '공정한 기록'의 힘
그렇다면 신앙이 희미한 사회에선 무엇에 의지해서 힘든 선택을 할까. 조선 역사에 힌트가 있다. 조선의 정치인들은 역사에 의지했다. 현실에선 인정받지 못한 결정이지만, 뒷날 역사가들은 제대로 평가해주리라는 믿음이다.
'사화(士禍)'라는 피바람을 부를 만큼, 조선 사회에서 역사 기록이 첨예한 정치 쟁점이었던 이유다. 역사를 제대로 기록한다는 믿음은, 외로운 선택을 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안타까운 대목은 조선 문명이 해체되면서 기록의 전통도 함께 사라졌다는 점이다. 역사가의 눈치를 보지 않는 이들이 부끄러움을 알기란 쉽지 않다. 염치 불문하고 눈앞의 이익을 쫓을 따름이다.
김수영 시인은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고 했는데, 그렇다. 기록은, 아무리 더러운 기록이라도 의미가 있다. 아니 더러운 기록이라서 더 의미가 있다.
똑같이 외환 위기를 겪었는데, 한국엔 없고 타이엔 있는 것
여기, 더러운 시대의 기록이 있다. 하숙비를 못 낸 대학생이 동아리방에서 잠을 청해야 했던, 윤택한 사업가 집안이 한순간에 거리로 내몰렸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노·사·정 담판에서 오히려 통 크게 양보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정리 해고 통보 밖에는 없었던 시대에 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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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강경식 지음, 김영사 펴냄). ⓒ김영사 |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한국 경제 수장이었던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현 동부그룹 상임고문)가 꼼꼼하게 적은 기록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김영사 펴냄)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적어도 강 전 부총리는 기록의 가치와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그의 글을, 조금 길지만 인용해 본다.
"외환 위기를 겪은 아시아의 나라 중에서 태국도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위기의 원인, 무엇을 잘못했는가, 누가 잘못했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에 대해 보고서를 만들어 발표했다. (…) <누쿨 보고서>가 그것이다.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은 정부 차원의 조사위원회를 구성한 일이 없다. 물론 <IMF 백서>도 없다. 한때 한국전쟁 이후의 최대의 국난이라고 하면서도 왜 그렇게 엄청난 위기를 겪게 되었는지, 앞으로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든 일이 없다. (…) 엉뚱하게도 사법부의 공판 기록은 있다(법원의 1심 공판은 27차례 열렸고 증인의 수는 50명이다). 나라의 수준이 이렇게밖에 되지 않는지,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한국에 <누쿨 보고서>와 같은 게 있었다면 그 내용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단지 두 사람의 잘못으로 겪지 않아도 될 외환 위기를 당했다는 내용이었을까?
김대중 정부는 한국이 외환 위기를 조기에 졸업한 것을 두고 큰 치적으로 자랑했다. 처음 위기를 당했을 때를 생각하면 그렇게 자랑할 만한 일이다. <외환 위기 백서>가 없는 것처럼 <외환 위기 조기 졸업 백서> 또한 없다. 국내에선 IMF 자금의 조기 상환을 두고 졸업했다고 기뻐했지만 해외에서는 위기의 원인이었던 구조적 취약점을 보완한 점을 평가했다.
이렇게 외환 위기 졸업의 의미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외환 위기를 가져온 원인을 제거하고 다시 그런 위기를 겪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했는가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졸업 기준에 대한 혼선은 외환 위기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백서가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1997년 환란의 기억, 우린 그저 빨리 잊으려고만
명료하면서도 신랄하다. '외환 위기 조기 졸업'의 진짜 의미를 따져 묻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외환 위기 졸업'의 의미를 곱씹다보면, 우리가 과연 1997년 외환 위기를 졸업한 게 맞느냐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질문이다.
1997년의 더러운 경험을, 우리는 그저 빨리 잊고 싶을 뿐이었던 것 아닌가. 단지 몇 사람을 희생양 삼아서 모든 것을 덮어버리려 한 것 아닌가.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이 희생양이었다고 주장한다. 인용한 부분에 나오는 '단지 두 사람'은 저자와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가리킨다.
이 책의 문제는, 이처럼 정말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대목에서 오히려 김이 샌다는 점이다. 저자의 말은 옳다. 당시 우리 사회는 '단지 두 사람'을 욕하는 것으로 더러운 기억을 떨쳐 내려 했다. 그러나 저자의 바람대로 한국판 <누쿨 보고서>가 나왔다면, 그 '단지 두 사람'은 과연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을까. 한국판 <누쿨 보고서>가 의미 있는 기록이 되려면, 공정성이 핵심이다. 그러나 한국판 <누쿨 보고서>를 기다리는 저자의 글은 이미 공정성을 잃었다. 자신에게는 너무 관대하고, 남에겐 가혹하다.
저자가 공정한 기록의 가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이런 이중 잣대는 더욱 씁쓸하다.
반성인가, 아니면 반박인가
이 책의 본문은 "1997년 3월 5일 경제부총리 임명장을 받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19일 그가 경질될 때까지 그가 한 일은 모두 정당하거나 피치 못해서 한 것이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예컨대 자금난에 빠진 기아자동차를 제때 부도 처리하지 못한 점이 잘못이라면서도, 그는 그게 자기 탓이 아니라고 한다. 대통령이, 기업인이, 정치권과 언론이 잘못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임창렬 부총리 취임과 정권 교체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 남 탓이다. 억울한 심정이 절절이 묻어난다.
하지만 외환 위기의 결정적 원인으로 꼽히는 종합금융회사 문제, 즉 이들 회사가 낮은 이자로 단기자금을 들여와서 높은 이자로 장기 대출을 일삼는 탓에 생겨난 자금 순환 불일치에 대한 안일한 인식, 위기가 임박한 상황에서도 금융 개혁 등 거창한 의제에만 매달린 점, 오락가락한 외환 시장 대응 등은 보수, 진보 구분 없이 저자를 향해 쏟아내는 비판이다. 또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삼성그룹과 긴밀히 유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아무런 해명이 없다. 저자의 기록이 의미 있는 것이려면, 이런 비판을 인정하고 겸허히 반성하거나, 아니면 이를 제대로 반박하는 내용이 담겨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윤증현 등 "앞길이 창창한" 후배 관료들을 정치적 비난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따뜻한 마음이다. 후배 관료들이 고마워할 법하다.
'直言' 하는 후배에게 진짜 용기 주는 건 잘못 인정하는 선배
그러나 그가 진실로 챙겨야 할 후배 관료들, 나라의 장래를 위해 외로운 결단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을 위해 필요한 기록은 따로 있다. 남에게 들이댄 잣대와 마찬가지의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댄 정책 수장의 기록이다. 위기 앞에서 '직언(直言)'을 결심한 젊은 관료에게,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는 선배를 보는 것만큼 용기를 주는 것은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