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경영학과에서는 무엇을 배울까? 우선 경영학, 초급 수준의 경제학, 역시 기초 수준의 회계학을 배운다. 그 다음부터는 인사 관리, 재무 관리, 마케팅 관리, 생산 관리… 이렇게 '관리(Management)'의 연속이다. 심지어 '경영 정보 시스템(MIS)'이라는 전문 프로그램 관리 기술까지 배운다.

오늘날 '가장 실용적 학문'이라고 추앙받는 경영학을 전공한 이들이 과연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제대로 써먹는 날이 올까? 경영학의 핵심인 '관리' 기술을 이용해 부하 직원을 '관리'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애초에 경영학은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학문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CEO 중 경영학을 전공한 이는 얼마나 될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경영학을 전공한 CEO와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에는 과연 경영 능력에서 차이가 있기는 할까? 경영학은 혹시 대학 교수의 밥벌이를 위한 '만들어진' 학문은 아닐까? 이렇게 경영학의 존재 의의 자체를 묻는 질문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출간되는 '경영학 때리기' 책들이 그것이다.

수백만 달러의 돈을 벌던 전직 컨설턴트 매튜 스튜어트가 쓴 <위험한 경영학>(이원재·이현숙 옮김, 청림출판 펴냄). 기업들이 앞을 다퉈 최고의 인재로 모시는 MBA 전공자가 오히려 회사를 망치는 존재라고 강변하는 세계적 경영학가 헨리 민츠버그의 <MBA가 회사를 망친다>(성현정 옮김, 북스넛 펴냄).

경영학은 허구다


▲ <위험한 경영학>(매튜 스튜어트 지음, 이원재·이현숙 옮김, 청림출판 펴냄). ⓒ청림출판
<위험한 경영학>은 철학을 전공한 컨설턴트였던 저자가 기업 컨설팅의 세계에서 좌충우돌한 경험담과 프레더릭 윈슬로 테일러, 엘턴 메이오, 더글러스 맥그리거, 이고르 앤소프, 마이클 포터, 톰 피터스 등 이른바 '경영학의 대부들'이 주창한 경영 이론을 병렬식으로 배치하며 경영학의 공과를 짚는다.

저자가 경험한 컨설턴트의 세계는 한 마디로 말해 사기 도박판이다. 갓 대학을 졸업한 새파란 젊은이가 기업 CEO를 '협박'해 수백만 달러를 뜯어내고, 어떤 주장이든 유행이 되면 이를 이용해 다시 돈벌이 궁리에 나서는 식으로 말이다. 컨설팅의 다섯 단계는 간단히 말해 '꼬시기→빨대 꽂기→단물 빨기→끝내기→줄행랑'으로 요약된다.

저자는 컨설턴트로서 한 가장 중요한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많은 경우 컨설턴트의 일은 회사의 한 부분에서 수행한 일을 정리해서 회사의 다른 부분에 전해 주는 것이었다. 종종 조직 내 정보 부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고위층의 메시지를 모아서 색깔을 입히고 내용을 가다듬어 구성원에게 싫증나도록 반복했다. 대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직원들 모두가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하며, 회사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경영학자들이 '마법의 매트릭스'로 칭송하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BCG 매트릭스'도 황당함 그 자체다. 저자는 "BCG 매트릭스는 기업의 거대한 사업의 운명을 시장 점유율과 성장률이라는 두 가지 요소만으로 결정하라고 제안한다"며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영화를 보러 갈지를 정할 때에도 BCG 매트릭스가 수천 명의 일자리가 달린 상황을 분석하는 데 사용하는 변수보다 더 많은 변수를 사용한다"고 코웃음을 친다.

믿어도 될까. 근거가 있다. 1994년 와튼 스쿨의 스콧 암스트롱, 로데릭 브로디는 경영대학원 학생을 대상으로 BCG 매트릭스의 효과를 검증하는 실험을 했다. 학생의 압도적 다수가 실제 수익성과는 무관하게 매트릭스 결과에 따라 투자 결정을 했다. 그러나 실제로 매트릭스를 사용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오히려 자본이익률이 낮았다. BCG 매트릭스의 활용도는 원숭이에게 기업 경영을 맡기는 것만도 못했다.

경영 대가들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기업 경영의 마법 역시, 과장과 생략이 자의적으로 마구 뒤섞인 근거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경영학이란 학문 자체를 낳는 계기가 된 테일러의 저 유명한 피그 아이언 실험, 인간 중심 경영 사상을 낳은 호손 공장 실험 등은 모두 심각한 조작이 가해진 허구였다. 지금도 전 세계 경영학도들이 위대한 사상가로 칭송하는 마이클 포터 등의 '대가'들은 자신이 이전에 했던 말과 모순되는 말을 거리낌 없이 했다. 도대체 여기에 '시대를 관통하며 일관된 이론 체계를 갖춘' 학문적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누구를 위해 경영학은 작동하나

그럼에도 경영학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큰 위세를 떨치는 학문이다. 당장 한국의 오늘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단언컨대, 이 땅의 대부분의 대학생은 경영학 수업을 듣지 못해 안달이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어떤 대학교는 모든 학생에게 경영학을 필수로 가르칠 태세다.

<위험한 경영학>은 이런 세태를 설명할 실마리도 제공한다. 모든 경영학의 대가는 사회를 위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경영학 대가들의 지향점은 같았다. '어떻게 하면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내고, 노동자가 고분고분 말을 잘 듣게 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 바람직한 사회 구조는 이렇다. 산업의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기업의 독점 현상이 강화되고), 이에 따라 기업은 지속적으로 초과이윤을 내며(소비자의 피해는 극대화되고), CEO는 회사의 제품에는 관심을 기울일 필요도 없고 그저 조직만 잘 관리하면 되는(그래야 컨설턴트가 돈을 벌 길이 생기므로) 그런 식의….

경영학에 홀리는 대학생의 바람과는 달리, 애초에 경영학은 나이든 경영자를 위한, 그리고 대기업의 독점적 이윤 추구 행위를 합리화할 목적으로 기능했다. 경영학이 위세를 떨칠수록 이런 도그마가 사회에 더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건 당연하다. 신자유주의화의 진행 속도가 빨라질수록 경영학을 추앙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MBA 무용론


▲ <MBA가 회사를 망친다>(헨리 민츠버그 지음, 성현정 옮김, 북스넛 펴냄). ⓒ북스넛
이런 경영학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경영학의 꽃'인 MBA를 둘러싼 불만이다. 주류 경영학자 중 최고의 명성을 누리는 헨리 민츠버그는 <MBA가 회사를 망친다>에서 "MBA가 기업에 아무런 효용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통렬히 비판한다. 그는 MBA가 대학의 돈벌이에만 기여하는, 비실용적인 학문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비즈니스 스쿨이 직업 훈련 교육을 위한 곳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1988년 휴 머레이가 자신의 논문 '경영 교육과 MBA'에서 밝힌 글을 인용하면 '학문적 권위에 대한 힘은 놀라울 만큼 강력하고 지배적인 것'이었다. 머레이는 이런 흐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이와 같은 학문 위주의 풍토 덕분에 혜택을 본 사업은 비즈니스 스쿨의 사업뿐일 것이다.'

MBA로 이득을 보는 이는 대학뿐이라는 얘기다. 한국이 따르는 영미의 주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늘날 경영학이 '기업 경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으로 비쳐지는 것이 흥미롭다. 민츠버그는 'MBA 무용론'의 연장선상에서 다음과 같이 독설을 퍼붓는다.

"리더로서 타고난 재능을 가진 이는 따로 있다. 경영학을 아무리 많이 배운들 좋은 리더로서의 자격과는 무관하다."

"MBA는 기업 경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컨설턴트가 돼 큰돈을 빠른 시일 내에 벌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톰 피터스가 그랬다)이나 취직을 위해 수억만 금이라도 바칠 각오가 된 취업 준비생이 필요한 대학(대다수 대학교가 그렇다)에 소중할 뿐이다."

"경영자를 위한 학위(MBA)가 왜 취업 지망생을 위해 쓰이는가? 이런 학위가 학문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인가."

그러고 보니 대학 재학 시절 한 경영학과 교수도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정말로 이제는 경영학을 쓰레기통에 버릴 때다.

"여러분, 경영학이 학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경영학은 기술을 가르칠 뿐입니다. 인문학이나 경제학 수업을 많이 들으세요. 기본 바탕이 탄탄히 갖춰지지 않은 사람은 곧 한계를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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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한 낮, 어부는 게으르게 잠만 잤다. 일 해야 하는 시간에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보다 못한 관광객이 말을 건넨다. "할아버지, 고기잡이 안 나가세요? 해가 높이 떴는데." 어부는 말한다. "벌써 새벽에 한 번 다녀왔네.", "그럼 또 한 번 다녀오셔도 되겠네요?", "그렇게 고기를 많이 잡아 뭐하게?", "그럼 낡은 배를 새 것으로 바꿀 수 있잖아요? 물고기를 더 많이 잡을 수 있고요.", "그러면?", "더 큰 배를 사서 사람도 부리지요. 돈도 더 많은 벌 테고.", "옳지. 그러고 나면 뭘 하지?", "할아버지는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누워서 지내실 수 있어요." 마침내 어부는 답한다. "지금 내가 바로 그렇게 잘 지내고 있다네."

고병권의 <생각한다는 것>(너머학교 펴냄)에 실린 이야기다. 세상에는 온갖 재(財)테크들이 넘쳐난다. 출세하고 인정받는 방법을 일러주는 처세의 가르침도 널려있다. 그러나 과연 돈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행복해질까?


▲ <생각한다는 것 : 고병권 선생님의 철학 이야기>(고병권 지음, 너머학교 펴냄). ⓒ너머학교
이 물음에 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잘 사는 나라에는 우울증 환자도 많지 않던가. 잘 나가는 기업의 CEO나 인기 절정의 연예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돈과 출세를 죽어라고 좇을까?

어린 아이는 잃어버린 사탕 하나에 서럽게 울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어른은 다르다. 인생 전체로 보면 사탕은 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욱 성숙한 인격을 가진 이들은 재산과 명예마저도 하찮게 여기지 않을까?

행복의 문은 '왜 그렇지?'라고 물을 때 열린다. 잘 사는 삶은 등 따시고 배부른 데 있지 않다. 잘 사는 삶이란 '생각하는 삶'이다. 제대로 된 인생을 살려면 무엇이 진정 나를 행복하게 할지부터 고민해 보아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런 중요한 물음을 건너 뛰어 버린다. 그러곤 '어떻게?'만 묻는다. 큰돈이 왜 필요한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남들 하는 대로 따라 달리는 식이다. 이들이 행복해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만큼이나 어렵겠다.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왜?'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던진다. 생각 없는 삶은 나 자신을 악마로 만들기도 한다.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유태인 수용소의 책임을 맡았던 사람이다. 숱한 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힌 그는 원래 악한 사람이 아니었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성실한 '공무원'이었을 뿐이다. 아이히만은 자기가 하는 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지지 않고, 그냥 명령에 성실하게 따르기만 했다. 그래서 결국 악마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과연 아이히만보다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값싼 음식과 상품을 즐기며, 그 속에 숨은 못사는 나라 노동자들의 눈물과 한숨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격을 후려치고 더 좋은 서비스를 바랄수록, 세상 누군가는 그만큼의 고통을 짊어져야 한다. 기업들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사정없이 직원들을 떨어낸다. 그렇게 되는 데는 생각 없이 싸고 편리한 것만 좇는 나의 생활 태도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것>을 읽다보면 점점 고민이 늘어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는 스스로를 등애(Godfly)라고 불렀다. 등애는 끊임없이 잠에 빠져들려는 말을 귀찮게 하여 깨어있게 만든다. 소크라테스도 쉴 새 없는 물음으로 생각을 놓으려는 사람들을 성가시게 했다. 과연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를 고민하게 하기 위해서다.

진정한 친구는 소크라테스와 같아야 한다. 게임에 빠져든 친구를 "무엇을 하건, 그건 너의 권리야"라며 내버려 두는 것이 진짜 우정일까? 오히려 진정한 우정은 간섭하는 데 있다. 친구가 게임을 못하면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에 있는가? 그렇다면 그는 게임의 노예가 된 상태다. 그를 자유롭게 하고 싶다면 간섭하고 충고해 주어야 한다.

오항녕의 <기록한다는 것>(너머학교 펴냄)도 생각의 중요함을 일깨워 준다. <맹자>에는 역사책 <춘추>가 나왔을 때의 사회 모습을 이렇게 적어놓았다.

세상살이의 질서와 원칙이 느슨해지면서, 거짓된 말과 몹쓸 행동이 생겨났다. 신하가 임금을,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경우까지 있었다. 공자가 걱정되어 <춘추>를 지었는데, (…) <춘추>가 완성되자 난신(亂臣) 적자(賊子)들이 벌벌 떨었다.

왜 교활한 신하와 도적들이 벌벌 떨었을까? 기록은 사람을 두렵게 한다. 서양에서는 죽은 뒤에 내 삶을 평가 받는다고 믿었다. 잘못을 많이 하면 신이 나를 지옥으로 보내는 식이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죽은 뒤의 삶에 관심이 없었다. 대신, 역사가 곧 우리 삶의 '심판관'이었다. 후세에 더러운 이름을 남기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 <기록한다는 것 : 오항녕 선생님의 역사 이야기>(오항녕 지음, 너머학교 펴냄). ⓒ너머학교
오항녕은 '과거를 잊은 사람은 평생 그것을 지속할 운명'이라고 말한다. 자기의 삶이 어떻게 기억될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막 살지 못할 테다. 또한, 예전의 실수와 잘못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은 좀 더 나은 삶을 좇기 마련이다. 역사 공부는 그래서 중요하다. 기록의 무서움을 깨닫게 될뿐더러, 지금의 나의 모습을 과거에 견주어 반성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 공부가 되레 해로울 때도 있다. 오항녕이 들려주는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글자를 발명한) 토트신이여. (…) 글자는 그것을 배운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에 무관심하게 해서 그들의 영혼 속에 망각을 낳을 것이오. 그들은 적어 두면 된다는 믿음 때문에 바깥에서 오는 낯선 흔적들에 의존할 뿐, 안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힘을 빌려 상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오. 그러니 그대가 발명한 것은 기억의 묘약이 아닙니다.

생각 없이 기록하고, 적힌 사실을 고민 없이 달달 외우기만 하는 우리네 역사 교육을 꼬집는 말처럼 들린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듯 생각 없이 역사를 다루지 않았다. 예컨대, <조선왕조실록>은 엄청난 분량의 역사 기록이다. 200자 원고지에 옮겨 적어 쌓으면, 그 높이가 무려 63빌딩의 세 배에 이른단다.

<조선왕조실록>의 놀라운 점은 기록의 양에만 있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역사에 대한 반성이 오롯이 담겨 있다. 예컨대, <선조실록>은 문제가 많은 기록이었다. 몇몇 사람들의 의견이 너무 많이 들어간 탓이다. 그래서 <선조수정실록>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원래 있었던 <선조실록>은 없애버렸을까? 그렇지 않다.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을 모두 남겼다. 후세 사람들이 이 둘을 견주어 보며 무엇이 진실인지 생각해보게 하기 위해서다.

역사의 가치는 생각을 위한 밑바탕이 된다는 데에 있다. 줄기차게 과거를 떠올리며 현재가 어떻게 기록될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훌륭한 왕과 정치가들이 역사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던 이유다.


▲ <탐구한다는 것 : 남창훈 선생님의 과학 이야기>(남창훈 지음, 너머학교 펴냄). ⓒ너머학교
남창훈의 <탐구한다는 것>(너머학교 펴냄)은 또 다른 각도에서 생각의 가치를 일깨운다. 그는 생화학과 면역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이다. 그는 뉴턴에 얽힌 흥미로운 사실을 들려준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떠올렸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하지만 위대한 발견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법이다. 뉴턴은 실수로 끓는 물에 달걀 대신 회중시계를 집어넣기도 했단다. 연구에 너무 골똘해 있던 탓이다. 탐구를 위한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열정이 있어야 한다.

무엇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은 그것에 대한 애정이 있을 때 생긴다.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자 제인 구달은,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서 '주빌리'라는 침팬지 인형을 선물 받았다. 그녀의 애정은 살아있는 침팬지 연구에까지 이어졌다. 80 평생, 그녀는 침팬지에 애정을 쏟았다. 이런 열정이 있는 사람이 업적을 남기지 못할 까닭이 없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무엇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있는가? 간절한 마음은 생각을 빚어낸다. 생각은 다시 사랑하는 대상을 절절하게 알고 싶은 열정을 낳는다. 삶이 헛헛하게 느껴진다면, 나의 삶의 가치를 찾게 해줄 것은 무엇인지부터 깊이 고민해볼 일이다.

<생각한다는 것>, <기록한다는 것>, <탐구한다는 것>은 너머학교에서 내놓은 '열린 교실' 시리즈이다. 열린 교실은 닫힌 교실로 이루어진 우리 교육에 훌륭한 대안이 된다. 닫힌 교실에서는 '왜?'를 묻지 않는다. '어떻게?'만 가르칠 뿐이다.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따지지 않고 어떻게 해야 좋은 점수 받아 대학을 가고 성공하고 출세하는 지만을 고민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너머학교에서 내놓은 <생각하는 것>, <기록한다는 것>, <탐구한다는 것>은 공교육의 보완재가 될 만한 책이다. '어떻게?'는 '왜?' 다음에 던져야 할 물음이다. 그럼에도 공교육은 '왜?'라는 물음을 잃어버렸다. 너머학교의 시리즈들은 공교육이 놓아버린 '왜?'를 찾아주려 한다.

시리즈는 <읽는다는 것>, <느낀다는 것>, <사람답게 산다는 것> 식으로 계속 이어질 예정이란다. 너머학교의 열린 교실 시리즈를 통해 '왜?'를 따져 묻는 학생과 선생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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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독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니 독도 문제는 1947년에 시작된 것인가? 사실 "독도 1947"로 되어 있는 책의 제목부터 도발적이고,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 그 옆에 붙은 부제, "전후 독도 문제와 한미일 관계"는 또 다른 의문을 갖도록 한다. 독도가 한일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여기에 '미국'은 왜 들어가는가?

<독도 1947>(정병준 지음, 돌베개 펴냄)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하고, 너무나도 상징적인 독도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제기하고, 여기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독도 문제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독도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독도 문제를 풀기 위해 한국인과 일본인은 어떻게 노력하였는가? 그리고 왜 국제적으로 독도는 한국의 영토가 아니라 분쟁 지역으로 되어 있는가?

이 많은 질문이 이 한 권의 책 안에 담겨 있다. 특히 마지막 질문은 이 책에서 밝히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그만큼 이 책의 대부분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도가 분쟁 지역이 된 원인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그 출발은 1947년이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미군정 하에서 한국인이 독도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것도 1947년이고, 일본이 전후 처리 문제를 준비하면서 독도를 일본 땅으로 선전하기 시작한 것도 1947년이었으며, 미국 역시 일본에 대한 전후 정책을 준비하면서 1947년부터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독도 1947>(정병준 지음, 돌베개 펴냄). ⓒ돌베개
또 다른 우연의 일치는 1947년이라는 해가 냉전의 역사에 갖는 중요성이다.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1947년부터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루스벨트의 미소 협조 노선에서 벗어나 미국 행정부가 냉전 정책을 본격화했던 시기였다. 1947년 3월 트루만 독트린을 통해 미국은 그리스와 터키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확장을 정치, 군사적으로 봉쇄했고, 서유럽의 경제적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은 동년 6월 하버드 대학 졸업식장에서 발표되었다. 한반도에서도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중단되고, 한국 문제가 유엔에 이관되면서 분단 정부 수립이 본격화되는 것이 1947년이었다.

사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독도는 동해의 울릉도 옆에 붙어 있는 두 개의 바위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섬이며,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의 가사에서 잘 드러나듯이 그저 새들의 고향일 뿐이다. 따라서 '제국의 시대' 이 섬은 어느 정부에게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섬이었다. 독도는 울릉도나 대마도와는 다른 성격의 섬이었다.

그러나 제국의 시대에 독도의 중요성은 매우 높아졌다. 제국의 시대는 해양의 시대를 열었고, 바다 위에서 자국의 관할권을 둘러싼 다툼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그나마 제국의 시대에는 무력으로 섬을 점령하면 되었기 때문에 그다지 분쟁이 될 만한 지역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냉전 시대에 들어서면서 영토나 해양권을 둘러싼 전쟁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으며, 따라서 많은 지역이 분쟁 지역이 되었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이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남사군도, 중국과 베트남 사이의 시사군도, 중국과 일본 사이의 어약도,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쿠릴 열도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독도 역시 냉전 시기에 시작하여 탈냉전 시기까지 분쟁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냉전 시대 포클랜드의 경우만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의 전쟁으로 해결되었다.

이렇게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지역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과 중국이 관련된 분쟁이 많으며, 분쟁 지역의 대부분이 동아시아 지역에 몰려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있는 카슈미르 역시 또 다른 분쟁 지역이지만, 이 지역의 분쟁은 섬을 둘러싼 분쟁과는 다른 종교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독 왜 동아시아 지역에서만 섬을 둘러싼 분쟁이 많이 일어나는 것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아시아에서 중국과 함께 한 축이 되어 있는 일본이 해양 세력으로서의 힘을 갖기 위해서는 대륙으로의 영토 확장보다는 보다 넓은 지역에 섬을 확보함으로써 해양에서의 세력권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대륙의 힘을 대표하고 있지만, 제국주의의 시대가 아닌 이상 영향력의 확대를 위해서는 섬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게다가 최근 바다가 단지 어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석유를 비롯한 천연자원의 보고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바다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국가 간의 경쟁은 더 치열해 졌다.

다른 하나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전후 처리 문제이다. 이 점이 바로 <독도 1947>에서 분석하고자 한 것이다. 유럽과 달리 아시아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전쟁의 책임을 묻고, 피해 지역에 대해 배상을 하며, 전범 국가들이 더 이상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전후 처리의 핵심적인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안들이 '냉전'이라는 국제적 구도 속에 묻혀버렸다.

전범 국가인 일본은 화려하게 부활했고, 전범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면죄부를 받았다. A급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는 일본이 독립한 지 10년도 되지 않아 일본의 총리에 올랐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국민당이 전후 처리를 책임져야 했고, 1949년 등장한 공산 중국이 오랫동안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없었다는 것 역시 동아시아의 또 다른 문제였다. 이 과정은 결국 일본의 전후 처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연결되었고, 이는 곧 독도 문제가 명확히 해결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두 가지 특징은 <독도 1947>을 통해 미국이 독도 문제에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전후 일본 처리 문제는 미국에 의해 주도되었다. 유럽과는 달리 태평양에서의 제2차 세계 대전은 미국과 일본의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소련이나 서유럽 국가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처리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냉전으로 인해 미국은 전범 국가의 처리를 철저하게 진행할 수 없었다. 특히 중국의 공산화 이후 미국은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이는 샌프란시스코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독도 1947>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한국이 소외되었던 과정,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냉전 과정에서 일본이 면죄부를 받는 과정, 독도를 중심으로 한 영토 문제에 대해 의견이 변해가는 과정 등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한국, 일본, 미국이 전후 처리 문제를 준비해 가는 과정과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처리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하여 독도가 분쟁 지역이 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하였다.

전체 9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독도 문제의 출발점이 되었던 1947년 한국, 일본, 그리고 미국을 시작으로 하여, 1948년의 독도 폭격 사건, 그리고 1947년부터 1951년까지 미국의 전후 처리를 위한 정책이 변화하는 과정, 마지막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직후 독도 분쟁이 시작되는 시기 등을 고찰하였다. 전체 책을 분량을 보더라도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자료들을 세밀하게 분석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물론 이 점은 저자의 전 저작들인 <우남 이승만 연구>, <한국전쟁 :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을 접한 사람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 책은 전후 현재까지 논쟁이 되고 있는 독도에 대한 문제에 하나의 교과서이자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다. 독도와 관련하여 이처럼 방대하고 다양한 자료를 하나의 책 속에 엮어 놓은 예는 전무후무하기 때문이다. 다른 연구자들로 하여금 당분간 이 시기의 이 주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연구하지 말도록 하는 위압감도 있지만, 이 책을 접하지 않고 독도 문제의 기원을 논의할 수 없도록 하는 권위도 느껴진다.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전후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준 것과 함께 냉전 시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문제가 동북아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전후 한반도 문제에 매우 중요한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한국 사회는 너무 무관심했다.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일부 연구자들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대해 접근하고자 했지만, 피상적인 접근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또 다른 공헌은 저자가 곳곳에서 지적하고 있는 '인물'에 대한 치밀한 접근이다. 이 역시 저자가 이전의 연구 성과에서 잘 보여주었던 특징이다. 결국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이며, 중요한 이슈에 관련된 '인간'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알지 않고서는 사태의 진실에 접근하기 어렵다. 역사는 거대한 구조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상 역사적인 이슈에 접근해 보면 이는 다시 이슈를 만들어낸 인간들의 문제에 귀착되곤 한다.

문제는 다양한 인물들의 특징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인데, 저자는 이런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미 <역사비평>에 한 차례 투고된 적이 있지만, 일본에서 활동했던 미국인 시볼드에 대한 그의 접근은 독도 문제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일 정책, 일본 정부의 정책 등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고리가 된다.

이러한 공헌은 현재까지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한미일 관계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부제에 "한미일 관계"를 넣었고, 앞에서 이종원의 동아시아 분석 방법의 중요성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 점은 독도 문제 뿐만 아니라 안보 문제, 경제 문제 등 냉전 시대 및 탈냉전 이후 현재까지의 모든 동북아시아의 문제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문제이다. 최근의 천안함 침몰만 하더라도 남북 사이의 문제뿐만 아니라 주일 미군의 후텐마(普天間) 기지 문제가 함께 거론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또 다른 백미는 책의 맨 앞에 있는 기존의 독도 연구에 대한 지적이다. 저자는 기존 연구의 경향을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 연구 중 잘못된 독해를 내리거나 정치적 의도로 사실을 가렸던 연구에 대해 철퇴를 내리고 있다. 특히 최근까지 한국학계에서 중요하게 이용되었던 츠카모토에 대한 그의 지적은 매우 날카롭다. 기존 연구 정리를 통해 '독도'의 어원을 밝히고, 예술 작품을 통한 '독도'의 새로운 형상화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쯤 되면 이제 이 책을 보지 않고서는 더 이상 독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 명약관화해진다.

그러나 모든 책이 그렇듯이 책을 보면서 불만이 없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참고 문헌을 제외하고서도 95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책을 보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 책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하는 고민에 빠지게 한다.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사뭇 단순하게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내용에 들어가게 되면 한 줄도, 하나의 각주도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도록 만든다. 너무나 큰 자료들을 선물해 준 반면, 그 선물들이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어렵게 만드는 측면 역시 적지 않다.

아울러 전체적으로 많은 자료들을 충실하게 분석하면서, 이 많은 자료들을 잘 엮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역사 연구의 장점이면서 단점이기도 할 것이다. 수많은 자료들은 책의 생명력을 길게 하지만, 책 자체를 통해서 독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문제들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얻기는 힘들다. 역사적인 실증 없이 너무 단순화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지만, 자료에 묻혀 전체적인 틀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중요한 한계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독도 문제를 통해서 한미일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위한 많은 자료들을 제시해 준다. 그러나 이종원이 제시했던 시간적 공간적 지연, 빅터 차가 제시했던 유사 동맹과 같은 한미일 관계의 특수성을 규정하는 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 분명 저자가 의도적으로 그러한 시도를 피해나갔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독자로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부분이다.

이러한 아쉬움은 이 책의 마지막에 '결론'이 없다는 점에서 극대화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마지막에서 저자의 생각을 한마디로 정리하고 싶은 것이 모든 독자의 희망이다. 저자는 결국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전체 내용을 보다보니 머리가 복잡해져 있는데, 무언가 한 마디를 날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저자의 문제로만 돌리고 싶지는 않다. 의미 있는 한 방보다는 앞에서 얘기했던 것을 다시 요약해서 반복하는 결론에 매몰되어 있는 한국 역사학계의 문제로 돌리고 싶다. 그나마 역사학자 중에서 이 책의 저자만큼 동북아 주변 상황을 동시에 해석하면서 넓은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드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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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항상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받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겉으로 보기에 여러 면에서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에 생긴 상처 한두 군데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마음의 상처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커다란 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모든 예술은 물론 문학은 사람들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치료 효과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정서적 문제들과 정신적 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책을 사용하는 독서 치료는 모든 연령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16세기 프랑스의 작가이자 의사였던 프랑수아 라블레는 환자의 처방전에 언제나 문학책 이름을 적어주기까지 하였다.

독서 치료는 책을 매개체로 치료하는 것을 말한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책속의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을 통해 삶의 괴로움과 아픔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갖고 있다는 동일시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내면에 쌓여있는 욕구 불만이나 심리적 갈등을 발견하고 이런 마음을 글로 쓰고 토론을 통해 표현하다보면 마음이 후련해지는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다. 그 후에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 문제에 대하여 제3자가 되어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독서 치료는 환자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성장과 발전의 수단으로 문학 작품을 나누기 원하는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효과가 있다고 보고된다.


▲ <마녀의 독서 처방>(김이경 지음,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김이경의 <마녀의 독서 처방>(서해문집 펴냄)은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책을 처방해주는 책이다. "설렘, 사랑, 치유, 희망, 위로, 이별"이라는 여섯 가지의 소재에 따라 '은근한 자부심이 고개를 들 때', '즐거운 나의 집', '바람피우고 싶은 날', '권태기에 대처하는 방법', '뒷담화가 하고 싶을 때', '사람이 싫어질 때', '우아한 숙취 해소제', '울고 있는 사람에게', '슬픔이 차오를 때', '삶의 의미를 잃었을 때', '가난을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 등 53꼭지의 다양한 상황들을 제시해주면서 그 때 읽을 수 있는 적절한 책을 소개하고 있다.

작은 제목에 따라 짤막한 일상적인 이야기가 수필처럼 나오고 그 상황에 맞는 책을 처방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개하고 있는 책 이야기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보면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내 마음이 평온해진다. 나와 닮은 삶이라서, 상처받은 것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불안하던 마음이 안정적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제목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어릴 적 내 소원은 내 방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좁은 방에서 형제들과 부대끼다 보면 늘 호젓한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지요. 스물이 넘어 내 방을 가진 뒤에는 독립을 꿈꿨습니다.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내 맘대로 살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었지요. 서른이 한참 넘어 독립했습니다. 꿈이 이루어졌으니 행복해야 하련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저물녘 남의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에도 눈시울이 붉어지며, 지상에 행복한 나의 집은 없는 것일까, 쓸쓸해했습니다.

(…) 매력적인 에세이를 쓰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은 <행복한 건축>에서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어떤 장소의 전망이 우리의 전망과 부합되고 또 그것을 정당화해준다면,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고 부른다. 집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이 스스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물리적인 집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의미의 집도 필요하다. 우리의 약한 면을 보상하기 위해서다. 우리에게는 마음을 받쳐줄 피난처가 필요하다."

<마녀의 독서 처방>은 그냥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는 것을 권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은 그냥 단숨에 쭉 읽고 처박아 둘 책이 아니라 한 권쯤 비치해 두고 상황에 따라 목차를 골라 읽으면 좋을 책이다. 목차를 훑어보고 마음에 끌리는 것, 현재 상황과 비슷한 것을 골라 읽다보면 감성이 풍부해지고 삶의 향기가 느껴진다.

책 속의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다 눈물이 덜 마른 채로 웃을 수도 있다. 책 안에서 권하는 책들의 소개를 읽다 보면 읽고 싶은 책이 한 둘이 아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 메모장이나 포스트잇을 미리 준비해두고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은근히 날카롭다. 이런 식이다.

7개월 무료 구독에 3만원 어치 상품권, 거기에 경제 신문까지 공짜로 넣어준다는 데 혹해서 보게 된 신문, 한마디로 후회막급입니다. 아침이 편안해야 하루가 편안한데, 아침마다 눈살을 찌푸리고 울화가 치미니 이래서야 어디 사람이 살겠습니까. 지치지도 않고 이어지는 나쁜 뉴스에 교묘한 눈속임으로 가득 찬 편파 보도까지, 해도 너무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런 차에 도서관 서가에서 <나쁜 뉴스에 절망한 사람들을 위한 굿뉴스>라는 책을 보니 눈이 번쩍 뜨이더군요.

요즘 공공도서관에서 개최하는 인문학 강의에 사람들이 붐빈다고 한다. 심지어 노숙자에게 기술을 가르치기보다는 인문학을 가르쳐 많은 성과를 얻다. 인문학은 내가 누구인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는 인간의 근본에 대한 학문이기 때문에, 노숙자들은 스스로 사고를 하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의 가능성을 깨닫고 그 삶에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가난을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을 읽으라고 처방한다. 철학, 예술, 논리, 시, 역사를 가르치는 인문학 강좌를 통해 '성찰하는 힘'을 가질 때 비로소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얼 쇼리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외친다.

"여러분은 이제껏 속아왔어요. 부자들은 인문학을 배웁니다. 인문학은 세상과 잘 지내기 위해서, 제대로 생각할 수 있기 위해서, 외부의 '무력적인 힘'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끼칠 때 심사숙고해서 대처해나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공부입니다."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이 가난을 극복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실제 사례가 담겨진 책의 내용을 통해 일깨워준다.

<마녀의 독서 처방>에는 역사, 문학, 사진, 고생물학, 환경, 건축, 시사 등 다양한 장르가 출현한다. <논어>까지 나온다. 그에 따라 다양한 책 속의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통해 박학다식한 지식을 쌓기를 원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상당히 유식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언뜻언뜻 든다.

작가는 집 앞에 있던 시립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한다. 도서관의 서가의 책들을 훑어보면서 보물 같은 책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기쁨을 느꼈을 작가의 모습이 상상된다. 이것이 도서관쟁이인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감동받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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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묘비에는 "우리는 그에 필적할 만한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Wir finden nimmer seines Gleichens)"라는 묘비명이 적혀 있다. 그 문구가 상징하고 있듯이 그는 매우 독창적이고 진지한 학자였다. 그는 특히 아무도 개척하지 않았던 사회학의 여러 분야에 매우 획기적인 업적을 남기었다. 그 가운데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김덕영 옮김, 길 펴냄)은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이고, 불후의 명저이다.

이 책이 막스 베버만 30여 년 가까이 연구한 학자, 김덕영에 의해 번역되었다는 것은 한국 학계에 커다란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그는 독일에서 베버 연구로 박사 학위 취득 이후, 교수 자격 논문까지 통과한 베버 연구에 혼신의 힘을 다 바친 진지한 연구자이다. 그러한 연구자에 의해 베버의 고전이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매우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에 더하여 그는 한 권의 저서에 가까운 양의 해제를 덧붙였다. '우리는 이에 필적할 만한 번역서를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과장일까?


▲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지음, 김덕영 옮김, 길 펴냄). ⓒ길
막스 베버는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사회학이라는 학문 영역을 개척한 칼 마르크스, 에밀 뒤르켐과 함께 세 명의 고전 사회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사회학의 많은 분야에서 수없이 많은 위대한 업적들을 남겼다. 그는 위대한 사회학 이론가이며, 동시에 정치사회학, 경제사회학, 특히 종교사회학, 문화사회학의 초석을 만들어놓은 위대한 학자이다.

베버는 사회학의 다양한 분과 영역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하지 않는다. 워낙 다양한 영역을 섭렵하며 지금도 사회학 논의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근대 사회 조직의 중요한 특징인 관료제의 공통점을 추출하여 그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론, 이념형을 고안한 학자이고, 보편적 세계사의 과정을 합리화로 파악하고 인간의 행위를 점차 '가치 합리성'이 아니라 '목적 합리성'이 지배하게 되는 것을 비판적으로 고발한 학자이기도 하다.

베버에게 중요한 것은 종교 연구였는데 그는 동·서양 문화의 차이를 종교의 교리에서 찾은 학자로서 유명하다. 예를 들어 동양의 종교는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는 '신의 그릇(bowl of god)'의 종교이고, 서양의 종교는 신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신의 도구(tool of god)'의 종교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그는 지금도 사회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사용되는 각종 개념에 대한 정의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권력에 대한 정의, 다양한 행위에 대한 정의, 지배의 유형에 대한 정의 등이 그것이다.

막스 베버(1864~1920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종교사회학 연구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학 연구의 중요한 초석이 되는 역저이다. 이 책에서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기 위한 여러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사회의 영향 가운데 하나인 종교의 영향에 의해 행위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는 잘 보여주고 있다.

우선 자본주의는 베버에게 근대인의 삶의 운명을 강력하게 결정하는 힘이었다. 그는 그 힘의 발생을 '경제적 상황의 반영인 상부구조로서' 파악한 마르크스를 소박한 사적 유물론이라고 비판한다. 그에게 자본주의 정신은 '적대적 세력들로 가득한 세계와의 험난한 투쟁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원인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그는 자본주의가 발생한 문화적 기원을 찾아냈다.

그 기원을 찾기 위해 베버는 가톨릭 신자들은 여전히 역사학이나 신학 공부를 선택하는데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경영학이나 공학을 선택하는 차이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에서 출발한다. 가톨릭 신자들이 비세속적이고, 금욕과 종교적 경건성을 견지하고 있다면, 프로테스탄트들은 자본주의적 영리 활동에 더 몰입하고 있는 차이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는 이 차이를 프로테스탄트의 '다소 유물주의적인 혹인 반 금욕적인 '세속적 쾌락'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순수한 종교적 특징'에서 찾고 있다.

베버는 서로 다른 종교적 특징을 가지는 가톨릭 교리와 프로테스탄트 교리의 차이는 두 신도 집단들로 하여금 자본주의에 대해서 서로 다른 행동을 하게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대 기독교 교리의 차이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특히 칼뱅의 프로테스탄트의 교리, '예정 조화설'에 대한 연구에서 그는 자본주의적 영리 추구의 행위가 신의 부름을 받은 증거라는 내용이 들어있음을 발견한다. 근검절약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이미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사람이고 돈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다. 결론적으로 돈을 많이 축적한 사람은 신으로부터 부름(소명=직업, Beruf)받은 사람이다.

기독교 영향권의 사회에서 신의 집으로 회귀할 수 없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확인할 수 없는, 또는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이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신의 구원을 받기 위한, 신의 말씀대로 살기 위한 것이 가장 중요한, 궁극적인 삶의 의미(Sinn), 삶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종교는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변수의 하나이다. 종교에 의해서 자본주의적 행동 양식이 허락되지 않는 한 자본주의적 생활양식과 직업관이 승리를 거둘 수는 없다.

"자본주의의 특성에 적응된 종류의 생활양식과 직업관이 '선택'될 수 있으려면, 즉 다른 종류의 생활양식과 직업관에 대해 승리를 거둘 수 있으려면, 우선 그것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함은 명백하다. 그것도 고립된 각 개인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인간 집단에 의해 담지되는 세계관의 형태로 형성되어 있어야만 한다." (79쪽)

뒤르켐이 개인의 외부에서 개인의 행위를 강제하는 '집합적 힘'을 사회학의 연구 대상으로 천명한 것과 같이 베버 역시 자본주의 정신을 고립된 각 개인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인간 집단에 의해 담지되는 세계관의 형태로 형성되는 것에서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고와 행위의 집합적 양식이 그것이다. 그러한 사고와 행위의 집합적 양식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시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베버는 에밀 뒤르켐과 더불어 사회학이 무엇이고 사회학의 연구 대상이 무엇인가를 정립한 사회학의 고전 이론가이다.

그 사고와 행위의 집합적 양식은 베버에게 칼뱅의 예정 조화설이었다. 자본주의에 적응된 종류의 생활양식과 직업관의 승리를 이끌어 준 것은 프로테스탄트 교리의 하나였던 칼뱅주의였다. 칼뱅주의는 노동 자체가 절대적인 자기 목적인 양 여기고 일하는 정신적 태도를 가능하게 했다. 교리와 자본주의적 현실의 요구 사이의 결합, 종교와 이윤 추구 행위의 선택적 친화성이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증명하고자 한 내용이다. '신을 위한 것이라면 너희가 부자가 되어도 좋다'가 그것이다. 직업에 내재된 구원의 확실성, 그것은 가톨릭에 의해 막혀있던 이윤 추구의 제약을 풀어 헤쳐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베버는 자신의 책의 말미에서 금욕주의가 세계를 변형하면서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금욕주의는 사라지고 그 대신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쇠우리에 갇혔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정신 없는 전문인, 가슴 없는 향락인이 된 무가치한 인간들이 양산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베버의 글은 독일 학자에게도 외국어에 해당한다. 문장이 매우 길고 현재에는 사용하지 않는 고어(古語)가 많아서 베버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수없이 많은 사례와 역사적 사건들의 등장은 읽는 이를 매우 힘들게 한다. 게다가 우리말로 옮겨지지 않는 많은 독일어의 장벽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러나 김덕영에게 이러한 것들은 결코 어려움이 될 수 없었던 듯하다. 문장도 매우 정확하고 간결하다. 이 힘든 일을 해낼 수 있었던 동력은 한국 사회학 발전에 대한 그의 애착과 소명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의 노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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