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항상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받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겉으로 보기에 여러 면에서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에 생긴 상처 한두 군데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마음의 상처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커다란 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모든 예술은 물론 문학은 사람들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치료 효과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정서적 문제들과 정신적 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책을 사용하는 독서 치료는 모든 연령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16세기 프랑스의 작가이자 의사였던 프랑수아 라블레는 환자의 처방전에 언제나 문학책 이름을 적어주기까지 하였다.

독서 치료는 책을 매개체로 치료하는 것을 말한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책속의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을 통해 삶의 괴로움과 아픔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갖고 있다는 동일시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내면에 쌓여있는 욕구 불만이나 심리적 갈등을 발견하고 이런 마음을 글로 쓰고 토론을 통해 표현하다보면 마음이 후련해지는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다. 그 후에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 문제에 대하여 제3자가 되어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독서 치료는 환자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성장과 발전의 수단으로 문학 작품을 나누기 원하는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효과가 있다고 보고된다.


▲ <마녀의 독서 처방>(김이경 지음,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김이경의 <마녀의 독서 처방>(서해문집 펴냄)은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책을 처방해주는 책이다. "설렘, 사랑, 치유, 희망, 위로, 이별"이라는 여섯 가지의 소재에 따라 '은근한 자부심이 고개를 들 때', '즐거운 나의 집', '바람피우고 싶은 날', '권태기에 대처하는 방법', '뒷담화가 하고 싶을 때', '사람이 싫어질 때', '우아한 숙취 해소제', '울고 있는 사람에게', '슬픔이 차오를 때', '삶의 의미를 잃었을 때', '가난을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 등 53꼭지의 다양한 상황들을 제시해주면서 그 때 읽을 수 있는 적절한 책을 소개하고 있다.

작은 제목에 따라 짤막한 일상적인 이야기가 수필처럼 나오고 그 상황에 맞는 책을 처방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개하고 있는 책 이야기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보면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내 마음이 평온해진다. 나와 닮은 삶이라서, 상처받은 것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불안하던 마음이 안정적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제목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어릴 적 내 소원은 내 방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좁은 방에서 형제들과 부대끼다 보면 늘 호젓한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지요. 스물이 넘어 내 방을 가진 뒤에는 독립을 꿈꿨습니다.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내 맘대로 살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었지요. 서른이 한참 넘어 독립했습니다. 꿈이 이루어졌으니 행복해야 하련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저물녘 남의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에도 눈시울이 붉어지며, 지상에 행복한 나의 집은 없는 것일까, 쓸쓸해했습니다.

(…) 매력적인 에세이를 쓰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은 <행복한 건축>에서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어떤 장소의 전망이 우리의 전망과 부합되고 또 그것을 정당화해준다면,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고 부른다. 집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이 스스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물리적인 집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의미의 집도 필요하다. 우리의 약한 면을 보상하기 위해서다. 우리에게는 마음을 받쳐줄 피난처가 필요하다."

<마녀의 독서 처방>은 그냥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는 것을 권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은 그냥 단숨에 쭉 읽고 처박아 둘 책이 아니라 한 권쯤 비치해 두고 상황에 따라 목차를 골라 읽으면 좋을 책이다. 목차를 훑어보고 마음에 끌리는 것, 현재 상황과 비슷한 것을 골라 읽다보면 감성이 풍부해지고 삶의 향기가 느껴진다.

책 속의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다 눈물이 덜 마른 채로 웃을 수도 있다. 책 안에서 권하는 책들의 소개를 읽다 보면 읽고 싶은 책이 한 둘이 아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 메모장이나 포스트잇을 미리 준비해두고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은근히 날카롭다. 이런 식이다.

7개월 무료 구독에 3만원 어치 상품권, 거기에 경제 신문까지 공짜로 넣어준다는 데 혹해서 보게 된 신문, 한마디로 후회막급입니다. 아침이 편안해야 하루가 편안한데, 아침마다 눈살을 찌푸리고 울화가 치미니 이래서야 어디 사람이 살겠습니까. 지치지도 않고 이어지는 나쁜 뉴스에 교묘한 눈속임으로 가득 찬 편파 보도까지, 해도 너무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런 차에 도서관 서가에서 <나쁜 뉴스에 절망한 사람들을 위한 굿뉴스>라는 책을 보니 눈이 번쩍 뜨이더군요.

요즘 공공도서관에서 개최하는 인문학 강의에 사람들이 붐빈다고 한다. 심지어 노숙자에게 기술을 가르치기보다는 인문학을 가르쳐 많은 성과를 얻다. 인문학은 내가 누구인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는 인간의 근본에 대한 학문이기 때문에, 노숙자들은 스스로 사고를 하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의 가능성을 깨닫고 그 삶에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가난을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을 읽으라고 처방한다. 철학, 예술, 논리, 시, 역사를 가르치는 인문학 강좌를 통해 '성찰하는 힘'을 가질 때 비로소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얼 쇼리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외친다.

"여러분은 이제껏 속아왔어요. 부자들은 인문학을 배웁니다. 인문학은 세상과 잘 지내기 위해서, 제대로 생각할 수 있기 위해서, 외부의 '무력적인 힘'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끼칠 때 심사숙고해서 대처해나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공부입니다."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이 가난을 극복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실제 사례가 담겨진 책의 내용을 통해 일깨워준다.

<마녀의 독서 처방>에는 역사, 문학, 사진, 고생물학, 환경, 건축, 시사 등 다양한 장르가 출현한다. <논어>까지 나온다. 그에 따라 다양한 책 속의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통해 박학다식한 지식을 쌓기를 원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상당히 유식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언뜻언뜻 든다.

작가는 집 앞에 있던 시립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한다. 도서관의 서가의 책들을 훑어보면서 보물 같은 책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기쁨을 느꼈을 작가의 모습이 상상된다. 이것이 도서관쟁이인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감동받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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