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경영학과에서는 무엇을 배울까? 우선 경영학, 초급 수준의 경제학, 역시 기초 수준의 회계학을 배운다. 그 다음부터는 인사 관리, 재무 관리, 마케팅 관리, 생산 관리… 이렇게 '관리(Management)'의 연속이다. 심지어 '경영 정보 시스템(MIS)'이라는 전문 프로그램 관리 기술까지 배운다.

오늘날 '가장 실용적 학문'이라고 추앙받는 경영학을 전공한 이들이 과연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제대로 써먹는 날이 올까? 경영학의 핵심인 '관리' 기술을 이용해 부하 직원을 '관리'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애초에 경영학은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학문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CEO 중 경영학을 전공한 이는 얼마나 될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경영학을 전공한 CEO와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에는 과연 경영 능력에서 차이가 있기는 할까? 경영학은 혹시 대학 교수의 밥벌이를 위한 '만들어진' 학문은 아닐까? 이렇게 경영학의 존재 의의 자체를 묻는 질문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출간되는 '경영학 때리기' 책들이 그것이다.

수백만 달러의 돈을 벌던 전직 컨설턴트 매튜 스튜어트가 쓴 <위험한 경영학>(이원재·이현숙 옮김, 청림출판 펴냄). 기업들이 앞을 다퉈 최고의 인재로 모시는 MBA 전공자가 오히려 회사를 망치는 존재라고 강변하는 세계적 경영학가 헨리 민츠버그의 <MBA가 회사를 망친다>(성현정 옮김, 북스넛 펴냄).

경영학은 허구다


▲ <위험한 경영학>(매튜 스튜어트 지음, 이원재·이현숙 옮김, 청림출판 펴냄). ⓒ청림출판
<위험한 경영학>은 철학을 전공한 컨설턴트였던 저자가 기업 컨설팅의 세계에서 좌충우돌한 경험담과 프레더릭 윈슬로 테일러, 엘턴 메이오, 더글러스 맥그리거, 이고르 앤소프, 마이클 포터, 톰 피터스 등 이른바 '경영학의 대부들'이 주창한 경영 이론을 병렬식으로 배치하며 경영학의 공과를 짚는다.

저자가 경험한 컨설턴트의 세계는 한 마디로 말해 사기 도박판이다. 갓 대학을 졸업한 새파란 젊은이가 기업 CEO를 '협박'해 수백만 달러를 뜯어내고, 어떤 주장이든 유행이 되면 이를 이용해 다시 돈벌이 궁리에 나서는 식으로 말이다. 컨설팅의 다섯 단계는 간단히 말해 '꼬시기→빨대 꽂기→단물 빨기→끝내기→줄행랑'으로 요약된다.

저자는 컨설턴트로서 한 가장 중요한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많은 경우 컨설턴트의 일은 회사의 한 부분에서 수행한 일을 정리해서 회사의 다른 부분에 전해 주는 것이었다. 종종 조직 내 정보 부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고위층의 메시지를 모아서 색깔을 입히고 내용을 가다듬어 구성원에게 싫증나도록 반복했다. 대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직원들 모두가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하며, 회사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경영학자들이 '마법의 매트릭스'로 칭송하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BCG 매트릭스'도 황당함 그 자체다. 저자는 "BCG 매트릭스는 기업의 거대한 사업의 운명을 시장 점유율과 성장률이라는 두 가지 요소만으로 결정하라고 제안한다"며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영화를 보러 갈지를 정할 때에도 BCG 매트릭스가 수천 명의 일자리가 달린 상황을 분석하는 데 사용하는 변수보다 더 많은 변수를 사용한다"고 코웃음을 친다.

믿어도 될까. 근거가 있다. 1994년 와튼 스쿨의 스콧 암스트롱, 로데릭 브로디는 경영대학원 학생을 대상으로 BCG 매트릭스의 효과를 검증하는 실험을 했다. 학생의 압도적 다수가 실제 수익성과는 무관하게 매트릭스 결과에 따라 투자 결정을 했다. 그러나 실제로 매트릭스를 사용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오히려 자본이익률이 낮았다. BCG 매트릭스의 활용도는 원숭이에게 기업 경영을 맡기는 것만도 못했다.

경영 대가들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기업 경영의 마법 역시, 과장과 생략이 자의적으로 마구 뒤섞인 근거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경영학이란 학문 자체를 낳는 계기가 된 테일러의 저 유명한 피그 아이언 실험, 인간 중심 경영 사상을 낳은 호손 공장 실험 등은 모두 심각한 조작이 가해진 허구였다. 지금도 전 세계 경영학도들이 위대한 사상가로 칭송하는 마이클 포터 등의 '대가'들은 자신이 이전에 했던 말과 모순되는 말을 거리낌 없이 했다. 도대체 여기에 '시대를 관통하며 일관된 이론 체계를 갖춘' 학문적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누구를 위해 경영학은 작동하나

그럼에도 경영학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큰 위세를 떨치는 학문이다. 당장 한국의 오늘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단언컨대, 이 땅의 대부분의 대학생은 경영학 수업을 듣지 못해 안달이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어떤 대학교는 모든 학생에게 경영학을 필수로 가르칠 태세다.

<위험한 경영학>은 이런 세태를 설명할 실마리도 제공한다. 모든 경영학의 대가는 사회를 위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경영학 대가들의 지향점은 같았다. '어떻게 하면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내고, 노동자가 고분고분 말을 잘 듣게 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 바람직한 사회 구조는 이렇다. 산업의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기업의 독점 현상이 강화되고), 이에 따라 기업은 지속적으로 초과이윤을 내며(소비자의 피해는 극대화되고), CEO는 회사의 제품에는 관심을 기울일 필요도 없고 그저 조직만 잘 관리하면 되는(그래야 컨설턴트가 돈을 벌 길이 생기므로) 그런 식의….

경영학에 홀리는 대학생의 바람과는 달리, 애초에 경영학은 나이든 경영자를 위한, 그리고 대기업의 독점적 이윤 추구 행위를 합리화할 목적으로 기능했다. 경영학이 위세를 떨칠수록 이런 도그마가 사회에 더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건 당연하다. 신자유주의화의 진행 속도가 빨라질수록 경영학을 추앙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MBA 무용론


▲ <MBA가 회사를 망친다>(헨리 민츠버그 지음, 성현정 옮김, 북스넛 펴냄). ⓒ북스넛
이런 경영학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경영학의 꽃'인 MBA를 둘러싼 불만이다. 주류 경영학자 중 최고의 명성을 누리는 헨리 민츠버그는 <MBA가 회사를 망친다>에서 "MBA가 기업에 아무런 효용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통렬히 비판한다. 그는 MBA가 대학의 돈벌이에만 기여하는, 비실용적인 학문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비즈니스 스쿨이 직업 훈련 교육을 위한 곳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1988년 휴 머레이가 자신의 논문 '경영 교육과 MBA'에서 밝힌 글을 인용하면 '학문적 권위에 대한 힘은 놀라울 만큼 강력하고 지배적인 것'이었다. 머레이는 이런 흐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이와 같은 학문 위주의 풍토 덕분에 혜택을 본 사업은 비즈니스 스쿨의 사업뿐일 것이다.'

MBA로 이득을 보는 이는 대학뿐이라는 얘기다. 한국이 따르는 영미의 주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늘날 경영학이 '기업 경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으로 비쳐지는 것이 흥미롭다. 민츠버그는 'MBA 무용론'의 연장선상에서 다음과 같이 독설을 퍼붓는다.

"리더로서 타고난 재능을 가진 이는 따로 있다. 경영학을 아무리 많이 배운들 좋은 리더로서의 자격과는 무관하다."

"MBA는 기업 경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컨설턴트가 돼 큰돈을 빠른 시일 내에 벌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톰 피터스가 그랬다)이나 취직을 위해 수억만 금이라도 바칠 각오가 된 취업 준비생이 필요한 대학(대다수 대학교가 그렇다)에 소중할 뿐이다."

"경영자를 위한 학위(MBA)가 왜 취업 지망생을 위해 쓰이는가? 이런 학위가 학문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인가."

그러고 보니 대학 재학 시절 한 경영학과 교수도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정말로 이제는 경영학을 쓰레기통에 버릴 때다.

"여러분, 경영학이 학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경영학은 기술을 가르칠 뿐입니다. 인문학이나 경제학 수업을 많이 들으세요. 기본 바탕이 탄탄히 갖춰지지 않은 사람은 곧 한계를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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