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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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추리소설 애독자였더랬다. 그러다가 잘 팔리는 추리소설의 여성혐오적 범죄 패턴과 서사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던 어느날 완전히 질려버려서 추리소설의 독서를 뚝 끊고 살았더랬다. 그러다 작년에 드디어! 읽은 밀레니엄 시리즈가 완전히 사그라든 줄 알았던 내 안의 추리소설을 향한 사랑에 불을 끼얹었고 또 한동안 잔잔히 지내다 이 책을 만났다, <퍼핏 쇼>.


워싱턴 포와 틸리 콤보의 다음 이야기를 당장 원한다! <퍼핏 쇼>가 워싱턴+틸리 콤보 시리즈의 첫편인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두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아직 이 책 한 편의 서사를 위해서만 그려졌달까? 그 뒤에 숨겨진 두 캐릭터 -그리고 주변 인물들도- 의 더 입체적인 사연과 역사가 궁금하다. 그로인해 얼마나 더 문맥이 풍성해지고 그 풍성해진 문맥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나갈 스토리는 또 얼마나 새롭고 웅장하고 흥미진진할지! 이 작가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된 것도 김해온 번역가님이 원서를 읽고 직접 번역 제안서를 여러 출판사에 돌린 덕분이라고 옮긴이말에 써 있었다. 김해온 번역가님의 탁월한 번역서 선택에 박수를 보내며!  김해온 번역가님! 다음 책도 번역 해 주세요!!!!


책 서문에 크레이븐 작가의 한국어 독자 인삿말이 먼저 실린 것도 참 좋았다. 나는 그 지역의 '나와바리'(일본어의 잔재라는 걸 알고 있지만 아무리 번역하려 해도 그 맛이 안살아서... 부득이하게(?)계속 사용하고 있는 단어이다.)가 자신의 구역에 대해 쓰는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그 '나와바리'의 가닥이 느껴졌달까.. '어디 이 구역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쓸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하는 그런 자신감이 서문에서부터 딱 느껴져서 신뢰도 가고 좋았다. 그 서문을 넘기자마자 시작되는 환상열석에서 불타는 희생자의 장면...


나는 추리에 완전 잼병이어서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범인을 맞춘 적이 거의 없는데 이 책은 초반에서부터, 그러니까 주인공이 범인을 알게된 바로 그 지점이 나오는 초반에서부터 "어?이상한데? 이거 쟤가 범인 아니야?" 싶었고 바로 그 부분이 복선이었다. 그치만 범인이 알려지고 이야기가 딱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밝혀지는 서사가 따로 있기 때문에 범인을 알고 읽어도 책 읽는 재미가 줄지는 않았다.


아무튼, 일단, 읽어보시라!



추신.

이 책을 읽고 컴브리아 지방에 완전 빠져버려서... 컴브리아 여행 찾아보고, 여행 경로 찾아보고 하는데 너무 외진 곳이어서 ㅋㅋㅋㅋ 차가 없으면 사실 불가능한 여행인 것이야... 여기 너무 더워서 여름에 금요일에 하루 연차 내고 주말 길게 해서 컴브리아 가서 그냥 자연 속에 푹 박혀서 심심하게 책이나 읽고 오고 싶은데 운전자 좌석이 상반된 영국에서 차를 렌트하고 외진 곳까지 혼자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ㅠ 그리고 책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수사를 위해 묵는 섑 호텔이 실제로 존재하는 호텔이란 거 여러분 아셨는지! 진짜로 나 저기 너무 가고 싶어..ㅠㅠㅠㅠ 어디 저랑 같이 한 2박 3일 정도 컴브리아 가서 자연 속에 박혀서 맛없는 영국 음식 먹고(?) 책이나 읽고 오는 그런 일정으로 가실 분 없을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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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마이너 필링스 -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앳(at) 시리즈 1
캐시 박 홍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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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아시안 여성으로 살면서, 여러 갈래로 교차되는 소수자성에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내게 좋은 공부가 될 것 같아서 읽은 책. 모순으로 가득 찬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에서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위로를 얻었다.


그녀의 이야기에서 내 모습을 보았다.


자, 나는 지금 인종차별, 혹은 성차별로 인한 폭력 혹은 차별에 노출되었다. 

차별을 당한 그 순간에 1차로 화가 나고, 그 차별을 부정하는 이를 볼 때는 2차로 피가 거꾸로 솟고, 그 차별을 차별로 인식조차 못 하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 3차로 머리 뚜껑이 열리고, 이런 나를 위로하려는 피씨한 백인들을 보면 빡이라는 게 제대로 친다.


폭발하는 분노가 잦아들 때 쯤, 그 당시 내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일종의 후회와 자책의 시간이 찾아온다. 나는 머릿속에서 혼자 그 상대를 쥐어 팼다가, 사이다 발언으로 통쾌하게 말싸움으로 승리를 하고 주위의 박수 세례를 받다가를 반복하다가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기력감에 휩싸여 혼자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서 질질 짠다. 


그러다가 또 돌연, 그 새끼가 아무 생각 없이 뱉은 혐오의 발언 하나로 내가 지금 이렇게까지 혼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그 새끼는 지금 나한테 그런 씹소리를 뱉은 사실조차도 기억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그러나 행복하게 하루를 지내고 있을 텐데!! 억울함이 밀려온다. 

다시 분노가 나를 감싼다!!


이렇게 무한 반복되는 내 분노 뫼비우스의 띄... 


그런데 만약 나에게 차별을 기반한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 역시 나와 다른 카테고리에서, 또는 같은 카테고리에서 소수자성을 갖고 있다면? 나는 그 자가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차별 행사를 '이해'해 줘야 하는 건가? 그가 나에게 이런 차별을 가하기까지 그가 살아온 환경이 너무나 그에게 차별적이고 적대적이어서, 그도 차별적 구조 속의 또 한 명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그는 가해자이기 전에 사회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그를 비난하기보다는 그가 그렇게 자랄 수밖에 없었던 사회를 비난해야 한다? 혐오에는 혐오로 맞서면 안 되니까? 


그럼 이제, 어쨌든 벌어진 폭력 속에 피해자인 나는 사라지고 마는 거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어디에 호소를 하는가. 어쨌든 맞아서 피를 흘리는 사람은 있는데 그 피해자는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을 때. 


서로 다른 소수자성과 교차할 때, 그래서 더 이상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알 수 없게 될 때. 그 모순적 상황에서 결국 각기 다른 카테고리의 피해자들끼리 피해자성을 내세워 누가 제일 약자인지를 겨루는 지경까지 가고. 결국 이 시작과 끝이 없는 싸움에 승자는, 이 패싸움을 멀리서 팔짱 끼고 지켜보는 헤테로 백인 기득권 남성이다. 그들 중 간혹가다 깨어있는 일부가, 피씨함으로 무장하고 소수자 편에 서서 그들을 지지하면 이제 그들은 기득권에 이제 피씨 왕관까지 쓴 피씨왕이 되는 거다. 


하... 타인을 향해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너도나도 치켜세워주는 개념남이 되는 건 얼마나 쉬운가. 자신은 절대로 겪을 일도, 겪을 수도 없는 구조적 차별에 오로지 도덕과 윤리적 측면에서 약자의 편에 서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약자끼리 서로 싸우는 사이에, 아니 우리가 서로 치고받고 싸우기를 독려해서,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사회 질서를 공고히 해 나가는 이 구조가 문제인 건데, 그 와중에 옆에 서서 


"그래 너도 약자고 쟤도 약자니 너네 둘이 약자끼리 사이좋게 지내~"

이렇게 단 1초도 평생 소수자로 살 리가 없는 운명을 지닌 자가 이렇게 말하기는 얼마나 쉽냐고!!!


그런데 또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는 거다..

물론 아무리 백인 기득권 남성이 바른 소리를 해도 나는 속으로 재수 없어할 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 소리를 해 주는 그들의 존재가 사실 중요하기는 하잖아요? 막말로 차별하는 백인보다는 재수 없어도 옳은 말 하고 소수자 편에 서주는 사람이 나은 건 맞잖아.. 대신 이 재수 없음을 최소화하려면 그들은 조신해야 해. 막 피씨 한 자기 모습에 취해가지고 당사자들 옆에 놔두고 자기가 막 노발대발하고 나대면 또 그거는 안되는 거거든... 명예백인, 명예 백인 되는 거지..


암튼, 이제는 책 얘기로 돌아가서.

이 책은 미국으로 이민을 온 부모님 밑에서 나고 자란, 그러니까 애초에 미국(제1세계)이 자신의 모국인, 아시안계'미국인'의 이야기이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유년 시절을 모두 한국에서 보낸 후에 나의 선택으로 해외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나는 결코,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민자 2세대의 서러움과 고통이 그녀의 책에는 쓰여 있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 고통엔 깊이 공감하며, 또 나는 모를 고통을 읽고 나서는 조금은 그들을 이해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부를 했다. 전반적으로 나는, 공감을 하며 읽을 수 있었고 또 이렇게 모순된 감정을 느끼는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에 조금은 안도를 할 수 있었다. 내가 혼자 꼬인 사람이 아니구나. 이렇게 우리가 꼬이고 또 꼬인 게 그냥 우리가 꼬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구조적 차별로 층층이 둘러싸인 사회가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거구나 느꼈다. 


그렇지만 바로 그 모순된 감정의 구체적인 근원이랄까. 그리고 그 모순을 명쾌하게 정의해 주고 그러므로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그걸 배우고 싶었다. 위에서 내가 쓴 그런 모순에 대해서 조금 배울 수 있었음 하고 바랐다.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을까 했지만 아쉽게도 발견하지 못했다. 모순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해결책(또는 최선책...)에 대한 정의보다는 그 모순된 감정, 그 감정 자체의 날것,에 초점을 맞춘 책이었다. 물론 이 책은 에세이고 그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엮은 책이기 때문에 장르의 역할을 다 한 책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소수자의 교차성과 차별의 교차성에 생소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라 생각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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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3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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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초-중반 격변하는 세계 속, 그 변화에 귀를 기울이고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반응하며,세상이 강요하는 운명을 거스르는 여자들의 이야기. 성차별,인종차별이 당연했던 당시 백인 주류 남성 중심 사회야말로 야만의 사회가 아닐런지. 미래엔 지금 이 순간도 여전히 야만의 사회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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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보트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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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보트>는 나의 인생 소설이다.

인생 소설이란 것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는 뜻도 아니고, 가장 문학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작품도 아니다. 이 책은 내게 마치 가방 속에 항상 넣고 다니는 소지품같은 존재다.


나는, 어릴적 좋아하는 영화를 비디오 테이프로 보고 또 보고 테이프가 늘어날 때 까지 보듯이 나는 이 책을 주기적으로, 습관적으로 읽는다.


매번 읽을 때 마다 먹먹하고, 매번 읽을 때 마다 달리 읽힌다. 연애 소설이었다가, 불륜 치정 소설이었다가, 성장 소설이었다가, 여행기였다가, 또는 이 모두였다가,


요코에게 감정 이입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요코의 그 남자에 내가 아는 어떤 한 사람을 투영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 책을 정말 많이 읽어서 내 머릿 속엔 이 소설의 내용들이 영화처럼 시각화 되어있다. 실제로 영화화 되었다고는 했는데 영화를 보진 못했다. 한국에 개봉된 것 같지는 않고 몇 번 구하려고도 해봤는데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요코와 소우코의 모습, 그들의 집, 풍경, 드륵드륵 소리를 내는 에스프레소 머신, 오래 신어 요코의 발에 딱 맞게 닳은 플랫슈즈, 소우코가 토끼모양으로 조각한 사과 조각이 이미 내 머릿 속에 나만의 상상과 이미지로 짙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영화로 봐서 나만의 머릿 속 영상을 잃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신간이 나왔을 때 (<등 뒤의 기억>이었던 것 같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그의 신간 사인회가 열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신간과 <하느님의 보트>책 두 권을 들고 사인을 받으려 줄을 섰다. 시간상 한 권의 책에만 사인을 받을 수 있었는데, 통역가 분의 도움으로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느님의 보트>책에 사인을 받을 수 있겠냐고 여쭸다. 작가님은 흔쾌히 내 이름을 서툰 한글로 따라 '그리고' 그 다음에 산돌광수체같은 글씨체로 그의 이름을 한자로 적었다. 이 책은 너무 오래 읽어 닳고 닳았는데도 여러번의 이사를 거쳐 지금 프랑스 파리에 있는 우리집 책장에 꽂혀있다.


이 책에 대해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너무 많아서, 어디서 부터 무얼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스포일러 주의>


추신. 이 책을 읽은 독자분들께 너무 묻고 싶었던 질문 하나.

제 주위엔 이 책을 읽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묻고 싶어도 물을 수 없었어요.

여러 블로그에서 다른 분들이 남기신 후기도 읽어 봤는데, 결말에 대한 언급은 없더라구요.


마지막 장면에 요코가 드디어 그 남자를 만나는 장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요코가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소우코가 떠나고 그마저 남아 있던 삶의 의미를 잃고선 도쿄에 올라오고 나서 요코의 상태가 하루 하루 심각해진 내용들이 그 전에 나와 있는데. 

읽고 나서 저처럼 요코가 자살했다고 생각하신 분은 안계신가요?

전 요코가 죽고 나서야 드디어 그를 만났다고,

혹은, 요코가 그 남자를 만난게 그의 환상이라고 생각했어요.


혹시 이 리뷰를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 계시다면. 결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댓글 남겨주실 수 있으세요? 다른 분들의 의견이 너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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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보트 2024-08-28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이 책이 인생 책입니다. 쓰신 글에 구구절절 동의했네요. 어떤 단어를 말하고나면 진짜로 그정도인가 생각하게 되는데 이 책에는 ‘좋아한다‘라는 말을 한치의 거리낌과 의심없이, 당당하게 쓸 수 있습니다. 제게 이 책은 별점 5점짜리(만점) 인생 도서이지만 완벽이랑은 다른 의미인거 같아요. ‘인생‘, ‘최고‘라는건 정말 주관적인 영역이니까 오히려 추천은 안하게 되더라고요.
연초가 되면 이책을 꺼내서 읽습니다. 저도 일련의 과정을 보고 마지막에 요코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앙이 무너졌다고 여겼거든요.(소우코, 모모이 선생님; 저는 요코가 모모이 선생님과의 유대가 끊어진 게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그렇다면 요코는 하느님의 보트에서 내린걸까요 계속 타고 있는걸까요. 달자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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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직장 출퇴근길에 읽을 책으로 연년세세를 집어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과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꽤 먼 곳이라 저번에 한국에서 택배로 받은 책 중에서 호흡이 제법 길어 보이는 책을 집었는데 오고 가는 길에 한 권을 다 읽어 버렸다.




황정은 작가의 책을 몇 권 읽지도 않았고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고르라고 하거나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고르라고 했을 때에도 그와 그의 책을 고른 적은 없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내 친구는 황정은 작가를 아주 좋아한다. <백의 그림자>는 그저 그랬고 <디디의 우산>은 '잘' 읽었다 (재미있게 읽었다, 는 말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서). <연년세세>는 내가 읽은 그의 책 중에 가장 감명 깊고 여운이 길게 남는 책으로 한동안 남을 것 같다. 가족의 이야기로 읽힐지 궁금하다는 작가의 말에, 나는 가족의 이야기라기보단 여성 서사, 그러니까 어머니의 이야기로 읽혔다고 속으로 대답했다. 작가가 여성의 서사에 환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보다는, 가늘거나 굵거나 또는 길거나 짧은 여러 이야기를 잔잔한 촛불로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느낌으로 독자에게 보여주는 느낌이어서 더욱더 좋았다.




곱씹게 되는 구절과 문장이 많아도 빨리 읽히는 소설이었다. 아주 긴 첫 출퇴근길이 짧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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