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마이너 필링스 -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앳(at) 시리즈 1
캐시 박 홍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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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아시안 여성으로 살면서, 여러 갈래로 교차되는 소수자성에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내게 좋은 공부가 될 것 같아서 읽은 책. 모순으로 가득 찬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에서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위로를 얻었다.


그녀의 이야기에서 내 모습을 보았다.


자, 나는 지금 인종차별, 혹은 성차별로 인한 폭력 혹은 차별에 노출되었다. 

차별을 당한 그 순간에 1차로 화가 나고, 그 차별을 부정하는 이를 볼 때는 2차로 피가 거꾸로 솟고, 그 차별을 차별로 인식조차 못 하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 3차로 머리 뚜껑이 열리고, 이런 나를 위로하려는 피씨한 백인들을 보면 빡이라는 게 제대로 친다.


폭발하는 분노가 잦아들 때 쯤, 그 당시 내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일종의 후회와 자책의 시간이 찾아온다. 나는 머릿속에서 혼자 그 상대를 쥐어 팼다가, 사이다 발언으로 통쾌하게 말싸움으로 승리를 하고 주위의 박수 세례를 받다가를 반복하다가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기력감에 휩싸여 혼자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서 질질 짠다. 


그러다가 또 돌연, 그 새끼가 아무 생각 없이 뱉은 혐오의 발언 하나로 내가 지금 이렇게까지 혼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그 새끼는 지금 나한테 그런 씹소리를 뱉은 사실조차도 기억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그러나 행복하게 하루를 지내고 있을 텐데!! 억울함이 밀려온다. 

다시 분노가 나를 감싼다!!


이렇게 무한 반복되는 내 분노 뫼비우스의 띄... 


그런데 만약 나에게 차별을 기반한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 역시 나와 다른 카테고리에서, 또는 같은 카테고리에서 소수자성을 갖고 있다면? 나는 그 자가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차별 행사를 '이해'해 줘야 하는 건가? 그가 나에게 이런 차별을 가하기까지 그가 살아온 환경이 너무나 그에게 차별적이고 적대적이어서, 그도 차별적 구조 속의 또 한 명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그는 가해자이기 전에 사회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그를 비난하기보다는 그가 그렇게 자랄 수밖에 없었던 사회를 비난해야 한다? 혐오에는 혐오로 맞서면 안 되니까? 


그럼 이제, 어쨌든 벌어진 폭력 속에 피해자인 나는 사라지고 마는 거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어디에 호소를 하는가. 어쨌든 맞아서 피를 흘리는 사람은 있는데 그 피해자는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을 때. 


서로 다른 소수자성과 교차할 때, 그래서 더 이상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알 수 없게 될 때. 그 모순적 상황에서 결국 각기 다른 카테고리의 피해자들끼리 피해자성을 내세워 누가 제일 약자인지를 겨루는 지경까지 가고. 결국 이 시작과 끝이 없는 싸움에 승자는, 이 패싸움을 멀리서 팔짱 끼고 지켜보는 헤테로 백인 기득권 남성이다. 그들 중 간혹가다 깨어있는 일부가, 피씨함으로 무장하고 소수자 편에 서서 그들을 지지하면 이제 그들은 기득권에 이제 피씨 왕관까지 쓴 피씨왕이 되는 거다. 


하... 타인을 향해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너도나도 치켜세워주는 개념남이 되는 건 얼마나 쉬운가. 자신은 절대로 겪을 일도, 겪을 수도 없는 구조적 차별에 오로지 도덕과 윤리적 측면에서 약자의 편에 서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약자끼리 서로 싸우는 사이에, 아니 우리가 서로 치고받고 싸우기를 독려해서,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사회 질서를 공고히 해 나가는 이 구조가 문제인 건데, 그 와중에 옆에 서서 


"그래 너도 약자고 쟤도 약자니 너네 둘이 약자끼리 사이좋게 지내~"

이렇게 단 1초도 평생 소수자로 살 리가 없는 운명을 지닌 자가 이렇게 말하기는 얼마나 쉽냐고!!!


그런데 또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는 거다..

물론 아무리 백인 기득권 남성이 바른 소리를 해도 나는 속으로 재수 없어할 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 소리를 해 주는 그들의 존재가 사실 중요하기는 하잖아요? 막말로 차별하는 백인보다는 재수 없어도 옳은 말 하고 소수자 편에 서주는 사람이 나은 건 맞잖아.. 대신 이 재수 없음을 최소화하려면 그들은 조신해야 해. 막 피씨 한 자기 모습에 취해가지고 당사자들 옆에 놔두고 자기가 막 노발대발하고 나대면 또 그거는 안되는 거거든... 명예백인, 명예 백인 되는 거지..


암튼, 이제는 책 얘기로 돌아가서.

이 책은 미국으로 이민을 온 부모님 밑에서 나고 자란, 그러니까 애초에 미국(제1세계)이 자신의 모국인, 아시안계'미국인'의 이야기이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유년 시절을 모두 한국에서 보낸 후에 나의 선택으로 해외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나는 결코,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민자 2세대의 서러움과 고통이 그녀의 책에는 쓰여 있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 고통엔 깊이 공감하며, 또 나는 모를 고통을 읽고 나서는 조금은 그들을 이해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부를 했다. 전반적으로 나는, 공감을 하며 읽을 수 있었고 또 이렇게 모순된 감정을 느끼는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에 조금은 안도를 할 수 있었다. 내가 혼자 꼬인 사람이 아니구나. 이렇게 우리가 꼬이고 또 꼬인 게 그냥 우리가 꼬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구조적 차별로 층층이 둘러싸인 사회가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거구나 느꼈다. 


그렇지만 바로 그 모순된 감정의 구체적인 근원이랄까. 그리고 그 모순을 명쾌하게 정의해 주고 그러므로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그걸 배우고 싶었다. 위에서 내가 쓴 그런 모순에 대해서 조금 배울 수 있었음 하고 바랐다.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을까 했지만 아쉽게도 발견하지 못했다. 모순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해결책(또는 최선책...)에 대한 정의보다는 그 모순된 감정, 그 감정 자체의 날것,에 초점을 맞춘 책이었다. 물론 이 책은 에세이고 그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엮은 책이기 때문에 장르의 역할을 다 한 책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소수자의 교차성과 차별의 교차성에 생소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라 생각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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