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배불리 먹고 약간은 나른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소파 팔걸이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마주 보고 누운 창문이 열린 틈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반대쪽 팔걸이에 올린 발가락 사이를 통과했다. 시원했고, 쾌적했고, 해가 지고 난 후의, 아직 어둠이 완전히 장악하지 않은 하늘의 붉은빛이 아름다웠다. 읽던 책을 마저 읽으려고 손을 뻗어 <안나 카레니나>를 짚었다. 양손으로 들기엔 꽤 무거워서 배 위에 책을 걸치고선 읽기 시작했다.
낮 동안 달궈진 거실 안에 들어오는 여름 해 질 녘의 선선한 바람에 배는 부르겠다, 잘 시간은 아직 남았겠다, 자기 전까지의 평일 시간. 기분이 좋았다.
책을 펼친지 얼마 되지 않았다.
편하게 누운 자세에 입고 있던 실내용 하늘색 잔 꽃무늬가 박힌 얇은 민소매 원피스는 골반 언저리에 말려 올라가 있었다. 무심결에 오른손으로 잠시 책을 받치고 왼손을 가져가 왼쪽 골반을 긁었다.
아니, 무슨 골반이 이렇게 물렁물렁해?
처음엔 내가 살이 찐 건가,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기엔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골반이 원래 이렇게 말랑말랑했나?
허벅지 위에서부터 골반뼈, 즉 장골 부분의 뼈가 느껴지기는커녕 물렁거리다 못해 손가락으로 누르면 그 부위가 마치 어린아이의 볼을 찌르듯 푹 들어갔다. 책을 내려놓고는 양손으로, 왼손으로는 왼쪽 골반을, 오른손으로는 오른쪽 골반을 만지며 허벅지 끝부터 천천히 올라왔다. 팬티 라인에 다다랐을 때, 오른손가락에서는 느껴지는 단단한 장골이 왼 손가락에선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한국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뭐야? 뭐야? 이거 뭐야?"
나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손가락으로 골반을 더듬으며 왼쪽 골반의 장골의 흔적을 찾아보려 했다. 골반뼈의 존재는 딱딱하게 내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다가 옛 수술 흉터 자국 위를 지나갈 때 갑자기 뚝. 끊겼다.
분명히 의사가 수술 전에 골반뼈는 절단해도 다시 자라는 몇 안 되는 부위라고 했었다. 그 당시 의사가 했던 말을 나는 이후에 얼마나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되풀이했는지 모른다.
"손목 뼈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려면 뼈를 자르고 그 자리에 새로운 뼈를 이식해야 하는데, 제일 안전한 건 아무래도 자가뼈잖아요? 그런데 우리 몸에서 골반뼈는 잘라도 다시 자란대요. 신기하죠? 그거 아셨어요? 전 몰랐어요. 아무튼 그래서 골반뼈를 오 센티 정도를 잘라서 부수고 그걸 손목에 다시 이식한 거예요."
그랬기 때문에 나는 골반뼈가 다시 자란 줄 알았다.
다시 자라서 붙은 줄 알았다.
원상 복귀가 됐다고 착각했다.
아픈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아프지 않으니 다 나은 거겠지, 그 말인즉슨 다 났다는 거겠지, 내 멋대로 생각하고 믿었던 것이다.
뼈가 자라다 만 건지 아니면 아예 조금도 자라지 않은 건지, 육안으로는 살가죽 안의 뼈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수술 부위에서부터 골반뼈가 뚝 끊겨 있다는 걸 수술한 날로부터 11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부재는 그 부재 자체로 부재일까? 아니면 부재를 인식해야지만 비로소 부재가 되는 걸까?
그날 저녁, 선선한 어느 여름밤에 나는 부재를 모르고 지냈던 11년간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꼈다.
평소에 S와 둘이 있는 집에서는 한국말을 하는 일이 없는 내가 갑자기 누워서 한국말로 혼자 중얼거리는 걸 들은 S는 놀라 무슨 일이냐며 달려왔다.
의사가 골반뼈는 잘라도 다시 자란댔어.
근데 지금 만져봤더니 없어.
없다는 걸 아는 데 11년이 걸렸어.
그 시기를 떠올리면 이레 그렇듯 눈물이 불현듯 줄줄 흘렀다. S는 놀라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소파에 누운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괜찮아, 없어도 사는데 지장 없잖아. 아무도 몰라, 티도 안 나. 아프지 않잖아. 여태까지 몰랐다는 건 아무런 지장도 없다는 거잖아. 괜찮아.
S는 자꾸만 괜찮다며 나를 토닥였다. S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자상하고 착한 사람이지만,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괜찮지 않아서 우는 게 아니라고, 네가 잘못 짚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도 내가 왜 우는지, S의 말이 틀렸다면 어떻게 틀린 건지 나조차 알 수 없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 말 없이 또렷한 눈으로, 이제는 여명도 사라지고 깜깜해진 파리 도시의 밤하늘을 노려보며 여전히 소파에 누워 눈물만 흘리게 내버려두는 나를 S는 더욱 세게 껴안으며 괜찮다고 토닥였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어떤 감정을 느끼기 전에 눈물이 먼저 나온다. 눈시울이 붉어지지도, 코 끝이 찡해지지도 않는다. 마치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별안간 눈물이 뚝. 뚝. 떨어진다. 코를 훌쩍이지도, 숨을 고르며 가슴을 들썩이지도 않는다. 커다랗게 뜬 눈에서 맑은 액체가 줄줄 흐른다. 이 액체가 볼과 목을 타고 흐르게 나는 가만히 둔다. 눈물을 훔치지 않는다. 곧 그칠 소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양손을 가슴 위에 얹고는 가만히 이 시간이 지나가는 감각을 느낀다.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 버리길 바라는 마음이 결코 아니다. 그냥, 갑자기 내리는 창밖의 소나기를 멍하니 바라보듯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가만히, 가만히.
그 일이 있고 난 후 잠에 들기 전까지 나는 좀전에 소파에 누워서 허벅지와 골반을 만지다 조용히 울고 또 울었던 그 순간의 내 감정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까지도 곰곰이 생각했다. 간간이 일을 하다가, 밥을 먹다가, 지하철 안에서,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다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다가.
나는 아마, 처음엔 당황했을 것이다. 내 손끝에 느껴지는 촉감, 그러니까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오는 어떤 촉감의 부재에 흠칫 놀라고 당황했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이를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믿었던 사실이, 나의 몸이, 내가 믿었던 대로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의사가 다 자란댔는데? 그럼 뼈가 있어야 하는데? 왜 없지? 그러나 뼈의 부재는 내 손끝에서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감각으로 깨우친 선명한 뼈의 부재는 나를 순식간에 과거로 데려갔을 것이다.
나의 아픔, 나의 고통, 암.
나에게는 영광스러운 상처로 남은, 어떠한 표식이 되어주는 오른쪽 팔목 흉터가 있다. 이 흉터가 내게 영광이 되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 시간들로 뼈의 부재를 채워 넣고 단단하게 굳혔다.
아마 11년 후의, 어제의 나는 당황했을 것이다. 11년 전의 나는 지금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강산이 변한 후에 알아차린 새로운 부재를 다루는 방법을 나는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만큼 하루에 나의 뼈와 통증과 질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새로 발견한 공백을 채우고 굳히려면, 또다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걸까?
그래서 그 부재를 다시 채워 넣을 막막함에 울었을 지도 모른다.
속고 살았던 11년의 세월이 억울해서 울었는지도 모른다.
건강한 몸으로 정의되는 신체와 다른 나의 몸의 한 부분을 또 한 번 발견해서 나도 모르게 나의 몸을 훼손된 몸이라고, 아주 잠깐이나마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이제는 조각들로 편린 하는 아픈 몸의 기억이 떠올라 울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나의 몸을, 과거의 산증인인 나의 몸을, 그 말인즉슨, 나를. 극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겨내지 않을 것이다. 대체 무엇을 극복하고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이긴다는 것일까?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11년 늦게 알아차린 공백을 메우는데 또 꼬박 11년이 걸린다 하더라도,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아니, 설령 그 자리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데도 상관없다. 내 골반뼈가 없는지도 모르고 살았듯, 그 공백이 여전한지도, 아니면 그 공백이 사라진지도 모르고 살고 싶다. 왜냐하면 그런 건 정말 하나도. 하나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