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정부-기업 공조, 이공계를 탄핵하다
‘이공계 위기’ 담론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정부도, 기업도, 이공계 대학의 학장도 모두 나서 ‘이공계 위기’를 타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언제나 문제가 일어났을 땐 문제의 원인 제공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도, 기업도, 이공계에 몸담고 있는 과학기술자들도 모두가 ‘위기’의 피해자인 양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 ‘위기’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재난이라도 된단 말일까?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이공계 위기’ 현상 뒤에는 지난 10여년 동안 ‘이공계 죽이기’를 공조해 온 정부와 기업이 있었다. 이공계 연구원들의 가장 큰 사용자인 이들의 역할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공계 위기’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2004년 04월 09일

김윤지 기자 (yzkim@economy21.co.kr)
1. ‘이공계 위기’는 음모다?
2. '과학입국' 거짓말, 손해배상받고 싶다
3. 이공계 위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90년대 중반 이후 시장주의 논리 무분별 수용…단기 성과 압박, 넘쳐나는 비정규직 등 위기 부추겨

우리나라 역사에서 웬만해선 60년대를 회고하며 좋게 추억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적어도 이공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60~70년대를 최고의 전성기로 꼽는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전신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66년 국책 종합연구기관으로 처음 세워지면서, 연구원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줬기 때문이다. 경제개발이 최우선 과제이던 그때 정부는 경제개발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만들었고, 그에 따라 연구원들은 대학 교수보다 2~3배 높은 보수를 받으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90년대에 이르면서 이들의 위치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90년대 초부터 ‘정부출연 연구소의 기능재정립과 운영의 효율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YS정권은 연구기관을 산업경쟁력 차원에서 민간 기업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연구기관은 순수한 공익적 기관으로 여겨졌던 터라 큰 변화를 맞이한 것이었다. 결국 YS정권의 ‘세계화’ 논리에 따라 많은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은 대기업에 넘겨지면서 민영화되기 시작했다. 남은 연구소들도 통폐합을 거치면서 스스로 공공기능을 저버려야만 했다. “이때부터 돈 되는 연구, 산업체에서 필요한 연구만 하라는 주문이 시작됐다”는 게 이성우 전국과학기술노조위원장의 설명이다.


PBS 도입으로 연구원들 ‘앵벌이’로 전락

무엇보다 정부출연 연구기관 황폐화의 가장 큰 주범으로 꼽히는 것은 95년 도입된 PBS( Project Base System,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였다. PBS가 도입되기 전에는 연구원들의 인건비는 정부 예산으로 책정되고, 연구 직접비만 프로젝트별로 지급됐다. 그런데 PBS가 도입되면서 연구원들은 연구과제를 따야만 인건비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연구과제비 안에 인건비가 포함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른 결과는 뻔했다. 연구원들은 자신의 월급을 벌기 위해 공익성을 가진 기초연구보다는 단기 생산성 위주의 연구로 몰리기 시작했다. 이공계 연구를 극단의 경쟁논리 속에 던져 연구원들을 ‘앵벌이’로 전락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PBS의 여파는 매우 심각하다. 연구과제비 수준도 크게 떨어진 상황이라 웬만한 과제를 따도 예산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억원짜리 과제를 따와도 과제책임자 인건비와 다른 비용을 포함해 약 6천만원을 제하고 나면 남는 비용이 4천만원 안팎”이라며 “이 비용으로는 도저히 연구원급 인력을 쓸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계약직 석·박사 과정 학생을 1년에 1천만~1500만원 수준에서 몇 명 써야 겨우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고 KIST의 한 연구원은 현재 과제책임자 아래에 정규직 연구원급 인력이 거의 없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특히 PBS는 연구현장의 심각한 비정규직 심화현상을 낳았다. 2002년 기준으로 현재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비정규직 비중은 약 50% 정도다. 연구원 두 명 가운데 한 명이 비정규직인 매우 열악한 상황인 것이다. 이런 사실은 지난해 9월 순수 토종기술로 처음 만든 우주관측 과학위성 ‘과학기술위성1호’를 쏘아올렸을 때 더 잘 알려졌다. 이 연구를 진행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개발팀 26명 가운데 23명이 계약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우주항공산업 15년 동안의 숙원사업은 비정규직들에 의해 이뤄진 셈이었다.

게다가 이들의 처우는 도시 근로자 평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난 1월 민주노동당 대전광역시지부와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이 정부출연 비정규직 연구원 395명에게 실시한 ‘정부출연 연구기관 비정규직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부출연기관 비정규직 연구원들의 월 평균 임금은 약 128만원이다. 게다가 이들 가운데 40.8%는 4대 보험도 적용받지 못한다고 답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그래프 참조).

98년 이후에는 다른 산업체들이 모두 그랬듯 정부출연 연구기관들도 IMF 여파에 따른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이미 도입된 PBS로 인건비를 제 손으로 벌어야 하는데다, 연봉제가 도입되고 기본급과 성과급의 비율이 7대 3으로 정해지면서 연구원들 사이에 불안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거짓 성과를 내기 위한 관행들도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연초 계약한 횟수를 채우기 위해 필요 없는 논문 발표하기, 의미 없는 특허·프로그램 출원하기 등과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해진 것이다.

게다가 심각한 문제는 2000년대 이후 이런 분위기가 더욱 가속화되자 연구비가 불공정하게 배분되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성우 과학기술노조위원장은 “올해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개발비는 6조원 정도로 지난해 5조3천억원보다 크게 늘었지만 연구현장의 불안정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면서 “현재의 예산도 투명하게 집행하고 배분하면 연구원들의 고용 문제는 물론 연구 분위기도 훨씬 자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민간기업연구소, 연구원을 ‘소모품’처럼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PBS로 이공계를 흔들었다면, 민간기업 연구소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공계 죽이기를 해왔다. 현재 ‘이공계 위기’에 대해 말할 때 각각의 처한 상황에 따라 위기의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다. 기초과학을 다루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원들은 주로 고용불안, 열악한 처우라는 위기에 직면했지만, 일단 정규직만 되면 61살까지 ‘정년’을 보장받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산업체에 연결된 민간기업 연구소 연구원들은 정부출연 연구기관보다 다소 처우는 좋지만, 안정성에선 이들보다 훨씬 열악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민간기업 연구소 연구원들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제까지 해온 연구 풍토 때문이다. 워낙 원천기술에서 취약한 상황에서 빠른 성장에 골몰하다 보니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 원천기술을 해외에서 사온 뒤 양산기술이나 응용기술을 덧붙여 부가가치를 얹는 형태의 연구를 해오곤 했다. 일종의 기술 베끼기를 해온 셈이다. 이런 식의 개발을 하기 위해선 경험과 관록이 있는 최고 수준의 연구원은 필요 없다. “일단 들여온 기술을 6개월이나 1년 안에 빨리 습득해 적용시키기만 하면 되니까 젊고 빠릿빠릿한 신입연구원들이 훨씬 유리하다”면서 “오히려 나이 많은 연구원들은 체력도 떨어지고, 적응력도 떨어지기에, 기업들이 연구원들을 소모품처럼 한번 쓰고 버리는 식으로 다뤄온 것”이라며, 대기업 계열 연구소 출신의 한 연구원은 기업의 연구 분위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게다가 지난 IMF 때 드러났듯, 기업 구조조정을 할 때 가장 만만한 대상이 연구원이었다. 당장 기업 생존에 필요 없다고 판단한 데다, 기술 축적이 의미 없는 연구 풍토라 경험 있는 연구원들이 아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소 연구원들은 대부분 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아 손쉽게 인력을 조정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때문에 현재 쓸 만한 인재가 없다며 ‘이공계 위기’를 외치는 기업의 모습에 많은 연구원들은 분노를 터뜨리곤 한다. “이제까지 임금이 싼 젊은 연구자들로부터 빨리빨리 뽑아 먹을 태도를 가지고 있다가, 그런 식의 연구가 한계에 이르자 인재탓만 한다”는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대학이 직업훈련원이 아닌 이상 기업 입맛에 딱 맞는 인재는 기업 스스로 키워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모습은 그와 반대였다”고 입을 모은다. 이렇게 단기적으로 연구를 하는 탓에 민간기업 연구소에도 최근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있다. 1∼2년 동안의 프로젝트에서 성과가 바로바로 나오지 않으면 인력을 금세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발표한 ‘인력저수조 강화책’은 이런 연구원들의 비정규직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여, 많은 이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인력저수조란 정부가 이공계 석박사급 인력들의 풀을 조성해 놓고, 기업에서 필요한 인력들을 싼값에 쓸 수 있도록 제공하는 제도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중소기업급 연구소에서 박사급은 연봉 2800만원에, 석사급은 2200만원 정도를 주고 쓸 수 있다. 그럴 경우 인건비의 30% 정도를 정부가 찬조금 형식으로 지원해 주기도 한다. 대학이나 정부출연 연구소에서는 박사급은 월150만원(연봉 1800만원), 석사급은 월 120만원(연봉 1440만원)만 주면 인력을 쓸 수 있다. 물론 이들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이런 인력을 1500명까지 늘린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일견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제도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민간기업에선 박사급 인력에겐 연봉 2800만원 이상을 주지 않아도 되는 합리적인 근거가 마련된다. 박사급 연구원들의 임금 상한선이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는 합법적으로 연봉 1800만원짜리 박사급 연구원을 비정규직으로 쓸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이 비정규직 양산에 또 한번 공조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물론 사태가 이렇게 심화될 때까지 가만히 있었던 과학기술인들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목소리도 있다. 과학기술인들이 기능인으로만 전락해 버려, 과학기술의 공공적 기능를 제대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결과라는 이야기다. 사회 전반에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불어온 탓도 있지만, 과학기술 정책이 경제논리에만 휘둘리도록 그냥 둔 것 역시 과학기술인들의 책임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그간의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이런 변화가 몰아닥친 것은 기껏해야 10년. 지금 위기의 책임을 과학기술인들에게만 지우려는 것은 과거 양파파동, 고추파동으로 시름에 빠졌던 농민들에게 한국 농업이 이 모양이 되도록 왜 가만히 있었냐고 따지려 드는 것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그때 그 농민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농협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다. 고추를 지으라면 고추를 지었고 양파를 지으라면 양파를 지었다. 농협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면, 당신이라면 그 농사를 지었겠나. ”

2. '과학입국' 거짓말, 손해배상받고 싶다
현재 이공계 위기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층은 90년대 이후의 학번들이다. 이미 2000년대 이후 학번들은 위기의 징후를 읽은 탓에 이공계를 외면하고 안락함이 보장되는 의대로, 치대로, 한의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90년대 학번들은 위기의 징후를 느끼지 못한채 과학기술자의 부푼 꿈을 안고 진학했다가, 갑자기 연구현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외면받는 현상을 맞닿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이들이 느끼는 자괴감은 조금 더 절박하다는 게 많은 이공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현재 느끼는 절절한 안타까움을 한 90년대 중반 학번의 이공계 대학생이 보내왔다.<편집자주>
2004년 04월 09일

 

이공계 96학번 대학생이 쏟아놓는 2004년 봄 캠퍼스 보고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선진국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던 1988년,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그해 나는 각 학교에서 2명씩 보내주는 과학 실험 학교에 처음으로 뽑혔다. 과학 실험 학교는 이른바 과학 영재 프로그램으로, 각 학교에서 학생들을 뽑아 과학교육을 따로 실시하는 곳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매년 학교에서 뽑혀 주말마다 과학 실험 학교에 다녔다.

그 시절에는 그저 학교에서 선발해 보내는 곳에 뽑혔다는 사실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곳에서 항상 듣는 말은 ‘과학입국’이었다. 과학이 발전해야 나라가 발전하고, 그러기 위해선 이공계에 실력 있는 사람들이 많이 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반복해 듣다 보니 과학이 썩 적성에 맞지는 않지만 나도 이공계로 가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을 먹게 됐다.

고등학교 때는 70%의 학생들이 이과계열로 진학을 했다. 사실 나는 문과에 가고 싶었지만, 문과에 간다고 하면 으레 듣는 말이 있었다. “나중에 잘 살려면 이과를 가야 한다” 취직도 잘 되고 사람들한테 인정도 받으려면 무조건 이과를 가야 한다는 말들뿐이었다. 대세에 밀려 결국 난 96년 서울대학교 자연대에 입학했다.

그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의치대 과열현상은 없었다. 실력 있는 학생들 가운데 다수가 이공계로 진학을 했다. 컴퓨터나 전자공학 등 주로 공대 학과들이 가장 인기 높은 학과였고, 순수과학쪽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너무나 많은 것들이 바뀌어버렸다. 이공계 학생들이 실력이 없어 기업에서 뽑지 않는다는 소문까지 들을 때는 꼭 사기를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언제는 실력이 있으면 당연히 이공계로 가 나라 발전에 이바지하라며 몰더니, 이제는 애물단지 취급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줄어든 대체복무로 군문제 심각

이공계의 대다수인 남학생들이 가장 먼저 겪게 되는 어려움은 군대 문제다. 이제까지 많은 남학생들은 병역특례업체에서 대체복무를 해왔다. 아니면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직으로 군복무를 대신하곤 했다. 나처럼 군대를 다녀온 경우에는 복학을 한 후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군대에 다녀온 뒤 다시 책을 펴니 전공용어들은 너무나 생소했고 각종 공식들은 알 수 없는 기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제 대부분의 이공계 남학생들이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됐다는 점이다. 대체복무를 할 수 있는 자리가 갑자기 줄어들어 거의 없어지다시피 됐기 때문이다. 병역특례만 바라보고 군대 문제를 미뤄왔던 많은 3, 4학년생들과 대학원생들은 지금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기계공학과에 다니던 후배 ㄹ은 지금 공군지원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혹시나 병역특례로 군대 문제를 해결할까 싶어 정보처리기사 자격증도 따고, 대학원 진학도 준비하며 졸업을 1년 미뤄보았지만 후배는 결국 해결방법을 찾지 못했다. 결국 올해 초 졸업을 하고 과동기 몇 명과 함께 공군에 지원하기 위해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남들은 졸업하면 취업공부를 하는 마당에 군대 갈 걱정을 하니 막막하단다.

연구직 대체 복무를 바라보고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간 선배 ㅇ도 올해 군대에 갔다. 연구직 대체복무 수요가 대폭 줄어 1년에 1명 정도밖에 그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선배는 30살의 나이에 군대에 갔다. 하지만 군대에 다녀와서가 더 큰 문제다. 나이도 30대 중반에 이르고 박사과정을 중간에 그만두었으니 계속 공부하기도 애매하다. 취업은 거의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군대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더 큰 문제인 취업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를 빼고는 거의 대부분이 졸업하기 전에 취업이 결정됐다. 그런데 지금은 언감생심이다. 이공계에서도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동기 ㅂ과 선배 ㅅ은 요즘 계속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변리사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경쟁률이 20대 1이 넘기 때문에 보통 3∼4년 준비는 예상하고 있단다. 공대생들 사이에선 유일하게 안정적인 전문직으로 꼽히는 게 변리사인지라 점점 더 변리사 시험에 몰리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단다. 몇 년이 지나면 경쟁률이 훨씬 높아져 합격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 같다며 만날 때마다 걱정을 쏟아놓는다.


박사과정 3년차, 미래는 없고 카드빚만

통계학과를 다니던 동기 ㅁ은 얼마 전부터 수능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치과대 시험을 다시 보겠다는 것이다. 통계학과면 그래도 취직이 좀 되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다 옛날 얘기란다. 그럼 졸업을 하고 의학전문대학원에 가면 되지 않느냐니까 워낙 많이 몰려 경쟁률이 너무 높다고 답한다. 게다가 기초과목이 많이 달라 어차피 걸리는 시간은 비슷해, 수능을 보는 것이 더 유리할 것 같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을 알아보던 후배 ㅇ도 다시 수능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후배는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터라, 전기기사 자격증 시험을 신청해 군 입대를 미루면서 수능공부를 하고 있다. 대입에 실패하면 군대에 가야 해, 올해 수능에 올인해야 하는 처지다.

지난해 졸업한 지질학과 동기 ㅂ은 올해 사범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아무런 대안이 없어 그냥 전공 대학원에 밀려갔다가, 진로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갑자기 선회한 것이다. 사범대 대학원에 가서 교직자격을 취득하겠다는 것이 그에겐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전기공학과를 졸업해 IT업체에서 대체복무를 하던 동기 ㄱ은 복무가 끝나면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원에 진학해도 별 가능성이 없을 것 같다며 어학연수를 떠났다. 일단 영어라도 잘해야 일반 회사에라도 취직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란다. 하지만 어학연수를 간 지 1년이 다 되지만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을 않고 있다. 대략 짐작은 간다. 그곳에서 뭐든 가능성을 찾아보고 싶은 게 아닐까.

4년 전부터 사법고시 준비를 하던 고등학교 선배 ㅎ은 기계설계학과 출신이다. 이공계 위기란 말이 크게 돌기 전부터 “결국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서 사법고시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땐 대학 4년이 아깝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걸 계속 부여잡고 있었다 해도 지금 나아질 게 없으니 일찌감치 선회를 한 그 선배가 아주 현명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계속 이공계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상황은 얘기하나마나다. 시력이 좋지 않아 군 면제를 받고 일찌감치 대학원에 진학한 동기 ㅊ은 지금 통계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3년차다. 그렇지만 아직도 박사과정을 마치면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비슷한 선배들이 위로 겹겹이 많이도 있어 아직도 교수님 커피 심부름을 한다. 이공계 위기가 심화되기 전에 대학 졸업을 맞이한 그가 대학원에 가지 않고 바로 취직을 했다면 지금쯤 대리는 돼 있지 않을까. 하지만 대학원 진학을 한 이후, 조교까지 하면서 연구보조비도 받으며 학생 과외도 하지만 수입을 모두 합해도 100만원이 채 안 된다.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 조짐이 보인다면 그것을 희망 삼아 살아가겠지만, 대학원 박사과정이 남겨준 것은 장래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그동안 2배 이상 오른 등록금 때문에 빌려 쓴 카드빚뿐이다.

이래저래 이공계 출신들의 진로는 답답함 그 자체다. 대학에 들어올 때만 해도 이공계를 가야 장래도 보장되고 나라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벅찬 기쁨이 충만했다. 지금은 이공계를 나왔다는 사실이 주홍글씨처럼 느껴진다. 대학과 대학원 시절 내내 전공에 파묻혀 공부만 해야 한다며 밀어넣더니, 그러는 사이 그것들을 사용할 데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간의 힘들었던 공부들이 다 쓸모없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 시간이 아깝게 여겨지기만 한다.

이공계가 발전해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그 수많은 뛰어난 인재들이 그냥 묻혀버리고 있는 지금은 분명 나라 발전이 심각하게 저해되고 있을 터다. 만약 그 말이 거짓말이었다면, 나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싶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에게 그런 거짓말을 되뇌인 것에 대해서 말이다.

김○○/ 서울대 자연대 96학번

 

3. 이공계 위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현재의 이공계 위기의 해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이들이 내놓는 해법은 과학기술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의 문제로까지 연결돼, 결론도 큰 차이를 낳곤 한다. 최근 가장 대표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해법에 대해 두 전문가가 에 의견을 보내왔다.
2004년 04월 09일

 

“기초학문 전체의 위기로 바라보고 해결해야”

 지난 몇 년 동안 이공계 위기를 둘러싸고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입시철이면 신문이나 방송은 다양한 특집기사와 프로그램을 통해 이 주제를 다루었고, 과학기술계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공계 기피현상과,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과학기술자들의 처지에 대해 한목소리로 개탄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한 한, 우리 사회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과학기술계의 주장에 공감을 나타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지난 60~70년대 경제성장의 주축으로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일한 공장 노동자들과 열사의 땅에서 땀 흘린 중동 파견 기능공을 비롯한 과학기술자들의 노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공계 위기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널리 확산되어 공감을 불러있으켰다는 점에서는 그동안 이 담론을 생산해 왔던 과학기술계가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어떤 변화가 이루어졌을까? 물론 이공계 기피현상을 완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이공계 사기진작책들이 제안됐고, 그 가운데 일부는 이미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조치들로 이공계의 ‘위기’가 해결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이공계 위기를 둘러싼 공론화의 과정이, 이공계 기피현상이 문제가 있다는 것에 대해 사회적 공감을 모으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원인을 깊이 성찰하지 못해 모처럼 마련된 공감대의 토대 위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 동안의 이공계 위기를 둘러싼 논의에 대해 두 가지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첫째는 흔히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표현되는 위기론이 실제로 이공계만의 문제인가, 아니면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온 기초학문 전체의 위기인가 하는 점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의 본질은, 의대나 법대처럼 돈 되는 분야로만 학생들이 몰리는 사회적 풍조와 이를 부추기는 대학교육의 시장화, 그리고 과학기술을 국가 경쟁력 제고의 도구적 관점에서만 바라보았던 경제주의적 과학기술 정책 등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단순히 이공계의 문제가 아니라 이공계 ‘위기’인 것은 바로 이러한 위기적 상황들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극복을 위해서는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이공계뿐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포괄하는 기초학문 전반의 사기진작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철학과 물리학이 위협받지 않는 대학교육 환경을 유지해야 하고,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을 위한 도구로 보는 편협한 인식에서 벗어나 건강한 시민문화의 토대로 인식하는 과학정책의 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그동안의 이공계 위기론이 주로 과학기술계 상층의 관점에서 제기되면서 오늘날 기능공들이 처해 있는 열악한 상황이나 실험실 대학원생들의 처우와 안전 문제 등 함께 짚어야 할 폭넓은 주제들로 확산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령 이공계 출신자들의 처우 문제가 제기되는 방식을 보자. 이 문제는 대덕연구단지 등 우리 사회에서 상당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면서 같은 수준의 인문사회계 출신자들의 사회적 지위와 보수 등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을 토로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따라서 그 처방도 정부 관료 가운데에서 이공계 출신자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식의 주장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사실이고, 이공계 출신의 공직 진출도 확대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전직을 해야 하는 기능공들의 문제, 이공계 대학원생과 교수들 사이의 위계적인 관계와 실험실 안전 등 만성적인 문제들이 제대로 거론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비대칭적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수년간 우리는 이공계 위기라는 현상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폭넓은 시민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확산하는 첫 단계를 거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성과와 함께 한계 역시 드러났다. 이제는 문제를 이공계만의 위기가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안고 있는 위기로 성찰하고 그 해결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김동광/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소장 kwahak@nownuri.net

(이 글은 참여연대의 입장이 아니라 필자의 개인 견해임을 밝힙니다.)



“기업이 먼저 변해야 한다”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현상과 고급 과학기술 인력의 탈이공계 엑소더스는 대학, 연구기관, 산업체 등 모든 영역에 걸쳐서 과학기술계를 총체적인 위기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대학에서는 진학률 감소와 우수 학생들의 대거 이탈로 이공계 대학원이 공동화로 치닫고 있고, 산업체에서는 쓸 만한 인재를 구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고 푸념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신기술의 ‘암흑기’가 올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한다.

반도체와 LCD, 휴대전화, 자동차 등 주요 수출품으로 지금껏 이 나라를 먹여 살려온 이들이 바로 민간기업에 종사하는 과학기술 인력들이었던 만큼, 산업 현장에 우수 인력이 없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이공계 대학이 당장 현업에 투입할 만한 기술인력을 길러내지 못했다면서 이공계 대학의 교육 수준과 내용에 문제제기를 하기도 하고,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거나 해외 이공계 인력의 채용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들의 상황진단과 문제제기가 대부분 맞는다 하더라도,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오늘날과 같이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현상과 위기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은 과연 누구이며, 가장 큰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그 원인은 매우 복합적일 수 있고, 보는 이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업체들이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점이다. IMF 구제금융시대에 가장 먼저 내쫓긴 것이 바로 기업체의 연구개발 인력들이었다는 사실은, 이후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을 부추기는 촉매제 구실을 했다. 또한 기업체들이 과연 우수한 이공계 인력들이 마음껏 연구개발에 매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해 주는지도 매우 의문스럽다.

물론 민간기업의 연구개발은 수익창출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연구개발의 기본특성에 대한 이해도 없이 항상 목전의 이익과 단기간의 성과에만 집착해 지금처럼 기초기술, 원천기술의 개발에 소홀한다면, 유능한 과학기술 인력들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질 것이다. 더 나아가 장래에 더 큰 이익을 얻을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소탐대실의 상황에 치닫고 만다. 심지어 “기술은 그냥 사다 쓰거나 적당히 베껴오면 되지, 뭐 하러 힘들게 개발하는가?”라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처럼 기업 경영자들은 연구개발의 중요성과 과학기술의 가치에 무지한 것이 우리의 솔직한 현실인 것이다.

트랜지스터, 반도체 집적회로, 나일론 등 세계 최초의 새로운 과학기술이 주로 민간기업에서 나왔던 미국이나, 기업체의 평범한 연구원이 연구개발에만 매진해 노벨상까지 받게 되는 일본의 경우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이 ‘연구개발다운 연구개발’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듯하다.

국내 기업들의 이러한 척박한 연구개발 환경은 과학기술 인력을 지속적으로 육성시켜야 할 소중한 ‘인재’로 보기보다는, 싼값에 실컷 부려먹고 용도가 다하면 언제든 폐기처분할 수 있는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풍토와도 직결돼 있다. 백발의 프로그래머나 할아버지 연구원들이 즐비한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 기업의 연구소에서 40대 후반을 넘긴 현역 연구원을 찾아보기는 매우 힘들다.

어떤 이들은 고액 연봉과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몇몇 스타급 이공계 출신 CEO들을 들먹이면서 청소년들에게 이공계로 오라고 손짓한다. 하지만 그들은 사실 ‘경영자’로서 성공한 것이지, 연구원이나 엔지니어로서 그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다. 몇만 명에 한 명 나오기도 힘든 스타 CEO보다는, 오래도록 연구개발 현업에 종사하면서 성과와 능력에 걸맞는 대우와 존경을 받는 ‘마스터급’ 연구원들이 기업에 많아질 때 이공계 기피현상은 해결될 것이다.

이공계 박사의 70% 이상이 대학에만 몰려 있다면서, 우리나라 우수 인재들의 지나친 대학 선호 풍조를 개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기업 연구소가 오래 머물면서 연구개발을 할 만한 곳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면, 대학은 더 이상 우수 이공계 인재의 ‘블랙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30, 40대 초반의 유능한 기업체 연구원들이 뒤늦게 살길을 찾고자 고시공부를 하고 의·치·한의대에 들어가기 위해 수능시험을 다시 보는 국가적인 낭비도 불식될 것이다.

요컨대, 우리 기업들이 그동안 이공계 기피현상과 위기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가해자’였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과학기술 인력들을 소모품이 아닌 인재로서 대우하려는 ‘윈-윈’ 태도를 가진다면, 장차 이공계 기피현상의 해소에도 큰 실마리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업 스스로도 살아나갈 수 있는 상생의 길이 될 것이다.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hermes21@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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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ce 2004-04-14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96학번이다. 어느 길을 가나 위기는 있겠지만 그 문제가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사회적 문제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면 이건 심각하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무시당하는 감정을 이 문제에서도 여지없이 느낀다. 소위 '이공계 살리기'라며 요근래 발표되었던 정책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2002년 가을에 이공계 유학생에 대한 장학금 지원책이 발표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적은 글은 이렇다.

정부에서는 300억인지 3000억인지를 준비하여 내년부터 이공계 유학생에게 퍼주기로 하였다는데 그에 대한 나의 솔직한 기분은 고깝다. 한해에 10만원씩 학비 올리고 기숙사비 올리고 연차초과자들한테 수업료(-수업도 안듣건만--;)는 받으면서 똑똑한 애들은 이제 장학금 줄테니까 미국가서 공부하라는 건가? 이것도 까짓 선택과 집중이라는 논리로 커버하면 그만인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내가 국내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대안책이라고 내놓은 것들이, 남자 대학원생의 군대 문제 해결과 같은 근시안적이고 일시적인 대책들에 국한되어 있고 삼성의 유학생 장학재단 설립과 때를 같이해 발표된 유학생 지원 대책처럼 '선진문물'을 배워온 (혹은 배워올, 아니 배우고 안돌아올지도 모를) '초엘리트' 육성에 촛점이 맞춰져 있어 나의 의혹에 불을 지핀다. 예전부터 배워온 '선진문물'은 어디로 가고 아직도 대학이며 대학원이며 정부의 운영은 이렇게 후진적이고 파행적인가?

그리고 나서는 대통령장학생제가 생겨서 이제 대학에 막 들어오는 학부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돈이 다가 아니다. 학부때 장학금 받으면 뭐하나, 대학원 가서 진짜 필요할 때는 돈이 없는걸. 대학원만 어찌 버티면 되는 거 아니냐고? 이 바닥은 연예인 보다도 수명이 짧은 거 같다. 연예인이나 운동 선수는 하는 동안 연봉이라도 세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위에 기사에서 어른들이 하신 말씀들과 일맥상통한다. 연구원들이 연구비 걱정 없이/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연구할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정된 연구환경이 좋은 결과를 보장한다. 좋은 결과로 즐겁게 연구하면 학생들은 오지 말라고 해도 온다.) 정부출연연에 계약직만 넘쳐나는 지금, 누가 한국에 남아있고 싶겠는가.

 

과학자여, 시민과 만나라!

실험실 밖에서 지역 공동체 문제 해결 활발… “전문성의 100분의 1만 베풀어도 살 만한 세상 된다”

과학기술부는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본격적인 ‘사이언스 코리아 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과학기술 입국’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호만 요란할 뿐 시민·과학자들이 참여해 국민의 과학화를 도모하는 프로그램은 눈에 띄지 않는다. 과학쇼는 있어도 과학강좌는 없는 현실이다. 이에 <한겨레21>은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위원장 이성우)과 함께 참여와 나눔의 과학기술을 모색하려고 한다. 진정한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위해 삶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편집자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지역주민과 연구자가 만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울대 사범대학 환경교육 협동과정에서 지역환경교육연구팀장을 맡고 있는 강지영씨는 틈틈이 서울시 관악구 신림9동 사무소 2층에서 주민들을 만난다. 그곳에 건강한 도림천을 만드는 주민모임(이하 도림천 주민모임)과 협동과정 교수·학생들이 함께 만든 ‘관악환경교육센터 마루’가 있기 때문이다. 강씨를 비롯한 환경교육 협동과정 학생들은 현장을 실험실로 삼기로 하고 지난해 초부터 도림천 주민모임 사람들을 만났다. 사실 서울대 학생들이 도림천을 만난 것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환경 동아리 회원들은 복개 공사를 벌이던 도림천을 살리기 위해 지역주민과 함께 친환경 하천 만들기에 나섰다. 그런 경험이 있는 학생 일부는 도림천 주민모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 “우리는 현장을 연구실로 삼았다.” ‘관악환경교육센터 마루’에서 서울대 환경교육협동과정 학생들이 ‘화목한 수업-우리동네 지도 그리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사진/ 건강한 도림천을 만드는 주민 모임)

과학자도 실천하면서 배운다

요즘 강씨가 대학 인근 지역의 주민을 만나는 것은 이전의 활동과 차이가 있다. 주민들은 건강한 도림천을 만드는 과정에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이제 초등학생으로 이뤄진 생태탐사단을 이끌고 환경을 교육할 정도가 된 것이다. 전문적인 환경교육 소양을 갖춘 학생들은 주민들이 환경 강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교육 방법론을 개발하고 환경공예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생태탐사단 회원들과 함께 ‘마을 환경지도’를 만들고, 지역 공부방에서는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 공동체에 기반한 활동을 통해 강씨는 “실천하면서 배운다”고 말한다. 지역주민들 역시 자연스럽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사회적·환경적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이렇게 주민과 연구자가 지역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조금은 낯선 풍경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주민과 연구자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환경이나 윤리, 건강, 기술적 재난 등 일상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에도 시민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탓이다. 갈수록 과학기술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깊어지고 있지만 과학자들은 좀처럼 실험실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현실이다. 심지어 연구자 가운데는 국가 정책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객관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지 않는 경우도 있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김환석 소장(국민대 교수 과학사회학)은 “과학자들은 과학적 합리성을 내세워 다른 가치에 인색한 경향이 있다.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유발되는 상황에서 공생과 공존, 이를 위한 민주적 의사소통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지역주민들이 과학기술의 폐해를 밝히는 데 주도적으로 나선 사례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온산병’이다. 1980년대 중반 울산광역시 온산공단 주민들은 피부병·안질·복합 신경통 등에 시달렸다. 온산 일대가 공업단지로 조성된 1974년 이후, 공장 폐수에 어장이 황폐해지고 중금속에 농수산물이 오염된 탓이었다. 당시 환경단체들이 공단의 오염 실태를 조사해 온산병이 폭로됐지만 환경청은 1주일의 짧은 역학조사 뒤에 부유물질이니 화학적 산소요구량( C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 등의 기준치를 제시하며 환경 탓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때 환경청은 ‘울산·온산공단 공해 피해주민 이주대책을 위한 조사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과학기술자들 중 누구 하나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온산병의 원인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고 상당수 주민들은 폐수구 부근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 과학기술자들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려면 과제 배정 등의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 대전 대덕단지에 있는 생명공학연구원 연구자들이 실험을 하고 있다.(사진/ 박승화 기자)

시민들은 과학기술의 폐해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 그런데도 전문 지식이 없다는 이유로 환경의 인체 유해성 결정에 끼어들 틈이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지역에서 발생한 환경문제의 경우 피해 당사자로서 누구보다 실태를 꿰뚫고 있어도 발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 일쑤다. 그나마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시민참여’의 제도화를 위해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활동하고 있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정책적 사안에 초점을 맞춘 시민과학센터가 지역의 문제에 일일이 나서기도 어렵다. 문제는 어떤 사건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지역 주민들과 전문 지식을 지닌 과학기술자들이 어떤 관계를 맺느냐이다. 적어도 지역에서 발생한 문제라면 연구 과정에서 지역주민의 참여를 유도해 답을 구하도록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도 ‘JSI센터’가 있었다면…

그렇다면 지역주민은 과학기술의 소외자가 될 수밖에 없을까.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본부를 둔 ‘환경·보건 연구를 위한 JSI센터’(이하 JSI센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콜레라 발병의 원인을 알아내 ‘유행성 질병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스노우의 이름을 따온 JSI센터는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발생한 환경문제를 조사하려는 주민들에게 기술적인 지원을 하는 비영리 단체다. JSI센터의 직원은 매우 단출하다. 모두 다섯명으로, 3명은 지역주민과 연락을 주고받고 2명은 기술적 자문을 하거나 현안에 관련된 과학기술자를 묶어낸다. 핵심적 활동은 지역주민과 과학기술자, 정부 관료 등이 서로 존중하면서 협력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주민들이 제안한 프로젝트에 과학기술자들이 참여해 조사 내용의 공신력을 높여준다.

JSI센터는 미국 매사추세츠 워번시에서 발생한 백혈병의 원인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잉태됐다. 워번시의 한 마을에서는 10년에 평균 5.3명이 백혈병에 걸렸다. 희생자들 부모를 중심으로 ‘페이스’(FACE·For A Cleaner Environment)라는 모임을 결성해 자체적으로 실태 조사에 나섰다. 당시 주민들은 비트리스 식품과 그레이스 회사가 배출하는 물질이 공동우물을 오염시키는 것으로 추측했다. 이런 내용을 토대로 미국 국립보건원과 질병통제예방센터 등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공공기관은 주민들의 요구를 여지없이 묵살했다. 이에 하버드대학 공중보건연구소에 역학 조사를 의뢰했다. 조사 과정에서 연구자들이 JSI센터를 만들어 오염된 우물을 식수로 사용한 게 백혈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기업으로부터 800만달러의 보상금을 받게 됐고, 화학물질 처리에 관한 연방정부법 제정에도 영향을 끼쳤다.

만일 우리에게도 JSI센터 같은 기관이 있었다면 도림천 복개가 멋대로 추진되거나 온산병이 묻혀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과학기술을 둘러싼 논란에 사건을 축소하려는 정부와 지자체, 주민들의 요구에 무관심한 연구자, 행복 추구권과 생존을 위협받는 주민들이 있다는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우리에게는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나서는 과학기술자가 없었을 뿐이다.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임익성 정책국장은 과학기술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할 근본적 방법을 찾아야 할 때라며 이렇게 말한다. “과학기술 정책에서 시민의 몫을 찾아줘야 한다. 왜곡된 과학기술을 바로잡으려면 연구자들의 실험실과 지역을 잇는 가교 노릇을 해야 한다. 정부도 단기적 성과 위주 정책에서 벗어나 연구자들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과학기술 전문가의 지원이 절실한 사안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누구나 동네 구멍가게처럼 쉽게 드나들며 연구를 의뢰하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회적 요구에 따라 대전 지역의 젊은 연구자들과 시민들이 뜻을 모았다. 국내 과학기술의 메카라 할 수 있는 대덕단지를 중심으로 ‘시민참여연구센터’(www.scienceshop.or.kr)가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 연구자들은 2년 전부터 대전 지역 과학상점을 준비하다가 시민참여연구센터로 모습을 드러냈다. 시민참여연구센터는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과학을 지향한다. 사람과 자연, 공동체보다 최대의 이윤을 뽑아내는데 익숙한 과학기술에 인간의 얼굴을 입히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자들은 연구 결과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도 있다.

지역 정부출연연구소의 도움 절실


△ 주민과 함께하는 과학기술을 추구하는 시민참여연구센터 사무국장 신명호씨. 우주 발사체 제어를 연구하는 신씨가 모형 액체과학로켓 앞에 서 있다.(사진/ 박승화 기자)

요즘 시민참여연구센터 사무국장 신명호씨(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발사체체계실 선임연구원)는 대전광역시 대덕구 대화동 일대의 ‘대전 1·2공단’을 제2의 일터로 삼았다. 미량금속원소와 유독가스에 의한 악취는 심한 두통과 메스꺼움을 일으킨다. 지하수로는 세탁할 수 없을 정도로 토양오염도 심각한 상태이다. 이런 심각한 환경에서 공학박사(전기·전자 전공)인 그가 대화동 일대의 ‘오염 해결사’ 구실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1969년 공단이 조성된 뒤 단 한번의 환경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지역에서 하루 종일 참을 수 없는 악취에 시달리는 이유를 밝혀내는 데 도우미가 되고 싶을 뿐이다. 그동안 주민들의 악취 원인 규명을 위한 역학 조사 요구에도 대전시는 악취의 농도를 측정하거나 원인 사업장을 점검하는 데 그쳤다.

오랫동안 대화동에 거주한 주민들은 악취에 만성이 됐다. 처음으로 동네를 찾은 사람이라면 손이 저절로 코로 갈 정도인데도 대화동 주민대책위에서 활동하는 주부 이성희씨는 “낮에 느끼는 정도는 악취도 아니다. 악취 원인물질이 가라앉은 한밤중에는 숨을 쉬지도 못한다”고 말한다. 주민들이 대책위를 구성했지만 제도권 내에서 피해조사를 진행하고 친환경 공단으로 바꾸기는 버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시민참여연구센터를 비롯한 대전환경연합·인의협 등의 시민사회 단체를 중심으로 ‘1·2공단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범시민대책위’를 꾸렸다. 여기에 참여한 신씨는 과학기술자들이 지역주민들을 만나고 연구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건설·환경공학과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의 연구자들이 현장 조사를 하고 기술자료를 검토하도록 하는 것이다.


△ 대전시 대화동 일대 주민들은 대전 1 · 2 공단에서 배출되는 각종 오염물질로 인해 온종일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 시민참여과학센터는 이 지역의 오염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사진/ 박승화 기자)

시민참여연구센터의 연구활동은 일반적인 용역 프로젝트가 아니다. 지역주민이나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과제를 의뢰받아 관련 연구자들을 찾아 연결하고 문제의 원인을 규명해 해결될 때까지 참여 연구를 진행할 뿐이다. 문제는 관련 연구자들이 과제 수주에 매몰된 ‘앵벌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장벽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지역의 정부출연연구소(이하 정출연)와 대학들이 시민참여연구센터를 지원하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정출연은 기본과제의 일정 비율을 지역사회를 위한 연구에 배정하거나 대학에서 지역 연구를 학점이나 학위로 인정하고 연구기자재를 지역의 시민참여연구센터가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시민참여연구센터가 지역별로 뿌리를 내려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아직은 성공적인 참여연구의 모델을 만들고 있는 수준이다.

‘연구자 참여’지역연구의 원년으로

지금은 과학기술 대중화보다 과학기술 민주화를 향한 인프라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과학기술자들도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구체적인 삶을 토대로 한 연구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런 연구환경을 조성하려는 신명호씨는 “과학기술자들이 자신의 전문성 가운데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만 지역사회에 베풀어도 살 만한 세상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연구자들은 지역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사회·환경적 변화를 주도할 수도 있다. 어쩌면 실험실에 갇힌 과학적 합리성이 껍데기를 벗고 세상 밖으로 나올 때 구호에 그치고 있는 ‘과학기술 중심사회’가 실현될지도 모른다. ‘시민참여’ 과학기술을 내세우는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출범한 지 6년, 올해는 과학기술에 소외된 주민과 함께하는 ‘연구자 참여’ 지역연구 원년이 되길 기대하는 것은 단지 희망사항일 뿐일까.

과학을 사회적 약자의 도구로…

‘시민참여연구센터’의 한 청년 물리학도가 꿈꾸는 미래

조항현/ KAIST 물리학과 박사과정 · 시민참여연구센터 코디네이터

수학이 재미있어서 그리고 외우지 않으면 문제를 풀 수 없는 과목들이 싫어서 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한 게 벌써 10여년 전이다. ‘공부만 할 줄 알던’ 나였지만 자원을 아껴 써야 한다는 생각에 기숙사 간식 시간에 버려지는 우유갑을 모아서 친구들과 열심히 씻어 말리기도 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사과정에 입학해 환경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비로소 ‘과학기술은 인류를 행복하게 해줄까?’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 2학년 때 알게 된 미국의 테러리스트 유나바머(Unabomber·‘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글을 통해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자유와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침)는 나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즈음 내 머릿속에는 생태공동체·적정기술·생태주의 같은 말들이 떠돌아다녔고, 점점 더 내가 공부하고 있는 물리학이 과연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회의하고 있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청년환경센터의 회원이 되어 활동하면서 한층 더 가까이 현실을 접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초반 반공해운동이 일어났던 온산공단에 다녀오고, 핵발전소 주변에 사는 주민들과 활동가들을 만났다. 학내 통신공간(BBS)에서도 핵발전 정책과 대안에너지에 관한 열띤 논쟁이 벌어졌고 이 논쟁에 참여한 것은 과학기술 지식을 둘러싼 갈등,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과 같은 문제들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과학기술의 발전만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정부와 기업이 주도하는 환경파괴적인 대형 개발사업을 옹호하려고 만든 논리에 맞서기는 쉽지 않았다. 승패를 가릴 수도 없거니와 어차피 논쟁에 참여했던 사람들(나를 포함해)은 프로가 아니었다. 또한 당사자도 아니었기에 논쟁의 한계는 분명했다. 그럼에도 좋은 교육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지난해 초 정부출연연구소에 다니는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대전에서 ‘과학상점’을 준비하고 있는데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학교의 한 강의실에서 만나 과학상점이 무엇인지, 대전에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듣고는 이런저런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주민들이 의뢰한 문제를 해결할 때에 과학기술 지식·연구도 분명 중요하지만 결국 사회적인 힘의 관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텐데 과학상점은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결국 정부에 종속되는 건 아닌가 하는 것들이었다. 이런 궁금증에 대해 아주 명확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답변을 듣고 나서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사무실이 따로 없어서 과기노조 사무실에서 모임을 해왔는데 연구소라는 ‘현장’에서 활동하며 과학기술의 사회적 의미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선배들을 보며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여전히 모호한 부분들이 많지만, 무엇보다 내가 사는 이 ‘지역’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과학기술자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지를 말이다. 2년에 걸쳐 준비해온 시민참여연구센터는 아직 시작 단계에 있다. 하지만 우리가 꾸준히 노력한다면, 교육과 연구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지역주민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연구를 수행해 과학기술이 전문가만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과 자연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나도 학위를 받고 졸업을 한 뒤에도 하고 싶은 일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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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지지난학기의 일인데, 서연수 교수님의 '핵산생화학'이란 과목을 들은 적이 있다. 정종경 교수님 과목에 이어 두번째로 어려운 과목으로 꼽을 수 있겠다. 수업진행은 교수님이 미리 페이퍼를 알려주고 학생들에게 페이퍼를 배정한 다음 수업시간에 학생이 그 페이퍼의 내용을 발표하면 교수님이 코멘트와 질문을 날리면서 보충설명하고 넘어가는 거였다. 물로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들도 질문을 많이 했다. 수업듣는 동안은 내용도 어렵고(! - 아마 혼자 어려웠을 것이다. 생물과가 아니라..) 교수님도 무섭고(! - 교수님이 울린 여학생이 있을 정도로 질문에 대답을 못하면 무섭게 몰아치셨다.) 다른 학생들도 무섭고(! - 교수님도 질문을 막 날리는데 학생들도 똑같이 날렸다.) 게다가 다른 학생들이 발표를 너무 잘하기도 해서(! - 그때 내가 싫어하던 TP 대마왕이 그 수업에 쓴 발표자료를 본다면...) 참으로 괴로왔었는데 그래도 지나고 보니 얻은 게 많은 수업이었다. 논문을 꼼꼼히 읽으면서 요점을 정확히 파악하는 훈련, 모르는 게 있으면 체크하고 넘어가는 훈련, 그 논문이 전체 연구 흐름에서 가지는 의미를 파악하는 훈련, 실험데이터를 보고 논문에서 해석하지 않은 부분까지 따져보는 훈련까지 되었으니 말이다. 아까 랩 후배 홈피에 갔다가 서연수 교수님이 세포생물학회 학술상 수상 기념으로 BRIC 이랑 인터뷰한 걸 보았다. 정신이 확 들었다.

http://bric.postech.ac.kr/webzine/iv/2004/iv_0403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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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학생들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학생들에게 충분한 자유를 준다. 나도 그렇게 생활해 왔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실험에 관한 조언을 해주지만 자신만의 독자적이고 경쟁력 있는 연구를 위해서 학생은 스스로 자신을 교육시키는 수밖에 없다. 자신만의 실험방식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교수가 시키거나 간섭한다고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출근이나 퇴근 시간은 언제이고 하루에 몇 시간을 연구할 것이며 어떤 실험 방법을 사용하는가 등 연구에 관한 것을 결정할 때 나는 항상 학생이 옳다고 판단하는 대로 먼저 해보라고 한다. 돌아가는 경우가 생기더라고 이것으로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 본다. 만일 연구 결과가 안 나온다면 그때는 내 방식을 제안해 본다. 실험은 상당히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경험으로 본인에게 축적이 되므로 결코 시간 낭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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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되고 싶으면 궁극적인 목표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독립적인 연구를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학위를 마치고 앞으로 10년 뒤 일정한 직업을 가졌거나 독립된 연구를 하고 있을 모습을 그려보았을 때, 그때 필요한 소양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대부분은 실험 열심히 하고 실험기술 많이 익히고 논문 많이 읽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완벽하게 독립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아주 중요하다.

하나는 연구비와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연구비가 있고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완벽하게 독립된 연구를 할 수가 있다. 연구비를 받기 위해서는 자기 머리로 생각해 낸 연구 과제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연구과제는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을 이해 시킬 수 있는 글 쓰는 능력이 중요하다. 또 한가지는 앞에 이야기 했듯이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뤄지면 실험비용, 실험기간을 줄이고 본인 연구의 질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연구비와 독립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능력, 이에 더하여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그렸을 때 꼭 필요한 부분이다. 만일 영어능력이 모자란다고 생각하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성격이 내성적이라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과 활발하게 어울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대학원 1학년 때 세미나 시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미나 시간에 발표할 때 준비 없이 바로 할 수 있는 것을 큰 자랑이고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당시 한 미국 학생이 자신의 세미나 발표 몇 시간 전에 나를 찾아와서 자신의 발표하는 것을 봐달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발표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친구가 발표 연습을 봐달라고 하는 것이 이상해서 물어보니 "이것이 내가 과학자로서 해야 할 일이고 직업이다."라고 말을 했다. 그 친구는 남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그때부터 연습하는 것 같았다. 거의 완벽한 것과 진짜 완벽한 것의 차이를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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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논문심사위원중 한분으로 서연수 교수님을 생각하고 있는데 해주신다면 물론 영광이지만 한 편으로는 더 긴장해서 잘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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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1


이성복



처음 당신을 사랑할 때는 내가 무진무진 깊은 광맥 같은
것이었나 생각해 봅니다 날이 갈수록 당신 사랑이 어려워지
고 어느새 나는 남해 금산 높은 곳에 와 있습니다 낙엽이
지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일이야 내게 참 멀리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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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 & 그녀의 시

김종완                                  
                                                                                        
 남/ 

  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아침에 그녀는 꼭 커피를 마신다. 밀크가 아닌 블랙으로 2잔
  그녀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목욕을 한다
  그녀는 항상 말하기 전에 응이라고 말한다
  지금 내 뒷자리에 앉아 잠시 창밖으로 내다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

 

여/ 

  그는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다
  그는 아침에 내가 뽑는 커피한잔이 그의 것인지를 모른다
  내가 그와 수업을 같이 하는 날 목욕을 한다는 것을 모른다
  그는 긍정적인 말을 해주는 것을 좋아하지만
  내가 항상 그말을 그를 위해 해준다는 것을 모른다
  내가 지금 그의 뒷자리에 앉아 창에 비친
  그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른다

 

 남/ 

  그녀는 하기 싫은 부탁을 받을때는 그냥 웃는다
  그리고, 내색을 안하는 그녀이지만 기분이 좋을때는
  팔을 톡톡 두 번 건드리며 이야기를 건넨다
  그녀의 집은 열시가 되기 전에 모두 잠에 든다
  그래서 그녀와 밤 늦게 통화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녀는 바지보다 치마를 좋아하며 연분홍을 좋아한다

 

여/ 

  그는 어려운 일을 말없이 해주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의 침묵에 담긴 긍정의 의미를 모른다
  난 내가 기분이 좋을 때 그의 손을 잡고
  얼마나 이야기 하고 싶은지 그는 모른다
  늦은 밤에도 그의 전화를 기다리며 불 끈 방안에 어둠 속
  그를 얼마나 보고 싶어하는지 모른다
  그는 치마를 좋아하고 연분홍을 좋아한다
  나는 검은 바지를 좋아하지만....

 

남/ 

  긴머리는 아니지만 적당히 항상 머리를 기른다
  수요일까지는 밤색 머리띠를 하고 주말까지는 흰색머리띠를 하고 다닌다
  표준어를 잘 쓰지만 이름을 부를 때만은 사투리 억양이 섞인다
  그리고, 반가운 사람의 이름을 두 번 부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도서관 저쪽 편에서 그녀가 지금 일기를 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여/ 

  몇 년전 친구들과 돈을 모아 사준 밤색 머리띠를 그는 기억하지 못하며
  그가 가장 인상 깊었다는 여인의 머리핀이 흰색이었다고 말한 것도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그의 이름에만 억양을 넣는다는 것을 그는 모른다
  그리고, 지금 내 일기장에 그의 이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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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ce 2004-04-06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낭독의 발견'이란 프로그램을 다시 보기로 보고 있다. 성시경과 송선미가 같이 읽은 그의 시 & 그녀의 시.http://www.kbs.co.kr/1tv/sisa/tvzone/recite/program_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