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지지난학기의 일인데, 서연수 교수님의 '핵산생화학'이란 과목을 들은 적이 있다. 정종경 교수님 과목에 이어 두번째로 어려운 과목으로 꼽을 수 있겠다. 수업진행은 교수님이 미리 페이퍼를 알려주고 학생들에게 페이퍼를 배정한 다음 수업시간에 학생이 그 페이퍼의 내용을 발표하면 교수님이 코멘트와 질문을 날리면서 보충설명하고 넘어가는 거였다. 물로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들도 질문을 많이 했다. 수업듣는 동안은 내용도 어렵고(! - 아마 혼자 어려웠을 것이다. 생물과가 아니라..) 교수님도 무섭고(! - 교수님이 울린 여학생이 있을 정도로 질문에 대답을 못하면 무섭게 몰아치셨다.) 다른 학생들도 무섭고(! - 교수님도 질문을 막 날리는데 학생들도 똑같이 날렸다.) 게다가 다른 학생들이 발표를 너무 잘하기도 해서(! - 그때 내가 싫어하던 TP 대마왕이 그 수업에 쓴 발표자료를 본다면...) 참으로 괴로왔었는데 그래도 지나고 보니 얻은 게 많은 수업이었다. 논문을 꼼꼼히 읽으면서 요점을 정확히 파악하는 훈련, 모르는 게 있으면 체크하고 넘어가는 훈련, 그 논문이 전체 연구 흐름에서 가지는 의미를 파악하는 훈련, 실험데이터를 보고 논문에서 해석하지 않은 부분까지 따져보는 훈련까지 되었으니 말이다. 아까 랩 후배 홈피에 갔다가 서연수 교수님이 세포생물학회 학술상 수상 기념으로 BRIC 이랑 인터뷰한 걸 보았다. 정신이 확 들었다.
http://bric.postech.ac.kr/webzine/iv/2004/iv_0403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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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학생들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학생들에게 충분한 자유를 준다. 나도 그렇게 생활해 왔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실험에 관한 조언을 해주지만 자신만의 독자적이고 경쟁력 있는 연구를 위해서 학생은 스스로 자신을 교육시키는 수밖에 없다. 자신만의 실험방식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교수가 시키거나 간섭한다고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출근이나 퇴근 시간은 언제이고 하루에 몇 시간을 연구할 것이며 어떤 실험 방법을 사용하는가 등 연구에 관한 것을 결정할 때 나는 항상 학생이 옳다고 판단하는 대로 먼저 해보라고 한다. 돌아가는 경우가 생기더라고 이것으로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 본다. 만일 연구 결과가 안 나온다면 그때는 내 방식을 제안해 본다. 실험은 상당히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경험으로 본인에게 축적이 되므로 결코 시간 낭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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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되고 싶으면 궁극적인 목표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독립적인 연구를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학위를 마치고 앞으로 10년 뒤 일정한 직업을 가졌거나 독립된 연구를 하고 있을 모습을 그려보았을 때, 그때 필요한 소양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대부분은 실험 열심히 하고 실험기술 많이 익히고 논문 많이 읽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완벽하게 독립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아주 중요하다.
하나는 연구비와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연구비가 있고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완벽하게 독립된 연구를 할 수가 있다. 연구비를 받기 위해서는 자기 머리로 생각해 낸 연구 과제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연구과제는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을 이해 시킬 수 있는 글 쓰는 능력이 중요하다. 또 한가지는 앞에 이야기 했듯이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뤄지면 실험비용, 실험기간을 줄이고 본인 연구의 질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연구비와 독립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능력, 이에 더하여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그렸을 때 꼭 필요한 부분이다. 만일 영어능력이 모자란다고 생각하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성격이 내성적이라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과 활발하게 어울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대학원 1학년 때 세미나 시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미나 시간에 발표할 때 준비 없이 바로 할 수 있는 것을 큰 자랑이고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당시 한 미국 학생이 자신의 세미나 발표 몇 시간 전에 나를 찾아와서 자신의 발표하는 것을 봐달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발표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친구가 발표 연습을 봐달라고 하는 것이 이상해서 물어보니 "이것이 내가 과학자로서 해야 할 일이고 직업이다."라고 말을 했다. 그 친구는 남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그때부터 연습하는 것 같았다. 거의 완벽한 것과 진짜 완벽한 것의 차이를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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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논문심사위원중 한분으로 서연수 교수님을 생각하고 있는데 해주신다면 물론 영광이지만 한 편으로는 더 긴장해서 잘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