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냥 겉늙은 거지 뭐
진리에 진짜와 가짜로 구분할 수 있는 법. 모두 진짜를 말하니 어쩔 순 없어도 중요한 건 자신을 똑바로 밝히는 것. 그리고 비교된 남을 의식하고 우습게 말한 것 우습게 무지 속에 자신과 대화하는 것. -양동근 1집의 <선문답> 중에서- |
늑대 좋아하는가.
늑대? (거울을 쳐다보며) 음. 사실 평소에는 늑대를 좋아할 일이 없지 않나. 늑대를 아무 데서나 그냥 막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지막 늑대>의 최 형사 역할. 당신과 닮았다. 싫은 것들과는 죽어도 함께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무리들 안에서만 혼자 노는 늑대 같은 이미지.
처음 최철권 역할을 받았을 때 생각하길, 일하기 싫어하는 형사니까. 그리고 내가 원래 일하기 싫어하니까. 그냥 그렇게 하면 되겠다 싶었다. 결국 그것도 일이지만. 뭐.
일하기 싫어하는구나. 예를 들어 이렇게 생면부지의 귀찮은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일 같은 거.
전부 다 내가 뭐 그리 달가워하는 일은 아니지만. 어떡하나. 휴우(목소리에 힘이 빠지며) 하라는 데 해야지 뭐.
<마지막 늑대>는 봤나.
내가 본 건 가편집본이라 음악도 없고 제대로 된 건 아니니까. 제대로 된 걸 보고 나야 정말로 이야길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편집본을 본 감이라면, 글쎄 영화가 좀 난해하기도 하고. (웃음) 엇박자의 코드? 그런 식의 영화라고 알고 했다. 막말로 이 영화가 ‘개코미디’는 아니니까. 막 웃기고 그런 영화는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감독과는 허물없이 잘 지냈나.
뭐, 감독님은 생각이 되게 많으시고, 뭐 굉장히 급한 상황이지만 빨리빨리 그렇게 절대로 안 찍으시고, 배우들하고 얘기하는 거 되게 좋아하시고. 허물없이? 음. 허물없이 친구같이 지내고 싶어하셨던 것 같기는 하다. (웃음)
이만큼 배우로서 성장한 지금. 영화를 찍으면서 이젠 자기 나름의 애드리브 같은 것도 넣고 싶지 않은가? 자기만의 해석 같은 것들.
음… 시나리오 그대로, 나는 언제나 거의 시나리오 그대로만 하기 때문에 애드리브는 그렇게 많이 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제는 욕심이 생길 때도 됐지 않았나.
애드리브란 게 내가 하는 그 자체가. 그 연기를 이렇게(손으로 왼쪽을 가리키며) 할 걸 요렇게(손으로 오른쪽을 가리키며) 하는 것도 애드리브일 수 있는 거고 그런 거 아닌가?
황정민씨와의 작업은? 실제로 친하지 않고서는 영화 속이라도 서로를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은 나오질 않지.
정민 형이 많이 도와줬다. 분위기 메이커 노력을 많이 했고. (웃음) 정민이 형이 워낙에 성격이 좋아서. (웃음)
<마지막 늑대>와 <와일드카드>의 두 형사 중 누가 더 양동근인가.
둘 다 내가 아니다. (목소리 높아지며) 내가 형사가 아닌데 어떻게 가까울 수가 있겠나. 나는 그냥 역할만 충실히 한다. 둘 다 나와는 전혀 다른 인간들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마지막 늑대>는 코미디영화인데 사실 어떨 때 영화가 빛나냐면 카메라가 얼굴을 비출 때의 양동근씨 표정 같은 것들. 좀 구멍이 뚫린 것 같은, 페이소스가 살짝 엿보이는 장면들.
겉늙은 거지 뭐. (폭소) 워낙 피곤한 일을 많이 겪으면 그렇게 되는 거 아닌가? (웃음) 휴우. 정말 계속 일이었다 내 젊은 날은. 일. 일. 그런데 뭐(설명하려다 멈칫하고) 그냥 그렇게 되더라. 그냥 이리저리 많이 겪고 하다보면.
2. 사는 거? 재미없는데 재미있는 거지 뭐
촬영장에 서너 시간 시속 200km 때려밟고 다니며 가사 쓰기도 이젠 질려 배우하랴 가수하랴 기진맥진 일보직전 밥이 밥인지 내가 밥인지 먹히고 먹히네 -양동근 2집 <착하게 살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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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 앨범을 들어보면 ‘혼자 있는 이 길이 너무 쓸쓸해’ 하던 양동근이 ‘쓸쓸하지 않기로 열심히 매진해’라고 랩을 한다. 쓸쓸함이 줄어든다는 건 사는 게 재밌어진다는 건데, 나이가 들수록 사는 게 재밌어 지는 것 같은가.
우헤헤헤헤헤헤. 나이? 사는 거? 사는 거(한숨). 질문이. 질문이 왜 이래. (같이 폭소) 사는 게 어때? 뭐. ‘재미없는데 재미있다’ 그게 맞는 말이겠다.
사는 건 재미있는데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게 재미없다.
아니. 사는 건 별로 재미없는데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게 재미있다는 거지. (미소)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재미있는 것들.
종교적인 것들도 있고. 음악하는 것도 그렇고. 사는 거에 연관된 것. 그러니까 돈문제 같은 것, 그런 것들은 다 재미없는데 내가 하는 음악 같은 것은 재미있고.
뭔가 비어 있는 듯한 그런 역할들이 계속 자신에게 맡겨지는 게 좀 재미없지 않나.
그냥 요즘은 그런 거 생각하면서 일할 틈이 없다. 그냥 있는 거 빨리 해치워야지. 앞에 깔려 있는 게 너무 많아서 그거 해치우기도 바빠서 생각하면서 살 수가 없다.
지금의 양동근이 예전의 아역배우 양동근에서 갑자기 성장했다라고 스스로 느끼는 작품이.
(고민없이) <수취인불명>! 그거 찍을 때가 참 재미있긴 했던 것 같다.
그때도 김기덕 감독, 굉장히 빨리 찍었나? 그래서 재미있었나.
아유. 그때도 다른 거랑 겹치기 출연하던 때여서 그건 잘 모르겠고. 김기덕 감독이랑 영화찍는 거. 연기자로서 한번 해볼 만한 작업인 것 같다. 하면서 배우는 거 그런 게 있다. 그분이 대단히 특이하시고 독창적이시니까 한번 더 같이 작업하면 또 다른 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네멋대로 해라>를 다시 이야기하는 것도 좀 늦긴 했지만. 그래도 ‘고복수’ 역할은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몸에 딱 맞는 역할에 그토록 몰입해서 연기하고 나서 느낀 허탈함 같은 것은 없었나.
(조금의 고민도 없는 단호함으로) 난 끝나고 너무 좋았다. 정말 고생했으니까. 그냥 끝나고 나니까 너무너무 좋기만 했다. 그런 생고생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