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까지만 해도 남한은 고립된 섬이었잖아요.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 세계를 벗어나는 길은 여권을 구하든지, 아니면 밀항하든지 둘 중 하나였죠.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인이나 일본인으로 태어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아쉬워하죠. 이번 생에는 글렀으니까 혹시 다음 생에라도? 그런 게 저녁 여섯시에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태극기가 있는 시청 쪽을 향해서 몸을 돌리고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리던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이에요. 그런데 정민의 삼촌은 '왜 이런 체제뿐일까?'라고 질문한 거죠. 바로 그 무렵에 중앙전신국에서 수류탄이 터지는 것을 직접 봤고, 청원경찰에게 폭행을 당하죠. 문제는 그게 우연한 폭행이었다는 점이었어요. 폭력에 관한 한 제비뽑기를 하는 사회인 거죠. 단군의 자손으로 태어난 한민족으로서 태극기를 향해서 애국가를 목청껏 부르던 사람도 그 다음 순간 아무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히게 되고, 심지어는 사형까지 당해요. 놀라운 반전이죠. 그런 일을 당하면 한민족이니 대한민국이니 유신이니 하는 말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런 걸 깨닫고 나면 단 하루도 버틸 수가...-329-3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