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
대니얼 L. 샥터 지음, 박미자 옮김 / 한승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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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Seven Sins of Memory.  모처럼 원제와 번역된 제목이 똑같다. 

하긴 이것보다 더 잘 팔릴 제목을 찾기도 쉽지 않을 듯.  특히나 서구에서는.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일곱가지 악덕, 혹은 죄악이라는 그 전통적인 개념에 맞춰서 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불교는 8개인가 9개였으니까 아마 이 책이 동양에서 써졌다면 한두개가 더 추가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시 잠깐 했다.

사나흘 계속된 미술책 읽기에 질려서 과학쪽으로 한번 튀어보자는 결심으로 작년에 사놓고 꽂아만 놓은 이 책을 골랐다.  제목을 보건데 챕터가 7개 정도로 나뉘어 있어 진도도 잘 나가고 쉽게 읽힐 거라는 예상을 했는데 생각보다는 좀 어렵다.

화성의 인류학자니 스키너의 심리상자 류의 정말 맛있는 것들만  씹어먹기 좋게 묶어 놓은 애피타이저 형식의 내용을 기대한다면 이 책은 피함이 옳다.  재미있는 사례들이 곳곳에 언급되기는 하지만 사례가 주가 아니라 일곱개로 나눈 기억의 매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들일 뿐이다.  내용의 대부분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겪는 기억과 관련된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해나가고 있다.

내용 자체도 그다지 쉽지 않은데다 문장도 상당히 긴 만연체고, 또 실험의 방식이나 내용이 영어의 언어체계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다른 언어권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그 도출 방식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 한번 더 머리를 써야했다.  주절주절 변명이 많았는데 여하튼 좀 어려웠다는 것. 

씹어 삼키기 만만치가 않아서 그렇지 단편적인 사례 소개와 달리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는 텍스트 자체는 굉장히 읽을만 하다.  그리고 -아마 이 책을 읽는 독자 대다수가 그렇겠지만- 내 기억력이나 인지 능력이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을 발견하며 안도하는 것도 또 다른 수확이라고 하겠다.

많은 얘기들이 있었지만 특별히 내게 와닿았던 것 몇가지만 정리를 해보자면.

기억의 소멸은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고... 정신없음에 관한 부분.  정신 빼놓고 손에 든 걸 찾는 등 엉뚱한 짓을 하는 건 거의 대부분의 인간에게 빠지지 않는 경험이지만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차 위에 올려놓고 운전한 음악가의 얘기는 정말.  -_-;;;  하긴 천만원짜리 -그것도 거의 20여년 전이다- 플륫을 택시에 두고 내린 선배도 있었고, 요요마도 기천만원으로 추정되는 첼로 (<- 자그마치 첼로다. 플륫은 작기라도 하지.)를 택시에 두고 내린 유명한 일화가 있으니 정신 빼놓는 데는 액수가 큰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다행히 내 인생에서 이 정도로 극적인 사고는 아직 없었다.  앞으로도 없기를.

막힘에 관한 부분을 읽으면서는 마구마구 공감.  특히 떠올려야 할 것을 방해하는 다른 단어의 존재가 있다는 부분은, 이게 비판받는 이론일지 몰라도 적어도 내게는 적용된다. 

난 '원초적 본능'을 떠올리려면 항상 긴 과정이 필요하다.  혀ƒP에서 맴돌면서 떠오르지 않는 이 영화 제목을 찾아내려면 먼저 마이클 더글라스와 글렌 클로스가 나온 '위험한 정사'란 영화를 항상 먼저 찾아낸다.  그리고 위험한 정사의 영어 제목과 원초적 본능의 영어제목, 그리고 샤론 스톤까지 찾아낸 다음 마지막 순간에 힘들게 원초적 본능이라는 제목을 입밖에 낼 수 있음.  몇변이나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이 병을 기억해냈고 역시나 위에 언급한 긴 과정을 거쳐서 겨우 성공,  지금은 술술 나오지만 아마 한 두어달 뒤면 또 잊어버리고 같은 작업을 해야겠지.

그리고 피암시성에 관한 부분을 보면서는 오래 전에 봤던 오프라 윈프리 쇼를 다시 떠올렷음.  당시 너무 충격적이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을 하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형제들이 있고, 한명이 심리치료를 받다가 자신이 어릴 때 부모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걸 밝혀낸다. 너무나 충격적인 기억이라 스스로 묻어버렸고 그것이 무의식에 남아 현재 자신을 이렇게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 심리치료 과정에서 밝혀진 요지.  거기에 너무 공감한 그녀는 다른 자매를 그 치료사에게 데려가고 같은 과정을 거친다.  줄줄이 치료사를 찾아가 이렇게 부모의 엄청난 죄(?)를 확신한 자식들은 급기야 부모를 고소한다. 

그런데 그 앗싸리판 가운데 유일하게 정신이 좀 온전한 자식이 뭔가 아니다 싶어서 다른 심리치료사를 찾아가고 그 기억이 교묘한 유도에 의해 날조된 거라는 확신을 얻게 된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을 또 바른(?) 길로 인도해 다시 정신이 줄줄이 돌아와서 이번에는 그 심리치료사를 고소하는 난리가 난 것.  그 과정에서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서 그런 악덕 심리치료사들을 성토하는 장을 만들고 유도나 암시의 위험성에 대해 얘기를 했었던 걸로 기억을 한다. 

지금이야 그것도 심리학과 미국의 심리치료사들이 저질렀던 치명적인 오류의 일부로 판명이 됐지만 그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피해자들이 나와 증언을 할 때까지만 해도 그게 상당히 논쟁이 되는 부분이었는데...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억울한 피해자라고 옹호한 케이스를 비롯해서 아마 꽤나 많은 피해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 암시의 무서움은 독재국가에서 잘 이용하고 있는데... 여기 나온 케이스며 암시의 종류, 망각 등을 보면 전00 등등의 인간들이 너무나 뻔뻔하게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이들은 자기 암시가 확실한 인간들이지 싶다.

아메리칸 리그에서 역전 홈런을 맞고 패배한 구원투수가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지속성의 문제.  성격적인 결함이 많다는 지탄을 받지만 김병현 선수가 잘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를 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창 시절엔 사진이나 복사기 같은 기억력을 원한다.  그걸 가지면 시험에 틀릴 일도 없고 인생이 너무나 잘 풀릴 거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모든 기억을 갖고 산다는 건 저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빨리 잊어야할 고통의 기억들을 모조리 그 함량 그대로 수십년씩 쌓아서 지고 갈 수 있을까?   망각은 신에게 인간이 준 최고의 선물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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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도 - 영원한 이방인 사백 년의 기록
김충식 지음 / 효형출판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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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도 다 짐작이 되듯이 일본에서 뭔가 족적이랄까 나름대로 흔적을 남긴 한국인들에 대한 얘기이다.

일본을 믿고 함께 뭔가를 도모하려 했던 김옥균, 끝까지 저항한 최익현, 임진왜란 때 끌려가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거기에 순응해 살았던 이진영이라는 선비부터 얘기가 시작된다.  이것은 길게는 4백년 전, 짧게는 수십년 전 자의건 타의건 일본에 뿌리내려야했던 한국 핏줄이 택했던 세갈레 길을 상징한다.

그 다음부터 수록된 인물들은 도고 시게노리처럼 정말로 이 사람이 한국계? 라는 놀라움을 주는 인물부터 대충 이름은 듣고 알고 있었던 심수관이며 역도산 같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내가 이 책을 택한 목적은 이삼평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서였는데 솔직히 각 인물들에 대한 추적과 소개는 깊은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좀 얕다.  신문이나 잡지의 특집기사 정도의 깊이.  그래서 쉽고 재밌긴 하지만 다음 단계의 조사를 위한 디딤돌 정도로 받아들임이 좋을 것 같다.

각자 기대하는 정보의 폭이나 깊이를 제외하고 사실의 단편은, 이런 류의 간단한 인물사치고는 꽤 많은 생각의 가지를 치게 한다.  인물 자체보다 그가 속한 사회 전체에 대한 고찰을 가능하게 해주는 내용이라고 봐야겠다.

일단... 끌려간지 4백년이나 되는데도 한국계라는 것을 밝히고 이름을 지켜내는 그 힘은 무엇인지?   메이지 유신 이후 그 가혹하다면 가혹할 일치주의의 파고를 넘고 이름을 바꾸지 않은 이삼평이며 심수관 가도 대단하지만 실상 그 이전 3백년을 지켜온 사람들도 보통은 아니다.  한두 세대도 아니고 3백년이면 이미 조선이란 땅과의 연결 고리나 핏줄은 흔적만 남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텐데.  메이지 때까지 조선 이름을 지켰던 이들의 상당수가 특권층에 속해 조선출신이라는 이유로 핍박받을 일이 적었고 봉건사회 특유의 폐쇄적인 커뮤니티와 혼인 관계를 생각해도 대단한 기록이란 생각이 든다.

우산이 사라지고 조선인에 대한 전 국가적인 차별이 시작된 것은 메이지 시대부터인 것 같은데 최근 소위 한류 열풍에 묻혀 잊혀졌지만 1980년대까지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은 뉴스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메뉴였다.  그걸 배경으로 한 이현세와 허영만의 만화나 영화, 드라마 같은 것도 꽤 있었다. 

어느새 묻혀버린 과거지만 당하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정말 삶이 투쟁 그 자체였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차별을 못 이겨 일본식으로 이름으로 바꾸고 귀화하는 사람들은 경원시하고 고생을 자청하는 사람들을 영웅 취급하는 분위기도 우리 사회에 상당히 큰 흐름이었다. 
나도 당연히 귀화=배신이라는 가치관을 가진 어린이 중 하나였는데... 어른이 되고 오랜만에 잊고 있던 그 차별의 기록을 만나보니까 오히려 귀화한 쪽에 더 동감이 된다고 할까.  이름을 지켜낸 사람들은 정말로 독하디 독한, 보통이 아닌 인간이다 싶다.  

그런데 버텨낸 한국인들도 대단하지만 일본인들도 좀 웃기달까... 어디 내놔도 만만찮은 우리보다 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건너온 바로 그 세대나 다음 세대를 차별하는 건 나름 이해를 하겠다. 그런데 몇백년이나 그 땅에서 결혼하고 밥 먹고 살았으면 이름이 뭐건 일본인인데 단지 조선에서 왔다는 이유로 그렇게 차별하게 집요하게 못살게 굴 수 있다니...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경탄이 터져나온다.  시마구니 곤조로도 모자라는 듯.  뭔가 다른 단어를 찾아내 붙여줘야 할 것 같다. 

먼지 쌓여 잊고 있었던 차별에 관한 기록과 몰랐던 이름들을 많이 알게 된 것이 수확.  문청을 꿈꿨던 기자라 그런지 곳곳에서 감정 과잉의 문체가 좀 거슬리긴 했지만 전체적인 가치를 폄하할 정도는 아니다.  뭐 그 역시도 각자의 취향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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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바둑왕 23 - 완결
홋타 유미 글, 오바타 타케시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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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스트 바둑왕은 시작부터 끝까지 스토리 작가는 일본만화의 전형적인 흥행 공식을 밟아간다.  자기 능력을 깨닫지 못하는 천재 소년.  특별한 계기에 의해 그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자기만큼 뛰어난 라이벌과 거대한 산맥들과 경쟁하면서 실력은 일취월장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  그게 내가 본 일본 만화의 기본 공식이다.

그런데 이 공식에 충실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변형을 발휘하는데 그게 재미가 있는 동시에 기대와 살짝 틀어지는, 전형성을 좋아하는 내 스테리오타이프 부분에는 살짝 아쉽기도 하다. ^^

주인공 히카루는 바둑판에 스며 있다가 바둑에 대한 그의 잠재 능력에 의해 깨어난 헤이안 시대의 바둑천재이자 혼인보를 이끌었던 유령과 만나면서 전혀 관심없던 바둑에 눈을 뜨게 된다.  사실상 세계 최강의 고수랄 수 있는 유령 사이의 손이 되어 바둑을 두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바둑을 하기 원하기 시작.  그리고 그가 바둑에 진정한 열정을 갖고 눈을 뜨면서 임무를 다 한 사이는 사라진다. 

일본 바둑을 사실상 예술의 수준으로 격상시켰던 슈우사쿠처럼 몸을 내주고 사이의 바둑을 두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긴 했는데...  ^^;  그러니까 영혼이 결합이 되어서 둘이 하나가 된다거나 하는.  작가는 소년의 각성과 독립을 원했다.  사실 그것이 이 작품의 장점이기도 하다.  전형성에서 어느 정도는 탈피한 색채를 보여주기 시작했으니까.

사이가 완전히 떠난 뒤가 2부.  이제 히카루만의 바둑 인생이 시작되는데 이건 1부에 비해 현실적이긴 하지만 조금은 용두사미가 된 느낌.  엄청난 대결을 위해 안배한 걸로 여겨졌던 인물들은 그냥 주인공의 재능을 알아보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정도 끝이 났다.  좀 더 격렬한 대결을 기대했던 라이벌과도 이미 1부 후반부터 협력관계가 되어 버렸고.

바둑판 위를 전쟁터로 여기는 한국의 치열한 싸움바둑과 달리 바둑을 춤이나 그림처럼 일종의 예술로 생각하는 일본의 바둑관이 결국 작품에도 반영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좀 이채로운 일인데 -뭐 아직은 한국의 밑인 일본 바둑의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고 끝까지 현실적으로 가기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대결에 주인공이 한국인 기사에게 진다. 내 20년 만화 인생에 주연이 아닌 조연이 이기기를 바라기는 처음인데 여하튼 바램대로 되었음. ㅎㅎ  일본 만화가가 자국인인 주인공이 패배하고 타국인의 승리로 결말을 짓기는 참 힘들었을 텐데 그런 면에서 만화가나 그걸 받아들이는 마인드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는 이름들이 철자나 음 한두개만 바꿔서 등장하는 것을 보고 실명찾기 게임하는 느낌, 일본 바둑계가 어떤 구조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되는 점에서도 흥미로웠다.  

일본 만화 특유의 네버엔딩 스토리가 가능했는데 여기서 정지를 한 건 작가의 결단이 대단하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뒷심이 부족했다고 해야할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처음 기획의도보다 축소한 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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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서머 - NaVie 37
조강은 지음 / 신영미디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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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잡은 자리에서 딴짓하지 않고 끝까지 읽은 책이 얼마만인지.  

책 내면서 열심히 쓰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뻔한 소재를 너무 뻔~하게 풀어나가는 것에 더해 오타와 맞춤법, 개연성까지 무시한 책은 정말 괴롭다.  재미만 있으면 오타 등등의 모든 제반 여건을 모조리 무시할 수 있는 나마저도 요즘은 읽다가 포기하는 책들이 속출했는데 얘는 올해 들어 잡은 책중에 몇 안되는 성공작.

약간은 극단적인 성격의 여조와 여주의 출생 비밀을 제외하고는 잔잔하니 심리 위주로 상처가 많은 남녀의 줄다리기를 그려내고 있다.   구구한 설명과 지리한 사건이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서 간결하게 잘라내 상상의 여지를 남기면서 진행하는 그 테크닉은 잘 보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이런 깔끔한 구성이 독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이 소설에 대한 평가를 올려주는데 일조를 했을 것 같다.  거기에 더해 완벽 남주가 홀라당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그 만고불변의 흥행 공식이 튀지 않게 자리잡고 있었기에 안티가 없는 인기도 가능했겠지. 

오랜만에 몰입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해주는 소설이었음.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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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세트 - 전10권
오승은 지음, 서울대학교 서유기 번역 연구회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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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3달 여에 걸쳐서 서유기 전권을 끝냈다.

억지로 읽지 않고 일부러 쉬엄쉬엄 읽어나갔기에 즐겁게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은데 일단 어릴 때 읽던 서유기를 정말 제대로 어른이 되어서 다 읽었다는 사실에 대해 스스로 만족감을 느낀다. 

생략됐던 모험들, 단편만 나와서 궁금했던 얘기들을 다 챙겨보는 즐거움.  어린이 때 단순하게 받아들였던 그 평면적인 캐릭터들이 입체감을 갖고 살아나오는 것을 파악하는 기쁨.   그리고 도교, 유교, 불교가 어우러진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과, 이런 엄청난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발견하는 순간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구어체 형태인 문체에 대해 불만을 가진 리뷰를 보고 걱정을 좀 했는데, 어법이나 맞춤법에 문제가 심하지 않는 한 내가 문체 같은 것에 별로 집중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얘기 자체에 빠져들다보니 거기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듯.

서유기의 캐릭터들은 워낙 영화나 애니매이션, 만화로 많이 캐릭터화되다 보니 삽화가 사실상 크게 필요 없었지만 책 앞쪽에 그려진 고전풍의 삽화들도 꼼꼼하니 마음에 들었다.  특히 마지막에 있는 사전 형식의 용어 풀이와 삼장법사 일행이 겪은 81가지 고난을 요약 정리해놓은 부분은 리포트나 감상문 숙제를 해야할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서유기 전권 번역본이 여러개 있는데, 직접 다 읽어보지 않았으니 객관적인 평가는 될 수 없겠지만 이 전집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그런데 저 박스는 솔직히 좀 무용지물.  -_-;  앞에서 책을 뺄 수 있도록 하는 박스형태로 했으면 좋았을 텐데 전시용 보관은 몰라도 책을 읽으려는 사람에게는 영 불편.   아까워서 어떻게든 남겨두려고 했지만 걸리적거려서 결국 버렸다.   이왕 돈을 쓸거면 모양과 함께 실용성도 고려를 좀 해줌이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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