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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꿈
이서윤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로맨스를 읽는 독자들과 읽지 않거나 무시하는 독자들 사이에는 절대 건널 수 없는 간극이 하나 있다.
바로 정형성과 신파.
로맨스를 읽지 않는 사람들은 대충 4-5가지의 패턴이 반복되는 그걸 무슨 재미로 읽느냐, 유치하다고 평한다. 또 로맨스 소설을 오래, 또 많이 읽어온 독자들도 이 소위 뻔한 설정과 전개라는 '정형성과 신파'에 대해 가혹하다.
나 역시 속편한 독자로서 너무 파격적인 설정이나 전개는 '로맨스가 아녀~'라고 투덜거리고, 좋아하지만 많이 보던 설정은 '너무 식상해'라고 고개를 젓는다.
그렇지만 동시에 열광한다. 그 열광의 강도는 뻔~한 것을 와닿게, 혹은 재미있게 그려놨을 때 더 높아지는 것 같다. 로맨스 독자들은 신선함을 원하면서도 한계를 벗어나는 걸 싫어하는 -로맨스를 읽지 않는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천날 만날 똑같은 유치한 사랑타령을 주구장창 원하는 인간들일 수도 있다.
이 아이러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게 현재 로맨스 작가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족이 길었는데 인형의 꿈은 전형적인 신파다.
이 작가의 글은 극으로 가지 않는 적절한 신파와 정형성 안에 있고 그걸 벗어나지 않는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감성을 최대한 자극하려 노력하지만 스토리 라인에 있어선 정형성의 한계를 벗어나는 걸 아주 두려워하는 것 같다. (딱 한 작품. 그녀의 현대물 중에 위드유는 제외. 신선하면서도 로맨스 독자가 허용할 수 있는 한계치에 딱 걸려 있었다. 나는 무척 좋았는데 그 신선함 때문에 혹평을 받았던 것 같고... 이건 취향차이일테니 패스. 내가 하얀 짬뽕을 좋아한다고 빨간 짬봉이 좋다는 사람들을 이상하다고 할 수는 없는 거니까.)
인간성이 나쁘거나 하진 않지만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있는 한의사 윤호. 공부는 잘 하지만 홀어머니 밑에서 열심히 사는 착한 딸이기에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소심 법대생 은호.
대학 때 만나서 은근슬쩍 서로에게 끌리지만 난경이라는 윤호의 오래된 여자친구 때문에 다가서지 못하다가 사고(?)를 치지만 커플을 찢어놨다는 주변의 오해와 저돌적이지만 배려가 없는 윤호 때문에 헤어져 4년 뒤 재회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다음의 얘기는 전형적이다.
은호를 잡기로 결심한, 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윤호의 노력. 열심히 살고 있지만 어머니의 병으로 중단했던 사시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은호. 그녀의 고질병인 목디스크 치료를 일부러 윤호의 병원에서 받도록 윤호와 은호의 친구가 조종하면서 본격적인 재회. 은호 주변을 맴도는 회사의 이사가 남조로 등장해 주시고. 사실은 은호와 상관없이 헤어졌던 여조가 등장해 막판에 잠깐 정신없이 결말을 향한 마지막 소동을 벌여주고 해피엔딩~
독자를 크게 피곤하게 하는 악역 여조나 남조, 혹독한 사건없이 자기중심의 싸가지 왕자는 최소한 자기여자에게만큼은 사려깊은 남자로 변신하려고 노력하고, 소심한 일중독자 은호도 아주 조금씩이지만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고 한때 버렸던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한다.
평온하고 잔잔하게 굴러가는 스토리 라인이지만 이전 글에서 보이던 지나친 감정 몰입을 자제한 깔끔하고 유려한 문체 덕분에 지루함이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숨막히는 사건 전개와 엄청난 복선과 반전이 있고, 강렬한 캐릭터들이 마구 설쳐 정신을 홀랑 빼놓는 로맨스도 좋지만 느긋하고 편안하게 몇시간을 즐기고 싶을 때는 딱인 잔잔한 재미가 있다.
아쉽다면 내용 중에 남자 주인공과 관련해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그동안 책을 봐온 경험상 이 작가나 출판사는 꽤 꼼꼼히 교정을 보는 것 같던데 그걸 왜 찾아내지 못했을까? 도둑이 들려면 개도 안 짖는다는 말이 여기에 적용이 되나? ㅋㅋ 귀찮아서 그것까지는 쓰지 못하겠음. 궁금하면 직접 찾아보시길~
결론 정리.
전형적이고 잔잔하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즐거운 신파를 원한다면 추천. 로맨스란 심장을 벌렁벌렁 뛰게 만드는 긴박감과 예측불허의 스토리는 기본이고 엄청난 감동과 심금을 마구마구 울리는 여운은 필수 옵션이라고 생각하면 비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