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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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로 1985년에 나온, 올리버 색스 박사의 책 치고는 상당히 초기작인데 나는 이제서야.  ^^ 

내가 읽었던 화성의 인류학자와 10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나온 책인데 같은 저자가 비슷한 주제를 갖고 쓰는 건데도 세월의 흔적이랄까, 그 변화상이 보인다. 

화성의 인류학자가 목소리 톤이 더 낮고 느릿하니 좀 더 안정적이고 학술적인 느낌이 드는 내용이라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이 안에 있는 약간은 정신없는 삽화들처럼 내용의 흐름도 빠르고 마치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아차 잘못하면 그 흐름을 놓치게 된다. 

그리고 늙음과 젊음(물론 1985년 때도 젊음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나이지만)의 차이가 있어서인지 아내를 모자~에서 올리버 색스는 자신의 환자들에게 좀 더 많이 감정 이입을 하고 좀 더 가깝게 다가서는 것 같다.  화성~은 그 책의 제목처럼 화성에 떨어진 인류학자처럼 비교적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환자들을 관찰한다.  내용의 흐름이나 책읽기는 개인적으로는 화성의 인류학자 스타일의 내용이 더 좋긴 하지만... 이 책도 재미있다는 점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화성~에서보다 더 낙관적이기 때문에 화성~을 읽을 때처럼 가슴이 갑갑하진 않다. 

그저 정신병의 일종으로만, 혹은 저능아로 지나가던 증상의 원인을 뇌의 매커니즘을 파악하고 대처해 나가는 과정이나 그가 만났던 아주 독특하고 특이한 환자들에 대한 내용을 보면 인간의 뇌, 궁극적으로 인간의 신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정교한 매커니즘을 갖고 있고 우리가 아는 게 얼마나 적은지에 대해 인정하게 된다.  알면 알수록 자신이 모르는 게 많다는 걸 발견하게 되는데... 아마 그래서 화성~은 이 아내~보다 덜 낙관적이었는지 모르겠다.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소리는 빠짐없이 쓰는 것 같은데, 지극히 평범하지만 큰 탈없이 돌아가주는 내 뇌와 신체에게 감사.  어릴 때 보던 만화 같은 데서 갑자기 전기 충격이나 사고 이후 엄청난 초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걸 무척이나 동경했는데. ㅋㅋ

이 책에서 평균 이하의 지능을 가졌으면서 음악이나 기억, 혹은 수학 등 일정 분야에서 엄청난 능력을 가진 환자들의 케이스가 나온다.  만약 일반적인 사회 생활 능력을 갖추면서 그런 재능까지 갖췄을 경우 그는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자동적으로 하게 된다. 

내가 어릴 때라면 엄청난 업적을 상상했겠지만 -내가 전문가가 아니니 임상학적인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내가 옆에서 오랫동안 직접 목격했던, 저기에 묘사되는 수준의 천재성을 가진 사람을 둘과 선생님들께 전설처럼 전해들은 한명의 사례를 보건대 그 능력이 일종의 업적으로 발휘되는 건 그가 속한 사회에 달려있는 것 같다.

사회를 움직이는 건 천재이긴 하지만... 그 천재를 만들어 주고 그 천재가 능력을 발휘할 물을 만들어주는 사회도 있어야할 듯.  올리버 색스 박사가 투랫 증후군이라는 병을 알게 된 이후 주변에 얼마나 많은 투렛 증후군 환자가 있는지 놀랐다는 고백을 했는데 찾아보면 한국에 얼마나 많은 천재들이 있을지, 그리고 그 천재들이 멍청한 애 취급을 받거나 평범한 둔재로 묻혀가고 있는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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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하고 기발한 사기와 위조의 행진 - 세상을 뒤흔든 가짜.위조.조작.사기의 명장면
브라이언 이니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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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주문해놓고 몇장 읽었는데 책 사이즈가 크고 두껍다보니 휴대성이 떨어져서 뒤로 밀려서 잠시 잊혀졌던 책인데 읽다만 책들을 털어버리기 위해 잡아서 오늘 끝냈다.

내용은 말 그대로 사기와 위조에 관한 내용들. 위조 하면 딱 떠오르는 화폐와 미술품 위조에 관한 내용은 예상대로 엄청나게 풍부하다.  표지에 등장하는 저 유명한 콧수염의 주인공 달리는 자기가 죽은 뒤에 위조 미술품을 열심히 만들어 보라는 의미에서인지 아예 자기 사인을 한 빈 종이를 엄청 많이 남겼고 소원대로 피카소와 함께 미술품 시장에서 가장 많은 가짜가 나돌고 있다.  하여간 화가라는 족속들은 범인으로 이해하기 힘든 괴짜들이 많은듯.

갤러리 훼이크라는 일본 만화를 보면서 가짜 미술품의 세계에 대해 흥미롭게 접했는데 이 책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알 수 없었던 그 만화에서 느꼈던 갈증의 상당 부분을 해소시켜주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가짜라고 하지만 다른 의견으로는 진위 여부가 밝혀지지 않거나, 또 다른 반론이 있는 것들도 소수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대표적인 게 오파츠라고 하나?  남아메리카의 알 수 없는 신비한 문명체의 산물, 혹은 외계인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자아내면서 세계 부호들의 수집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그 수정 해골 -갤러리 훼이크에서도 등장했다- 이 여기서는 현대의 보석 연마기구로 가공한 흔적이 있다고 단정짓고 있다.  몇년 전에 미스테리 유물전이라는 전시회를 할 때 그 도록 작성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전시품 중에 수정 해골이 하나 있었다.  그때 설명은 갤러리 훼이크에 등장했던 그런 내용이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수정 해골이 10개 정도 있다고 하는데 그 10개가 모두 그런 가짜인지, 아니면 진짜 그런 미스테리한 게 있는지 쫌 의문이 들긴 한다.

이외에도 서류나 사인의 위조. 이건 인간이 서류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  가짜 유물과 고고학적 증거들.  에펠탑과 자유의 여신상까지 팔아 먹은 사기꾼들과 타인의 신분을 도용하는 가짜 왕자에, 과학이나 의학 분야의 가짜들까지.  서구를 중심으로 있었던 온갖 역사적인 사기와 위조의 대표적인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캐치 미 이프 유 캔'이라는 영화 주인공인 인물의 실제 여정이며, 로버트 레드포드와 폴 뉴먼의 걸작 '스팅'이 바로 실제로 성공한 사기 행각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사실 등등.  때로는 진실이 가상보다 더 믿기 힘들고 재미있다는 그 구태의연한 표현을 할 수 밖에 없는 책.

재미, 상식, 그리고 생각지도 않은 자료로서의 가치까지.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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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천재들의 전술 판타지 라이브러리 31
나카자토 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들녘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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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  과거의 유명한 전쟁이나 전투를 소개하면서 지휘자는 누구, 병력 규모는 어느 정도였고 그 상황에서 어떤 형식의 전략이 동원되고 누가 승리를 얻어갔는지에 대해 풀어내고 있다.

저자가 일본인이다 보니 대다수의 외부인들에게 잘 알려지지도 않고 별 관심도 없는 일본의 장군과 전쟁들이 나오고 또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전쟁은 모조리 서양의 것이 되다 보니 서양인이 서양 얘기를 99% 넣고도 '세계 00의 역사'라는 제목을 붙인 책을 볼 때와 같은 약간의 삐딱한 감정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제목과 연결되는 그런 불만을 제외하고 그냥 내용 자체로 보면 상당히 재미있고 또 나처럼 전략이나 전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좋은 점은 글로 풀어내기 힘든 부분들을 그림으로 도표화해서 한눈에 딱 들어오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잘 묘사를 한다고 해도 전쟁 문외한에게는 상상이 되지 않는 상황이 간략하면서도 절대 유치하거나 어설프지 않은 그림 덕분에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알렉산더와 한니발이 엄청 자주 등장하는데, 고군분투하는 한니발을 보면서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읽을 때처럼 마음이 또 아파왔음.  승기를 잡았을 때 괜히 어정거리지 말고 로마를 확 밟아버렸어야 했는데. 

알렉산더에 대해서는... 지금 읽고 있는 로마에서 중국까지란 책에서 알렉산더가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정복을 시작하려던 그 시점에 갑자기 급사했다고 하던데 안 죽었으면 아라비아 반도에도 알렉산드리아가 하나 건설되었을까?  그렇게 술 퍼먹지 말고 몸 관리 좀 잘 해서 한 10년만 더 살았다면 그가 뭘 이뤘을지 새삼 궁금했다.  

카데시 전투에 대한 분석을 보면서, 람세스 2세가 저승에서 흐뭇해하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발굴된 히타이트의 유적 등등을 포함해 후대에서 발굴된 걸로 판단할 때 카데시 전투는 람세스는 살아 돌아간 걸 다행으로 여겨야할 정도로 사실상 이집트의 참패이다.  그런데 '난 승리했노라~'하는 그 지속적인 선전 덕분에 수천년간 이집트의 승리로 역사에 남아 있었고 겨우 그 승패의 진실이 밝혀진 현재에도 아직 그의 사실 왜곡의 흔적이 이렇게 진실이 되어 책에 기록이 되어 있다.  괴벨스와 최모모씨가 본받고 싶은 성공의 표상이 이분이 아닌가 싶음.  ^^

그림도 많고 별로 두껍지도 않아서 갖고 다니면서 즐겁게 잘 읽었다.  여자들에게도 무리없는 전쟁과 전술 이야기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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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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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왕이 쫓겨나던 시기에 이란에서 살았던 마르잔 사트라피라는, 이란 여성이 어른이 되어서 자기가 어릴 때 보고 겪었던 일들을 만화로 쓰고 그린 책이다.  형식은 만화를 빌렸지만 그 안의 내용과 사유는 한번 보고 던져버리는 만화가 아니다.

위대한 페르시아 대제국 시절 수도였던 (여름 수도였던가. 겨울 수도였던가는 생각나지 않는다.  페르시아 황제는 계절에 따라 도시를 바꿔가면서 살았는데 하나는 수사고, 하나는 페르세폴리스라는 것만 기억남) 페르세폴리스가 아마 지금의 테헤란인 모양이다.  

읽으면서 엄청 몰입했고 또 이 나이에 흔치 않은 공감과 감동도 많이 받아서 제대로 감상을 정리하고 싶어서 미뤘는데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면서 다 증발하고 또 기운도 없어서 그냥 오늘 자투리 시간이 남은 김에 남은 단상이나 정리를 해야겠다고 앉았다.

1권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마르잔 사트라피는 자기가 속한 사회적인 굴레를 알고 있으면서, 그 한도 안에서 인생을 즐기고 또 주변이 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극히 평범하면서도 합리적인 중상층 부모 밑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성장한다. 

팔레비 왕조를 쫓아내는 데모에 지속적으로 부부가 참여하고, 반정부 인사들과 교류를 하고, 또 여성의 권리를 지키는데도 앞장서는 아내와 그 아내를 지지하는 남편이지만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고 다른 형태의 압박이 시작될 때 이들은 거기에 겉으로 순응하는 척은 하면서 한계를 비껴 가지 않는다.  반정부 활동에 참여했던 친구들이 죽고 망명을 갈 때, 마르잔의 어머니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자고 하자 아버지는 '미국에 가서 나는 택시 운전을 하고 당신은 청소부로 일하고 싶냐'는 얘기를 한다.  자신들이 누리는 것을 버리기는 두려웠던 거겠지.  적당한 반항과 반대를 하는 걸로 양심의 가책을 위로하면서 온갖 모순이 가득하고 그들이 엄청 싫어하는 이란이라는 사회에 남아 그들이 누렸던 것을 계속 지키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반항적이고 똑똑한 딸은 유럽으로 유학을 보내는 걸로 현실과 이상을 적절히 타협한다.

이걸 보면서... 내 자신이 투영되어 공감이 갔다고 할까.  저 청기와집 일당들을 보면 천불이 나고 안 보면 속이 후련하겠지만 다 버리고 나가면 말마따나 청소나 세탁소 말고는 할 게 없으니... 저놈들 보다는 내가 더 오래 살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쟤들이 싫어하는 짓을 골라서 하고 쟤들이 미워하는 곳에 돈 주는 걸로 양심의 가책을 달래는 소시민.  자신을 바쳐 세상을 바꾸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복장 터지는 일이겠지만... 내가 그래서 그런지 욕할 수는 없다고 생각.  그래도 투쟁을 업으로 삼다가 변절해서 더 큰 해악을 끼치는 김모모, 이모모 보다는 이쪽이 백배 더 유익하다고 생각함.  ^^

마르잔의 성장을 보면 1979년 이란 회교 혁명의 승리와 이슬람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그 기간 동안 이란인들이 느꼈던 환호와 기쁨, 미래에 대한 기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대다수 외부인들에게는 호메이니로 대표되는 그 복고적인 원칙주의자들이 한 사회의 자유를 어떻게 억압해 나갔는지,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그 변화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림으로 보여지는 옷차림의 변화는 글만으로는 절대 감지할 수 없는 시각적인 자극을 선사한다.  만화라는 수단을 택한 건 아주 극적으로 효과적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마르잔 사트라피라는 여성의 독특함과 간략하면서도 아주 사실적으로 역사를 전달하는 그 능력에 감탄하면서 동시에 그녀가 참 행운아라는 생각도 했다.  유럽도 아니고 이란에서 10대 소녀가 그 시절에 유럽으로 유학 가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슬람 정권 이전에 성장하고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더불어 경제적인 여유까지 있는 부모를 두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  그렇게 유럽에 가서 공부하고 적당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거나, 혹은 흥청망청 옆길로 빠져서 망해버릴 수도 있었는데 자신의 행운을 낭비하지 않고 이렇게 건설적인 면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은 인정을 해줘야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거나 인식을 바꾼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 같다.

일단 나부터도 역사적으로도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이 몇가지 교정이 됐다.  이란 혁명 자체에 관심도 없었고 아주 어릴 때라서 기억나는 것도 없으니 당연하겠지만, 난 팔레비가 쫓겨나고 바로 호메이니가 이란을 휘어잡아 차도르를 뒤집어씌운 걸로 알고 있었는데 여자들에게 차도르나 히잡을 뒤집어 씌우기까지 꽤 많은 저항이 있었고 또 오래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 

다 함께 호메이니 만세~를 외치면서 그 뒤를 따라간 줄 알았는데 이란 사람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구나...라는 아주 당연한 깨달음도 얻었고. 

또 카터를 대통령 재선에서 실패하게 한 결정적인 원인인 그 이란 대사관 인절 사태가 혁명과 동시에 일어난 게 아니라는 것도.  혁명 후 1년 정도는 미국과 이란의 국교가 유지되었고 그 이후에 인질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면서 내가 생각보다 많이 무지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호메이니 정권 때 미국이 부추긴 이란과 이라크 전쟁 때 후세인은 미국의 막대한 지원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그렇게 후세인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던 미국이 몇십년 뒤에 이라크를 직접 침공하고 후세인을 잡아 죽이게 되다니... 역사란 정말 아이러니하다.

그냥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 책에는 이란 혁명의 상징인 호메이니란 이름이나 그의 존재가 단 한번도 드러나지 않는다.  이건 의도적인 게 아닌가 싶다.  이미 죽은지 한참이지만 그의 존재나 영향력은 아직도 이란에 시퍼렇게 살아 있어서 만약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모독적이거나 비판적인 내용이 들어가면 예전에 그 루시디라는 작가처럼 사형 선고를 받고 암살 위험에 평생을 도피하면서 지내야하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 짐작 중.

유럽에 간 마르잔은 어떻게 성장했는지, 20대 때 잠시 이란으로 돌아갔던 것 같은데 그때 이란은 어떘는지를 알려주는 2권이 있는 것 같은데 조만간 구입을 해야겠음.  어떤 이란 현대사 책보다도 단시간에 많은 걸 알려주는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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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유전자
뤽 뷔르긴 지음, 류동수 옮김 / 도솔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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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은 DNA나 유전자 관련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자아내고, 책의 카피는 태고의 유전자를 파헤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과 상업적인 이유로 그걸 집요하게 방해하는 다국적 종자 회사들의 대결을 연상하게 한다.

구입했을 때는 앞쪽을 기대했고, 12월에 읽을 때는 뒤쪽을 기대했는데 다빈치 코드 류의 음모와 대결은 아니고 잔잔하게 팩트를 전달하고 있다.

1987년에 다국적 제약회사인 치바 그룹의 연구소에 근무하는 구이도 에프너 박사와 하인츠 쉬르히 박사가 자기장을 이용해 암염 속에 남아 있던 태고의 박테리아를 되살리는데 성공하고, 또 자기장 실험을 통해 지금은 멸종된 형태의 식물들을 만들어낸다.

이 연구는 옥수수, 밀과 같은 식량 자원과 송어 등 물고기 양식에도 응용하는 실험이 이어지고 태고의 형태를 복원하는 성공적인 결과를 얻는다.  태고의 것일 수도 있는 이 식물들은 병충해에는 강하면서 성장 기간은 짧고 수확량은 몇 배나 되는, 지구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형태.  물고기 역시 비슷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당시 과학계의 이론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파격적인 실험 결과들은 수차례 엄격한 검증을 거쳤음에도 주류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치바 그룹은 이 프로젝트를 중단한다.  

프로젝트가 중단된 이유를 이 책에서는 다국적 종자 회사들이 종자 독점을 통해 농부들을 예속시키고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목적 때문이라고 본다.

과거 농업의 형태는 씨앗을 뿌려 수확을 얻으면 농부는 그 중에서 가장 좋은 씨앗을 골라 종자로 남겨 놓고 다시 다음해 농사를 짓는 일의 반복이다. 하지만 선진국 농부들의 대부분과 상당수 국가들의 농업은 2대에 내려가면 우수성을 잃도록 유전적으로 디자인 된 종자회사의 씨앗을 사서 농사를 짓고 있거나, 그렇지 않은 씨앗을 남겨 뒀다 심을 경우 종자 회사들에게 막대한 손해배상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지적재산권이라는 이름으로 종자 회사들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법 체계 아래에서 농업 자체가 그 회사들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전기장은 간단한 처리만으로 종자 회사들의 유전자적 조작을 벗어나는 뛰어난 결과를 도출한다.  소규모 자영농들에게 독립과 이익을 보장할 수도 있다는 희망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치바 그룹이 연구를 접을 때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겠지만 현재 상황에서 다국적 종자회사들 입장에서는 분명 원하지 않는 연구일 것이다.

그렇게 묻혀졌던 연구를 구이도 애프너의 두 아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과학자의 길을 걷는 다니엘과 예술가이면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회 운동가인 니쿤야가 이어 받고 있다.  다니엘은 중단되었던 연구를 조심스럽게 진행해서, 전기장 처리를 통해 유전자적인 또 다른 재앙이 나타나지 않는지 검증하고 실험 내용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있고 니쿤야는 그 결과물을 가장 필요한 곳에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부패한 정권이 밑빠진 독에 물을 붓듯 원조를 빨아들이는 아프리카의 한 국가에서 전기장을 통한 농업혁명을 준비하고 있다는 상황에서 책은 끝은 맺는다.

카테고리는 과학에 있고 실제로 과학 관련 내용이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은 굉장히 시사적이고 세계화의 문제, 부패한 정치 구조, 가난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제 3 세계와 먹고 살만한 국가에 살고 있더라도 다국적 기업의 지배 구조 아래 예속되는 자영농들의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찰하게 한다.

2007년에 나온 책이니 이미 그 농업실험이 시작됐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또 전기장의 도움으로 성장기간이 빨라져 병충해의 피해를 받지 않는 식물이 대규모로 재배된다고 해서 최빈곤 국가의 식량문제가 획기적으로 해결될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연이란 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적응력이 빠르다.  그런 식물들이 자리를 잡는 순간 그 식물들을 먹어야 사는 벌레들은 식물의 라이프 사이클에 맞춰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진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다시 전투가 시작이 되겠지. 하지만 이건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소수의 종자회사의 도움없이 농사를 짓기 위한 씨앗을 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세상은 재앙이라고 생각한다. 

전원주택에 흥미를 가지면서 그 관련 카페를 많이 다니다보니 자연농, 유기농을 하는 귀농인들의 글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일찌감치 깨어난 일부 귀농인들은 이런 예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토종 종자를 구해서 농사를 짓고 그 씨앗을 다시 받는 귀찮은 작업을 하고 있다.  번듯하고 모양 좋은 농산물에 익숙해진 도시 소비자들에게 토종은 당장은 별반 상업성이 없어 보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분명 가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빈부의 격차가 날로 심해지고 있긴 하지만 한국은 그래도 최악의 빈곤의 고리는 끊고 올라왔으니 이런 시도가 가능하겠지만 아프리카나 동남아 일부 지역에서 당장 굶어죽게 생긴 사람들이 보면 신선 놀음으로 보일 수 있는 농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기장은 대다수 농부들이 소수 기업의 지배에서 벗어나 종의 다양화, 자연스러운 도태와 진화라는 자연의 연결고리를 지켜가면서 농업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고리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기대를 조심스럽게 해봤다.

책의 제일 마지막 쪽에 전기장의 효과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달라는 호소문이 있는데...  꼭 그 호소문 때문은 아니더라도 이 책은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고고한 상아탑의 학문과 우리가 사는 사회는 결코 떨어질 수 없는 한 덩어리라는 걸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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