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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는 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로 1985년에 나온, 올리버 색스 박사의 책 치고는 상당히 초기작인데 나는 이제서야. ^^
내가 읽었던 화성의 인류학자와 10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나온 책인데 같은 저자가 비슷한 주제를 갖고 쓰는 건데도 세월의 흔적이랄까, 그 변화상이 보인다.
화성의 인류학자가 목소리 톤이 더 낮고 느릿하니 좀 더 안정적이고 학술적인 느낌이 드는 내용이라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이 안에 있는 약간은 정신없는 삽화들처럼 내용의 흐름도 빠르고 마치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아차 잘못하면 그 흐름을 놓치게 된다.
그리고 늙음과 젊음(물론 1985년 때도 젊음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나이지만)의 차이가 있어서인지 아내를 모자~에서 올리버 색스는 자신의 환자들에게 좀 더 많이 감정 이입을 하고 좀 더 가깝게 다가서는 것 같다. 화성~은 그 책의 제목처럼 화성에 떨어진 인류학자처럼 비교적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환자들을 관찰한다. 내용의 흐름이나 책읽기는 개인적으로는 화성의 인류학자 스타일의 내용이 더 좋긴 하지만... 이 책도 재미있다는 점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화성~에서보다 더 낙관적이기 때문에 화성~을 읽을 때처럼 가슴이 갑갑하진 않다.
그저 정신병의 일종으로만, 혹은 저능아로 지나가던 증상의 원인을 뇌의 매커니즘을 파악하고 대처해 나가는 과정이나 그가 만났던 아주 독특하고 특이한 환자들에 대한 내용을 보면 인간의 뇌, 궁극적으로 인간의 신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정교한 매커니즘을 갖고 있고 우리가 아는 게 얼마나 적은지에 대해 인정하게 된다. 알면 알수록 자신이 모르는 게 많다는 걸 발견하게 되는데... 아마 그래서 화성~은 이 아내~보다 덜 낙관적이었는지 모르겠다.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소리는 빠짐없이 쓰는 것 같은데, 지극히 평범하지만 큰 탈없이 돌아가주는 내 뇌와 신체에게 감사. 어릴 때 보던 만화 같은 데서 갑자기 전기 충격이나 사고 이후 엄청난 초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걸 무척이나 동경했는데. ㅋㅋ
이 책에서 평균 이하의 지능을 가졌으면서 음악이나 기억, 혹은 수학 등 일정 분야에서 엄청난 능력을 가진 환자들의 케이스가 나온다. 만약 일반적인 사회 생활 능력을 갖추면서 그런 재능까지 갖췄을 경우 그는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자동적으로 하게 된다.
내가 어릴 때라면 엄청난 업적을 상상했겠지만 -내가 전문가가 아니니 임상학적인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내가 옆에서 오랫동안 직접 목격했던, 저기에 묘사되는 수준의 천재성을 가진 사람을 둘과 선생님들께 전설처럼 전해들은 한명의 사례를 보건대 그 능력이 일종의 업적으로 발휘되는 건 그가 속한 사회에 달려있는 것 같다.
사회를 움직이는 건 천재이긴 하지만... 그 천재를 만들어 주고 그 천재가 능력을 발휘할 물을 만들어주는 사회도 있어야할 듯. 올리버 색스 박사가 투랫 증후군이라는 병을 알게 된 이후 주변에 얼마나 많은 투렛 증후군 환자가 있는지 놀랐다는 고백을 했는데 찾아보면 한국에 얼마나 많은 천재들이 있을지, 그리고 그 천재들이 멍청한 애 취급을 받거나 평범한 둔재로 묻혀가고 있는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