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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오드리 설킬드 지음, 허진 옮김 / 마티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600쪽이 넘는 거~한 책인데 마감을 끝낸 금요일 밤에 불현듯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했다가 새벽 3시까지 읽고, 어제 오늘까지 틈나는 대로 읽어서 사흘만에 끝을 냈다. 아마 어제 컨디션이 좋았다면 어제 끝낼 수도 있었을듯.
엄청 두껍고 또 내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장르인 인물 평전이지만 레니 리펜슈탈이는 인물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책을 손에서 떼어놓기가 힘들었다. 또 저자의, 최대한 중립적으로 접근하려는 시각과 객관성을 제공하는 다양한 자료들이 잘 어우러져서 이런 류의 책에서 흔히 발견되기 쉬운 왜곡이나 지나친 찬양 혹은 비하가 없어서 더 술술 잘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원제는 A Portrait of Leni Riefenstahl로 1996년에 나왔기 때문에 저자가 밝혔듯 당시 생존하고 있었던 레니를 직접 취재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기 전에 일단 밝혀두자면 난 나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인간의 기억은 자기 본위적으로 편집과 왜곡이 가능하다고 본다. 때문에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가장 정확한 팩트를 도출해내는 방법은 그 현장에 있었거나 연관된 인물을 최소 3인 이상 취재해 그 중간에 있는 사실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나치 시대에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서 레니 리펜슈탈도 그렇고 그 시대를 살았던 그녀의 동료 영화인들도 그렇게 자신의 기억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편집하고 왜곡한다. 다만 리펜슈탈은 그들보다 특출나게 뛰어났기 때문에 그 공격에 더 강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더구나 희생양을 찾아나선 동료들의 -그녀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지기까지 했던 사람들까지- 생존, 복권, 또 돈벌이를 위한 방패막이가 되었다는 시각을 갖고 있고 나 역시 그녀의 그 판단에 동감한다. 저자의 말마따나 역사에는 정말 많은 버전이 있다.
만약 그녀가 영화사에 한 획을 긋는 그 위대한 걸작인 올림피아와 프로파간다 영화의 대표로 불리는 그 의지의 승리 감독이 아니었다면... 또 그렇게 매력적인 여성이 아니었다면 전쟁이 끝난 뒤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토록 집요한 공격을 받았을까? 나치에 치를 떠는 사람들에겐 그녀는 나치를 더없이 매력적으로 포장한 걸작 영화를 만든 영화 감독이었고, 같은 독일인들에겐 '우리는 히틀러와 나치가 그렇게 나쁜 줄 몰랐지만 당신을 알고 있었어야 하지 않나?' 라는 비난을, 또 같은 시대를 같은 일을 하면서 살아냈던 독일 영화인들은 아마도 그녀가 이룬 것에 대한 질투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에바 브라운의 가짜 일기까지 발행하면서 그녀를 줄기차게 괴롭힌 루이스 트랜커의 행각은 그것 말고 다른 심리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리펜슈탈이 -자신은 그 목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고 항변했고, 전범 법정에서도 인정했지만 - 만든 그 영화들의 프로파간다가 뛰어났던 이상으로 그녀는 그녀를 향한 그 마녀사냥의 프로파간다에 극적으로 희생됐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겠다. 나부터도 최근까지 리펜슈탈이 히틀러의 연인이고 나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온갖 영화들을 만든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열정과 재능, 추진력과 예술적인 감성을 가졌던 그녀가, 더구나 가장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 예술가가 전체주의와 획일주의를 주창하는 히틀러에게 매료됐고 그의 악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건... 솔직히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아쉽다. 물론 대다수의 독일인들이 다 그랬고 또 1091년 조사에서 반 이상의 독일인들이 가장 행복했던 시대를 1933년부터 1939년으로 회고한다는 걸 보면 악을 악으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물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냥 보통 정도의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위해 적당히 눈 감고 모른척 하면서 따라가는 편한 길을 택한 것이니까. 그녀가 평범한 장삼이사였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문제는 그녀가 능력있고 영향력이 있었다는 거다.
독일인들의 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서 한국과도 많이 대입이 됐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이 살기 좋았다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정신세계를 갖고 있는 걸까? 했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됨. 그 시대에 저항하고 핍박받는 쪽에 속하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좋은 시대였을 수도 있겠지.
'예술은 예술가를 넘어선다.' ' 예술과 정치는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 고전적인 격언은 리펜슈탈에겐 적용되지 않았다고 그녀를 재평가하는 사람들은 얘기하는데, 솔직히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입장에서는 분명히 적용이 되겠지만 직접적인 희생자, 혹은 그렇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자꾸 얘기가 옆으로 튀는데, 내가 유완장을 엄청 싫어하지만 그가 우리 시대에서 가장 뛰어나고 완벽에 가까운 연산군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건 아직 인정한다. 왕의 남자에서 정진영씨의 연산도 멋졌지만 유완장의 그 소름끼치다 못해 눈물이 나던 그 해석과 연기는 정말 최고였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내 생업이나 일신에 직접적인 위해는 받지 않았기에 가능하지, 아니라면 그 인간과 예술을 분리하는 평가를 해줄 수 있을까? 장담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물론 레니를 향한 강력한 프로파간다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끈질기게 그녀를 적대시하고 끝끝내 리펜슈탈의 재기를 막아낸 수많은 사람들과 유대계 세력에 대해 욕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하는 묘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리펜슈탈 평전을 읽으면서 인간에겐 확실히 타이밍과 운이라는 게 굉장히 많이 작용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일과 겹쳐서 의지의 승리와 같은 대표적인 프로파간다 작업에 빠졌던 사람들. 그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라는 심술궂은 의문이 솟기도 했다.
리펜슈탈 만큼 오랫동안 집요하고 거세게 비난을 받은 인물은 찾기 힘들 정도인데... 로이 파울러의 말마따나 과연 누구에 의해 무슨 이유로, 어떤 기준으로 이렇게 희생됐는지 -희생이란 단어에는 어폐가 있다고 믿지만 일단 그대로 옮긴다- 수수께끼이고 정말 궁금하다. 언젠가 이 공격의 실체에 대한 심도 깊은 취재가 나오면 좋겠다.
읽기 편하고 또 비교적 잘 된 편집이지만 두 가지 아쉬움이 있는데 하나는 뒤에 왕창 몰아넣은 후주. 바로바로 볼 수 있도록 밑에 각주를 달아주거나 최소한 각 챕터 별로 모아주는 게 좋지 않았을까? 책을 읽다가 뒤로 가니까 흐름이 자꾸 끊기고 솔직히 성의없이 보였다.
또 하나는 번역. 번역자가 리펜슈탈이 했던 표현주의 무용과 발레를 혼동한 것 같다. 발레와 현대무용은 엄연히 구분해서 써야 하는데 자꾸 발레라고 써서 초반에는 헷갈렸고 중간에 있는 사진을 본 뒤부터는 일종의 오역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번역자가 모든 분야에 다 능통하고 박식해야 한다는 불가능한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자신이 번역을 맡은 내용에 대해서 이런 기초적인 실수는 하지 않는 최소한의 노력은 했으면 한다. 이건 편집에 대해서도 공통적인 불만. 이 정도는 편집에서 잡아줬어야 하지 않나?
지금 우리 사회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아서 더 재미있고 또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