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77
안드레아 아로마티코 지음 / 시공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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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이나 돌로 금을 만들려고 헛고생을 한 고대인들이나 중세인들, 금을 만들려다 우연의 일치로 수은 등을 발견하게 되는 아랍인들.  신비스런 마술을 연마하고 연금술사의 돌을 만들어내려는 마법사들의 모습.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연금술에 대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이미지들이다. 수많은 문학 작품이나 영화, 만화에서 묘사되어 왔기에 이런 모습은 솔직히 떼어내기 힘들 정도로 정형화되어 있어 왔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이 일부(근데 일부보다는 많을 것 같다) 사기꾼들 기만과 무식한 대중들의 상상과 편견이 결합된 결과이고 화학이나 의학의 발전에 이 연금술이 공헌한 부분은 금을 만들기 위한 과정의 부산물이나 우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맥이 끊길 줄 알고 있었던 이 연금술의 전통이 현대에도 남아서 계승되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려주고 있다.  뉴튼에 대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증명해내는 이 천재가 연금술이라는 허접한 것에 빠져서 남은 인생을 허비했다는 평가를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이 책의 저자는 뉴튼을 훌륭한 연금술사이자 과학자 자체로 평가하고 있다는 게 상당히 이채로웠다.

연금술사가 곧 과학자였던 근대까지 연금술의 이런 측면은... 아만다 퀵이라고 역사 로맨스 동네에서 날리는 미국 작가가 자신의 작품 속에 연금술에 조예가 있거나 관심이 있는 -최근작은 아예 연금술사였음-  주인공을 간간히 등장시켜왔기 때문에 익숙했다.  그녀의 작품 속에 묘사되는 연금술은 일종의 과학이었고 그 등장인물은 마법이나 금보다는 실질적인 면과 학문적인 열정에 불타는 모습이었다.  이 책에서 연금술은 실제로 이렇다라고 설명하는 것과 일치해서 개인적으로 더 재미있었다.

오늘날 현대 연금술의 거두라고 할 수 있는 -하지만 역시나 연금술사 답게 아주 신비스럽게 퇴장한- 풀카넬리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된 게 즐겁다.  영화 주인공으로 등장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데, 앞으로 시간 날 때 이 인물에 대해 여러가지 탐험을 좀 해봐야겠다는 욕구가 생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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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자살 클럽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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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봉관 교수가 쓴 이 식민지 시대 관련 책은 컬렉션이 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긴 한데... 초창기 저작들에 비해 신선도나 주제의 일관성이 조금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억지스럽지 않고 적당한 무게김과 재미를 주는 책이다.

지금 우리나라 자살율이 OECD 국가 중에 최고라던가 2위라던가... 그러던데 몇십 년 전에도 자살은 적지 않았고 또 그 화제성이나 사회 파급력 역시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굳이 자살만을 예로 드는 게 아니라 이 책에서 자살과 엮여서 소개되는 사건들과 그 인물들의 관계, 그리고 이어지는 남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1920년부터 40년대까지 식민지 조선이나 지금 21세기 한국은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삶의 형태만 살짝 바뀌어 있지 자살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나 온갖 추측과 소설로 죽은 사람을 모욕하는 언론, 그리고 죽은 사람만 불쌍해지는, 결코 죽음으로 해결되지 않는 모순들이 소름끼칠 정도로 그대로이다. 

자살이라는 비극을 갖고 신문은 물론이고 잡지에서도 온갖 소설을 써서 두고두고 울궈먹는 모습을 보면서 찌라시의 유구한 전통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류의 찌라시 기자들이 책이나 한 권 제대로 볼지는 의문이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선배 찌라시 기자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 열심히 소설을 쓰고 있다고 이제 나름대로 자긍심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

이 안에서 여러가지 죽음들이 나오고 있지만 가장 지금 모습과 오버랩 되는 건 이화학당 학생의 자살이었다.   도둑질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왕따를 당하고 또 교수들에게까지 모욕을 당하다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결국 자살을 택한다.  그녀가 자살했을 때 언론은 물론 앞장 서서 질타를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그녀를 그렇게까지 몰아갔던 교수들은 자기들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회피했고 남은 생도 가졌던 명성과 지위를 지키면서 행복하게 마무리를 했다.  동급생들 역시 마찬가지.  자신은 왕따의 선봉에 서지 않았다고 -아마 그 선봉에 섰던 사람조차도- 자기 기억을 왜곡하고 잊어버리고 살았을 것이다.

이 사건을 다루면서 저자는 당시 기숙사 생활을 하던 이화학당 학생들의 사치 풍조에 대해 짚고 넘어갔는데... 이대=멋내는 여대생의 이미지는 이미 이때부터 형성이 된 건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잠시 웃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대학 때는 일단 이대라고 하면 최소한의 물관리는 되어 있다고 봤는데 그때도 그랬었구나.

영화 사의 찬미에서 세기의 사랑으로 로맨틱하게 묘사됐던 윤심덕과 김우진의 현해탄 동반 자살은 요즘 식으로 하자만 인터넷 자살 클럽에서 만난 동반자살과 마찬가지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어서 쫌 서글펐음.  이렇게 내 어린 날에 믿언 달나라 토끼 한마리가 또 달나라를 떠나갔다.

이 책은 -대놓고 주장하는 건 아니지만 사건들을 보면 그렇게 느끼게 된다- 절대 억울함을 풀거나 문제 해결을 위해서 자살해서는 안 된다는 아주 확고한 교훈을 준다.   이 책에 언급된 사건들 중에 죽음으로 문제가 해결된 경우는 없다.  대다수가 이제는 이름마저 희미해지고 있는 그 장자연씨처럼 실컷 흥밋거리로 이용되다 잊혀져 버리는, 즉 죽은 놈만 억울하고 오히려 더 나쁜 놈이 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병신 취급을 받는다. 

옛날 전설의 고향에 등장한, 자신을 죽게 한 집안을 7대에 걸쳐 아작내는 그런 원귀가 될 자신이 없으면 절대 죽지 말고 이를 악물고 바락바락 살아내야 한다는 의지를 갖게 해주는 (저자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재미도 있지만 삶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라도 읽어두면 좋을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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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오드리 설킬드 지음, 허진 옮김 / 마티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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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쪽이 넘는 거~한 책인데 마감을 끝낸 금요일 밤에 불현듯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했다가 새벽 3시까지 읽고, 어제 오늘까지 틈나는 대로 읽어서 사흘만에 끝을 냈다.  아마 어제 컨디션이 좋았다면 어제 끝낼 수도 있었을듯. 

엄청 두껍고 또 내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장르인 인물 평전이지만 레니 리펜슈탈이는 인물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책을 손에서 떼어놓기가 힘들었다.  또 저자의, 최대한 중립적으로 접근하려는 시각과 객관성을 제공하는 다양한 자료들이 잘 어우러져서 이런 류의 책에서 흔히 발견되기 쉬운 왜곡이나 지나친 찬양 혹은 비하가 없어서 더 술술 잘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원제는 A Portrait of Leni Riefenstahl로 1996년에 나왔기 때문에 저자가 밝혔듯 당시 생존하고 있었던 레니를 직접 취재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기 전에 일단 밝혀두자면 난 나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인간의 기억은 자기 본위적으로 편집과 왜곡이 가능하다고 본다.  때문에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가장 정확한 팩트를 도출해내는 방법은 그 현장에 있었거나 연관된 인물을 최소 3인 이상 취재해 그 중간에 있는 사실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나치 시대에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서 레니 리펜슈탈도 그렇고 그 시대를 살았던 그녀의 동료 영화인들도 그렇게 자신의 기억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편집하고 왜곡한다.  다만 리펜슈탈은 그들보다 특출나게 뛰어났기 때문에 그 공격에 더 강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더구나 희생양을 찾아나선 동료들의 -그녀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지기까지 했던 사람들까지- 생존, 복권, 또 돈벌이를 위한 방패막이가 되었다는 시각을 갖고 있고 나 역시 그녀의 그 판단에 동감한다.  저자의 말마따나 역사에는 정말 많은 버전이 있다.

만약 그녀가 영화사에 한 획을 긋는 그 위대한 걸작인 올림피아와 프로파간다 영화의 대표로 불리는 그 의지의 승리 감독이 아니었다면... 또 그렇게 매력적인 여성이 아니었다면 전쟁이 끝난 뒤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토록 집요한 공격을 받았을까?   나치에 치를 떠는 사람들에겐 그녀는 나치를 더없이 매력적으로 포장한 걸작 영화를 만든 영화 감독이었고, 같은 독일인들에겐 '우리는 히틀러와 나치가 그렇게 나쁜 줄 몰랐지만 당신을 알고 있었어야 하지 않나?' 라는 비난을, 또 같은 시대를 같은 일을 하면서 살아냈던 독일 영화인들은 아마도 그녀가 이룬 것에 대한 질투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에바 브라운의 가짜 일기까지 발행하면서 그녀를 줄기차게 괴롭힌 루이스 트랜커의 행각은 그것 말고 다른 심리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리펜슈탈이 -자신은 그 목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고 항변했고, 전범 법정에서도 인정했지만 - 만든 그 영화들의 프로파간다가 뛰어났던 이상으로 그녀는 그녀를 향한 그 마녀사냥의 프로파간다에 극적으로 희생됐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겠다.  나부터도 최근까지 리펜슈탈이 히틀러의 연인이고 나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온갖 영화들을 만든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열정과 재능, 추진력과 예술적인 감성을 가졌던 그녀가, 더구나 가장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 예술가가 전체주의와 획일주의를 주창하는 히틀러에게 매료됐고 그의 악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건... 솔직히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아쉽다.  물론 대다수의 독일인들이 다 그랬고 또 1091년 조사에서 반 이상의 독일인들이 가장 행복했던 시대를 1933년부터 1939년으로 회고한다는 걸 보면 악을 악으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물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냥 보통 정도의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위해 적당히 눈 감고 모른척 하면서 따라가는 편한 길을 택한 것이니까.  그녀가 평범한 장삼이사였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문제는 그녀가 능력있고 영향력이 있었다는 거다.

독일인들의 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서 한국과도 많이 대입이 됐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이 살기 좋았다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정신세계를 갖고 있는 걸까? 했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됨.  그 시대에 저항하고 핍박받는 쪽에 속하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좋은 시대였을 수도 있겠지.

'예술은 예술가를 넘어선다.' ' 예술과 정치는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 고전적인 격언은 리펜슈탈에겐 적용되지 않았다고 그녀를 재평가하는 사람들은 얘기하는데, 솔직히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입장에서는 분명히 적용이 되겠지만 직접적인 희생자, 혹은 그렇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자꾸 얘기가 옆으로 튀는데, 내가 유완장을 엄청 싫어하지만 그가 우리 시대에서 가장 뛰어나고 완벽에 가까운 연산군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건 아직 인정한다.  왕의 남자에서 정진영씨의 연산도 멋졌지만 유완장의 그 소름끼치다 못해 눈물이 나던 그 해석과 연기는 정말 최고였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내 생업이나 일신에 직접적인 위해는 받지 않았기에 가능하지, 아니라면 그 인간과 예술을 분리하는 평가를 해줄 수 있을까?  장담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물론 레니를 향한 강력한 프로파간다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끈질기게 그녀를 적대시하고 끝끝내 리펜슈탈의 재기를 막아낸 수많은 사람들과 유대계 세력에 대해 욕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하는 묘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리펜슈탈 평전을 읽으면서 인간에겐 확실히 타이밍과 운이라는 게 굉장히 많이 작용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일과 겹쳐서 의지의 승리와 같은 대표적인 프로파간다 작업에 빠졌던 사람들.  그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라는 심술궂은 의문이 솟기도 했다.  

리펜슈탈 만큼 오랫동안 집요하고 거세게 비난을 받은 인물은 찾기 힘들 정도인데... 로이 파울러의 말마따나 과연 누구에 의해 무슨 이유로, 어떤 기준으로 이렇게 희생됐는지 -희생이란 단어에는 어폐가 있다고 믿지만 일단 그대로 옮긴다- 수수께끼이고 정말 궁금하다.  언젠가 이 공격의 실체에 대한 심도 깊은 취재가 나오면 좋겠다. 

읽기 편하고 또 비교적 잘 된 편집이지만 두 가지 아쉬움이 있는데 하나는 뒤에 왕창 몰아넣은 후주.  바로바로 볼 수 있도록 밑에 각주를 달아주거나 최소한 각 챕터 별로 모아주는 게 좋지 않았을까?  책을 읽다가 뒤로 가니까 흐름이 자꾸 끊기고 솔직히 성의없이 보였다.

또 하나는 번역.  번역자가 리펜슈탈이 했던 표현주의 무용과 발레를 혼동한 것 같다.  발레와 현대무용은 엄연히 구분해서 써야 하는데 자꾸 발레라고 써서 초반에는 헷갈렸고 중간에 있는 사진을 본 뒤부터는 일종의 오역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번역자가 모든 분야에 다 능통하고 박식해야 한다는 불가능한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자신이 번역을 맡은 내용에 대해서 이런 기초적인 실수는 하지 않는 최소한의 노력은 했으면 한다.  이건 편집에 대해서도 공통적인 불만. 이 정도는 편집에서 잡아줬어야 하지 않나? 

지금 우리 사회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아서 더 재미있고 또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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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4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암살단 - 이슬람의 암살 전통
버나드 루이스 지음, 주민아 옮김, 이희수 감수 / 살림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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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산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보면 상당수가 무슨 게임 얘기를 하면서 엄청 흥미진진하다는 소감들을 했고 또 옛날에 어릴 때 마르코 폴로 위인전에서 그가 중국으로 가는 여행에서 아싸신과 그 산중 노인의 얘기가 나왔었다. 정작 마르코 폴로의 얘기보다는 그 스쳐지나갔던 이 산중 노인의 전설이 내게는 왜 그렇게 흥미로웠는지.  그에 관한 내용 중에서 지금까지도 기억을 하는 게 바로 그 부분이었다.  때문에 그런 류의 뭔가 신비스럽고 박진감 넘치는 전설적인 모험담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내용은 대단히 학술적이다. 

이 아싸신들의 정신적 기반이 되는 이슬람의 시아파에 관한 탐구부터 내용이 시작된다.  그 챕터를 다 읽으면 왜 이슬람이 시아파와 순니파로 나눠졌는지에 대해서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도 또 계파 분열과 함께 이 정도로 복잡다단한 과정이 있었고 또 그 이후에 있었던 많은 사건의 배경에 대해서 이제는 대충이 아니라 꽤 상세하고 체계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그 다음에는 오랫동안 아싸신들의 본거지가 되는 알라무트를 - 요즘 페르시아 왕자라는 영화에 뜬금없이 이 성이 등장하는 걸 보고 조금 웃었다. 더구나 그 페르시아 왕자를 맡은 건 유태인 배우. 호메이니 영감님이 살아 있었으면 또 한바탕 뒤집어놓지 않았을까 싶다. ㅎㅎ;- 아싸신이라고 불리는 이스마일파의 걸출한 지도자 하산 이 사바가 어떻게 손에 넣고 그들의 중심지로 오랫동안 유지가 되는지. 멸망까지 그의 후계자들의 얘기가 순차적으로 묘사된다. 

어느 왕국이나 종교나 다 그렇듯 그리고 쇠퇴. 최후의 영광이랄지, 십자군 시대에 암살자로서 등장해 유럽까지 명성, 혹은 악명을 떨친 것을 마지막으로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는 이스마일파와 아싸신들의 이야기.

어쩌면 가장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위주로 풀어낼 수 있는 이 주제를 버나드 루이스는 금세기 최고의 중동학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아주 건조하면서 사실 위주로 풀어주고 있다.  덕분에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기대했던 나로선 만만찮은 독서에 꽤 힘이 들었다.  하지만 읽고 나서 공력있는 전문가의 알찬 연구를 읽었다는 만족감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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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탐험 : 나일강의 수원을 찾아서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5
안 위공 지음 / 시공사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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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의 입장에서 보면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데 허연 놈들이 기어들어와서 탐험이랍시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며 멀쩡한 호수며 폭포 이름은 지들 맘대로 다 바꿔놓고, 야만인 취급에 무시하고 깽판 치는 것도 모자라서 노예로 잡아가 팔아 넘기더니 이제는 자기들끼리 줄 그어놓고 여기는 내 땅, 저기는 네 땅 이런 황당한 일을 당하게 된 역사지만 서구인의 입장에서는 어쨌거자 저쨌거나 아프리카 탐험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책이다.

북쪽과 남쪽을 중심으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아프리카의 모습은 19세기에 들어와 영국의 왕립 지질학회를 필두로 한 유럽열강과 미국의 자본의 지원을 받은 탐험가들이 몰려들어 갖가지 루트로 대륙을 탐사하고 횡단하면서 노예 외에도 엄청난 자원을 가진 보고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내륙은 백지나 다름없었던 아프리카 지도의 여백을 하나씩 채워나간 사람들의 여행과 그들의 작업들이 시간 순으로 하나씩 기록되고 있다.  

거기에 뒤이은 비극은 우리 모두가 익히 아는 바이고.  흔히들 아프리카의 미개함 때문이라고 치부받던 온갖 질병들의 상당수가 유럽인들이 전파한 것이고 그들이 주장하던 아프리카의 발전은 무자비한 수탈이라는 건 아직까지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어릴 때 읽었던 세계위인전집에는 어둠에 묻힌 대륙 아프리카를 탐험하고 그 신비를 걷어냈다는 이유로 리빙스턴이나 스탠리의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커서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저 사람들이 과연 위인이라는 이름으로 추앙을 받아야 마땅한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현재 시점에서 리빙스턴까지는 몰라도 벨기에의 레오폴트 왕의 그 무시무시한 콩고 지배에 적극 협조한 스탠리는 위인은 고사하고 아주 나쁜 X의 반열에 넣어줘도 모자람이 없다고 확신한다.

유럽인의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한 탐험사일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운명을 겪었던 피지배 민족의 입장에서는 안타깝고 또 찜찜한 기록이었다.   그나마 우리는 어느 정도 회복세에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프리카 인이 이 책을 읽는다면, 이 담담하고 별 감정없는 팩트 자체가 상당히 울분스러운 기록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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