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한국인의 먹거리' 부터 팬이 된 주영하 선생의 신작으로 조금 낡은 감이 있었던 '음식전쟁 문화전쟁' 이후에 다음 책을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어떤 작가나 학자의 글을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하게 읽게 되면 본의 아니게 스토킹 내지 분석자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약간의 내용 보충과 함께 책 제목과 바꿔서 내고, 그럴듯한 소개로 사람을 낚아서 분노하게 하는 일부가 있고, 차곡차곡 쌓은 새로운 지식을 알려주는 일부, 그리고 지식과 함께 점점 농익는 생각과 사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일부가 있는데 주영하 선생의 경우는 세번째. 흥미로운 김치 탐구였던 첫 책 이후 발간되는 그의 책들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음식의 얘기들이 많았다. 중국 유학 이후에는 좀 더 넓어진 시각과 다른 문화에 대해 이해가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이 차폰 잔폰 짬뽕은 수용과 이해가 이제 어느 정도의 수준에 달해서 새로운 고찰의 단계로 넘어간 느낌이다. 짬뽕처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음식들. 칭기스칸처럼 본토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나 몽고의 음식처럼 알려진 그런 음식들.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으로 인해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난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이 비교적 잘 된 것이고 그들의 문화를 가능한 지켜준 거라고 믿고 있었다- 인정받은 그 50여 부족을 제외한 다른 소수민족들은 없는 존재가 되고 있다는 것, 더불어 그들의 문화와 음식도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 등 지식적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것을 많이 접했다. 소수 민족의 음식 주권... 이건 한국으로 가져오면 지역 음식의 주권이라는 걸로도 대입이 될듯. 어디에 가든 점점 특색이 없어지는 음식으로, 아니면 대표 음식 하나가 주변의 작은 소소한 음식들을 다 죽여버리는 보여주기식 음식 문화 축제는 이제 지양이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가지 좋은 내용이 많지만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것은 로컬 푸드에 관한 부분이다. 농업에 관한 식견은 쥐뿔만큼도 없이 설쳐대면서 그나마 남은 농업마저도 아작내고 있는 정부 덕분에 우리에게도 지금 턱 밑에 닥친 문제가 되고 이 문제의 해결책을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로컬 푸드 운동이라는 대안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해주고, 서로 적절한 이윤과 이익을 얻어내는 시스템은 말로는 좋지만 실천하기 쉽지가 않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를 보여준 이 부분은 생명운동 내지 식량 자급이나 우리 농촌 살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연구하고 참고해야할 것 같다. 저자의 의도는 그게 아닐 수 있겠지만 이내게는 부분이 차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이었다. 국수주의를 벗어난 비교와 이해는 자국 문화에 대한 자신감과 스스로의 내공에 대한 자신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저자들이 더 많이 나와서 우리 뿐 아니라 남들도 공감할 수 있는 우리 음식과 또 우리 주변 음식 문화에 대한 연구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
별로 진행된 내용은 없다. 표국의 무사로 잠입해 신지로 가고 있는 한비광 앞에 그 표물이 신지로 가는 걸 막기 위한 살곡의 무사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고 그들과 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두고 볼 수도 없는 그런 난처한 상황의 묘사. 그리고 한비광의 뒤를 쫓아온 담화린이 52권의 말미에 등장한다. 아마 다음 권 쯤에서 신나게 싸우겠지만 오해를 풀고 힘을 합쳐서 신지로 가게 되거나, 아니면 난관에 부딪치거나 둘 중 하나가 될듯. 그동안 등장했던 인물들이 하나 둘씩 신지로 모여드는 걸 보면 이제 슬슬 클라이막스로 가려는 기미가 보이기는 하지만 대단원의 결말까지는 최소한 20-30권은 더 가야할 것 같다. 이번 권은 그냥 다음 권으로 향하는 다리 정도로 보면 될듯. 특별한 위기나 박진감도 적고 다른 권에 비해서 약간은 심심하다.
40대 초반의 변호사와 미용사 게이 커플의 일상과 그 주변, 그리고 그들의 식사를 매회 잔잔하게 그려내는 옵니버스 스타일의 만화이지만 그렇다고 매번 끊어지는 것은 아닌, 조금씩 변화하고 진행하는 내용 변화가 있다. 맛있는 요리를 보여주기 위해서 스토리가 준비되고 진행되는 아빠는 요리사와 달리 드라마 속에 중요한 데코레이션이자 재료로 요리가 포함되는 스타일의 만화라고 봐야겠다. 일본식 가정요리가 중심이 되고 있는데, 주인공은 참 쉽게 슥슥 그 요리를 해내지만... 밥을 해본 입장에서 감탄 + 부러움. 차라리 뭔가 하나만 임팩트 있는 요리를 하는 게 편하지, 한식이나 일식이나 이렇게 꼼꼼하게 매번 새로운 반찬으로 3품 밥상을 차려내는 건 전업이라도 쉽지가 않다. 혹시라도 이 만화를 본 남자들이 와이프나 애인에게 매 끼니 저런 식사를 기대하는 극악무도한 일은 하지 않아야 할 텐데라는 걱정까지 하게 되더라는... 아빠는 요리사를 비롯한 상당수 요리책들이 남은 재료에 대한 고민이 없는데 반해 재료 버리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우리의 짠돌이 주인공은 모든 재료를 알뜰하게 사용하기 위해 노고를 마다하지 않아서 많은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쓰는 재료가 비슷해서 그런지 맛있어 보이고 소소하게 응용할 수 있는 반찬거리들이 꽤 많아서 조만간 구입 예정~
재미도 재미지만 요리책으로도 쓸모가 많다. 특히 매번 마지막 몇 가닥은 결국 처리하지 못하고 썩혀서 버리던 샐러리의 다양한 활용법은 정말 땡큐 베리 마치였다.
내가 버닝하고 있는 요시나가 후미의 가상 역사물~ 이번 권은 츠나요시의 치세를 그리고 있다. 자손을 얻기 위헤서 살생을 막고 어쩌고 했던 쇼군의 얘기는 일본 역사책에서 대충 읽은 기억이 있는데 아마 그 치세를 차용한 것 같다. 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치던 그녀가 하나뿐인 딸이자 후계자를 잃고 무너져 내리는 과정이 정말 실감 나게 그려진다.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의 야심이며 심리도 하나하나 다 납득이 가는... 정말 정교한 스토리 구성에 감탄 또 감탄~ 1권에 등장했던 요시노부가 드디어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츠나요시와 한번 만나게 되는데 역시 떡잎부터 달랐던 그 모양새를 잘 보여주고 다음 권에 대한 기대감을 팍팍 상승시킨다. 발상이 기발해서 초반의 흡입력이 대단하더라도 스토리 진행 과정에서 맥이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녀의 이 작품은 권수가 더해질 수록 더 흥미진진해진다. 보통 만화책은 복습을 잘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1권부터 다시 복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탄탄한 구성력은 정말 일품이다. 이름도 헷갈리고 일본 역사와는 통 궁합이 맞지 않아서 몇권 보다가 말았는데 날 잡아서 에도 시대를 다룬 책을 몇권 읽어봐야겠다. 6권은 이제 또 언제 나오려나....
마피아의 계보라는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 한국 조폭 계보도 정리를 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같은 생각을 하고 또 실천에까지 옮긴 사람이 역시나 있었다. ^^ 고려의 도방이 이 소위 깡패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는데,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정국까지는 비교적 아는 이름들이 눈에 띄어서 술술 가볍게 훑어가는 모드로~ 수차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덕분에(+ 유명한 손자를 두기도 했고) 대다수에게 알려진 김두한부터 시작해서 시라소니, 정치깡패의 대명사 이정재며 임화수 등등~ 그리고 70-80년대 이후에 등장하는 이름과 사건들은 어릴 때 읽었던 신문이나 뉴스에 등장했던 인물들이라 동시대를 살았다는 그런 묘~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내 총기가 절정에 달해 있었고 또 신문을 가장 열심히 봤던 시기가 80년대라 여기에 이니셜로 표시된 인물 (지금 손을 씻었거나 등의 인물은 실명을 노출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했다고 함. 별반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있으나 이건 저자의 기준이니 왈가왈부하지 않겠음.)들의 상당수는 신문 기사에서 봤던 기억들이 난다. 특히 조양은은 바로 옆에서 구경했던 -당시에는 구경이 아니라 빠져나갈 기회만 노리고 있었지만. ㅎㅎ;- 일면식의 경험이 있어서 묘~한 친근감까지. ㅋㅋ 당시에 통제되어 일반에게 드러나지 않았던 뒷 얘기들도 재미가 있다. 지금이야 딴나라 깃발을 흔들면서 온갖 똥물을 다 튀기고 다니지만 그래도 홍준표라는 인물이 -안모씨와 달리- 그래도 한 때는 정의로웠다는 기록을 보면서 더 씁쓸. 역시 좋은 인간은 나빠지기 전에 죽어야만 가능한 걸까? 21세기 조폭으로 들어와서는 정말 친근감(?) 넘치는 인물들이 줄줄이 드러난다. 그 벤처 열풍 때 등장했던 정현준이며 이용호, 여운환 등등의 인물들과 연계된 조폭들의 모습. 조폭들이 전통적인 물장사와 밤장사에서 벗어나 기업인수 같은 쪽으로 본격적으로 진출한 일단의 단초를 보여주는 내용들이다. 물론 여기에 등장한 것은 실패한 양성화이고 이니셜로 남았거나 이니셜로조차 남지 않은 수많은 성공한 조폭들도 분명 있겠지. 저자의 말마따나 1970년대 뒷골목을 주름잡던 인물들이 30년 뒤에 권력형 게이트의 중심 인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는 건 그 사회의 일원으로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2003년에 쓴 저자의 이 책 한귀절을 옮겨와 보겠다. 황태자로 꼽히는 실세 정치인, 안기부 고위 간부 출신의 장관급 인사, 검찰의 최고위급 간부들, 경찰, 정보기관, 국세청 고위 간부들, 김태촌(이름은 이제 아무나로 바꿔 넣어도 된다)씨와 같은 거물급 주먹 등등. 불과 10년 전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주먹 사건의 범위와 실체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달라졌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일반 국민이자 기타 여러분인 나의 대답은 NEVER! 더불어 내가 저자에게 묻고 싶다. 이 책이 나온 건 2003년에는 지금과 다른 시절이라 위에 등장한 조폭과 대통령 아들이 연관된 흔적도 있다는 등등의 얘기를 이렇게 떡~하니 써놓고도 무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대통령 아들이 아니라 사돈의 팔촌이라도 과연 가능할까? 그리고 1950년대를 그린 드라마나 역사책에나 등장하던 백색 테러가 21세기 백주대로에서 다시 부활했다는 사실은 유쾌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참담하다.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2년 반 사이에 50년에서 60년을 퇴행시켰다. 이제 남은 2년 반 동안 한일합방으로 돌려놓지만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