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기행 1 청소년 현대 문학선 12
신경림 지음, 이보름 그림 / 문이당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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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소위 무슨 기행 등등이란 제목이 붙은 기행문류의 책을 선호하지 않는다.

어딘가 낯선 고장에 갔다온 흔적을 글로 남겨두기 좋아하면서도 남이 다녀온 흔적을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그런류의 글에 가득하기 쉬운 허영과 과시욕이 보기 싫어서이다. 명확한 테마가 있는 경우는 좀 낫고 극히 몇개의 예외가 있긴 하다.

하지만 요즘 소위 팔린다는 테마는 주로 먹고 혹은 뭔가 예술적이거나 특별한 것의 맛보기 내지 유한층의 배부른 사유의 기록인 경우가 많아 차라리 여행 가이드 수준의 기행문이 더 나은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신경림씨의 민요기행은 달랐다. 그동안 내가 기행문학에 대한 인상을 확 바꿔놓게 하고 내 책읽기가 얼마나 편협했냐를 느끼게 해주는 깊이랄까... 사유가 있다.

이 책은 1983년 10월부터 1985년 2월까지 신경림 시인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빠르게 사라지는 우리 민요를 찾아 헤매고 농촌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단순히 민요를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그 민요가 자생되어 온 지역과 시대, 민요를 부르던 사람을 보고 있고... 민요와 함께 속절없이 사라지는 농촌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사라지는 민요보다 그 민요를 담아오던 농촌의 어려움과 그들이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일단 이 부분에서 나는 호감을 느꼈다.

학자나 탁상행정가, 또 소위 매니아들이 많이 범하는 우는 그들이 연구하고 지키려는 것에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그것을 위한 희생을 당연시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믿음과 예술, 혹은 학문을 너무나 소중히 여긴 나머지 인간이나 생명에 대한 사랑이나 관심을 잊어버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런데 신경림씨는 인간이 있고 농촌이 있고 그 다음에 민요가 있다는 자세로 그 관계를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다. 이 책은 80년대 초반 한국 민요에 대한 기행이라기 보다는 그 시대, 이미 깊이 병든 우리 농촌의 모습을 보여주는 보고서이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농촌 죽이기에 앞장서는 무능한 정부와 관리들의 모습이 비춰지는 자화상이기도 하다.

조직적인 죽이기가 노골화된 요즘에 비해 그나마 잘 사는 농촌이라는 구호라도 살아있던 80년대. 그러나 그때도 이미 환상만 가득한 가운데 농촌의 희생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때 머리에 X 대신 뇌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가진 인간이 집권을 했더라면 하는 소용없는 아쉬움만이 남는다.

80년대 초반에도 이미 자취를 찾기 힘든 우리 민요를 좇으면서 신경림 시인은 민요는 살아있는 농촌에서만 남아 있다고 한탄했다. 그때부터 벌써 20년.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잔함과 조급증이 신경림 시인의 민요기행을 읽으면서 다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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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떻게 계획되었는가 살림지식총서 156
염복규 지음 / 살림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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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쪽도 안 되는 작은 책인데 책이 작다보니 파묻혀 들어가고 그나마 찾아놓았더니 또 이사 와중에 사라졌던 책. 책장 정리하면서 찾아 오늘 남은 몇쪽을 끝냈다.

좀 가벼운 읽을거리를 원했는데 내용의 밀도나 무게가 좀 빡빡하달까... 약간은 보고서적인 느낌이 강하다.  대신에 일제 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이며 변화상에 대해선 이야기식이 아니라 많은 데이터를 근거로 보려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꽤 될 것 같다.

이 시대에 강남은 아예 서울이 아니었으니 제외하고 노량진, 영등포의 편입과정이며 (면이나 읍이었다는 사실이 재밌었다. ^^) 그들이 계획했던 경성시가지 개발 계획에서 고급 주거지구, 상업지구 등등으로 나누어 놓은 구획이 지금도 거의 그대로 적용되고 또 그 뉴 타운 머시기 하는 것에서도 역시나 계승되고 있는 것이 좀 많이 씁쓸하다.  일본 때 만들어지고 계획된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시시비비를 따지기 전에 감정적으로 소화하기 쉽지는 않은 것이 빡센 극일 역사교육 세대의 한계인 모양이다.  사실 지금 서울의 모습을 볼 때 그다지 잘 계획된 것 같지도 않고.  결국 버그가 많은 베타 테스트 버젼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이 저자의 말마따나 일제 청산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문화사업은 멀쩡한 회관 부숴 새로 짓고 그 와중에 고루고루 돈도 좀 챙기고, 스포츠 육성은 운동경기장 허가 새로 내주고, 도시계획은 무조건 있는 것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하는 줄 아는 서울 시청의 돌덩어리를 성토하고 있음.  이왕에 불도저일거라면 좀 덜 무식하고 세련된 비젼을 가져주면 누가 죽이나.  하긴... 이 바람 역시 뽀삐가 경견에서 챔피언이 되는 날을 기다리는 게 더 빠르겠지.  포기할 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대통령 되는 최악의 사태만 오지 말자고 기도를 집중하자.

본론으로 돌아와서 1900년대 초중반.  넓어지는 서울을 순차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서울의 도시계획을 살피는 출발로 괜찮은 책이다.  그렇지만 아주 가볍지도, 그렇다고 깊지도 않은 내용... 내게는 그럭저럭 만족이었지만 이런 류의 총서에서 가벼운 읽을거리를 기대하는 사람에겐 조금은 버거울 수도 있겠다.  반대로 깊이있는 내용을 기대하면 욕을 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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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미스 왕 - 드라마북
최은경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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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로설이다.

한동안 국내 로설에 버닝했는데 최근 좀 시들해져 있었다. 대충 페이지 중간중간만 훑고 반납하기 반복이고 외국설이 다시 땡기는 참이라 그쪽으로 복귀할까 하는 참에 만난 단비.

최은경 작가는 독자들에게 호불호가 상당히 엇갈리는 작가 중 하나다. 소위 수준 높은 매니아층에겐 엄청 두드려 맞고, 대여점 독자와 나처럼 재미있으면 다 용서한다는 독자들에겐 나름 열렬한(?) 사랑을 받는 작가.

인과 관계나 현실성, 완성도 등등을 제쳐놓고 재미라는 측면만 놓고 볼 때 내 입장에선 국내 최고 중 하나다.

그녀의 현대물. 몇개 읽지 않았지만 인과관계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상쇄시키는 재미가 있었다. 그 극단적인 설정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솔직히 픽션에선 극단이 더 재밌는 걸 어쩌라고. 사소한 것에서 재미를 찾아내는 재주는 진작에 인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 파란만장 미스 왕에선 그녀의 장기가 절정에 달한 느낌.

검사와 범죄자인 여성. 신파로 흐르기 딱 좋은 설정을 코메디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소위 카드깡 업자인 여주의 업계에 대한 묘사는 그걸 배경으로 프로그램을 하나 쓰고 싶다는 충동이 들게 할 정도로 생생하다. 덕분에 카드깡에 대한 많은 것을 알게 됐다고나 할까. ^^;

그리고 주인공들이 드물게 매력적이고 톡톡 살아 숨쉰다. 남주는 공공의 적2에서 설경구가 연기했던 그 검사에 대한 오마쥬랄까 그의 모습이 확실하게 비친다. 그러나 로설 주인공으로 변신한 그의 모습은 멋졌음~ 검사들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나마저도 오빠~ 너무 귀여워요~가 절로 나온다. ㅎㅎ 여주의 엽기발랄함과 코믹과 무게가 적절히 어우러진 주변 인물들의 모습도 만족이었고~

배경만 잘 타면 중간은 갈 수 있는 시대물에 비해 현대물은 잘 썼다 내지 정말 재밌다는 얘기를 하기가 좀 힘든데 이건 정말 재밌다~는 얘기를 해야겠다. 이건 조만간 구입하기로 결정. 기분 꿀꿀할 때 보면 딱일 것 같다.

딴지 여왕으로서 칭찬만 하고 지나가긴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교정내지 편집팀에게 또 구시렁.

ㅎ모 작가와 함께 최작가도 맞춤법에 문제가 좀 있다. 초기작부터 꾸준히 읽어온 독자 입장에서 그건 오타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틀리는 글자들. 그래도 처음보다 엄청 나아졌고 새 작품을 낼 때마다 계속 잘 못 쓰는 단어가 줄어들긴 하지만 이번에도 잡히지 않은 몇개가 반복적으로 보인다. 이런 것에 민감한 편이 아닌 내 눈에도 띌 정도면 편집자들 눈에 보이지 않을 리가 없는데... 안 잡는 건가, 못 잡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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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무화영 제2부 1
최수선 지음 / 대현문화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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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가 무협 로맨스라면 2부는 로맨스의 성격을 약간 가진 무협 소설.  기존의 무협 소설들이 남자들의 환타지를 적극적으로 충족시킨다면 천무화영 2부는 무협지를 보는 여자들의 환타지의 완결편이라고나 할까.  ㅋㅋ

상당수 무협 소설이 고강한 남주의 미녀 얻기 아케이드 게임이란 것은 그 장르를 읽은 사람들은 크게 반대하지 않을 거다.  아마 그 대리만족 때문에 남자들이 더 열광하지 않을까 싶은데 천무화영 2부는 그 여성편.

무술은 전혀 고강하지 않지만 그녀를 지켜줄 절대무적에 가까운 남주가 있으니 1차 요건 충족. 그런 그녀를 둘러싸고 계속 등장하는 미남들.  어느 하나도 버리기 아까운 고강 + 미모(?) +  지위 + 성품 등을 갖추고 있다. 

한마디로 미남 만나기 아케이드 게임이다.  꽃보다 남자 등등 별볼일 없는 여주 하나를 둘러싸고 완벽 미남들이 줄을 잇는 일본 만화들이 줄줄이 생각났다.  <-- 표절이나 그런 얘기가 아니라 분위기에서. ^^

작가의 작명 센스 덕분에 배를 잡는 부수적인 즐거움도 컸다.  2002 월드컵 대표 선수들 + 히딩크 감독의 이름을 절묘하게 변형한 엑스트라 미남들이며 등장 단역의 별호와 이름은 한마디로 ㅍㅎㅎㅎㅎ.  이 소설은 번역을 하면 절대 이런 즐거움을 얻지 못할 거다.  한국인들만이 즐길 수 있는 농담이라고나 할까.

작품과 상관없는 얘기인데... 이 최수선 작가는 야오이물의 광팬인 것 같다.  코믹하게 등장하는 동성애적 코드들 역시 즐거웠음~   

전형적인 로맨스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박한 평가를 받겠지만 다양성 측면에서 또 무협과 로맨스가 결합한 탄탄한 아이디어를 즐긴다는 측면에선 충분히 만족했다.  시대물이나 무협 로맨스 장르에서 절절하고 애절함을 기대하는 사람은 피하는 걸 권한다.  하지만 가볍고 다양한 재미를 즐기는 사람에겐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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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무화영 1
최수선 지음 / 대현문화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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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무화영.  꽤 오래 전부터 봐야지~ 하던 책이다.  동네 대여점에도 없고 어영부영하다보니 여기저기 품절이라 구하는데 고생을 했지만 지난 주에 1, 2부 구입 성공~

검증없이 리뷰와 설명글을 보고 구입한 책들이 연달아 실패를 해서 대여점에 없는 건 이유가 있다. -_-;;; 좀 열받아 있었는데 이건 책장에 꽂혀있는 것을 보면 흐뭇하다.

1부는 천방지축 화영의 얼음인간 천무에 대한 막무가내 돌진 이야기.  무협이나 역사 로맨스에 등장하는, 연약하지만 고고한 미녀나 고강한 무예를 지닌 냉철한 여협이 아니라 무공 꽝에 배울 의지도 재능도 없고 오로지 말썽만 부리는 여주.  그런 그녀가 목을 매다는 젊은 사부 천무는 무협지의 전형적인 냉철한 고수 + 영웅문 1부의 곽정 스타일의 약간 둔탱이에 원칙주의자다.

극과 극을 달리는 두 사람의 귀여운 러브 스토리가 아주아주 즐거웠다.  무협의 냄새는 풍기나 그 맛을 제대로 냈다고 할 수 없는 몇몇 로맨스와 달리 이 작가는 무협 장르의 상당한 팬인 것 같다는 느낌.

독특한 스타일과 상상력에도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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