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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ㅣ 갈릴레오 총서 3
사이먼 싱 지음, 박병철 옮김 / 영림카디널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렇게 손에 떼기 힘들 정도로 재미있는 책을 만난 기억이 언제인가 싶다. 책을 보면서 가슴이 뛰어본 것도 해리 포터를 처음 만났던 2년 전 이후로는 없었던 경험이라 신선한 아드레날린이 몸에 감도는 느낌.
중학교 때던가 수학 시간에 페르마의 정리에 대해 수학 선생님이 말씀하시면서 수백년간 아무도 이 정리를 풀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나는 수학을 엄청 싫어하고 또 사람의 이름을 외는데는 정말 잼병이다. 페르마의 정리에 대해 기억을 하는 이유는 숫자와 도형의 연속인 그 끔찍한 시간에 잠깐이라도 다른 옛날 얘기를 들었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내게 페르마의 정리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스핑크스며 고대 문명들처럼, 수수께끼로 남아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존재였고 사실 머리 속에 거의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몇년 전 페르마의 정리가 드디어 풀렸다는 뉴스를 들었고 또 몇년 뒤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도 봤다.
평소의 나 같으면 이 지긋지긋한 수학이나 산수와 관련된 책은 거져줘도 보지 않는다. 이자 복리율 계산보다 복잡한 산수는 내 인생에서 절대 필요치 않다는 확신 아래 살고 있지만 이상하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꼭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벼르고 벼르다 이 책을 꽤 오래전에 샀다.
이 책을 사기까지 걸린 시간만큼 이 책을 책장에 꽂아둔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난 지난주에야 겨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책을 손에서 뗄 수가 없다는 표현을 여기에 쓰고 싶다.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한 현대의 앤드루 와일즈와 아주 오랜 옛날 피타고라스부터 이름을 날린 수학자들을 오가는 박진감 넘치는 구성은 한편의 흥미진진한 소설을 보는듯 하다. 이 책의 저자는 나처럼 산수에 엄청 약한 독자를 위해 수학적 증명이나 내용을 최대한으로 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피타고라스의 정리마저도 머리속에서 다 날아간 나는 숫자에 관한 부분은 다 뛰어넘고 읽었지만 내용을 즐기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물론 수학적 소양이 있는 사람의 즐거움은 나와 비교가 안될 것이다)
여기선 페르마의 정리에 대한 증명과 같은 학술적 내용은 없다. 하지만 그 정리가 나오기까지의 역사와 또 수백년의 고생 끝에 정리가 증명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내가 이 책을 예전에 읽었더라도 나의 수학 실력은 거의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능력은 없지만 수학을 좋아하는 찬미자의 한사람은 됐을 것 같다. 수학이 아름다운 학문이란 말에 처음으로 동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