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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의 역사:고대 이집트에서 20세기까지 - 까치가정학 2
블랑쉬 페인 지음 / 까치 / 1997년 2월
평점 :
품절
이제는 이런 일에 더 이상 화낼 기운도 없지만 먼저 이것은 짚고 넘어가야할 것 같다. 나처럼 제3 세계의 복식에 대한 소개 부분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의 제목은 복식의 역사지만 동양이나 소위 신대륙인 아메리카나 중동의 복식에 대해선 겉핥기로 지나가는 예의상의 언급도 전혀 없다. 고로 서양의 역사만을 다룬 책을 서구사로 이제 엄격하게 분리를 하듯 이 책도 서구 복식의 역사라는 제목이 적당할 듯 싶다. 언제가 되야 서양사가 세계사가 아니라는 자각을 출판사나 서구의 저자들이 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제목 선정에 대한 불만을 제외하곤 가격에 비해 두툼하고 내용도 괜찮은 편이다.
흑백이라 조금 아쉽긴 하지만 내용에 따라 적절한 그림과 스케치, 도해들이 바로바로 배치되어 있어 꽤 전문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가 쉬웠다. 저자가 머리말에도 밝혀놨지만 이 책을 위해 정말 연구와 여행, 자료 수집이 많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부분. 단순히 몸을 가리고 추위와 더위를 가리는 것에서 출발한 의복이 서구 사회에서 시대별로 어떻게 발달되었고 그리고 각 시대의 유행과 그 배경을 일목요연하게 뜯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획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이런 류의 패션이나 복식사에서 많이 생략되고 외면되던 고대 이집트부터 로마시대까지의 복식에 대해서도 꽤 많은 부분을 할당했다는데 점수를 주고 싶다. 그동안 죽 만나왔던 중세 이후의 서구 복식에 대한 자료의 홍수 속에서 조금은 드물게 친절한 고대의 의상에 대한 연구를 만나봤다고 할까...?
그리고 각 시대를 상징하는 각각의 특징들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은 이후로는 그림이나 과거사를 다룬 영화 등을 볼때 시대에 대한 추측과 함께 고증에 대한 평가를 약간이나마 할 수 있게 됐다는 것도 즐거운 수확이라면 수확. 또 하나 딴지를 걸자면 책의 부제는 '고대 이집트부터 20세기까지' 인데 이 책은 19세기 말로 마무리를 짓고 있어서 20세기의 복식에 대해 기대하며 다음 장을 넘길 때 조금은 황당하다.
옷의 세부 구조나 바느질에 흥미가 전혀 없는 나로선 마지막 부분에 부록처럼 친절하게 배치된 각종 옷본 도해들이 무용지물이지만 이쪽 방면에 흥미가 있는 독자라면 그것들도 나름대로 크게 쓰임새가 있지 않을까 싶다. 두툼하니 책장에 꽂아놔도 뿌듯하고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가 부담이 간다면 중간중간 그림과 사진들을 보면서 왔다갔다 읽어도 나쁘진 않을듯 하다.
그림이 가물에 콩나듯 나오는 우리 고대 복식사에 관한 책과 좀 비교가 됐다. 자료가 될만한 것들을 전쟁으로 몽땅 태워먹고 그나마 벽화가 있는 땅은 다 빼앗긴 먼 조상들과 너무나 알뜰해 옷의 마지막 순간까지 재활용했던 비교적 가까운 시대의 조상들을 탓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