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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이야기 - 위대한 8인의 꿈
노만 F. 캔터 지음, 이종경 외 옮김 / 새물결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도착한 책을 받았을 때 두께와 크기를 보고 첫인상은 약간 실망이었다. 가격 대비 두께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었다. 하지만 내용으로 들어가선 평범한 만족 이상.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독특하다'란 단어를 써야할 것 같다. 대부분의 교양서 특유의 구성과 문체와는 완전히 다른 형식. (작가는 스스로 포스트모더니즘적 구성이라고 얘기했다) 전기 형식으로 써졌다는 리뷰를 보고 골랐기 때문에 그냥 중세에 유명했던 인물들을 작가 나름대로 짤막짤막하게 연대기적 전기를 써둔 것으로 생각했고 자료 차원에서 소장하려고 구입을 했다.
그런데 작가는 대담하게 그런 일반적인 구성을 탈피해 인물의 한 시기에 그의 가장 큰 쟁점이 되는 사안 (주인공의 개인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그가 속한 시대에 대한 내용이기도 했다. 물론 한쪽만이 아니라 양쪽이 다 얽힌 내용이긴 하지만) 을 격렬하게 토론하는 형식을 택했다.
나레이터에 의한 일방적인 전달보다 대화와 토론의 형식을 통한 메세지 전달이 더 효과적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내용을 한순간의 대화로 녹여낸다는 것은... 보통 공력이 아니고선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얘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대담한 방법에 한수 접고 들어갔다고 해야하겠다. 여기에 워낙 감탄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찬탄은 아무래도 당분간은 내용보다는 형식에 더 치우칠 수 있겠지만...
그러나 내용을 놓고 봐서도... 상당히 지적이다. 작가가 나름대로 주인공과 동시대에 살았던 인물 중에 그 토론에 적합한 인물을 선정해 무대에 올려놓았겠지만 반대 토론이건 의견을 같이하는 일치를 향한 토의건 간에 그 내용의 질이 높고 또 대화 내용에 시대의 흐름과 사상의 쟁점을 찾아볼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인물들의 평전이라기 보다는 시대별로 선정된 인물들을 통해 그들이 살았던 각기 그 시대를 조명하는데 주력한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중세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달 수 있는 교회음악 작곡가인(이름이 살아남았다는 의미에서) 빙엔의 힐데가르트에 대한 얘기가 궁금해서였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내게 음악가로만 인식된 힐데가르트가 신비주의자인 동시에 놀라운 이론가였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되어 기뻤고... 그외 인물들도 반수 정도가 내가 알지 못하던 인물인 관계로 지식 측면에서도 상당히 보탬을 줬다고 할 수 있다.
인물의 선택에 있어서도 반수 정도는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유명한 인물이지만 나머지 반의 이름과 위치를 아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듯 싶은데... 그들이 차지하는 시대의 당위성을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던건 이들이 그들 당대에 이뤘건 이루지 못했던 어떤 시대를 바꿀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 안에서 변화를 꿈꾸는 인간들의 모습은 중세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흔히 중세를 얘기할 때 암흑시대라는 말을 쓴다. 기독교라는 가치관이 사회 전체에 장벽을 둘러치고 다른 가치관이나 사상의 유입을 허락하지 않은 극히 폐쇄적인 공간. 그 한정된 공간 안에서 자체적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는... 뭐랄까... 갈라파고스나 오스트렐리아에서 외롭게 진화한 이구아나며 오리 너구리를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겠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내용도 내용지만 독특한 형식미 때문에 신선했던 책. 중간중간 컬러로 삽입된 그림들도 눈을 쉬게 해주면서 좋았고... 이 책으로 인해 자극된 호기심 덕분에 당분간 중세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을 것 같다. 중세라는 거대한 숲에 있는 큰 나무 여덟그루를 만난 느낌인데... 요즘 이런 류의 중세 관련 책들을 계속 읽다보니 갑자기 숲 전체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서양 중세사를 다시 한번 읽어볼까.... 예전의 느낌과 많이 다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