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김명순 외 지음, 이루카 엮고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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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우주님(@woojoos_story) 진행, 아티초크(@artichokehouse)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세계 여성 시인선 100 

📗 김명순·에밀리 브론테·샬럿 브론테·앤 브론테 외 96 

📙 아티초크

 

 

마음속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정확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있다. 한때는 눈부셨지만 어느새 흐릿해진 꿈, 이미 지나간 일인데도 문득 되살아나는 기억, 괜찮아졌다고 생각한 뒤에도 조용히 남아 있는 서운함 같은 것들이다. 나는 그런 감정을 오래 붙들기보다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편이었다. 그러나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를 읽으며, 사라지지 않는 마음에는 먼저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인류 최초로 이름이 기록된 작가 엔헤두안나부터 브론테 자매, 에밀리 디킨슨, 김명순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성 시인 100명의 시와 생애를 한 권에 담았다. 사랑과 이별, 고독과 죽음, 출산과 자유, 억압과 저항을 지나온 여성들의 목소리가 시대와 국경을 넘어 이어진다. 시인의 짧은 연대기와 초상이 시와 함께 실려 있어, 한 편의 작품을 읽는 일이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만나는 경험으로 넓어진다.

 

처음에는 제목 때문에 슬픔과 상실을 다룬 무거운 시들이 주로 담겼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슬픔에도 다양한 표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슬픔은 사랑을 잃은 자리였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재능과 욕망을 숨겨야 했던 시간이었다. 어떤 시에서는 고독이 견뎌야 할 아픔으로, 또 다른 시에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조용한 방으로 나타났다. 이 책은 슬픔을 하나의 감정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그 안에 놓인 분노와 욕망, 희망까지 함께 보여준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시는 여자의 꿈이었다.

 

비단은 닳아 없어지고, 레이스도 온데간데없고,

낯선 얼굴은 멀고 먼 곳으로 사라지고,

음악은 꺼져 버렸습니다, 영원히.

 

가슴속에 무언가만 남습니다……

아프고 달콤하고 애타는 기억,

떠올릴 때마다 몸이 떨리고,

눈물이 넘칩니다, 말없이, 뜨겁게……

여자의 꿈은 참 이상합니다!”

 

꿈속에서 반짝이던 비단과 레이스, 낯선 얼굴과 음악은 결국 모두 사라진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손에 넣지 못한 꿈도 한 사람의 삶에 분명한 흔적을 남기고, 끝난 사랑과 지나간 시간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감정이 된다. 마지막의 여자의 꿈은 참 이상합니다!”라는 문장은 가볍게 들리면서도 묘한 쓸쓸함을 남겼다.

 

사랑받고 싶고, 자유롭고 싶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은 바람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다만 여성들에게는 그런 평범한 욕망조차 오랫동안 지나치거나 이상한 꿈으로 취급되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이 책 속 시인들은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꿈을 시 안에서만큼은 감추지 않았다. 그들에게 글쓰기는 아름다운 문장을 만드는 일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존재했음을 세상에 남기는 방법이었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는 상처받은 여성들의 비극만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다. 이 책 속 여성들은 슬퍼하면서도 사랑했고, 흔들리면서도 꿈꾸었으며, 침묵을 강요받는 순간에도 자신의 언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래전 누군가가 남긴 문장이 오늘의 마음을 알아보는 순간, 지나간 꿈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도 더 이상 혼자만의 비밀로 남지 않는다. 마음속에 오래 머물러온 감정에 알맞은 언어를 찾아주고 싶은 날, 천천히 펼쳐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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