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탐정 김전일 애장판 9 - 쿠치나시촌 살인사건
가나리 요자부로 원작, 아마기 세이마루 지음, 사토 후미야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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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히다의 명문가 타츠미가의 타츠미 시노 앞으로 협박문이 날아든다. 켄모치의 부탁으로 '쿠치나시촌'에 동행한 김전일. 도착한 타츠미가에센 시노가 재가하며 데려온 아들 세이마루가 차기 당주로 결정되면서 어지러운 유산 상속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유언 집행이 닷새 후로 다가온 어느 날 밤, 협박문의 발신인 '참수 무사'가 나타난다. 그리고 기묘한 장치가 된 밀실에서 첫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 그러나 범인은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소년탐정 김전일 시리즈의 아홉 번째 작품입니다. 이번에는 김전일이 겐모치 경부의 부탁으로 학교도 빠지고 미유키와 함께 쿠치나시촌(口無村)이라는 마을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 유산 상속을 둘러싼 참혹한 살인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김전일 최고작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더 없이 교묘한 일본식 가옥의 구조를 이용한 밀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적통을 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묘하게 비틀어진 집착적인 사랑을 가진 범인을 비롯한 등장인물들. 이 작품에서는 특히 필요없는 인물이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등장 인물들이 자신들만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냄으로서 작품의 완벽성을 더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일본 추리소설의 대가 요코미조 세이시의 팔묘촌(八つ墓村)을 많이 닮았다고 생각됩니다. 먼저 제목에서도 그러한 뉘앙스를 느낄 수가 있고, 팔묘촌에 나오는 타츠미 가문의 성(姓)이 또 이 무구촌 살인사건에도 그대로 등장합니다. 무구촌 살인사건에도 나오는 가문이 바로 타츠미가...ㅡㅡ;;
또한, 요코미조 세이시의 팔묘촌과 소년탐정 김전일의 무구촌은 과거의 저주와 재앙이 얽혀 있다는 것이 공통점인데 <팔묘촌>에서는 황금에 눈이 먼 마을주민들의 무자비한 살인이 행해지며,(제가 본 영화평에서는 '집단 이기주의'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무구촌>에서는 자신들의 인생을 위해 자기 주군의 목을 치는 가신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살인의 결과로 <팔묘촌>에서는 제목 그대로 여덞 명의 죽은 무사를 위한 머리 무덤이, <무구촌>에서는 목이 없는 석상들이 마을의 그로데스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또 가면을 통해서 몰래 사람을 감시해 낼 수 있는 가옥의 구조도 닮았고, <팔묘촌>에서는 주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무구촌>에서도 어느 정도 주민들이 분노하여 김전일 일행을 쫓아내는 것이 닮은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범인의 최후는 <이누가미가의 일족(犬神家の一族)>에서의 범인의 최후를 연상케 하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요코미조 세이시의 <팔묘촌>과 김전일의 <무구촌 살인사건>에서는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같아요.

김전일 시리즈 중에서도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발군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특히 작품 속의 인물들은 시계태엽 돌아가듯이 자신의 역할들을 완벽하게 소화내고 있습니다. 정원사에서 부터 의사, 집안의 하녀에 이르기까지 불필요한 인물들은 하나도 없지요. 끝에 가서도 결말이 상당히 씁쓸한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인물설정의 완벽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어머니의 모정애와 그것을 이용해 먹으려는 전형적인 악인, 기묘하게 비뚤어진 인간성을 가진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 가족과 자신들의 이익과 권세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하려는 타츠미 가문의 사람들은 많은 것은 시사해 주는 것 같습니다.

연결되지 않은 인물들의 참혹한 죽음, 그리고 치를 떨게 하는 살인과 전설의 기묘한 조화.
특히 이 작품에서의 밀실 트릭은 상당히 유쾌한 것이었습니다. 첫번째 미스터리인 밀실 살인에 애를 머던 김전일이 호텔에 들러 어떤 것을 보고 단숨에 알아차릴 정도로 간단하고 경쾌한 트릭입니다.
소소한 소품이 추리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것도 흥미진진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출생의 비밀'이라는 것이 이 작품에서는 특히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 출생의 비밀을 둘러싼 마지막의 대반전은, 이 작품을 읽은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생생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 사건의 범인은 너무나 참혹한 살인을 저질러서 전혀 동정이 가지 않는 범인이었지만, 범인의 비극적 최후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유대가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은 또한 시사합니다.

완벽한 트릭, 출생의 비밀, 완벽한 반전의 구성이 어우러진, 이 <무구촌 살인사건>은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게 하는 수준의 탁월한 작품이라고 당당히 말씀드릴 수 있을만한 김전일 시리즈의 수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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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약용 살인사건
김상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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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남 강진군 도암면의 다산 초당. 조선 실학의 대가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서 18년간의 유배생활 중 10년을 머문 곳으로 초가집이었던 것을 기와로 복원하였다.)

작년에 수능 시험장에서 사회탐구 영역 국사 문제를 풀던 중 나를 대단히 난감케 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정약용 선생의 기예론(技藝論)을 제시해 놓고 그 인물의 업적에 대해 묻는 것이었는데, 물론 지은이에 대한 정보는 없었고 그 기예론이란 글은 난생 처음보는 것이었다. 그 글로 인해 적잖이 당황하게 되 결국 난감한 국사 점수를 받게 되었고, 정약용에 대한 적대감을 안 가질래 안 가질수 없는 입장이었지만, 이 책을 읽고 정약용이란 인간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다산 정약용 선생도 선생의 유배지인 강진에서 살인사건을 접하고 그 사건의 초검안발사를 적었으며, 자신의 저서인 흠흠신서(欽欽新書)에서도 살인사건심리의 실무를 기록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다방면으로 천재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정다산이야 말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버금가는 우리나라의 위인이 아닐까?

이 소설 정약용 살인사건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된 강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살인사건을 그리고 있으며, 정약용 선생을 탐정 역으로, 선생을 돕는 후원자로 신비로운 승려와 우직한 주막집 아들내미(왓슨 역이다)를 설정해 놓았다. 당시 남인이었던 정약용이 눈엣가시인 노론의 조양기(물론 풍양 조씨일 것이다)와 노론의 인물들을 계속해서 정약용을 죽이려 하지만, 정순왕후의 도움으로 인해 정약용은 강진에 유배되고, 때마침 일어난 어린아이의 죽음을 멋드러지게 해결해서 현감의 후원을 받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사실과 픽션이 적절히 어우러져 어색한 감을 거의 느낄 수 없어 좋았고, 당시 형조에서 일한 정약용의 눈썰미로 진범을 잡아내는 추리가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본격 미스터리물 보다야 훨씬 그 치밀함과 반전이 뛰어난 것이 아니지만, 잘 짜여진 인물의 갈등 양상과 시대적 배경의 현대성을 잘 살렸기 때문에 그냥 역사소설을 읽는 재미만으로도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김탁환의 백탑파 시리즈만큼이나 재미있다.

이 소설은 역사추리소설이다. 그래서인지 추리소설의 재미뿐만이 아닌, 당대의 역사를 소설의 형식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다. 이 책에서는 다산을 죽이려는 노론 세력의 치밀한 음모와 살의 뿐만 아니라, 당대 백성들의 노고와 삼정의 문란함을 통해 얼마나 일반 백성들이 참혹한 수탈을 당했으며 수령과 아전들이 얼마나 그들을 괴롭혔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 예로, 정약용이 강진에서 지은 애절양(哀絶陽:가장이 수탈을 이기지 못하여 자신의 성기를 거세하는 이야기)이라는 시는 당대의 극도로 왜곡된 군포제도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작가는 이 작중의 인물이 애절양이라는 시와 살인사건에 깊은 연관성을 가지게 함으로서 읽는 재미와 사실성을 살려낸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당대의 천주교 문제와 황사영 백서사건(황사영이라는 천주교도가 외세의 힘을 빌려 나라를 뒤집으려 한 사건), 신유박해 등의 역사적 사건을 픽션과 적절히 버무려 읽는 맛을 더한다. 적잖은 분량이지만 금세 읽을 수 있었다. 비록 팩션이지만 인간 정약용에 대해 더 큰 흥미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알게 되어 유익한 독서 경험이었다. 물론 이 팩션은 다빈치 코드류의 역사추리소설 붐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을지는 모르나, 강진을 셀 수 없이 드나들었다는 작가의 말마따나 서양의 그것들과는 다른, 우리만이 공감하고 우리만이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무척 기대된다. 명탐정 정약용 시리즈가 나오면 좋으련만. 팩션의 진정한 묘미란 바로 이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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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오늘의 추리소설 - 첫 섹스에 관한 보고서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 / 산다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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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협회 소속 추리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엮은 책. 김차애, 김유철, 서미애 등 작가 8명의 작품을 선별해 수록하였다. 정신과 수련의인 수연과 자신이 살해하지도 않은 것이 분명한 한 남자를 죽였다고 고집하는 최미연을 통해 여러 빛깔의 사랑과 섹스에 접근하는 표제작 《첫 섹스에 관한 보고서》. 이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류성희의 작품으로, 차분한 어조로 사랑과 섹스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이 밖에 김차애의 《다정다감》, 서미애의 《그녀만의 테크닉》, 황세연의 《보물찾기》, 김유철의 《황금의 집》, 김상윤의 《교차로에서 만나다》, 장세연의 《어둠의 초상》 등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여전히 국내 추리소설 작가들의 활동이나 작품 발표량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단편집을 보고 우리 추리문학계에도 희망이 보이는 듯 하여 좋았다. 본격 미스터리나 도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내 개인적인 취향과는 어느정도 떨어져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올해의 《첫 섹스에 관한..》작품집은 작품의 질이나 독창성이 있어서 좋은 점수를 주어도 좋을 것 같다.
다소 아쉬운 점들은 꽤 비싼 가격에(가난한 학생으로서 이 정도 가격이면 안습이다..) 300페이지도 안되는 적고 가벼운 분량이라는 점, 국내 작가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독자로서 작가들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는 점,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이 작품들을 어떤 기준으로 뽑았고 심사위원들은 누구누구이며 이 협회가 과연 어떤 권위와 어떠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가지고 이 작품을 뽑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미나 일본과 같은 권위는 없을지라도 앞으로는 한국추리작가협회가 더 큰 발전과 권위를 가지길 간절히 바란다. 이 작품들만으로도 충분한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협회의 작가들이 10년이나 20년 뒤에는, 한국에서 추리문학의 지위를 한껏 드높여 주었으면 한다.

첫 작품은 김차애의 《다정다감》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추리라기 보다는 오히려 심리적인 묘사가 탁월한 공포소설이라고나 할까?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보이는 여자와 죽음을 예술로 표현하는 남자의 심리가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것 같은 작품이다.

김유철의 《황금의 집》은 읽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이상한 사건에 주인공이 얽히고 이상한 인물들과 이상한 공간이 어우러지는 괴기한 재미가 있다. 그러나 결말이나 반전은 평이한 편이다. 톡 쏘는 맛이 아닌, 밋밋한 다이어트 콜라의 맛같은 작품이다.

서미애의 《그녀만의 테크닉》은 이 작품집에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인 것 같다. 한번 읽게 되면 끝을 보게 되는 그런 내용이라고나 할까. 자신을 배반한 남자를 납치하는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뒷 결말은 섬뜩한 것이다. 적절한 인물의 구도와 살떨리는 공포를 잘 빚어낸 작품이다. 인터넷 뉴스에서 본 작가의 모습에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올리버 부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하여간 이 작품은 별 다섯개를 주어도 좋은 작품이었다.

《교차로에서 만나다》라는 작품의 김상윤은 학력이 대단한 엘리트인데, 의외로 유머러스한 작품을 선보인다. 저승사자와의 대결과 가슴뭉클한 결말에서는 휴머니즘도 느낄 수 있다.

류성희의 《첫 섹스에 관한 보고서》에서는 인간의 심리를 세밀히 해부한 흔적이 보인다. 인간을 한꺼풀 한꺼풀 벗겨내는 신경과 수련의와 살인은 저지른 간호사의 심리 게임이 돋보인다. 역시 어느정도 무섭기도 하다.

장세연의 《어둠의 초상》의 초상은 개인적으로도 몹시 좋아하는 도서추리의 형식에, 전형적인 치정살인이다. 이 작품은 물론 좋았지만 질이 약간은 떨어지는 것 같다. 인물묘사와 심리 묘사는 만점을 주어도 좋겠으나, 귀납적 증거의 제시가 부족한 듯 하다. 좀더 섬세한 증거를 제시해 주면 좋았을 것이다.

마지막 작품인 《보물찾기》도 읽는 재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 낡아 빠진 시골집을 산 남자가 겪게 되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숨겨진 그 무엇을 찾는다는 흥미와 약간은 무서운 결말이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비록 본격 미스터리와는 거리가 있는 작품들이었지만, 재미없었던 작품은 하나도 없었고, 질적으로도 큰 발전을 이룬 것 같다. 읽는 내내 흐믓하고 즐거웠으며 아리따운 책의 분홍색 표지에서 화사한 봄날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어 좋았던 작품집이었다. 앞으로도 한국추리작가들의 일취월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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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 Mystery Best 4
엘러리 퀸 지음, 설영환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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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은 추리소설의 황제 엘러리 퀸의 최고 걸작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의 《Y의 비극》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이 작품도 그에 못지 않은 놀라운 결말과, 빈틈없는 작품의 구성과 전개, 깔끔한 퀸의 논리적인 추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Y의 비극 못지 않은 걸작이며, 총 9편의 국명(國名) 시리즈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실은 이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이라는 작품은 구입한지 별 이유도 없이 약 2년 가까이 읽지 않고 서재에 꽂아두었던 작품인데, 그 동안 《탐정학원 Q》라는 만화를 읽게 되었다. 이 만화에서는 추리의 힌트로 셜록 홈즈의 한 단편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한 장편, 또 엘러리 퀸의 이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이 힌트로 제시된다. 아쉽게도 나는 이 만화를 먼저 본 것이 상당히 후회된다. 그러므로 앞에서 말한 세 작품을 먼저 읽으시고 탐정학원 만화를 보시면 더 없이 좋을 듯.

T자 모양의 이집트 십자가에 매달린 목이 달아난 T자 모양의 시체와 모두 T자로 통일되는 주변환경들. 한 작은 마을의 초등학교 교장이 이처럼 참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고, 엘러리 퀸은 이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의 엽기적인 범죄라 할 수 있겠다. 영상물로 만들면 상당히 무시무시할 것 같은데. 작가인 엘러리 퀸의 박식한 이집트 십자가에 대한 지식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만했다. 작품의 후반부에는 범인을 지목해낼 결정적인 단서가 제시되지만, 작품의 초반부에는 수없이 제시되는 논리적인 단서들, 적잖은 등장인물들, 복잡다단한 범죄현장들이 어우러져 말그대로 상황은 미궁이다. 초등학교 교장의 죽음이후, 또 다시 백만장자 부호가 참혹하게 살해되는데, 본격적인 수사는 이 두 번째 희생자와 그의 주변인물들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며,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현장을 조작하여 엘러리를 농락하는 범인의 교묘한 솜씨(?)도 느낄 수 있다. 실은 미친 듯 보이지만 범인은 최고의 두뇌 회전을 보여준다. 범인도 똑똑하지만 개성적으로 만들어 놓은 등장인물들도 빼놓을 수 없는 혼란을 가져다준다. 다들 한 가족이라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이 실은 믿는이의 뒷통수를 치는 것이며 그럴 듯해 보였던 이들이 숨겨왔던 어두운 과거등등, 모범적인 미스터리 작품이라 할 만 하다. 계속해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긴장과 공포의 연속이다. 마음이 약하신 분들은 처음의 자극적인 장면에 눈서리를 칠지도 모르겠지만,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끝을 보게 되는 것이 특히 엘러리 퀸의 소설인 것 같다. 공포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만족할 만한 작품이라고 할까.
범인이 나올락말락한 결말 부분에는 작가인 엘러리 퀸의 독자에게 정정당당한 도전장을 내민다. 나름대로 적절한 추리를 해보았지만, 역시 헛다리를 짚었다. 그러나 도전장을 보내기 전의 범죄현장에서는, 범인이 결정적인 단서를 흘리고 만다. 결말의 탐정 퀸은 사소한 것으로부터의 날카로운 추리를 이끌어내며, 또 달아나는 범인을 체포하기 위하여 자신의 애마 뒤센버그, 비행기 등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범인을 끝내 잡아낸다. 이 추적의 순감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스릴이 넘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상당한 양의 장편이라 집중력도 떨어진 것이 사실이었지만, 퀸의 추리는 더 없이 논리적이고 정정당당했다. 두 동갑내기 작가의 지혜에는 언제나 탄복할 수밖에. 너무나도 훌륭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엘러리 퀸의 작품은 장편이 39편, 단편이 78편에 이르지만 국내에 소개된 것은 지금은 절판되어 버린 시그마북스를 포함하여 기껏해야 스물 몇 권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은 구할 수 있는 것이 불과 10여 작품 뿐이다. 이렇게 괄시받는 대가(大家) 엘러리 퀸을 보면 국내의 추리소설과 추리문학에 대한 무관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데, 요즈음은 그나마 여러 출판사에서 적잖은 추리소설들을 출간해 주고 있다. 수년 전의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의 붐이 일었을 때가 그렇고, 동서문화사에서 동서미스터리북스를 재출간 해준 것이 그렇고, 작년에 수많은 추리소설들이 출판된 것을 보면 그렇다. 추리소설을 즐기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즐거웠지만, 국내 추리문학과 추리소설 시장의 근본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추리소설의 근간을 이루는 고전들이 충실히 번역될 필요가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나 도일 경의 작품 뿐만 아니라, 엘러리 퀸의 작품도 국내에 모두 번역되고, 또 많은 국내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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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관의 비밀 ㅣ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11
엘러리 퀸 지음, 이제중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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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엘러리 퀸 시리즈. 그러고 보니 어제본 제시카의 추리극장 시즌 1 에피소드인 "Murder Takes the Bus" 에서 나온 할아버지가 바로 리처드 퀸 경감..ㅋ)

경험 많은 리처드 퀸 경감과 그의 아들 엘러리 퀸이 활약하는 본격 추리물. 뉴욕 시 한가운데에 있는 교회 묘지에서 미술품 중개상의 평범한 장례식이 거행된다. 장례가 끝나고 금고를 연 변호사는 고인의 유언장이 없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유언장이 든 쇠상자는 데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장례식 도중에나 식이 끝난 뒤에나 그 장소를 떠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오페라의 전주곡이라도 되는 양, 무시무시한 사건들이 하나둘 막을 올리기 시작한다.

《그리스 관의 비밀》은 국명 시리즈 최고의 걸작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에 앞서 같은 해에 먼저 발표되었다. 《이집트》를 먼저 읽어서 그런지 《그리스》의 박력이 다소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리스》 다음에 《이집트》라는 걸작이 나왔기 때문에, 더욱 섬세하고 복잡다단한 문장과 트릭을 구사하는 젊은 두 작가의 넘치는 필치와 재능이 더욱 깊어지고 원숙해진 느낌을 당대의 독자들은 충분히 느겼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에 비해 《그리스 관의 비밀》에 나오는 탐정 엘러리는 남들에 비해 비범한 추리력을 보여주지만 조금은 부족하고 어슬픈, 얼치기 탐정의 면모를 보여준다. 라이트빌 시리즈나 다른 걸작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실패를 모르는 패기넘치는 젊은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곧 자신만만한 자신의 생각이 크게 좌절되는 것을 통해, 자신감넘치는 청년 엘러리는 다소 상처입지만, 더욱 지적으로 성숙해지고 생각이 깊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그의 틀린 추리도 물론 비범했지만, 자신의 부친은 퀸 경감이 대충 매듭지어 놓은 풀리지 않은 범죄의 끈을 끝까지 파헤쳐 진실이라는 결론을 내놓고야 마는 엘러리의 모습은, 시련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 한 인간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하여간 다소 칠칠맞고 거만한 청년탐정의 모습도 싫지는 않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라이트빌 시리즈의 더욱 사려깊고, 이성과 심장 사이에서 갈등하는 엘러리의 그런 모습이 더욱 멋진 것 같다.) 사건의 시작은 한 미술상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데, 그의 변호사가 보고 금고 속에 보관해둔 유언장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이 사건 때문에 난리가 일어나게 되고, 모든 사람들을 조사하고 모든 공간을 샅샅이 뒤지지만 유언장은 발견되지 않는다. 결국 엘러리의 추리 덕분에 새로운 활로가 트여 조사방향을 돌리게 되지만, 예상치 않았던 살인을 접하고 만다.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등장인물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사람들의 숨은 비밀과 생각, 동기와 다채로운 인간들의 성격이 나타나는 일종의 전시장 같은 분위기였다. 사건은 대가족 내의 완전범죄로 볼 수 있는데, 황소같은 집념으로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리처드 퀸 경감과 그의 부하들, 그리고 그와는 달리 논리적인 추리력으로 사건을 분석해가는 엘러리 퀸의 모습. 부자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지만, 지친 아들을 따스하게 위로해주고 함께 격려해주는 아버지 리차드의 모습에는 진한 부성애 또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초반부에 ‘범인을 다 알겠다’라고 호언장담하면서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과 추리를 늘어놓지만 결국에는 망신을 당하고 진범과 단서를 찾아내겠다고 절치부심하며 얼굴을 붉히는 엘러리의 모습도 보기 좋았고, 잘난 척 하던 녀석이 망신을 당하는 모습을 보자니 다른 한편으로는 유쾌하기도 했다. 상당히 많은 등장인물들이 보자니 머리가 아팠다. 등장인물들이라도 앞에 제시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평온한 듯 보이는 가정과 사람들, 그리고 믿었던 사람들이 벌어는 놀라운 행각과 논리적인 퀸의 추론. 작품 전체적으로는 읽는 사람을 몰입시키는 힘이 대단히 강력한 작품이었던 것 같다.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상황, 또 그것을 논리적으로 해결하려는 탐정, 또 그것의 좌절과 또 다른 도전. 그리고 연속해서 터지는 사건과 교직되는 등장인물들. 실은 결말부분의 처리가 썩 매끄럽지 만은 않아 보였다. 퀸이 지목한 범인이 약간은 황당하고, 동기면에서도 그럴 듯 하지만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장치와 작품의 결론은 만점을 주기에는 약간 부족한 면이 있다. 그래서인지, 두 작가는 이 작품의 부족한 2프로를 200프로로 채우기 위하여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이라는 걸작을 내놓은 것은 아닐까. 최고의 걸작으로 보기에는 약간 부족했던 작품이라고 생각되지만, 논리적인 치밀함과 인물들의 구성은 역시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생각된다. 신파극에서나 나올법한 남녀의 로맨스도 어느 정도 보아줄 만한 것이었고... 리차드 퀸과 엘러리 퀸의 공동수사도 보는 재미가 쏠쏠한 편이었다. 그러나 두 번 읽기에는 어느정도 망설여지는 약간은 불완전한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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