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약용 살인사건
김상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전남 강진군 도암면의 다산 초당. 조선 실학의 대가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서 18년간의 유배생활 중 10년을 머문 곳으로 초가집이었던 것을 기와로 복원하였다.)

작년에 수능 시험장에서 사회탐구 영역 국사 문제를 풀던 중 나를 대단히 난감케 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정약용 선생의 기예론(技藝論)을 제시해 놓고 그 인물의 업적에 대해 묻는 것이었는데, 물론 지은이에 대한 정보는 없었고 그 기예론이란 글은 난생 처음보는 것이었다. 그 글로 인해 적잖이 당황하게 되 결국 난감한 국사 점수를 받게 되었고, 정약용에 대한 적대감을 안 가질래 안 가질수 없는 입장이었지만, 이 책을 읽고 정약용이란 인간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다산 정약용 선생도 선생의 유배지인 강진에서 살인사건을 접하고 그 사건의 초검안발사를 적었으며, 자신의 저서인 흠흠신서(欽欽新書)에서도 살인사건심리의 실무를 기록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다방면으로 천재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정다산이야 말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버금가는 우리나라의 위인이 아닐까?

이 소설 정약용 살인사건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된 강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살인사건을 그리고 있으며, 정약용 선생을 탐정 역으로, 선생을 돕는 후원자로 신비로운 승려와 우직한 주막집 아들내미(왓슨 역이다)를 설정해 놓았다. 당시 남인이었던 정약용이 눈엣가시인 노론의 조양기(물론 풍양 조씨일 것이다)와 노론의 인물들을 계속해서 정약용을 죽이려 하지만, 정순왕후의 도움으로 인해 정약용은 강진에 유배되고, 때마침 일어난 어린아이의 죽음을 멋드러지게 해결해서 현감의 후원을 받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사실과 픽션이 적절히 어우러져 어색한 감을 거의 느낄 수 없어 좋았고, 당시 형조에서 일한 정약용의 눈썰미로 진범을 잡아내는 추리가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본격 미스터리물 보다야 훨씬 그 치밀함과 반전이 뛰어난 것이 아니지만, 잘 짜여진 인물의 갈등 양상과 시대적 배경의 현대성을 잘 살렸기 때문에 그냥 역사소설을 읽는 재미만으로도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김탁환의 백탑파 시리즈만큼이나 재미있다.

이 소설은 역사추리소설이다. 그래서인지 추리소설의 재미뿐만이 아닌, 당대의 역사를 소설의 형식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다. 이 책에서는 다산을 죽이려는 노론 세력의 치밀한 음모와 살의 뿐만 아니라, 당대 백성들의 노고와 삼정의 문란함을 통해 얼마나 일반 백성들이 참혹한 수탈을 당했으며 수령과 아전들이 얼마나 그들을 괴롭혔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 예로, 정약용이 강진에서 지은 애절양(哀絶陽:가장이 수탈을 이기지 못하여 자신의 성기를 거세하는 이야기)이라는 시는 당대의 극도로 왜곡된 군포제도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작가는 이 작중의 인물이 애절양이라는 시와 살인사건에 깊은 연관성을 가지게 함으로서 읽는 재미와 사실성을 살려낸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당대의 천주교 문제와 황사영 백서사건(황사영이라는 천주교도가 외세의 힘을 빌려 나라를 뒤집으려 한 사건), 신유박해 등의 역사적 사건을 픽션과 적절히 버무려 읽는 맛을 더한다. 적잖은 분량이지만 금세 읽을 수 있었다. 비록 팩션이지만 인간 정약용에 대해 더 큰 흥미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알게 되어 유익한 독서 경험이었다. 물론 이 팩션은 다빈치 코드류의 역사추리소설 붐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을지는 모르나, 강진을 셀 수 없이 드나들었다는 작가의 말마따나 서양의 그것들과는 다른, 우리만이 공감하고 우리만이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무척 기대된다. 명탐정 정약용 시리즈가 나오면 좋으련만. 팩션의 진정한 묘미란 바로 이런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