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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징살인사건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83
요꼬미조 세이시요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평점 :
(2007년 영화 '이누가미가의 일족' 기념 - 긴다이치 코스케 피규어)
오까야마현 어느 시골마을의 관청과 마주 보는 식당에 세 손가락의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는 혼징관 저택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혼징 집안의 장남 겐조에게 시집온 신부가 거문고 울림과 함께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범인은 세 손가락의 사나이인가, 일본 전통가옥의 특징을 교묘히 이용한 밀실 트릭! 엘러리 퀸이 탄복한 거장 요꼬미조 세이시의 출세작이자 명탐정 긴다이찌 고스께('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가 등장한 첫 작품이다. '나비부인 살인사건'이 함께 실려있다.
소년탐정 김전일(긴다이치 하지메)의 할아버지이자 일본 최고의 명탐정이라 할수 있는 긴다이치 코스케(金田一耕助)의 창조자인 요코미조 세이시의 첫번째 작품이자, 긴다이치 코스케의 데뷔작이기도 한 혼징살인사건(本陳殺人事件)과 유리(由利)선생이 탐정으로 활약하는 '나비부인 살인사건' 두 작품이 실려있다.
먼저 작가인 요코미조 세이시는 일본 최고의 추리 작가이자 거장이라 할 수 있는데 일례로 그의 긴다이치 시리즈 두번째 작품인 옥문도(獄門島)는 출간 이후 40년 넘게 일본 역대 추리소설 1위를 차지해 온 작품이며, 그의 여러 작품들이 역대 일본 미스터리 작품들의 100위권안에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1970년대 그의 작품들이 영화화되어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드라마라도 수없이 만들어진다. 일례로 요코미조의 걸작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팔묘촌(八つ墓村)이라는 작품은 세 번의 영화화와 여섯 번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최근에도 일본의 인기 배우 이나가키 고로가 주연하는 드라마 시리즈가 꾸준히 방영중(이라고는 하지만 1년에 두편정도?)이다.
또한 작가 자신의 작품 세계도 참으로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추리소설이 추구하는 분위기가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그의 작품들에서는 선명한 구상적 이미지를 느낄 수가 있다. 줄거리의 탄탄함이나 심리 묘사, 화려한 문장보다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는 에도가와 란포가 그랬던 것처럼 한결같이 기괴한 공포와 인간 본연의 내재적 욕망들을 느낄 수가 있다.
그가 다루어왔던 작품들의 주제와 소재들.-집념, 망상, 숙명적 증오, 봉건적 동기, 강렬한 애정, 복수, 인과응보들이며 이미지의 소재가 되는 것은 쌍둥이, 정신이상, 불구자, 화상, 이상성격 등등.. 또한 에드거 엘런 포우를 떠올리게 할 정도의 공포스러운 이미지 - 고양이, 짐승의 시체, 갑옷 입은 무사, 독풀, 점술, 절세 미녀, 미소년, 거미, 문신 등등... 이 정도면 스티븐 킹의 팬들도 족히 만족시킬 수 있을 법한 소재들이 아닐까.
작품 각각의 이미지와 소재들도 매우 독특하지만 그가 쓰는 트릭과 동기는 늘 독자의 상상을 어느 정도 초월한다. 이 <혼징살인사건>도 그러했고, 그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옥문도>에서도 그러한 분위기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작가의 작품세계와 다루는 바가 기묘하고 무시무시하다고 해서 작가인 요코미조와 함께 평생을 달려온 탐정, 긴다이치 고스케 또한 무시무시한 탐정은 아니다. 이 책의 표지에서는 어떤 할아버지가 앞을 응시하는 장면과 함께 콘트라베이스 케이스 속에 발을 묶인 대단히 자극적인, 변사체가 등장한다. 이 책을 읽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꼭 정신이 이상한 녀석이야, 라고 할만한 표지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분위기를 대단히 기괴하고 변태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 이것은 출판사의 크나큰 실수이자, 작품에 대한 모욕이라 할 수 있다.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에게서 느낄 수 있는 이미지는 셜록 홈즈에게서 느낄 수 있는 날카로움도 아니요, 에르큘 포와로에게서 느낄 수 있는 부르주아적 이미지도 아닌 너무나 친근한, 우리 옆집에 있는 동네형 같은 이미지다. 작가인 요코미조는 A.A 밀른(아기 곰 푸우의 원작자-인데 "빨간 집의 미스터리"라는 추리소설도 썼다)의 추리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자기도 그것과 비슷하게 긴다이치를 소개한다.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이미지는 대단히 평범하고, 나이도 어리고, 얼굴도 평범하지만 실은 비범한 재능을 간직한 탐정의 이미지다. 또한 당황하면 머리를 벅벅 긁고 말을 더듬기도 한다.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이름도 매우 특이한 이름이라 할 수 있는 데 이것은 저명한 아이누어 학자에게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발자국 수색이나 지문 채취는 경찰관들이 하면 됩니다. 나는 거기서 얻은 결과를 논리적으로 분류, 종합해서 추단을 내립니다. 이것이 나의 탐정 방법입니다."
귀납적 증거를 적절히 제시하는 작가의 솜씨도 솜씨지만 긴다이치의 말마따나 그의 추리를 보는 것도 기가 막힌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경찰도 꽤 수사에 진전이 있는 것도 볼만했다. 또 이 작품말고 드라마에서 "아니 명탐정이 범인도 몰라요?"라고 묻는 서장의 말은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다소 복잡다단한 트릭을 써서 살짝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거장으로서의 푸른 싹이 보인다고나 할까.
<혼징 살인사건>이라는 작품에서는 오래된 일본가옥의 특성을 교묘하게 활용한 점이 포인트이다. 엘러리 퀸도 탄복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 만하다고 본다. 더 놀라운 것은 작가가 하루만에 100페이지 가량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과연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 작품의 특징은 '기묘한 가족'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시대는 급속히 변화하지만 여전히 봉건적인 질서와 가문을 중시하는 인물들이 제시된다. 봉건적인 관습을 존중하는 가문의 남자와, 신여성의 결혼식 첫날밤에 기괴한 참극이 시작된다. 고양이, 전통적인 거대한 저택과 일본적인 가옥, 기묘한 거문고 소리등이 어우러져 독자에게 기묘한 공포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세 손가락을 가진 기묘한 사나이가 등장하여 사건을 더욱 혼란시킨다. 이 참극을 당시 스물 너뎃살의 긴다이치 코스케가 명쾌하게 해결하는데, 독자는 어이쿠! 이건 어디서 본 건데, 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실은 이 작품은 셜록 홈즈의 어떤 작품에서 사용한 트릭과 흡사하다. 그래도 범인도 놀랍거니와, 트릭도 기가 막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긴다이치의 귀납적 추리에 뒤이은 심리 추리도 깔끔해서 좋았다.
끝까지 보고 나니 십년묵은 체증이 다 풀리는 듯 시원했다.
문장에서도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처럼 깔끔한 기교를 부린 점도 눈에 띈다. 처녀작이지만, 별 다섯개를 주어도 좋은 걸작이라고 생각된다. 86년 문춘 미스터리 100선에서는 이 작품이 7위를 차지했으니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나비부인 살인사건>은 대단히 복잡다단한 트릭과 함정을 설치한 작품이다. 보면서 일본식 이름과 지명에 끙끙대고, 또 복잡다단한 트릭에 끙끙대다보니 앞의 작품을 하루만에 읽어버린 것에 비하면 다 읽어내는 데 몇 배가 걸렸다. 동기는 그럭저럭이지만, 범인은, 진짜 놀랐다. 간단히 범인의 심리를 추리해내는 유리 선생과 그 증거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지는 않지만서도. 이 작품에서 범인은 천재적인 트릭과 함정 및 알리바이를 구축해낸다. 살해된 여자의 매니저의 일기 형식과 탐정인 유리 선생을 돕는 왓슨 역의 기자의 서술이 합쳐저 작품이 전개되는데, 이는 작가의 탁월한 독자 사냥용 그물망이 아니었을지.
혼징 살인사건 만큼 유쾌한 결말과 동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인 요코미조의 추리소설과 트릭에 대한 열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국내나 미국, 유럽의 추리소설들도 많이 쏟아져 나오지만 일본 작가들의 소설들, 특히 추리소설들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대단히 아쉽게도, 정작 소개되어야 할 거물인 요코미조 세이시와 긴다이치 코스케는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국내 독자들에게는 큰 인기도 없어서 개인적으로는 참 아쉽다. 그나마 요즈음 시공사에서 긴다이치 시리즈를 내주고 있으니, 참 고맙고도 반가운 일이다.^^;;
<2004년 드라마 이누가미가의 일족(犬神家の一族)에서 긴다이치 코스케 역의 이나가키 고로(稻垣吾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