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트 마지막 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34
에드먼드 클레리휴 벤틀리 지음, 손정원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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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호 피살사건 수사에 나선 트렌트는 피살자의 아내도 공범이라는 확증을 잡는다. 하지만 그녀한테 애정을 느낀 나머지 진상을 기록으로 남기고 떠나 버린다. 그 뒤 다시 만난 두 사람. 그녀는 그 자리에서 트렌트의 추리에 승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 욕망과 미묘한 성격 묘사를 융합시켜 긴박감을 더했다.

저자인 에드먼드 클레리휴 벤틀리는 브라운 신부의 창조자인 G.K 체스터튼과 각별한 관계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에게 헌정하는 작품인데, 1910년작이지만 탐정인 필립 트렌트의 치밀한 추리나 반전의 반전, 결말의 처리등에서는 별 다섯 개를 주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인간 관계나 등장 인물들의 설정에 있어서는 너무나 고색창연하고 전형적이어서 낡아빠졌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출판연도를 생각하면 이러한 설정을 현 시대의 독자는 애교로 봐 줄 수도 있다. 특히 셜록 홈즈가 대활약하던 시점에서, 이 작품이 지향하는 미스터리의 현대성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 작품에 나오는 탐정 역의 이름은 필립 트렌트. 잘 생긴 30대 초중반의 사나이이며, 각종 괴사건을 깔끔하게 해결했다. 직업은 잘 나가는 화가. 이 작품에서는 사랑과 숨겨진 진실에 갈등하며, 사랑을 위해 정열을 불태우는 청년이기도 하다. 애석하게도, 작가의 바쁜 일상생활 때문에 이 작품은 필립 트렌트가 나오는 첫번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트렌트 '마지막 사건'이 되어 버렸다. 코난 도일이 홈즈를 라이헨바흐에서 죽였다가 다시 되살린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인 벤틀리도 독자들의 요구에 의해 다시 트렌트가 나오는 단편집을 다시 썼을했을 정도이니 이 탐정의 인기도 당대에는 상당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등장인물들은 참으로 고색창연하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속에서 언제나 볼수 있는 등장 인물들 같은데, 돈 많은 나이많은 부호, 젊고 아름다운 아내, 충직한 늙은 집사와 너무 잘생겨서 남편의 심지를 돋우는 젊고 잘생긴 비서며 괄괄한 성격의 하녀가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들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용의자는 정해져 있는 듯 보이며, 여러 가지 귀납적 증거가 골고루 제시된다.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점은 특히 풍부한 증거가 제시되며, 탐정은 심리적인 추론보다는 홈즈와 마찬가지로 제시되는 증거를 깔끔하게 분석해서 결론에 이르는 추리가 멋지게 설정되어 있는 점이다. (비록 뒤에 가서는 대부분의 추리가 물거품이 되어버리지만 말이다.)
1910년대의 다소 봉건적이고 보수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던 시대적 현실에 반하여, 탐정 역의 필립 트렌트는 그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랑을 위해 갈등하고, 가슴 아파하는 대단히 능동적인 인물이다. 과부가 된 아내와 탐정 필립의 사랑과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낸 로맨스는 이 소설의 읽는 맛을 더한다. 흔해빠진 신파극같지만, 결말에서 사랑의 쟁취를 이룬다는 점에서 또 독자로서는 보는 재미가 쏠쏠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작품 자체가 추리소설이면서 추리소설을 비판한다는 점이다. 인기 만화 '명탐정 코난'과 '소년탐정 김전일'과 마찬가지로 추리소설에서 볼 수 있는 범죄와 증거는 언제나 탐정이 그것을 짜맞출 수 있는 퍼즐과 마찬가지로, 제한적이고 언제나 맞아 떨어지게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도대체 어떻다는 것인가. 그런 결론은 작가만이 낼 수 있는 것이고, 독자는 상상도 못하는 무리한 생각이며 설정이 실은 추리소설에 허다하다는 것이 이 작품에서 다루고자 하는 바이다. 앞에서 말한 반전의 반전이란 이를 말하는데,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미스터리의 현대성이란 바로 그것이다. 추리소설의 태동기 초반이라 할 수 있는 1910년에 이런 진보적인 생각과 비판 정신을 가지고 작품을 쓴 작가에게는 정말 박수를 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명탐정의 추리를 무색하게 만드는 최후의 결말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우리가 홈즈의 추리를 보고 감탄하지만 언제나 감탄만 해서는 안된다는, 진보적인 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트릭을 풀어나가는 추리소설로서 최고급은 아니지만, 추리소설의 비판으로서 이 작품은 탁월한 걸작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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