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 [할인행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야기라 유야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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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변명


아이들은 모르는 어른들의 사정이라고 말하듯이 어른들이 알 수 없던 아이들만의 사정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과연 알 수 없었던 것일까. 작품 속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깊게 관여하지 않는다. 거지 몰골을 하고 편의점에서 아폴로 2만원 어치를 사가는 아이들을 보며 점장은 소풍이라도 가나보구나 하며 눈 앞의 이익에만 시선을 두게 된다. 공원을 전전하며 양치를 하고 머리를 감으며 빨래를 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아니 아무것도 모르고 싶을 것이다. 젊은 또래의 청년들은 그런 아이들을 걱정하며 심적으로라도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기도 하지만 이제 막 어른이 되어가는 그들에게 더해질 책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아이들을 방치하고 간 어머니는 무책임한 돈봉투와 함께 기약없는 약속과 믿음이라는 허상의 단어로 아키라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그녀는 자신도 행복해지고 싶다고 했다. 행복해지고 싶은 것은 아이들도 똑같을 것이다. 그녀가 그린 행복의 환상 속에는 아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의 행복은 아이들의 부재가 되지만 아이들의 행복은 어머니의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한 믿음을 끝내 외면하고 그녀는 떠나갔다. 남겨진 아이들의 기억 속 어머니의 흔적은 바닥에 엎질러버린 매니큐어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흔적들을 가슴에 끌어 안은 채 묵묵히 각자의 역할을 해나간다. 부모로부터 결여된 책임의식은 고스란히 맏이들의 몫이 되어 어른스럽게 동생들을 돌본다. 게임하고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놀고 싶을 나이에 아키라는 그 욕심을 하나하나 포기한다. 그리곤 친구를 잃어가면서 지키려했던 내적 윤리의식마저 죽어가는 유키를 위해 놓아버리고 만다. 몇 년전쯤 일본에서 맨홀뚜껑이라던가 하수구 창살을 뜯어 판매했던 절도범들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아키라 식구들을 버리고 떠난 엄마나 그 절도범들도 책임감, 윤리의식의 결여를 물론 꼬집을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을 개인의 특성으로 치부한다고 문제가 매듭지어지지는 않는다. 어떤 환경들이 그들을 그런 궁지로 내몰았을까. 

당시의 일본 사회는 버블 경제의 붕괴로 인해 참담한 난항들을 겪었을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자던 가정, 이웃들의 구성도 지독한 현실 앞에 씻겨나가는 비누 거품처럼 꺼져버렸다. 그리고 점차 핵가족의 형태를 취하는 사회현상에 따라 그들은 미래보다는 오늘을, 이웃보다는 자신을 챙기기에 분주하게 되었다. 그런 사회 속에서 책임의식 없는 부모로부터 자라난 아이들은 방기되고 주변으로부터 고립되고 만다. 

모두 힘든 사회에서 보란듯이 떠밀려온 아이들에게 세상은 아무런 손길도 내밀어주지 않는다. 그 속에서 모두 알 수는 있지만 알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무도 모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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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 털보 과학관장이 들려주는 세상물정의 과학 저도 어렵습니다만 1
이정모 지음 / 바틀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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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교수는 서울시립과학관의 관장을 맡고 있는데 단순한 전시, 설명이 목적이 아닌 진짜 과학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한다. 과학의 진면목은 실패하고 계속해서 도전해나가고 의문을 품고 발견해 나가는 것이라 설명하며 학생들에게 과학을 친근하게 소개하는데 중점을 둔다. 정말 맞는 말이다. 별자리 신화가 얼마나 흥미로운지보다 그것이 지구와 별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어떤 원리로 이루어져 있는지, 또 아르키메데스가 아무리 욕조로 들어가 '유레카'를 외쳤다 해도 그에 따른 부력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단순한 암기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실험관찰에 의거한 교육들이 아이들에게 행해졌을 때 나는 아이들의 정신력과 창의성에도 무척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믿는다.


책의 형식은 과학서적 보다는 과학자의 시선으로 재치있게 일상을 소개한 에세이 정도로 볼 수 있다. 어려운 원리도 일상에 깃들어 있는 행동들을 통해 발견이 될 때 더욱 쉽게 이해가 된다. 인간과 사회에 교묘하게 엮여져 있는 과학의 원리들을 탁월한 눈높이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가 바라보는 사회의 모습이 무척 유쾌해 보였다. 객관적인 시선에서는 편향된 정치색의 표현에 불편함을 갖출 수도 있겠지만 폐허가 된 현재 사회의 모습을 유쾌하게 꼬집고 풍자하는 모습에 더욱 재치있게 느껴졌다. 


과학에 쉽게 입문할 수 있는 것처럼 묘사된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어린이 교양 추천서로는 적절하지 않다. 일찍이 과학과 거리를 벌린 사회인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법한 내용이다. 처음에는 그의 서술방식이 와닿지 않았다. 친근한 느낌을 주며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형성하는게 살짝 과도한게 아닌가 해서 인위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 읽어나가는 와중에 바뀐 생각은 인위적이라기보단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과학자라고 해서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딱딱할 것만 같다고 여겨질수도 있을 텐데 이정모 관장은 선입견이긴 해도 그의 푸근한 외모처럼 정감이 많이 가는 소통방식으로 과학의 세계에 친근하게 입문할 수 있게 해준다. 과학과 거리가 있던 내게는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유쾌한 서적으로 심심풀이, 킬링타임 정도로 볼만한 가볍고 여유로운 책이다. 과학 서적의 정석 코스모스를 읽기 위해 요즘 과학교양서들을 찾는 중이었다. 제법 기름칠이 된 것 같아 다행이다. 


p 60
세상에서 가장 작은 원자가 빛을 내는 것이나 세상에서 가장 큰 별이 빛을 내는 것이나 원리는 똑같다. 에너지를 버릴 때 빛난다. 자기의 것을 버리고 작아질 때 빛난다. 빛나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이 말은 버리고 작아지는 것들이 아름답다는 말과 같다. 더 낮아지고 더 많이 버리시기를.

p 83
‘과학적‘이라는 것은 최대한 간단하게 잘 설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탐욕‘이며 갖추어야 할 최소한 것은 바로 ‘염치‘다. 염치만 있으면 누구나 과학적으로 생객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대한민국의 전진을 위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을 기리는 노래 하나 편하게 부르지 못하는 나라를 변명하려면 너무나 많은 구차한 논리들이 필요하다. 깔끔하게 가자.

p 110
"믿음을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남을 해롭게 한다."

천동설은 비록 틀렸지만 아주 좋은 과학이다. 하지만 천동설주의자는 사회의 폐단일 뿐이다.

p 160
"우리는 항상 세 가지를 의심해야 한다. 자신의 눈, 자신의 기억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이 바로 그것이다."

내 기억은 다른 사람의 말에 의해 왜곡된다. 신뢰할 만한 사람의 말일수록 더 의심해야 한다.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하자. - 약학칼럼니스트 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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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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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예전부터 보고싶던, 봐야만 했던 책이었다. 교육과정 중 한국사는 필수과목이었고 나는 외우기를 잘하는, 역사를 나름 잘하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 암기는 언제나 시험에서 고득점을 얻기위한 수단 중 하나였을 뿐. 현대사에 관한 지식은 그 이후로 모두 증발해버렸다. 그래서 어떤 책을 읽을 때나 시사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근현대사에 관한 내용이 나오면 제대로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유를 얻기 위한 항쟁들, 권력과 부정부패로 점철된 정치판, 조작된 검찰 수사 등. 커다란 얼개만 갖추어져 있던 나의 역사관에 이 책은 정확하고 안정된 지도를 만들어주었다. 400쪽의 많아보이지만 55년의 유구한 역사를 담아내기엔 비좁은 페이지 속에 현대사를 몸소 겪어낸 유시민 작가의 역사가 녹아있었다. 


영화' 변호인'에서는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읽으며 토론하는 학생들을 반공으로 규정한다. 없는 죄를 덧씌우기 위해 경찰들은 중상모략을 일삼으며 잔인한 고문까지 행한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규정한 불합리한 정의는 사람들의 사상을 통제하고 억압했다. 그리고는 사람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죄없는 학살을 자행했다. 모두 나라를 통치하기 위한 개인의 욕심에서 비롯된 잘못된 정의이다. '주권재민'이라는 헌법의 기초이념을 무시하고 국민 위에 권력이 있음을, 대통령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회였다. 제국주의와 전쟁의 역사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아 학살에 대한 감각이 무뎠던 것일까. 그들에겐 권력을 쥐고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구분되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진실들은 한참뒤에야 비로소 규명되었지만 그에 대한 희생자들의 보상은 아직도 미미한 수준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과 증거는 소실되어가고 사람들은 생을 마감한다. 그렇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을 뿐더러, 자신이 지은 죗값은 반드시 벌을 받게 되어있다. 사후세계를 믿는 편은 아니지만 죗값을 치루지 않고 안락한 삶을 누리다 평온하게 죽은 가해자들은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지기를 소망한다.


인터넷 사이트의 극우 성향을 띄고 있는 '일간베스트' 사이트가 도를 넘은 인격모독과 비난, 희롱들을 일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제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과거의 엄격한 사상 통제로부터 얻어낸 고귀한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그 고귀한 자유는 그것을 더럽히는 불결한 사상들을 위해 쟁취되어진 것은 아닐테지만 말이다. 아이러니한건 그들이 찬양하는 사상의 종식으로부터 얻어낸 권리가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렴 그 자유가 왜곡된 방법으로 표현되어지는 것은 현대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에 각설하겠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자유가 제약된 사회에서 대중들은 억압에 대해 저항을 하며 권리를 위해 맞서싸웠다. 군 병력을 이용한 일방적인 관계 앞에서도 그들의 투지는 굴복하지 않았고 아주 힘겹게, 그리고 숭고한 희생으로 값진 자유를 얻어냈다. 


한국의 현대사는 비슷한 형식들을 반복해왔다. 자유와 사상을 탄압받고 강요당하는 정치에서 힘겹게 얻어낸 자유. 그리고 불과 몇년 전 이어지던 언론 조작과 비리, 부정들. 다행히도 같은 역사를 겪어왔던, 그리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던 수많은 시민들의 의식 덕분에 또 한번 권리를 얻어냈다. 다행히 부정의 반복은 사회에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반면교사의 역할도 해주기에 수준높은 의식을 함양하게 한다. 물론 그런 사건을 통한 환기보다는 이런 책들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온화한 방법이겠지만. 아직도 대기업 언론의 검색어 조작이나 권력을 이용한 감형 등 그러한 세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난 70년간 힘겹게 쟁취해낸 자유민주주의이기에 정의를 수호하기위한 올바른 시민의식이 형성되었다. 그래도 사회는 진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금의 사회는 불합리와 부도덕에 매우 엄격하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형상이 되어 가차없는 처벌을 요구한다. 난 이것이 억울한 피해자를 낳을 수 있는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의 깊숙히 찌들어 있는 부정들을 고발해주고 철저히 들춰내 처벌하는 역할도 해주기에 무작정 배척할 수는 없는 현상이다. 그러한 시민연대는 정책의 오류들을 짚어내고 비판하며 제대로 된 민주사회로 이끌어나갈 것이다. 그 방향 속 중요한 것은 타인의 일방적 주관에 기대어 무조건적인 동의보다는 스스로 합리적인지 판단하고 주체가 되어 생각하는 능력이 우선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철저하게 사회에 박여있는 부정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이제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자긍심을 가져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리를 수호하고 지켜나가는데 사명을 가져야 한다.



p 27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며 미래는 현재의 연장이다. 그런 점에서 미래는 언제나 오래된 것이다. 내일 오는 게 아니라 우리 내면에 이미 들어와 있다.

p 28
빛과 어둠이 공존하지 않는 역사는 없다. 인간 자체가 둘 모두를 가진 존재일진대 역사가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드높이 들어야 할 빛이 있고 그 빛으로 인해 차츰 사라져갈 어둠이 있기에, 민족의 역사도 우리들의 인생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p 75
국가의 정통성은 내부에서 형성된다. 내세우는 이념이 무엇이든 국민이, 민중이, 인민이, 또는 대중이 그 나라의 국민임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국가의 결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복종할 때, 외부의 침략과 내부의 무질서에 대항해 공동체를 지키려고 헌신하려는 태도를 보일 때, 그 국가는 정통성 있는 국가가 되며 자연스럽게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다.

p 119
오늘 우리가 누리는 어느 것 하나도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지 않았다. 청년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원래 거기 있던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한국 경제의 50년 궤적을 몸으로 밀어왔던 사람들은 이런 것으 보면서 꿈을 꾸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p 178
정의, 평등, 인간해방 등 혁명가들이 내거는 목표가 무엇이든, 어떤 추상적인 선을 실현하기 위해 폭력으로 사회를 재조직하는 혁명은 반드시 전체주의 독재로 귀결된다. .... 추상적인 선을 실현하려고 혁명을 하기보다는 현실의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한 사회적 개혁과 개량에 집중하자고 호소했다.

p 189
모든 권력은 집중과 확대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 감시와 견제가 느슨해지면 누구나 권력을 오남용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이럴 때 시민들이 참여하고 비판하고 저항하지 않으면 민주주의 제도는 껍데기로 전락하고 만다.

p 271
우리는 대통령에 대해서든, 정치에 대해서든, 통일문제에 대해서든, 혁명에 대해서든, 그 무엇에 대해서든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 헌법이 우리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는 정부가, 또는 압도적 다수의 국민이 옳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위한 것이 아니다. 대다수 국민이 터무니없다고 판단하는 견해까지도 제한 없이 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 비록 진리가 아닌 견해라 할지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행위가 다른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그것을 제약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헌법의 정신이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p 280
지금 우리는 그 광장의 주인으로 살고 있다. 우리는 국가의 부속품이 아니며 대통령의 부하도 아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위해 있는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사람은 그 어떤 위대한 이념이나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존재다.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 때 행복을 느낀다.우리 모두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존엄한 인간이다. 우리는 자신의 존엄성을 확신하는 것과 똑같은 무게로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자유주의적 각성‘이라고 부른다.

p 417
지금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각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시간의 물결을 타고 나와 대한민국의 미래가 된다. 역사는 역사 밖에 존재하는 어떤 법칙이나 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욕망과 의지다. 더 좋은 미래를 원한다면매 순간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 좋은 것을 쌓아야 한다. 우리 안에 만들어야 할 좋은 것의 목록에는 역사에 대한 공명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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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은 권력이다
박정자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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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발달은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다. 곳곳에 그물망처럼 펼쳐진 네트워크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도 손쉽게 소통할 수 있고 교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세계 속, 또 하나의 세계가 생산된 것이다. 그 공간은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한다. 사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는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며 그에 맞는 취향들을 분석해낸다. 그것도 모자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아예 일기장처럼 자발적으로 기록된 개인의 행동, 생각 등의 정보가 축적되어진다. 바야흐로 데이터 네트워크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일상과 현실에 지친 현대인들은 이런 문명활동을 통해 조금의 안정을 누린다. 안식처가 되는 네트워크 공간은 대량의 정보를 결집시켜 편의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무언가의 편리함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희생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기꺼이 감수해야만 그 편의를 누릴 수 있다. 그것은 겉보기에는 특별한 영향이 없는 것처럼 보여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벌써 CSI 같은 정보기관에서는 SNS를 이용해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들을 손쉽게 수집한다고 알려져있다. 그만큼 근처에 흩어져 있는 정보들처럼, 나의 정보도 흩어져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들은 나에 의해서, 타인에 의해서 감시가 가능해진다.


미셸 푸코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는 권력이 '보여지는 자'로부터 '보이는 자'에게 이동되었다고 말한다. 중세 프랑스에서는 죄수들의 공개 처벌을 통해 왕정의 권력을 과시하며 민중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심었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민중들의 결속을 다지게 하며, 범죄자와 집행자의 역할이 전도됨에 따라 죄인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진 않을까 우려하게 만들었다. 그 후 처형은 비공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죄수들을 가두는 방식에 있어서도 형식이 바뀌게 되었다. 사회에서 격리시키기위한 칠흑의 어둠으로부터 그들의 모든 행동을 파악할 수 있는 빛의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죄수들은 감시자들에게 보여지는 대상이 되었고 모든 권력에 순순히 복종하게 되었다. 그러한 감옥의 형식은 합리적인 규율과 체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체제들은 지금의 군대, 병원 심지어 학교에서까지 적용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이로써 누군가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타인으로 하여금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권력을 선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읽으려 했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내용은 아니었기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비슷한 책을 찾다가 또 박정자 교수님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푸코의 주장의 요점들을 압축해 알기 쉽게 설명해 놓았다. 책이 출간되어진 것은 2008년.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이다. 책에는 'SHOW를 하라'와 같은 머나먼 과거의 통신사 광고를 최신의 사례로 들고 있다. 그만큼 책이 예전에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대에 이루어진 통찰은 지금의 SNS가 만연한 현대사회에 더욱 잘 맞닿는다. 일상에 없어서는 안되는 미디어들이 우리의 삶을 점령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로써 타인은 나를 쉽게 감시할 수 있고, 나 또한 타인을 쉽게 감시할 수 있다. 나는 타인을 대상으로 만들 수 있고 타인도 나를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


보여지는 사람들은 권력의 노예가 된다. 그리고 그들을 보는 자인 우리들은 노예들을 맘껏 휘두를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권력은 냉철한 판단에 의거하여 사용되어져야 한다. 근거없는 낭설에 잘못 휘둘러져 엄한 사람에게 휘둘려지면 안된다. 그것은 극심한 사회적 고통을 생산해내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는 권력의 유대를 더욱 강하게 결속시켜 놓았다. 그리고 누군가를 꼭두각시로 만들기도 한다. 강해지는 힘 만큼 우리의 판단력도 충분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P 30
타자는 이처럼 나와 나 자신을 연결하는 필요불가결의 매개자이다. 나는 남에게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을 때만 나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남의 시선이 없다면 인간에게 수치심은 없다. 단순히 수치심만이 아니라 존재의 기초자체가 자기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있다고까지 우리는 유추해 볼 수 있다.

P 62
노예는 자연의 사물을 가공하는 노동을 통해 주인이 없이도 얼마든지 생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노예를 통해서만 자연과 관계를 맺었던 주인은 노예가 사라지면 단 하루도 생며을 유지할 수 없다. 노예가 서서히 자기 도야를 통해 자립성을 획득해 가는 동안 역설적으로 주인은 의존 상태에 떨어진다. 이렇게 되면 주인은 진정한 의미에서 노예의 노예로 드러나고, 노예는 주인의 주인으로 드러난다.

P 81
물리적 강제 대신 자유가 들어섰는데, 이 자유는 고독과 맞닿아 있다. 착란과 공격의 대화 대신 독백의 언어가 들어섰다. 그리고 광인의 독백은 사람들의 침묵 속에 묻혀버렸다. 예전에 광인들을 모욕하던 사람들의 거만함은 무관심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므로 쇠사슬에서 풀려난 광인은 이번에는 과오와 수치에 억매였다. 자기와의 관계는 과오의 차원이고, 타자와의 관계는 수치의 차원이다. 과거에 육체적 처벌을 받았을 때는 그 처벌을 통해 자신이 결백해졌음을 느꼈다. 지금 육체적 징벌에서 해방된 그는 도저히 벗어날 방법이 없이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느낀다.

P 126
무기를 사용하지도 않고 공포를 주는 것도 아니면서 신체를 복종시키는 것이 더 훌륭한 방법일 것이다. 이것은 결국 신체에 대한 지식과 체력의 통제를 통해서 가능하다. 이 지식과 통제가 신체의 정치적 테크놀로지이며, 그 기술의 요체는 다름 아닌 규율이다. 규율은 복종되고 훈련된 신체, 순종하는 신체를 만들어 낸다.

P 167
가시성이야말로 예속을 극대화시킨다. 규율의 대상인 개인을 예속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끊임없이 보이고, 또 항상 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캄캄한 어둠이 아니라 밝은 빛 속에 들어왔으므로 훨씬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상식과는 달리 어둠은 사람을 편안하게 감추어주고 빛은 잔인하게 그를 드러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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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 박정자의 인문학 칼럼
박정자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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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셸 푸코와 사르트르의 철학을 국내에 널리 보급하고 연구한 지성인 박정자 교수님의 작년 신간이다. 이분의 글을 처음 접했던 것은 지난 여름 마그리트의 그림에 한창 빠져있을 무렵이었다. 국내에는 마그리트의 그림을 소개하는 책들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 중 문체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이 되었지만 잘알려지지 않은 <마그리트와 시뮬라크르>라는 책에 흥미가 생겼다. 쉬운 책은 아니었기에 부족한 미학개념을 잘붙들어내고 분투하며 완독을 하게 되었다. 그 때 감탄을 했던 것은 어렵게 느껴질 법한 미학용어들의 개념을 쉽게 풀어 설명해주시는 박 교수님의 문체에 매료되어 버렸던 것이다. 어렵고 낯선 언어들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당황감을 느끼지만 그 언어들을 깨우치고 난다면 왠지모를 성취감에 취하게 된다. 그랬던 기억이 있기에 박정자 교수님의 책을 좀 알아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교수님이 동아일보를 통해 게재하셨던 칼럼들을 한데 묶은 이 책또한 다시 한번 매력적인 문체로써 나를 사로잡았다.


사르트르나 푸코, 보드리야르 등 걸출한 현대철학자들의 기본 이념을 통달한 후에 개진되는 사유들은 현대 사회의 각종 이슈와 맞물려 박 교수님만의 시선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그 통찰은 독자들 내면의 지적호기심을 간질여 허영젖은 약간의 우월감에 빠지게도 만든다. <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제목은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작품에서 따온 텍스트이다. 책에서 다루는 사회, 문화, 정치에 대한 일들은 정치와 상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정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교수님은 일정한 당파성을 지니지 않다고 해서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고 표현을 하였다. 의미는 좋지만 사실 이 책이 당파성을 지니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칼럼이 게재되어진 매체 자체가 특정 경향을 갖고 있기에 느껴지는 편견인 것인지, 한동안 맑시즘에 빠져 치우친 경향을 갖게 된 내 관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책은 꽤나 보수적인 입장의 시각에서 쓰여졌다. 사실 뉴스에서나 언론으로 보도되는 국내보수세력들은 뇌물이나 성범죄 등 기본 윤리에도 못미치는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에 무작정 우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긴 했었다. 그래도 이런 책으로나마 정상적인 그들의 의견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심적으로는 공감하고 싶지 않은 글들도 더러 있었다. 그렇지만 보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세상을 편협하게 바라보지 않기 위해 필요한 시각이다.


어떠한 개념에 대한 인식들은 사람들마다 받아들이는 의미가 참 제각기 다른것 같다. 그래서 하나의 논리에는 언제나 뒤따르는 반론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존재하는지 모르는 진리를 찾아나가는 것 같다. 헤겔의 변증법적 사상과 상통하는 개념인데 세상의 모든 글, 생각들은 결국 반대되는 개념들을 끌어내며 과거의 개념을 낡은 것으로 만든다. 우리가 제시하는 모든 주장들을 연약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감정을 느꼈다. 안그래도 나의 주관 없는 중립성은 이 생각에 빠져 겸손이라는 이름의 내적고립에 갇혀버린 것만 같았다. 성장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주장을 내세워 진리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연약한 주장을 내세우지도 못하고 겸허로 치부하는 나의 나약함이 괴롭게 느껴진다. 이렇게 배워나가는 것이겠지? 공부가 더 필요하다.


p 25
다만 노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을 대변할 문학가를 갖지 못한 채 주변부에 대상으로 머물러 있고,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철학자나 문학가는 언제나 청년 혹은 장년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비대칭성이 생겨난 듯하다.

p 102
좌파는 현실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들이 부과하는 수많은 제약은 오히려 현실을 바꾸지 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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