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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 박정자의 인문학 칼럼
박정자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미셸 푸코와 사르트르의 철학을 국내에 널리 보급하고 연구한 지성인 박정자 교수님의 작년 신간이다. 이분의 글을 처음 접했던 것은 지난 여름 마그리트의 그림에 한창 빠져있을 무렵이었다. 국내에는 마그리트의 그림을 소개하는 책들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 중 문체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이 되었지만 잘알려지지 않은 <마그리트와 시뮬라크르>라는 책에 흥미가 생겼다. 쉬운 책은 아니었기에 부족한 미학개념을 잘붙들어내고 분투하며 완독을 하게 되었다. 그 때 감탄을 했던 것은 어렵게 느껴질 법한 미학용어들의 개념을 쉽게 풀어 설명해주시는 박 교수님의 문체에 매료되어 버렸던 것이다. 어렵고 낯선 언어들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당황감을 느끼지만 그 언어들을 깨우치고 난다면 왠지모를 성취감에 취하게 된다. 그랬던 기억이 있기에 박정자 교수님의 책을 좀 알아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교수님이 동아일보를 통해 게재하셨던 칼럼들을 한데 묶은 이 책또한 다시 한번 매력적인 문체로써 나를 사로잡았다.
사르트르나 푸코, 보드리야르 등 걸출한 현대철학자들의 기본 이념을 통달한 후에 개진되는 사유들은 현대 사회의 각종 이슈와 맞물려 박 교수님만의 시선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그 통찰은 독자들 내면의 지적호기심을 간질여 허영젖은 약간의 우월감에 빠지게도 만든다. <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제목은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작품에서 따온 텍스트이다. 책에서 다루는 사회, 문화, 정치에 대한 일들은 정치와 상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정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교수님은 일정한 당파성을 지니지 않다고 해서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고 표현을 하였다. 의미는 좋지만 사실 이 책이 당파성을 지니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칼럼이 게재되어진 매체 자체가 특정 경향을 갖고 있기에 느껴지는 편견인 것인지, 한동안 맑시즘에 빠져 치우친 경향을 갖게 된 내 관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책은 꽤나 보수적인 입장의 시각에서 쓰여졌다. 사실 뉴스에서나 언론으로 보도되는 국내보수세력들은 뇌물이나 성범죄 등 기본 윤리에도 못미치는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에 무작정 우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긴 했었다. 그래도 이런 책으로나마 정상적인 그들의 의견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심적으로는 공감하고 싶지 않은 글들도 더러 있었다. 그렇지만 보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세상을 편협하게 바라보지 않기 위해 필요한 시각이다.
어떠한 개념에 대한 인식들은 사람들마다 받아들이는 의미가 참 제각기 다른것 같다. 그래서 하나의 논리에는 언제나 뒤따르는 반론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존재하는지 모르는 진리를 찾아나가는 것 같다. 헤겔의 변증법적 사상과 상통하는 개념인데 세상의 모든 글, 생각들은 결국 반대되는 개념들을 끌어내며 과거의 개념을 낡은 것으로 만든다. 우리가 제시하는 모든 주장들을 연약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감정을 느꼈다. 안그래도 나의 주관 없는 중립성은 이 생각에 빠져 겸손이라는 이름의 내적고립에 갇혀버린 것만 같았다. 성장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주장을 내세워 진리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연약한 주장을 내세우지도 못하고 겸허로 치부하는 나의 나약함이 괴롭게 느껴진다. 이렇게 배워나가는 것이겠지? 공부가 더 필요하다.
p 25 다만 노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을 대변할 문학가를 갖지 못한 채 주변부에 대상으로 머물러 있고,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철학자나 문학가는 언제나 청년 혹은 장년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비대칭성이 생겨난 듯하다.
p 102 좌파는 현실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들이 부과하는 수많은 제약은 오히려 현실을 바꾸지 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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